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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SF어워드 (2018)

SF어워드 2018 - 중·단편소설 부문 수상작 및 심사평

아무리 머나먼 세상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는 늘 내가 사는 세상의 한 가운데에 서서 나라는 한 개인의 전인격으로 소설을 쓸 수밖에 없다. 언제나 그랬다.

이 소설은 2016년 7~8월의 예스컷 광기 속에서 썼다. 구조와 트릭은 한 해 전에 잡아두었건만 내 세계관이 격변하고 있어 도저히 소설을 그대로 마무리지을 수 없었다. 나는 거의 다 쓴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썼고, 절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를 더욱 절대적인 몰이해성을 가진 인격에 이입하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나는 당시의 광기를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박제하고자 했으니, 이 사실을 또한 여기에 기록하여 다시 남긴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스포일러를 지켜주려는 것과 별개로, 이 소설은 아무리 열심히 스포일러를 해도 트릭이 먹히는 것 같다. 쉬운 트릭이라 생각하고 쓴 것을 생각하면 신기한 일이다.


《얼마나 닮았는가》 심사평 중에서

AI나 인공생명이 소재로 쓰인 많은 작품들 중에 단연 돋보였으며,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편견의 사각지대를 상쾌하게 깨뜨리며 세계를 넓혀준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SF의 강점을 느끼게 했다.

- 이수현


인류가 오랜시간 동안 내재하고 있었던 폐해들에 대해서 인공지능과의 대화를 통해 제3자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고발하는데, 이러한 방법은 오로지 SF에서만 발현 가능한 인지적 낯설게하기(cognitive estrangement)를 훌륭하게 구현한 것이다.

- 이지용


대답할 가치가 있는 질문을 공들여 답을 찾고, 읽는 사람에게 충분히 다가갈 수 있도록 치밀하게 펼쳐낸 수작.

- 최지혜


저는 똑똑하고 착하고 용감한 사람이 좋아서 계속 그런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러다 보니 쓰는 것도 장르가 무엇이건 모험소설이 됩니다. 저는 TRPG를 오래 했고 그 분야의 출판 일도 하고 있는데, 그 경험에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지금은 호러 중편을 하나 쓰고 있는데, 그것도 일종의 모험소설입니다.

<라만차의 기사>는 제 첫 SF 작품입니다. 어느 하나의 파멸적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모순에 못 견디고 서서히 망해가는 세계가 재미있겠다는 데에서 출발했지만, 몰락의 경위를 상세히 쓰는 것은 구차할 것 같아 피했습니다. 그보다는 문명 멸망 과정의 단면에 사는 똑똑하고 착하고 용감한 사람들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돈키호테> 원작보다는 뮤지컬 <라만차의 사나이>와 감성이 더 비슷하다는 독자평을 보았는데, 제 생각에도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라만차의 기사>에서 알라냐가 “중국과 아르헨티나의 기사들도 나처럼”이라고 말을 해 놓은 것을 나중에 보니 같은 시대의 다른 곳에 사는 기사들의 이야기도 재미있겠다 싶어, 더 써서 단편 시리즈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시작으로 서부극 오마주인 <검은 말을 탄 기사>를 브릿G에 올려 놓았습니다. 언젠가 (또 이름이 바뀐) 레닌그라드의 기사에 관한 얘기도, 중국 시안의 기사가 위키피디아 백업을 찾으러 가는 얘기도 써 보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라만차의 기사》 심사평 중에서

가슴 뛰는 작품이었다. 문명이 후퇴해버린 세계에서 가망 없어 보이는 싸움을 계속하는 기사라니, 어떻게 안좋아할 수 있을까.

- 이수현


기존의 의미들에 대한 인지적 낯설게 하기를 추동하여 새로운 의미들에 닿으려는 작품은 현란한 기술에 대한 상상력이 없어도 충분히 미래지향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지용


고전의 포스트아포칼립스적 재해석, 능수능란한 이야기 전개와 피 끓는 몰입감이 공존하는 작품.

- 최지혜


<로드킬>의 배경은 먼 미래,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 소수의 여성들이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되어 국가에 의해 보호되는 사회입니다. 보호소에서 격리되어 자라던 두 주인공 소녀가 어느 날 위험천만한 탈출을 감행합니다.

독립문예지 《소녀문학》 2호에 처음 발표했던 <로드킬>은 저를 여러 곳으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우선은 《여성작가 SF 단편모음집》으로 엮여 많은 독자분들을 만났고,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 진행한 한중 SF 문화교류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어로 번역되어 중국 독자들에게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여성주의 SF 독서 모임인 ‘페미숲 갈다’의 주제 작품으로 채택된 덕분에 여성주의적 토론장 안에서 흥미로운 담론들을 접할 기회도 얻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번 2018 SF 어워드로 더없이 큰 격려를 받았네요.

<로드킬> 속의 소녀들과 고라니들처럼, 저도 이 작품을 계기로 더더욱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이 나올 수 있게 해주신 모든 분들과, 이 소설을 읽고 생각하고 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로드킬》 심사평 중에서

약하다거나 강하다는 인식 자체가 선입견에 기초하고 있으며 때로는 약한 사람이 더 강할 수 있다는 점을 절묘하게 잡아낸 부분에서 신선함을 느꼈다.

- 이수현


젠더에 대한 사고실험의 확장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지용


당사자성과 은유의 섬세한 결합, 인상적인 결말, 소재와 설정을 넘어서는 문학적 성취.

- 최지혜


「증명된 사실」처럼 꿈도 희망도 없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정말 많은 분들께서 사랑해 주셨습니다. 글 속에서 우리의 희망을 이렇게까지 산산조각내볼 수 있다는 점도 어쩌면 SF를 쓴다는 일의 매력이겠죠. 앞으로도 SF 작가로서 조금 더 이것저것 부숴볼까 합니다.


《증명된 사실》 심사평 중에서

중력과 유령이라는 두 가지 소재를 적절히 연결시켜서 머리를 땅 치는 강렬한 결말을 맺고, 그 후에 천천히 오싹함을 느끼게까지 한다.

- 이수현


비과학적인 소재들을 어떻게 다루었을 때 흥미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구축하면서도 과학적 상상력을 견지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지용


SF로 미신적 세상을 비추는 새로움, 단숨에 내달아 충격적으로 맺는 단편의 매력.

- 최지혜




중·단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이수현

SF어워드는 공모전이 아니다. 공모전이 아닌 만큼 문장력이나 기본 구성력, 개연성 같은 기준으로 거를 작품이 얼마 없을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170편에 달하는 후보작에서 기준 미달작이 거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재미있는 글이 넘치도록 많은 사태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냥 재미있다는 정도를 뛰어넘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글, 마음을 울리는 글도 계속 만날 수 있었으니 독자로서는 즐겁고 고마운 일일 수밖에. 그러나 이젠 휴고상 후보작들보다 한국 작품이 더 좋은 것 같다고 신나던 마음에 심사위원이라는 이름은 난감하고 무거웠다. 왜 하필 올해 심사를 맡았을까, 후보작을 읽어나가면서 몇 번이나 그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막 데뷔한 신인 작가들의 작품들도 여러 해 굳건히 버텨 온 작가들과 나란히 놓기에 손색이 없었고, 종이책 출간작만이 아니라 온라인 발표작들에서도 고르게 좋은 작품이 나왔다는 점에서는 한국 SF계의 작가군이 두터워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공모전 수상작품집들이 한 권의 앤솔로지로 추천할 만한 재미를 보여줄 뿐더러, 수록작들이 고른 완성도를 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모여서 더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기획 단편집도 늘었다는 점에서 작가만이 아니라 전문성 있는 편집과 기획에 대해서도 기대감이 생겼다.

심사위원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겨우 본심에 올리기로 결정한 작품은 열 여섯 편이었지만, 사실상 거의 차이가 없는 작품이 그만큼 더 있었다. 온갖 기준을 동원하여 본심작을 정하고 다시 논의를 거듭하여 세 명의 의견이 일치하는 최종심 네 편을 정했으나, 역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왜 여덟 편, 아홉 편에 상을 줄 수는 없나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그럼에도 심사위원 세 명 모두가 최종심에서 도저히 뺄 수 없다는 의견을 같이한 것이 지금 네 작품이었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김보영의 ‘얼마나 닮았는가’는 AI나 인공생명이 소재로 쓰인 많은 작품들 중에 단연 돋보였으며,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편견의 사각지대를 상쾌하게 깨뜨리며 세계를 넓혀준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SF의 강점을 느끼게 했다. 이산화의 ‘증명된 사실’은 중력과 유령이라는 두 가지 소재를 적절히 연결시켜서 머리를 땅 치는 강렬한 결말을 맺고, 그 후에 천천히 오싹함을 느끼게까지 한다. 호러 SF로 이 이상을 바랄 수 있을까 싶다. 사족이지만, 두 작품 다 대상을 주고 싶었다.

다른 두 작품이 그보다 못하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김지현(아밀)의 ‘로드킬’은 아름다운 작품이다. 여성이 멸종되어가는 세계를 통해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페미니즘 sf라면 영미권에서 여러 작품을 찾을 수 있지만, 약하다거나 강하다는 인식 자체가 선입견에 기초하고 있으며 때로는 약한 사람이 더 강할 수 있다는 점을 절묘하게 잡아낸 부분에서 신선함을 느꼈다. 그 세계의 절망보다는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서로를 구하는지에 더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한편 김성일의 ‘라만차의 기사’는 가슴 뛰는 작품이었다. 문명이 후퇴해버린 세계에서 가망 없어 보이는 싸움을 계속하는 기사라니, 어떻게 안좋아할 수 있을까. 하물며 그 기사가 말 위에 오른 싸움꾼이 아니라 전차를 탄 기술자라니. 기술을 부정하지도, 찬양하지도 않고 그저 향상을 추구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탐구하는 인간의 가장 좋은 면을 담아낸 듯 마음을 울린다. 물론 이런 감상을 덧붙이기에 앞서 이 소설은 우선 읽는 사람에게 고양감을 선사하는 재미있는 모험담이다.

좋은 작품이 워낙 많았지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최종심 네 작품과 경합을 벌인 네 작품은 배명훈의 ‘원본증명’, 곽재식의 ‘만날 수 있을까’, 이서영의 ‘센서티브’, 해도연의 ‘위대한 침묵’이었다. 계속 이 말을 반복하기 민망하지만, 모두 최종심에 올라간 작품들과 우열을 논할 수 없는 수작이었다. 모두 논의 과정에서 해당 기간에 발표한 각기 다른 작품들의 이름들이 같이 언급될 만큼 꾸준히 좋은 작품을 내는 작가들이기도 하다. 배명훈 작가가 ‘춤추는 사신’에서 몸짓 언어를 표현한 탁월한 필력, 곽재식 작가가 ‘초공간 도약 항법의 개발’에서 보여준 풍자와 블랙유머에도 무척 감탄했다.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버리고 달려가 버리는 기술발전 사회를 비판한 이서영 작가의 ‘센서티브’와 김초엽 작가의 ‘원통 속의 소녀’는 비슷한 듯 다른 문제의식을 담았는데, 걸핏하면 터치 화면 인식이 잘 되지 않는 손가락의 소유자로서 괜히 더 공감했다. 이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장애란 무엇이며, 정상과 비정상이란 무엇인가를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해도연 작가의 ‘위대한 침묵’은 보기 드문 스케일의 우주를 다룬다는 점에서 손꼽을 수밖에 없을뿐더러, 앞으로 보게 될 작품들이 더 기대가 된다.

완성도와 구성력 면에서 차이가 없는 글 중에 고르라면 취향이 꽤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취향을 명확히 알고 그 점을 감안하며 무게 배분을 달리 한다 해도 그렇다. 모든 심사가 다 그렇지만, 올해 어워드는 정말로 심사위원 구성이 조금만 달랐어도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다. 심사한 입장에서도 아까운 기분을 버릴 수가 없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다음 어워드에는 단편과 중편 부문이라도 나누는 안을 고려해야 하리라. 사족이지만 혼자 상상 속에서는 단편, 중편 부문 대상과 우수상 세 작품씩은 물론이고 신인상과 인기상까지 뽑아 보기도 했다. 부디 이 상상이 현실이 되기를 꿈꿔본다.




중·단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이지용

이번 출품작을 통해 느끼게 된 것은 비약적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과장만은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로 한국 SF의 긍정적인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전 회에 이어 같은 부문의 심사를 맡게 되어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오히려 즐거움으로 충만해지는 과정이었다. 물론 상향평준화 된 출품작들 중에서 단지 몇 작품를 선정해야 한다는데서 오는 곤란함을 정리하는데 꽤 많은 공력을 들여야 했지만 말이다.

우선 출품작의 수가 늘어났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이전 회에 비해 2배 가량 많아진 출품작은 데이터베이스를 꼼꼼하게 정리해 리스트업을 해주신 준비위원회의 공도 있을 것이나, 실제 단행본의 출판과 온라인 상의 발표가 일 년 사이에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작년과 비교해 출품작들의 수준이 놀라울 정도로 상향표준화가 되어 본심작을 선정하는데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심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난감함이나, 한 사람의 SF 팬, 그리고 연구자와 비평가로서는 그동안 기다렸던 반가움이라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소설로서의 완성도와 소재를 다루는 능숙함, 그리고 이야기를 꾸려나가 결말까지 끌고가 마무리 짓는 수준이 출품작 대부분에서 고르게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회의 심사평에서 단편이라는 형식에 걸맞는 소재의 활용과 구성의 완성도가 아쉬웠다는 언급을 했던 것이 무색해 질 정도로 일 년 만에 훌륭한 작품들을 다양하게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탄탄하게 구성된 이야기 내에서 기발한 상상력과 소재 활용의 신선함이라는 조금 더 높은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심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본심에 올랐으나 아쉽게 수상에 오르지 못한 작품들 중에서 특히 이서영의 <센서티브>, 배명훈의 <원본증명>, 해도연의 <위대한 침묵>, 곽재식의 <만날 수 있을까>는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이 장고를 거듭하게 하는 작품들이었다. <센서티브>는 기술문명이 고도화될수록 생겨날 수 있는 예외적 존재들에 대해서 현실감이 다루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원본증명>의 경우 작가가 이제껏 보여준 뛰어난 성찰과 소설적 완성도의 다른 일면을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위대한 침묵>의 경우 탄탄한 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밀도 있게 풀어나간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으며, <만날 수 있을까>는 SF의 상상력이 얼마나 다양한 층위로 뻗어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삼혜의 <궤도의 끝에서>와 고호관의 <어째서>, 김초엽의 <원통 안의 소녀>와 박성환의 <꿈의 중첩> 역시 SF가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의 층위를 가질 수 있는지를 확연하게 보여준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궤도의 끝에서>의 경우에는 강렬한 이야기를 작가의 필력으로 담담하게 끌고가 독자들을 결론에 안착시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원통 안의 소녀> 같은 경우에도 신인 작가의 필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이고 깊이있는 통찰을 또다시 보여줬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박애진의 <토요일>, 박부용의 <온도계의 수은>, Nosmas의 <나 누구랑 이야기하는 거니>, 리체르카의 <단발>과 같은 작품들도 기존 한국 SF에서 견지해 오던 이야기들을 재치있게 비틀거나 새롭게 정의하려는 시도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본심작에 아쉽게 오르지 못했지만 김동식 작가가 보여준 다채롭고 새로운 상상력의 영역들은 향후 한국 SF에 또 다른 원동력이 될 수 있을거란 희망을 보기에 충분했다.

이번 심사를 통해서 한국 SF의 비약적인 발전을 목도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더 욕심을 부려 향후 한국 SF가 마주하게 될 과제들을 발견하게 되기도 했다. 이번 회 어워드 출품작이 많았던 이유를 냉정하게 톺아보면, 기존의 작품활동을 해오던 작가들이 SF 전문 출판사의 등장과 성장,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를 만나 한꺼번에 책으로 묶이면서 나타난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순 없다. 덕분에 지난 시간 동안 공력을 들여 작품활동을 해오신 분들의 성과들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나 그것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 역시 떠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 역시 제법 명확한데, 이렇게 역량을 확인받을 작가들이 정기적으로 작품을 실을 수 있는 지면들의 확대와 이런 작품들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진입하는 신인작가들의 발굴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한국 SF를 아껴주었던 모든 분들이 함께 떠안게 된 고민의 지점이나, 선결문제 자체에 대한 고민을 이어오던 것에 비하면 조금 더 희망적이고 실질적인 고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는 출판의 용이함의 위해서 선택된 기획주제를 가진 엔솔로지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의 지점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환상문학웹진 거울이나 웹진 크로스로드의 작품들이 엔솔로지의 형태로 출간되던 것에서 최근 몇 년간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책을 구성하는 형태로의 변화가 나타났다. 이는 분명 SF가 출판의 기회를 얻는 방법으로 유용하게 작용했지만, 개별 단행본 출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발생한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주제별 엔솔로지는 특정한 주제를 선정한다는 것에서 화재성에는 적합하나, 작품이 주제를 의식해 자유로운 상상력을 개진하지 못할 수 있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주제별 엔솔로지들을 반복해서 읽어가면서 이러한 약점이 점차 부각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출판기회는 그동안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한 한국 SF에게 귀중한 것이나, 이제는 출판 자체의 문제보다는 어떠한 형태로의 결과들로 생태계를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자칫 사치스러운 고민들도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수많은 가능성들과 또 다른 고민들을 안겨주었던 SF어워드 2018의 중단편부문은 172편 중에서 돋보이는 네 작품이 최종심에 오르게 되었고, 그중에서 대상 한 작품과 우수상 세 작품을 선정하게 되었다. 모집과정에서 공지했던 우수상이 두 작품이었지만 한 작품을 늘려 세 작품을 선정했다는 것이 이번 회의 중단편 부문에 뛰어난 작품들이 너무 많아서 수상작들을 선정하는데 심사위원들의 고민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작인 김보영의 <얼마나 닮았는가>의 경우에는 뛰어난 작품들이 즐비했던 이번 심사에서 대상으로 결정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수작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미래나 인공지능을 소재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포스트휴먼(post-human)이라는 인류의 거대한 흐름과 맥락을 인지하고 성찰을 개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세계관을 설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인간이 존재 의의를 어디로부터 획득하고 있었지를 되묻는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를 심각하고 무겁게 풀지 않고, 일상적이고 사변적인 사건들에 녹여내 담담하게 풀어낸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김보영이라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들을 쌓고 과학기술과 미래라는 요소들을 덧붙여 빈틈이 없고 아름다운 레이어드를 만드는 것은 소재주의와 새로움이라는 것 사이에서 SF가 이야기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귀중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성차별과 같이 인류가 오랜시간 동안 내재하고 있었던 폐해들에 대해서 인공지능과의 대화를 통해 제3자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고발하는데, 이러한 방법은 오로지 SF에서만 발현 가능한 인지적 낯설게하기(cognitive estrangement)를 훌륭하게 구현한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이러한 이론적인 요소들을 아우르는 이야기로서의 재미와, 소설이라는 형식의 완성도에 있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다양하고 심도 있는 가치와 문제의 지점들을 이물감 없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기 때문에 이야기가 가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닮았는가>는 그것을 아주 능숙하게 구사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우수작인 이산화의 <증명된 사실>은 비과학적인 소재들을 어떻게 다루었을 때 흥미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구축하면서도 과학적 상상력을 견지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존재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현실로 끌어오려는 오컬티즘(occultism)은 다양한 장르에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을 해왔기 때문에 소재의 확장성을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오컬티즘을 사용한 SF 서사에서 발견되는 아쉬운 지점들이 있는데, 초자연적인 현실을 그저 증명 불가능한 불가사의로만 인식하고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인 논거들을 마련하는데 인색하다는 것이다. 이럴경우 미스테로서의 장르적 의미들을 획득하는데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나, SF에서 보았을 때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게 된다. 그런데 <증명된 사실>은 과학적 논거들을 활용해 이를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구축해 나가는 작업을 능숙하게 해낸다는 것이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서사의 등장은 장르의 소재 활용 폭과 수준을 넓혀주는 귀중한 정전이 될 수 있다는데서 그 가치가 빛난다고 할 수 있다.

우수작인 아밀(김지현)의 <로드킬>은 젠더에 대한 사고실험의 확장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 SF 서사의 전통에서 익숙하게 다루어오던 신체변형 혹은 진화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신체(body)를 획득한 트랜스휴먼(trans-human)에 대한 서사의 다양한 등장들은 서사 담론에 있어서도 반가운 일이다. 자궁을 버리고 새로운 인류가 된 개체들과 그와는 구분되어서 여전히 겪게 되는 차별과 구습들이 뒤섞여 있는 세계관은 현실의 인식들에 대한 급진적인 사고실험을 추동하는 SF에서 그 특징이 부각된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을 프로파간다 적이고 선언적으로 돌출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해 보이는 드라마의 형식으로 덧칠해 이야기를 조형하는 것은 인상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기존의 세계를 벗어나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는 관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작품에서 울리는 의미들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것은 메시지가 아니라 작가가 이야기 자체에 쏟은 공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익숙하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이미 검증을 받았다는 것이고, 새로움이라는 것은 기존의 인식에서 반 발짝 정도 벗어난 것들로 획득하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게 해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우수작인 김성일의 <라만차의 기사>는 소재의 활용과 새로운 방향으로의 진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기본적으로 밀리터리 세계관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다 보면 군사와 전쟁, 분쟁과 같은 소재들이 가지고 있는 전체주의적 의미 과잉의 맥락들을 피해가기 쉽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해당 소재들은 필연적으로 프로파간다적인 자체를 취하기 쉬운데, <라만차의 기사>는 그러한 방향성을 과학적 소재의 구체적인 활용과 인물 간의 관계에 무게를 싣는 것으로 능숙하게 피해 나간다. 그러기 때문에 결국 인간의 이야기라는 소설의 요소를 효과적으로 가로지르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측면 중 인간이 만들어내서 인간이 소비를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인간을 향하는 이야기가 된다는 것에 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떠한 소재와 세계관을 다루든지 기존의 의미들에 대한 인지적 낯설게 하기를 추동하여 새로운 의미들에 닿으려는 작품은 현란한 기술에 대한 상상력이 없어도 충분히 미래지향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라만차의 기사>가 내재한 이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단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최지혜

대상

얼마나 닮았는가 : 대답할 가치가 있는 질문을 공들여 답을 찾고, 읽는 사람에게 충분히 다가갈 수 있도록 치밀하게 펼쳐낸 수작
이 작품의 가장 큰 축은 선내를 관장하는 AI가 인간 몸과 유사한 의체에 들어가겠다고 시위한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미스터리이다. 그 미스터리의 배경에는 목성 위성 타이탄의 구조 신호를 받고 보급품을 보내기 위해 가던 우주선 내의 갈등이 있다. 그리고 이 첨예한 갈등과 미스터리의 뒤에, 보급을 기다리는 타이탄의 사람들이 있다. [얼마나 닮았는가]는 "AI의 눈으로 인간을 본다"는 것과 "다른 몸에 들어간 인격"이라는 흔한 소재 둘을 결합하여 궁금증을 자아내며, 이 궁금증이 해소됐을 때의 반전이자 핵심 주제로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이야기한 작품이다. 여기에 더해 "해야만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갈등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다각도로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몇 겹의 레이어가 만나는 지점에서 전율과 감동이 인다. 하나씩 떼어 보면 평범하고 흔할 수 있는 소재와 주제지만, 이 모든 것을 뗄 수 없이 단단히 감싸 하나의 아름다운 전체로 만든 것이 이 작품의 미덕이다. 그야말로 모자란 것이 없는 좋은 SF이자 좋은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우수상

로드킬: 당사자성과 은유의 섬세한 결합, 인상적인 결말, 소재와 설정을 넘어서는 문학적 성취
여성이 자궁을 버리고 유전자를 변형해서 다른 종이 된 세상에서 가난하거나 종교적 도덕적 신념 때문에, 또는 그저 정보 부족으로 예전 그대로 남은 여성들은 멸종 위기종처럼 담 안에서 관리되며 교육받는다. 성년이 되어 남자의 선택을 받기 전까지 갇혀 지내는 '소녀'들은 바깥 세상과 탈출을 꿈꾼다. [로드킬]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영화 [경성 여학교] 등 연상시키는 작품이 많은 설정, 유구한 전통의 신비롭고 수동적인 '소녀' 이미지를 가져왔음에도, 단단하고 치밀하게 엮은 배경과 내밀한 지점을 섬세하게 잡아낸 묘사로 차별성을 주었다. 여기에, 정해진 길을 가는 듯하다가 방향을 뒤집고 긴박감과 시련을 조성하는 장르적 리듬을 충실히 따랐다. 신비롭고 인상적인 결말에 이르기까지, 요소요소가 예상을 뒤집는 독특한 작품이다. 작가의 개성이 때로 독자의 선입견을 조장하고 기대를 높이거나 낮추는데, 오히려 덫을 놓아서 뒤집어 놓는 영리한 작품이기도 하다. 문학은 1차적인 소재와 설정을 넘어 작가의 개성과 기술, 영혼을 넣어 글로 빚어내는 고유한 예술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증명된 사실: SF로 미신적 세상을 비추는 새로움, 단숨에 내달아 충격적으로 맺는 단편의 매력
이제껏 진부한 눈으로 보던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해주는 경이감과 쾌감이 SF의 미덕 중 하나라면 이 작품은 그 미덕을 그야말로 체현하고 있다.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목표지점을 향해 질주하며 끝에 다다랐을 때 충격과 함께 이제껏 가졌던 의문이 해소되는 것이 단편의 미덕 중 하나라면 이 작품은 그러한 미덕의 표본이라고 할 만하다. 어쩌면 말도 안 될 이야기를 능청스럽게 이어맞추며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작가의 미덕 중 하나라면, 이 작가에게는 그 능력이 있다. 그것도 매우 출중하다.

라만차의 기사: 고전의 포스트아포칼립스적 재해석, 능수능란한 이야기 전개와 피 끓는 몰입감이 공존하는 작품
큰 전쟁 이후 마치 중세의 봉건제도로 돌아간 듯 도시마다 세력이 뚜렷이 나뉘고, 예전 문명의 잔재를 가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미래의 세상에서 라만차의 기사인 도냐 알라냐와 기사가 되고 싶은 그 제자 산초의 모험을 다룬 작품이다. 포스트아포칼립스 소설로서 아주 참신한 설정은 아니지만, 세계 최초의 근대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고전을 SF적으로, 또한 현재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면서 참신함과 친근함을 동시에 획득했다. 작중 세계의 설정을 인물의 서사와 함께 풀어내는 속도가 적절하고 세계와 인물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솜씨가 능수능란하다. 건조한 편인 문체와 비관적인 세상에서 희망을 향해 돌진하는 저돌적인 인물의 행위, 긴박감 넘치는 사건 전개를 통해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힘 또한 대단하다.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아주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총평

사고 실험부터 신나는 모험물까지 SF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게, 내실 있게 쏟아진 해였다. 이전까지 SF 창작 단편 중 모험이나 인물 서사에 집중한 작품들은 본인이 인상 깊게 보고 반한 장르의 재현 이상이라고 보기 어려운 작품이 많았고 작품의 완성도가 극과 극을 달렸다. 이제는 그런 분야에서도 완성도가 높고 자신만의 강점을 확실히 지닌 작품들이 많아졌다. SF 장르 특유의 경이감과 세계의 전복을 맛보게 해주는 작품 또한 풍성했다. SF의 독자이자 팬으로서 기쁘기 이를 데 없다.

SF 단편집의 경우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 권 내에서 좋았던 작품의 비율이 절반 이상인 단편집이 상당히 많았는데, 이 현상은 신인의 글이 모인 각종 SF 문학상 수상 작품집에서나 기성 작가의 글을 모은 앤솔러지에서나 한결같았다. 또한 신인 작가라고 해서 패기와 아이디어로만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내적 완성도와 필력이 농익은 작가들이 늘었고, 기성 작가들도 새로운 주제에 도전하면서 SF 장르의 외연을 넓히는 데에 몸을 사리지 않았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이다.

스펙트럼의 확장과 평균 완성도 상승은 게재 공간의 확장에 기인한 바가 크다. 온라인 게재 공간이 기존의 크로스로드와 거울에서 브릿G와 판다플립 등으로 다양화하면서 새로운 스펙트럼의 작품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SF 작품을 실은 잡지 또한 과학동아 외에 새로운 잡지 에피, 과학뒤켠 등으로 늘었고, 기존 문예지에 실린 SF 단편도 많았는데, 이 또한 작가에게는 새로운 지면이자 도전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안타깝게 최종심에 올리지 못한 이름들이 많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도 고르고 골라 추려낸 작품들이지만, 특히 이서영의 [센서티브], 배명훈의 [원본 증명], 해도연의 [위대한 침묵], 곽재식의 [만날 수 있을까]는 더욱 심사위원을 고뇌에 빠뜨렸으며 마지막까지 고민하게 한 작품들이다. 이서영의 [센서티브]는 기계에게 인식이 잘 되지 않는 인간이 모든 게 자동으로, 디지털로 작동되는 세상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부조리와 모녀 서사를 한데 엮어 참신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 인간과 노동자에 대한 애정, 세상의 거대한 흐름 뒤에 버려진 자들을 그리는 작가의 특기가 섬뜩할 만큼 새로이 변주된 것에 감탄했다. 배명훈의 [원본 증명]은 정신을 다른 몸에 옮겨담음으로써 영생하는 SF적 클리셰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작은 틈바구니에서 다른 전개와 결말을 도출하는 배명훈식 소설이다. 배명훈은 [춤추는 사신]과 [마침내 피가 돈다]에서는 제의적 춤과 흡혈귀를 SF적으로 변주하며 계속 외연을 넓히는 행보를 보였다. 곽재식의 [만날 수 있을까]는 항상 지구인의 입장에서 외계를 바라보던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충격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꾸준한 작품 활동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와 새로움을 항상 보장하는 작가로서 2018년에도 그 면모를 뽐냈다. 해도연의 [위대한 침묵]은 달에서 중력파 통신과 반물질 에너지를 둘러싼 음모를 파헤쳐가는 미스터리적 SF로, 과학적 디테일과 SF만이 가능할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면서도 장르적 재미와 이야기의 완성도를 놓치지 않고 잘 빚어낸 작품이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인 [마리 멜리에스]는 감성 로맨스가 묻어나는 작품이라 색다른 매력이 있었는데, [위대한 침묵]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작품마다 뛰어난 완성도를 고르게 보이며 자기 강점이 확실한 작가로, 앞으로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이 밖에도 본심에 올라온 작품 중 개인적으로 몇 작품을 짚어보자면, 박애진의 [토요일]과 전삼혜의 [궤도의 끝에서], 김초엽의 [원통 안의 소녀]는 보통 세상에서 겪을 수 없는 규모와 위력의 재난을 마주한 인간을 탁월하고 힘있게 그려냈다. 보통의 인간이 겪을 수 없는 상황을 개연적으로 박진감 있게 재배열하여 현실과 인간을 다시 보는 것이 문학의 한 효능이고, SF는 그 '보통의 인간이 겪을 수 없는 상황'의 스펙트럼이 한없이 극단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문학이자 좋은 SF라고 할 만한 작품들이었다. 박부용의 [온도계의 수은]은 상황과 인물의 목표가 어긋나서 빚어내는 소동을 끝까지 재미있게 끌고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눈에 띄었다. Nosmos의 [나 누구랑 이야기하는 거니] 또한 소재가 참신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성과 상상의 영역을 천연덕스럽게 잘 넘나드는 서술이 맛깔난 작품이었다. 박성환의 [꿈의 중첩]은 장자지몽의 SF편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꿈과 우주, 평행세계를 이렇게 혼란스러우면서도 확실한 디테일과 전개로 중첩시킬 수 있는 작가는 박성환뿐일 것이다.

흔히들 주례사 비평이 독자의 신뢰를 앗고 문학의 질과 외적 확장을 저해한다고 한다. 그러나 주례사 비평을 비난하기 이전에, 작품들에 충분한 조명을 비추어야 한다. 작가와 작품의 이름을 부르고, 가치를 인정하고, 이후의 활동을 장려해야 한다. SF 어워드는 그런 조명의 일환이다. 읽히고 이해받고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세상에 내놓은 작품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이 어워드의 소명이자 존재 의의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단편과 중편, 그리고 작가까지 상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단편과 중편의 미덕이 다른데 한데 묶여서 아깝게 부르지 못한 이름이 생길 만큼, 또한 꾸준히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을 발표해 왔으나 작품 개별로는 상복이 없는 작가들이 생길 만큼 SF 중단편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내실이 탄탄해졌기에 가져보는 소망이다. 부디 이 소망이 가까운 시일 내에 실현되기를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