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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SF어워드 (2021)

SF어워드 2021 - 장편소설 부문 수상작 및 심사평

대상  『두 번째 달 : 기록보관소 운행 일지』 최이수


작가의 요청으로 이곳은 공란으로 두었습니다.


우수상   [영원의 요람] Havoc

작가 소개

성균관대학교 재료공학 학사

수호룡과 거짓의 황녀, 함장에서 제독까지를 연재했으며, 완결 후 차기작을 준비중

작품 소개

태양광이 아니라 지열에 의존하는 생태계가 존재한다면 그 생태계는 어떤 모습일지, 그 생태계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갈지 상상해본 소설입니다.

인간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사고방식과 신화를 가지고 있는 외계 생명체, 그 외계인인 주인공 ‘낮은 소리’와 친우인 사제 ‘가는 발’은 그들의 사고방식과 신화에 따라 행동하며 그들이 사는 세상을 알아나가고, 때로는 갈등하게 됩니다.

작가의 말

제 소설을 높게 평가해주시고, 이렇게 상을 주시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제 소설이 잊히지 않게 해 주셔서, 앞으로도 SF어워드 수상작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수상작으로 선정해 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우수상 [평형추] 듀나

작가 소개

듀나는 1990년대초, 하이텔 과학소설동호회에 짧은 단편들을 올리면서 경력을 시작했다.

1994년 사이버펑크 공동출간을 시작으로 단독작품집인 나비전쟁, 면세구역, 태평양 횡단특급,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아직은 신이 아니야를 발표했다. “듀나”라는 필명은 잡지에 단편을 연재할 때 편집자가 선택한 하이텔 아이디가 굳어진 것이다.
미국에서 내년에 영어로 된 작품집이 출간될 예정이고, 이번 수상작인 평형추 역시 세계최대 출판그룹인 펭귄랜덤하우스에서 2023년 영어판 출간을 앞두고 있다. SF 작업과 별도로 영화 평론과 칼럼을 쓰고 있다.

작품 소개

평형추는 인류가 태양계와 성간 우주로 도약하려는 시대, 그 열망을 이뤄줄 통로인 궤도 엘리베이터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와 그 안에 숨겨진 초월적 존재를 향한 인간의 집념을 그려낸 스릴러 SF다. 적도의 열기 가득한 어느 섬의 완벽한 시스템 도시 아콜로지로부터 시작된 치열한 추리 싸움과 추격전은 엘리베이터의 끝에 위치한 환상적인 우주 공간인 평형추로 향한다. 인물들의 생체 보조전뇌電腦가 전사하는 놀라운 환영들은 증강현실의 최종 단계를 연상케 하며, 어지럽게 점멸하는 이미지와 정보들 사이로 펼쳐지는 격전의 순간들은 스펙터클한 SF 영화의 장면들을 눈앞에 펼치듯 생생하다. 인도차이나, 수마트라 문화권 등장인물들의 첩보와 지능전, 장대한 스케일의 활극이 곳곳에 배치되며 긴 호흡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평형추 위에서 벌어지는 반전은 인간들의 욕망과 이기심을 넘어서, 다른 존재들의 도약을 이야기한다. 

작가의 말

10년 전인가 저예산으로 그럴싸해보이는 SF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사고실험을 했습니다. 제 아이디어는 궤도 엘리베이터를 소재로 쓰자는 것이었지요. 아이디어는 장대하지만 보여줄 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엘리베이터와 관련된 다른 액션을 보여주다가 클라이맥스 장면만 엘리베이터를 쓰면 될 거 같았어요. 그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단편 하나를 썼고 거기에 디테일을 붙여주기 위해 장편을 썼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처음에 던졌던 저예산의 조건에서 점점 멀어졌지만요.
제 책 주인공들에게 사과와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다른 작가의 책에 나왔다면 이렇게 놀림받고 구박받는 일은 없었을 텐데.

 

장편소설 부문 심사평


장편소설 부문 심사위원장
홍지운

혜성 같이 나타난 신인들로 한창 기뻤던 심사과정이었다. 첨언하자면 여기서 혜성 같이 나타난 신인들이란, 기대하지도 않았던 작가들이 멋지게 등장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보다는 예상했던 그대로 멋진 작가들이 잔뜩 등장했다는 의미다. 2021년의 우주 관측 기술을 감안하면 혜성의 방문은 갑작스럽거나 놀랄만한 일은 아니니 말이다. 이 멋진 신인들의 등장은 지성과 기술을 통해 이미 예측하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그런 일이었다. “SF가 미래다!” 라고 주문처럼 중얼거리며 다녔던 사람들이 있었고 나 역시 그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는 공염불로 보였던 그 문장은 알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추론에 따른 결과였다. 그리고 그 추론은 금세 현실로 입증되었지 않나 한다.

2021년 SF어워드의 장편 부문에서 후보로 올라온 작품들이 하나같이 다 일정 이상의 수준을 담보하고 있어, 새로이 책을 펼치는 순간마다 새로운 흥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모두가 쟁쟁한 작품이었기에 “어떻게 이 작품조차 본심에 오르지 못한단 말인가, 또 이렇게나 멋진 작품들이 한가득 나왔단 말인가!” 하고 본심 리스트를 볼 때마다 부끄러움과 벅참이 교차하였다. 모든 작가님들에게 감사드리는 바이다.

소재면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코로나 시기를 거쳤기 때문인지, 인류멸망이나 그에 준하는 상황을 다룬 작품들의 비중이 높았다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이상, 역병으로 인한 세상의 변화에 주목하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닐 터이다. 어떤 작품은 처참하게 인류가 무너지는 이야기를, 어떤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의 희망을 담은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 모두가 흥미로웠다.

작품 외적으로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면 작품이 출간되는 과정이 다양해진 점이 아닐까 한다. 장르 전문 출판사만이 아니라 대형 출판사나 청소년 및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출판사에서 SF를 내놓기 시작한 것은 이제 익숙해졌지만, 출판사에 직접 투고를 보내거나 공모전에서 수상하거나 독립출판, 혹은 1인출판을 통해 발표하는 식으로 출간된 글만이 아니라, 웹소설 전문 플랫폼에 자유로이 연재되다 출판까지 이어진 작품들 또한 상상 이상의 완성도를 담보하고 있어, 앞으로 좋은 작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녀야만 하겠다는 기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나 나름의 심사기준은 그 작품이 SF가 갖고 있는 장르적 요소들에 대해 얼마나 충실하느냐였다. SF만의 소재나 장치들을 단순히 작품을 꾸미기 위한 심상으로 소모하는데 그친 작품들은 그 결과로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린 경우가 잦았다. 소재가 주제의식에 복무하는 것은 맞으나, 소재에 잠재된 힘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주제의식에 걸맞게 활용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런 심사기준이 무색하게, 대부분의 작품들이 SF라는 장르에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진득한 고민 끝에 이야기를 풀어내었기에 작품심사의 결정적인 기준은 되지 못한 듯도 싶다.


듀나 작가의 『평형추』는 높은 완성도와 매끄러운 진행으로 소재를 자연스레 작품 안에 녹여낸 점이 인상 깊었다. 인간과 과학기술 그리고 미래사회라는 테마에 대한 작가의 오랜 고민이 천연덕스럽게 담겨 있어, 주제의식에 사건이 휘둘리거나 사건에 주제의식이 흔들리는 식의 문제점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정의감이 아닌 결벽증을 동력으로 움직이거나, 타인의 기억이나 편집된 기억에도 흔들리지 않고 새로운 정체성을 자각하는 인물들의 모습도 역시 이제는 듀나 작가의 시그니처가 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독자적인 매력을 자랑한다.

Havoc 작가의 『영원의 요람』은 자신들이 갇힌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험가와 탐구자들의 이야기라는 전형적인 내용을 바다 밑 문명이라고 하는 완전히 새로운 배경에서 풀어낸 부분에 주목했다. 제목인 영원의 요람의 의미가 밝혀지는 순간의 충격과 감탄 또한 심사에 있어 높은 평가를 내리게 된 요인 중 하나였다. 인물들의 활용에 있어 웹소설에 어울릴 작법과 출판소설에 어울릴 작법이 상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등의 아쉬운 지점도 있었으나, 그 이상으로 작품 속 광활한 세계관이 주는 매력이 있었다. 특히 위에 자리 잡은 지옥과 아래에 자리 잡은 천국이라는, 상반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 바깥을 꿈꾼다는 점에서 동일한 목표를 가진 두 주인공의 대칭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힘이 강렬했다.

최이수 작가의 두 번째 달: 기록보관소 운행 일지』은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대상에 선정한 작품이었다. 인류의 멸망과 인공지능에 의한 지구복원작업을 다룬 이 장대한 기록은 환경오염에서부터 인종차별, 그리고 AI윤리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데 성공했다. 인공지능의 1인칭 서술로, 대화를 나눌 상대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우직하게 밀고나가면서 긴장과 이완을 자연스레 오가는 필력 또한 우수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이 작품에는 미래를 향하는 의지와 희망이라는 이름의 기적을 일구어나가고자 하는 결연함이 담겨 있었다.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아무런 이견이 없이 바로 대상으로 꼽은 것은 아마 이 작품이 품고 있는 삶에 대한 찬가에 심사위원 모두가 깊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어쩌다 보니 수상작들 전부가 2021년의 현재와는 다른 세계에 대한 기대 혹은 사고실험을 담은 작품들 중에서 선정되었다. 딱히 심사위원들이 계획하거나 의도한 바가 아닌, 각 작가들이 지금 여기와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는데 있어 야심찬 승부수를 던졌고, 그 쉽지 않은 도박에 대승이나 다름없는 작품을 내놓은 것에 따른 결과였다. 수상작가 모두가 집요하게 자신만의 관점을 관철했으며 그에 따른 고민을 극한까지 밀고 나간 덕분이었다.

SF어워드가 벌써 8회를 맞이했다. 제 2회 SF어워드에서 수상을 하고 기쁨의 댄스를 추었던 것이 엊그제 같고 그날 추었던 춤의 안무 하나하나가 아직도 몸에 박혀 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기성 작가들은 보다 더 날카로운 작품들을, 신인 작가들은 보다 새로운 작품들을 쓰면서 일군의 무리를 이루고 있다. 얼마 전까지 나를 비롯하여 주변의 다른 작가들은 “SF가 미래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했으나, 이제는 낡은 예언이 된 지 오래다. SF는 이미 현재가 된지 오래니까. 우리가 이야기한 혜성들이 지금의 하늘을 수놓고 있으니까.

과거에는 혜성이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다. 지금에 와서야 전혀 놀랄 일이 아닌,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의 광활함과 그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일 뿐이지만 말이다. SF 분야에서 이렇게나 많은 신인 작가들이 혜성처럼 등장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도 고리타분한 인식에 사로잡힌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충격적이고 끔찍한 미래를 예언하는 기현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 누군가들에게 오래 전부터 이 혜성들이 우아한 호를 그리며 하늘을 가로지를 것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음흉한 주술사로 보이지는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다. 안심하시라. 이 모두 신의 징벌이나 천재지변에 대한 예고가 아니다. 그저 약간의 계산만 할 수 있다면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는 결과였다.

올해 SF어워드에서 심사를 한 작품들은 대부분 한국 SF의 다음 10년, 20년을 기약하는 멋진 작업물들이었다. 내년에도 또 어떤 작가가 갑작스레 나타나서 무슨 이런 신인이 다 있나,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들 작품을 내지 않을지, 그리고 그런 작가가 한 둘이 아니지 않을지, 하고 계산해본다. 주책맞게 들릴 이야기지만, 이번의 추론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냉정하고 차분하게 심사숙고해서 내린 전망이다.


총심사위원장 / 장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김주영

장편 부문에서는 사회 부조리, 특히 최근 사회적으로 대두되는 화두인 '공정'에 관한 사유를 SF적인 설정과 상상 속에서 풀어내는 작품이 눈에 많이 띄었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담아내지 못했던 다양한 가치를 SF 세계관 안에서 구축하려고 시도한 작품이 많은 것도 특징이었다.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SF와 결합한 많은 작품에서는 군대나 조직을 대적하는 추격과 투쟁 그리고 음모가 주로 활용되어, 현실 사회에서 겪는 억압과 불안이 이면에 드러나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러나 부조리한 사회상을 그리는데 집중한 나머지 사회 속의 개인이 기계적으로 그려지거나 개인을 소외시키는 이야기로 흘러간 일부 작품의 경향이 안타까움을 남기기도 하였다.

과학 기술을 바탕에 둔 정교한 설정과 이야기 자체의 흥미로움 사이에서 균형 잡기는 늘 SF 작가들에게 어려운 숙제인데, 이번 심사에서도 SF적인 아이디어 구축과 치밀한 서사 중 한쪽에 치우친 작품들이 가장 아쉬웠다. 잘 구축된 아이디어가 구태의연한 서사 구조 속으로 침몰해 버리거나 치밀한 SF적인 설정과 아이디어가 흥미로운 이야기 뒤에 병풍으로만 놓인 경우를 말한다. 후자는 주로 영화 시나리오에 가깝게 구성된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경향이었다. 영화를 따라가는 것처럼 호흡이 빠르고 긴장감이 넘치는 이야기 대부분이 유사한 흐름을 따르는 많은 영상이나 소설에서 반복되는 주제와 구조를 넘어서는 차별점을 갖지 못한 점은 앞으로 이러한 형식의 SF를 창작하고자 하는 작가들이 해결해야 할 숙제일 것이다. 반대로, SF적인 소재를 은유로 사용하여 사회 부조리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개인의 이야기를 담아낸 일부 작품들은 세심한 사유와 성찰을 SF와 결합하며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내었지만, 감성 표현에 머무르는 한계를 넘어 SF가 가진 개성을 충분한 활용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과 별개로 각각의 작품이 모두 작가가 의도한 주제와 이야기를 힘있게 담아내었고, SF적인 상상력이 도달하고 활용될 수 있는 영역을 넓혀간 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한, 소재가 인공지능에 편향되었던 작년과 달리 다양한 소재를 활용함과 동시에 SF 장르만이 가지는 고유한 개성을 감동의 울림으로 담아낸 작품이 늘어난 점이 고무적이며, 한국 SF의 지속적인 풍요로움과 발전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본심에 올랐던 이경희의 그날, 그곳에서』는 반복되는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촘촘하게 구성하고 계획한 점과 달라지는 인물의 시점을 활용하여 영화처럼 전개되는 흥미로움이 돋보였으나 세 모녀 사이의 감정적 얽힘과 가족 내 헌신과 희생의 가치가 이야기의 흐름을 위한 당위를 넘어서 설득력 있게 그려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은 늙은 경주마, 낙마 사고를 당한 승마 로봇, 장애나 슬픈 사연을 가진 인간들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과학 기술이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주어진 생로병사 그리고 근원적인 외로움을 구원할 수 있는지 질문하면서 성찰해나간 점이 뛰어났으나 풍성한 감성에 비해 SF적인 설정을 소극적으로 사용한 점이 아쉬움으로 언급되었다.

Havoc의 영원의 요람』은 처음 읽기와 두 번째 읽기가 전혀 다르게 다가오며, 자세히 읽을수록 점점 더 많은 화두를 머릿속에 던지는 독특한 개성과 매력을 가진 작품이었다. 심해에서 살아가는 종족의 문명과 사회는 인류가 현대 문명에 이르기까지 거쳐온 폭력과 야만, 호기심과 탐험의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로 작용한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문명을 관찰하며 남성 영웅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서사 속에서 빗어지는 야만적인 문화가 다소 혐오스러워지거나 지루해질 때쯤 독자는 비로소 그들이 아닌 인류가 오늘의 문명을 이룩하기까지 무엇을 넘어왔는지 경이롭게 깨닫게 된다. SF만이 선사할 수 있는 찬란한 경이에 이를 때까지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그들의 문명을 요람에 눕힌 작가의 치밀함이 감탄스럽다.

듀나의 평형추』는 궤도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기업 LK의 죽은 회장이 남긴 혹은 간직한 욕망과 사랑을 중심으로 활극과 추리 그리고 음모를 현란하게 펼치면서도 근미래 사회에 등장한 증강현실, 세계관, AI, 기억복제 등의 과학 기술을 치밀하게 묘사한다. 상상임이 무색해지리만큼 정교하고도 세심하게 그려내는 과학 기술은 흥미진진하고도 복잡한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결합하여 낯설면서도 익숙한 근미래에 서 있는 듯한 생생함을 선사한다. 또한, 흔히 감성적으로 소비되는 ‘데이터로 남는 죽은 자의 흔적’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은 SF적인 설정을 능란하게 다루는 뛰어난 솜씨와 더불어 SF가 이행해야 할 다음 지경이 무엇인지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단연 돋보였다.

최이수의 두 번째 달』은 이견 없이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대상작에 선정되었다. 인류가 최후를 맞이한 지구를 세 인공지능이 억겁의 시간 동안 다시 테라포밍하는 과정을 뒷받침하는 과학적인 이론과 설정의 탄탄함이 단연 압권인 작품이었다. 세 인공지능에 각기 매력적인 개성을 성공적으로 부여하여, 과학적인 설명 비중이 높은 데도 독자의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는 점 역시 탁월했다. 또한, 객관적인 과학 이론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세계관 속에서 별과 별, 은하와 은하를 오가며 윤회하는 존재의 의미를 원소 단위에서 초월적으로 사유함과 동시에 신이 아닌 인공지능 삼위일체가 지구를 재창조하는 은유적 신화가 경이로웠다. 인간의 감정, 생성과 소멸 그리고 인공지능만이 가질 수 있는 우직한 임무 수행을 조화롭게 담아내면서 별과 진화에 대한 아름다운 서사시를 과학으로 써 내려간 작가에게 찬사와 갈채 그리고 축하를 동시에 보낸다.


장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복도훈

2021년 SF 어워드 심사대상 장편소설들을 읽어가면서 최근 한국 SF 장편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이 무엇인가에 대해 내내 생각했다. 내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장르 안에서의 장르적 진화의 가속화’였다. 이번에 내가 읽은 SF는 과학기술적 장치로 세계를 설계하는 하드SF에서 기후변화, 비인간존재와의 공생 등 동시대의 문제의식을 담아내는 작품까지 매우 다양했다. 아울러 추리서사, 좀비 아포칼립스 등 다른 (유사) 장르와의 혼종화도 이전에 비해 두드러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특징들이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되지 않을까 짐작하도록 만드는 장르적 역동성을 작품들을 읽으면서 실감했다.

나는 과학소설을 구성하는 science와 fiction의 두 가지 측면, 곧 SF적 장치에 비중을 두는 ‘과학’소설과 소설적 형상화의 완성도에 입각한 과학 ‘소설’, 이 두가지가 어떻게 동시대적인 문제의식과 만나면서 새로움을 빚어내는지를 관찰했다. 그 결과 세 편의 SF를 2021년 SF 어워드 장편수상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장고를 거듭했지만 의견 (불)일치에서 오는 인식적 차이와 공감을 두루 경험할 수 있었던 즐거운 심사였다.


HAVOC 작가의 『영원의 요람』을 읽었다. 처음에는 잘 설계된 진화 판타지로 읽혔다. 내내 암시되긴 했지만 소설적인 반전으로 진화 판타지로 읽혔던 어떤 부분들이 실제로는 SF적 장치임을 알게 되는 데서 오는 각성과 놀라움이 이 작품의 힘이었다. 물론 작가가 욕심을 더 부렸으면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다. 일인칭 서술에 따른 문제적 캐릭터와 세계 재현의 한계, 지구와는 상이한 물리적·환경적 조건 속에서 구현된 지성 생명체와 그를 둘러싼 세계는 인류의 선사시대를 재현한 기왕의 작품들에서 재현되었던 세계와의 차별성을 좀더 확보했어야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영원의 요람』은 한국 SF에서 아직은 덜 진화된 진화 SF의 길을 터놓았다. 처음 읽을 때보다 두 번째 읽을 때 더욱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듀나의 소설은 정감적 여운보다는 지적인 수수께끼와 모호함을 남기고 종결한다. 그런데 그것들이 어떤 집요함으로 머릿 속에 남아 편두통처럼 떠돈다. 편두통을 일으키는 그 정체불명의 것을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으로 듀나의 다음 소설을 읽게 된다. 중독이라면 중독이겠다. 『평형추』는 일인칭 서술에도 불구하고 세계와의 서술적 거리를 잘 설정하고 거기서 오는 낯섦을 보여주는 사실상 3인칭 서사였다. 장르 안에서 장르를 변주하는 능란한 이 손재주꾼 작가는 『평형추』에서도 전뇌와 같은 과학소설적 장치를 추리소설의 스타일과 잘 결합시켰다. 내게는 궤도엘리베이터가 그것을 구상한 치올콥스키의 버전과 달리 자본주의적인 불멸화와 관련지어 암시되는 방식이 특히 흥미로웠다. 꽁꽁 얼어붙은 수도관에 순간 손가락을 대면 불을 만진 것처럼 뜨겁다. 개인적인 욕심이겠지만, 나는 듀나의 소설에서 때론 이러한 차가운 뜨거움을 읽고 싶기도 하다. 물론 내가 못 읽을 수도 있었겠지만.

최이수의 『두 번째 달: 기록보관소 운행일지』. 도대체 이 놀라운 작품을 왜 나는 심사 전에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나, 하는 벅찬 마음으로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2021년도 SF 어워드 장편소설에 대한 개인적인 심사기준을 나도 모르게 정해버렸다. SF의 새로움은 무엇보다도 작품의 정교한 세계구축이 독자의 경험적 세계를 부수고 들어오는 것을 실감나게 체감하는데서 비롯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두 번째 달』은 넉넉히 만족스럽다. 기후변화로 인한 대멸종이라는 인류세(anthropocene)의 문제의식을 활달한 스토리텔링과 하드SF적 설정의 능란한 조합으로 잘 구현했다. 다 읽고나면 이게 우리의 미래겠구나, 하고 스산해진다. 개성적인 인공지능 캐릭터도 재미를 더했다.


이것으로 최우수작과 우수작에 대한 심사평을 마쳐야겠지만, 심사가 끝나고서도 마음에 내내 남았던 몇몇 작품을 환기하고 싶다.

정이담의 『불온한 파랑』은 저마다의 상처를 간직한 두 여성의 서사가 소설의 후반부에 경이로운 우주적 벡터를 그리는 작품이었다. 소설 전반부를 후반부와 연결하는 이음새가 과연 자연스럽고 정교한가에 대한 질문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서사를 진행해가면서 부각되는 멸종과 공생의 모티프에 대한 『불온한 파랑』 후반부의 인상적인 형상화와 서술은 내게는 유독 특별했음을 말하고 싶다.

이경희의 『그날, 그곳에서』는 타임루프의 모티프를 엄마와 딸의 만남이라는 감동적인 스토리로 재현한 SF로, 하나의 모티프를 지속적으로 반복, 변주해나가는 서술의 힘이 무엇보다 장점인 소설이었다. 물론 딸(들)―엄마 서사의 다소 규범적인 측면을 문제삼을 수 있겠고, 소설의 출발점이 된 핵발전소사고가 가족의 구제를 위한 배경으로만 축소된 부분을 지적할 수도 있겠다(타임루프라는 양자역학적 설정을 핵발전소사고와 결부시키기가 쉽지 않았던 것일지도). 그럼에도 내게는 『그날, 그곳에서』는 자칫 꼬일수도 있었던 타임루프적 반복의 덫을 비교적 잘 피하고 끝까지 마무리를 잘 지은 작품이었다.

제레미 오의 『화성탈출』은 이번 심사작들 가운데에서 만난 가장 하드한 SF로 간주할 만한 작품이다. 정교하게 구축된 과학적인 모티프와 소재를 추리소설적 내러티브와 결합시킨 800여쪽의 소설로, 결코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나가는 서술적 강점이 있다. 물론 작중인물들이 순전히 역할 별로, 다소간 기능적으로 분배된 감이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작가의 『보이저』(2017)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한국 SF가 성취할 법한 하드과학적인 미학의 구현을 제레미 오의 차기작에서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포스트)좀비 아포칼립스가 SF인가, 아닌가 누군가 물으면 나는 별 주저없이 SF라고 답하며, 다른 SF 장르보다 더욱 호기심을 가지고 읽는 편이다. 물론 멸망해가는 세계설정이 작중인물을 둘러싼 배경과 전경의 구도를 해체하고 인물들을 압박해 들어올 때 특히 매력을 느끼지만. 임태운의 『화이트블러드』에는 무엇보다도 감염의 현실과 계급적(신분적) 차별에 대한 동시대적인 환기가 있고 이것만으로도 내게는 꽤 흥미로웠다. 장르적으로 『화이트블러드』는 스페이스오페라 더하기 초능력자 서사 더하기 좀비 아포칼립스인데, 바로 여기서 어떤 독자는 장르 비빔밥을 즐기겠고, 다른 누군가는 그 정도의 향유를 누리기 어려울 수도 있으리라. 나로서는 다소간 애매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화이트블러드』의 전반적인 생기발랄함은 한국 SF의 장르적 혼효의 가속화를 환기하는 것 같다.

기후변화를 환기하는 일련의 재앙적 사태와 팬데믹의 현실이 가중되는 2021년 여름 내내, 수십 권의 SF 장편을 읽었다. 마치 기후변화를 다룬 어떤 SF에서 그런 것처럼, 치명적인 전염병과 열기를 피해 운좋게 숨어든 돔 속에 고치를 틀고 곧 깨질 것만 같은 두터운 유리지붕 너머의 풍경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으로. 그리고 한국 SF에서 그리는 미래(과거)가 지금 여기의 현실과 환각적으로 중첩되는데서 오는 기이한 익숙함 같은 것을 자주 느꼈다. 단정해서 낯설다고 말하기보다는 익숙한 것 같은데도 기이해서 또 익숙하지만은 않다고 할 만한. 거기에 한국 SF의 리얼리티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수상한 작가들에게 축하를 보내며, 내가 읽은 작품들을 쓴 모든 작가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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