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SF어워드 장편소설부문 수상작 및 심사평
대상 <늑대 사냥> 김성일
작가 소개
SF, 판타지, 호러 작가. 2016년 판타지 장편 《메르시아의 별》을 써 데뷔했다. <라만차의 기사>로 2018 SF 어워드 단편소설 부문 우수상 수상. 《늑대 사냥》, 〈임무의 끝〉, 〈그리움의 끝〉, 〈여행의 끝〉, 《널 만나러 지구로 갈게》, 《별들의 노래》 등의 작품이 있다.
작품 소개 (줄거리)
우주가 개발되고 국가의 의미가 없어진 먼 미래를 배경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싶은 늑대 ‘볼크’와 자신에게도 자아가 있는지 알고 싶은 안드로이드 ‘코니 버틀러’, AI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할머니 과학자 ‘조인경’이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간다.
수상소감
<늑대사냥>은 낼 곳도 없는데 혼자 꽂혀서 쓰기 시작했다가 신이 나서 금방 완성했어요. 제가 보기엔 제 소설들 중에서 아주 괜찮은 축이었고, 낼 곳을 모르고 쓴 것에 비하면 출간도 금세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리 많이 읽힌 것 같지 않아서 그저 내가 보기에만 좋았던 건가 하고 좀 시무룩해 있었어요. 쓸 당시 제 기분이 많이 반영되어 특히 애착이 있는 작품인데, 좋게 읽어주신 분들이 계셔 기쁩니다.
SF 어워드 수상은 2019년 <라만차의 기사>로 단편 부문 우수상을 받고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심사위원 여러분, 그리고 출간이 가능하게 해 주신 그린북과 읻다 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흘 있으면 제 2016년 소설 데뷔작인 메르시아의 별의 번역판 Blood of the Old Kings가 미국 Tor와 영국 Orbit UK에서 나옵니다. 잘 됐으면 좋겠는데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우수상 <노바디 인 더 미러> 황모과
작가 소개
「모멘트 아케이드」로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단편집 『밤의 얼굴들』 중편 『클락워크 도깨비』 『10초는 영원히』 『노바디 인 더 미러』 『언더 더 독』 장편소설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 『서브플롯』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그린 레터』 등을 출간했다. 2021년과 2024년 두차례 SF 어워드를, 2022년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했다.
작품 소개 (줄거리)
뇌사자의 뇌 활동을 재생시키는 브레인 페어링 기술이 등장한 가까운 미래. 시술로 깨어난 새로운 인격 제삼은 자신만의 선택을 통해 실패의 역사까지 끌어안는다. 이혜는 연구소 카데바의 인격들을 모두 자기 몸에 페어링시켜 약한 존재를 담는 그릇이 된다. 새로운 자신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수상소감
아직도 헤매면서 글을 쓰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헤맬 거라 생각하는데요. 큰 상을 허락해주셔서 휴, 완전 엇나가진 않은 모양이다,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습니다. 보상을 기대하지 않으려 욕망을 외면하는 중인데 영혼이 구원받은 기분입니다.
<노바디인더미러>는 이전의 자신과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되어가려 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각자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망가진 세계를 직시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담을 그릇이 되어가면서요. 한국 사회가 한 인간이 새로워질 기회를 더 많이 허용하는 곳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약한 타자를 받아안고 나를 그에게 맡길 때 그 기회는 차원을 달리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어쩌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의 세계를 눈앞에 보여주는 것이 에스에프가 주는 힘이라 믿고 있습니다. 망했다는 절망을 직시했을 때에도 세계가 또 한 번 전복되는 일들을 잊지 않고 싶습니다. 상상하는 것으로 해방을 꿈꾸는 일을 멈추지 않고 싶습니다.
꾸준히 멋진 세계를 펼쳐주시는 에스에프 작가님들을 존경합니다. 아주 사적이고 사소한 순간에조차 가장 공정하려 애쓰며 자기 보신과 이익을 내려놓고 약자의 편에 기꺼이 서는 이 창작자 그룹과 이들이 빚어내는 세계관을 몹시 사랑합니다.
세계의 저지선을 지키시는 창작노동자들에게 존경의 인사를 전합니다. 부족하지만 오늘의 기쁨을 기억하며 저도 현장에서 다시 분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수상 <프로젝트 브이> 박서련
작가 소개
철원에서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 『더 셜리 클럽』 『코믹 헤븐에 어서 오세요』 『마법소녀 은퇴합니다』 『프로젝트 브이』 『카카듀』 『폐월; 초선전』, 소설집 『호르몬이 그랬어』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나, 나, 마들렌』 『고백루프』 등이 있다. 한겨레문학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이상문학상 우수상 등을 받았다.
작품 소개 (줄거리)
한국 최초 거대로봇‘브이’의 파일럿을 찾는 경연‘프로젝트 브이’. 남성만 뽑는 이 프로그램에 로봇 천재‘우람’이 오빠의 명의를 빌려 도전하지만, 정체가 발각돼 우승 목전에서 좌절한다. 한편 브이의AI는 인류를 적대시하게 되고, 우람은 직접 만든 로봇을 조종해 브이와의 결전에 나선다.
수상소감
이 소설을 계약하려고 안전가옥과 미팅을 진행하던 때 “이걸로 SF어워드에서 상 탔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구라같지만 실화입니다. 그건 2019년이고요. SF어워드에서 한복 입고 상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2015년입니다. SF어워드를 2회부터 알게 되었으니 아마 그해가 맞을 거예요, SF는 써본 적도 없으면서 SF어워드에서 상을 타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게. <프로젝트 브이>를 처음 구상하기 시작한 건 2010년이었습니다. 첫 구상과는 많이 다른 소설이 되었지만요. 오랜 꿈이 이루어졌다는 말을 조금 장황하게 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소설가의 어머니라는 점을 자랑스러워하는 우리 엄마, 나에게도 당신이 자랑스럽다는 사실을 최경순 씨에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딱 일주일 뒤에 결혼하는 제 동생 박인혁 씨 축하하고요. 앞으로도 근사한 꿈을 많이 꾸겠습니다. 꿈으로 끝나지 않으리라 믿으면서요. 감사합니다.
장편소설부문 심사평
· 장편소설부문 심사위원장 노대원
2024년 제11회 SF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대상은 김성일의<늑대 사냥>이다. 심사위원들은 이 소설이SF다운 장르 미학과 사유를 고루 내장한 작품으로 평가하는 데 동의했다. 또한 AI, 로봇, 동물과 같은 비인간 존재, 그리고 이들과 인간의 관계를 묻는 작품들이 한국SF의 핵심으로 부상해 있음을, 이 소설은 웅변한다. 인간 이후의 존재, 혹은 인간 너머의 존재에 대한 성찰은, 오늘날 중요한 학술적 의제로 부상한,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이라 불리는 철학적, 문화적 담론 이전에 이미SF 장르의 오래된 고갱이었다. SF 장르는 과학기술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이 시대에, 비인간들과의 얽힘을 통해 역으로 과연 인간의 자리는 어디인지 묻는다. 이 소설은 그 탁월한 물음의 하나다.
박서련의<프로젝트 브이>는 재미있게 술술 잘 읽힌다. 이번 심사 대상작 중 가장 흡인력 있는 소설 가운데 한 편이었다. 거대로봇 브이의 탑승할 파일럿을 선발하는 대국민 오디션이라는 이야기는 추억 속 SF 애니메이션의 레트로 퓨처리즘을 오늘날 현실 세계와 결합하여 재미있는 소설을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소설은 과학기술인은 물론 대부분의 여성들이 유리 천장 탓에 고통받는 이 사회를 비판적으로 상기시킨다. SF 장르로서의 미학적 성취는 다소 미흡한 점은 아쉽다.
황모과의<노바디 인 더 미러>은‘브레인 페어링’(Brain Pairing)이라는 기술을 다룬다. 타인의 의식이 나와 결합할 때, 나는 누구인가? 특히 이번 심사 대상작들 가운데 발전된 인지신경과학 기술과 그로 인한 기억과 의식, 정체성의 문제를 곱씹는 서사들이 많았다. 뉴럴링크의 뇌-컴퓨터 상호작용 기술이 상상이 아니라 지금 이곳의 문제가 되는 상황 속에서,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문제제기일 것이다. 이 소설은 이 상상력을 취약한 존재들, 그러니까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에 실어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타임슬립으로 다룬 또 다른 SF 장편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의 역사적 문제의식의 서사화가 더 흥미로웠다.)
이 밖에도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있었다. 송한별의 다소 가볍지만, 유쾌한 스페이스오페라 <저 개를 우주선 밖으로>는 에피소드들을 하나 세계관과 이야기로 확장해 나가는 스토리텔링이 돋보인다. 등장인물들의 성별, 나이, 외모 등을 짐작하지 않게 하는 작법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경희의<모래도시 속 인형들2>는근미래 서사를 흥미롭게 형상화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작가의 후속작이다. 범죄 서사와 옴니버스 서사 형식을 통해 재미를 높이고, 근미래 서사를 빌려 현재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서사화했다. 김강의<그래스프 리플렉스>처럼 근미래 가능세계에 천착하여 초고령 사회의 문제에 대한 사회과학적 상상력을 표현한 작품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김정의<노 휴먼스 랜드>처럼 기후 재난에 관한 상상력을 전개한 작품들은 이미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마녀가 되는 주문>과<너라는 이름의 숲>처럼 교육과 청년, 청소년 문제에 집중한 작품들도 SF 장르 속에서 주요한 목소리로 거듭나고 있었다. SF어워드에 아동청소년 부문이 없는 상황에서 청소년소설이 수상작으로 나오길 내심 기대했는데 아쉽다.
· 장편소설부문 심사위원 심완선
장편소설 부문은 예년보다 후보 작품 수가 늘었다. 국내의 SF 소설 창작이 여전히 활발하다는 의미이니 SF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는 기꺼운 일이다. 다만 소설의 분량이 짧아지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장편 심사대상에 중편 분량의 소설이 포함된 경우가 상당했다. 하나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경우 원칙에 따라 장편 심사대상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전자책 단행본도 웹소설이 아니라 장편소설로 분류되었고, 청소년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소설의 형태가 다양하게 섞이는 상황에서 작품을 어떻게 읽고 평가할 것인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고민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한편 실무적으로는 SF 어워드의 심사대상 목록을 확정하는 문제가 있다. 제보를 받기는 하지만 거의 수동으로 목록이 만들어지는데, 국내에 출간되는 SF가 늘어날수록 작품을 누락할 위험이 있다. 점차 제보를 중심으로 목록을 만들 수 있도록 SF 어워드를 향한 관심이 늘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심사를 하다 보면 작품에 대한 감상은 서로 비슷하더라도 심사위원에 따라 평가가 다른 경우를 종종 겪는다. 평가가 갈릴수록 폭넓은 평가가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이번에는 특히 대상 수상작을 정하는 과정에 시간이 걸렸다. 상을 수여하는 의미가 무엇이냐, 좋은 작품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검토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김성일의 [늑대사냥]은 무엇보다 간결함이 미덕이었다. 설정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도 작중 세계의 모습을 전달하는 SF의 문법을 능숙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또한 장식적이지 않은 건조한 문장이 추운 나라라는 배경과 섞이며 묘하게 하드보일드한 분위기를 냈다. ‘빨간 모자’ 이야기의 변주로는 독특했고, AI의 자아정체성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방법에서는 기존 SF에 대한 이해와 진부한 질문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만큼 접근하기 어려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는데, 심사위원단 내에서는 의외일 정도로 좋은 평이 나왔다. 시대를 타지 않는 매력적인 작품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박서련의 [프로젝트 브이]는 ‘태권브이’가 드러내는 구시대의 감각과, 오디션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한국의 동시대적 감각을 결합한 작품이었다. 거대로봇이 ‘브이’이므로 조종사도 남자여야 한다는 제한은 부조리하다. 조종사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이 적격자를 선발할지도 의심스럽다. 여자인 주인공이 그 얼룩덜룩한 한복판에서 겪는 일련의 과정은 현재의 독자를 쉽게 끌어들일 만한 이야기로 보였다. 지나치게 냉소적이지 않으며 지나치게 낙관적이지 않은 태도 역시 시의성과 균형감이 묻어 있었다. 덕분에 로봇과 인간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얕게 다루어졌으나, 그만큼 독자가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으리라는 인상을 주었다.
황모과의 [노바디 인 더 미러]는 마인드 업로딩 기술을 기반으로 ‘내가 나인가, 그런데 내가 반드시 원래의 ‘나’여야 하는가’를 묻는다. 그런데 해당 주제에서 주로 핵심으로 다루어지던 부분을 살짝 빗겨서, 주인공보다 조연으로 치부될 만한 인물에게 관심을 두는 점이 흥미로웠다. 고학력 전문가로 가득한 첨단기술 연구소에서 그럴듯한 타이틀 하나 없이 잡무를 처리하는 얌전한 성격의 젊은 여자.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여자의 관점을 취함으로써, 곁가지로 여겨질 만한 부분을 소설의 중심 줄기로 확대하는 점이 개성적이면서 현대적이라고 느껴졌다. 중편에 가까운 짧은 분량이 아니라면 성립하기 어려운 방법이겠지만, 이러한 분량이 지니는 경쾌함을 발휘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수상작으로 선정되지는 않았으나 이경희의 [모래도시 속 인형들 2]는 완성이 기다려지는 소설이었다. 3부작으로 결정된 덕분인지, 후속작을 장담할 수 없었던 1권에 비해 훨씬 안정적으로 큰 규모의 이야기를 준비하는 중이라고 느꼈다. 배경 설정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며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아무래도 2권 단권으로는 매력이 감소한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단요의 [개의 설계사]는 일반적으로 공감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주인공을 내세우되, 구체적인 묘사와 촘촘한 질문을 통해 독자를 끌어들이는 소설이었다. ‘좋아한다’는 말을 끌어내기는 어려워도 ‘잘 썼다’는 말을 듣기는 쉬울 작품이기도 했다. 신경다양인이 일일이 익혀야 하는 사회적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설계에 필요한 구체적인 알고리즘을 병치하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사납고 불쾌한 성질을 드러내는 만큼 대중적이지는 않아도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 본다.
심사하는 동안 SF를 잔뜩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수상 여부와 무관하게 좋은 이야기를 안겨주신 작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건필을 기원한다.
· 장편소설부문 심사위원 최지혜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장편소설 부문 심사를 맡았는데, 이 부문의 변화를 처음 직관적으로 느낀 부분은 물량이었다. 기간의 차이가 있으나, 2023년보다 2배수의 작품이 후보작이었다. 예심을 진행하면서 좋은 작품의 비율 또한 높아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전부터 활동하던 작가와 최근에 활동하기 시작한 작가군이 고루 있었고, 1작품 이상의 장편소설을 출간하거나 장편소설과 단편소설 모두 출간한 작가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SF라는 장르의 특징과 매력을 살리면서 동시에 한국과 현재에 기반을 둔 작품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배경으로 SF적인 배경을 채택하거나, 우주를 무대로 한국인을 그려내는 일이 자연스럽고 빈번해졌다. 조금 속단하자면, 이제 SF는 짜장면, 피자, 치킨처럼 외국에서 들어왔으나 한국이 한국만의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더 잘할 수도 있는 장르가 되었다고 보인다.
전반적으로 AI와 로봇, 가상현실을 다루는 작품이 굉장히 많고, 미래의 위기와 인류 멸망을 촉구한 원인이 전쟁 등이 아니라 기후 위기인 작품이 많은 경향을 보였다. 이 주제들은 SF에서 오래전부터 다뤄온 것이지만 이전엔 미래의 이야기로 보였다면 지금은 현재의 이야기로 보이는 작품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SF가 미래의 문학인 동시에 동시대의 문학으로 자리 잡은 느낌이다.
김성일의 늑대사냥은 고전 민담과 SF를 접목한 작품으로, AI가 메가코프를 통해 세상을 지배하고, 화성 등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도 개발된 미래를 배경으로 화성 출신의 유전자 조작 늑대, 인공지능 전문가 할머니,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안드로이드 사냥꾼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낯선 시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지만, 친숙한 빨간 모자 민담을 바탕으로 하여 어렵지 않게 작품에 빨려든다. 낯설다고는 했지만 현재가 아닐 뿐, SF 장르의 독자라면 알아보기 어렵지 않은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나 그 세계의 치밀함과 탄탄함이,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면서 인물과 주제를 선명히 부각하는 서술력이 놀랍다. 전체적으로 장인이 빚은 도자기처럼 어느 곳 하나 모자란 데 없는 완성도가 독보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박서련의 프로젝트V는 여러 면에서 김성일의 늑대사냥과 반대편에 있는 작품이다. 늑대사냥이 장르 독자에게만 익숙할 배경과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는 거리감을 두었다면, 프로젝트V는 누구나 알 만한 아이돌 서바이벌의 형식을 가져왔으며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한 명의 주인공을 내세운다.프로젝트의 근본인 거대 로봇은 SF 이전에 어린이 시절의 로망이며, 그중에서도 V 로봇은 한국의 자랑(큰 흠이 있어도)이다. 일반 독자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작품인 셈이다.
주인공의 특징과 정체성이 여성이면서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금지된 것을 도전하는 사람이며 그의 당연한 열망에 이입할 수 있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의 반대편에 등장하는 인물은 성소수자이지만, 그것이 그가 주인공과 반목하는 이유는 아니다. 배신과 반전을 통해 도달하는 반전은 훌륭한 SF의 정석이라 할 만하다. 균형감각이 탁월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황모과의 노바디인더미러는 인간의 자아와 정체성에 관한 사고실험 요소가 강한 소설이다. 어렵고 번잡할 수 있는 서사를 차분한 1인칭 서술로 처리하며 독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이 돋보인다. 인간의 영혼이나 정신, 근원적 정체성에 관한 문제는 언제나 문학의 가장 중요한 테마 중 하나였고, 이 문제에 대해 가장 낯선 방식으로 기상천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르가 SF라는 것을 선명히 보여주었다.
이경희의 모래시계 도시의 인형들 2는 샌드박스라는 도시와 미래 세계에 대해 소개한 1편에 이어서 주인공인 검사와 탐정에 대해서 더 알 수 있게 되고, 샌드박스 뒤에 있고 탐정을 쫓아다니는 흑막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1편의 흥미롭고 좋은 점을 계승하면서 시리즈물의 2번째 이야기로서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하는 작품이다. SF 장편소설에서 흔치 않은 사례인데, 좋은 선례로서 남을 거라고 본다.
단요의 개의 설계사는 사람들이 보통 가지고 있는 편견들과 편향성을 모조리 건드리는 작품이다. AI의 설계는 필연적으로 인간에 대한 탐구와 연결되며, 이는 인간의 심연으로 쉽게 이어지는데, 심연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모든 관계가 비틀린 채로 드러난다. 불편하고 어려운 독서였지만, 그럼에도 독서를 멈출 수 없는 흡입력이 있었고, AI 설계와 그것을 둘러싼 산업, 미래의 쇼비즈니스 등 어둡지만 현실성 있는 세계의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SF는 세상의 변화와 과학으로 인한 결과물을 묘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변화한 세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밀의 너라는 이름의 숲은 후자에 속한다. 현재에도 존재하는 편견과 사회적 압력이 가상현실을 사는 미래와 만났을 때에도 형태만 달리한 압력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또한 어떤 상황이 와도 인간이고 자신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 사라지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단요의 마녀가 되는 주문 또한 담은 이야기는 다를지라도 비슷한 부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가상현실을 현실처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미래가 온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압력은 변하지 않거나 더 커질 수 있고, 그러한 압력 앞에서 인간은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현실보다 더 가혹한 환경은 SF의 사고 실험을 확연히 드러낸다.
김아직의 녹슬지 않는 세계는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인간이 아닌 것을 통해 인간을 말하는 SF적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다. 사건을 전개하는 솜씨가 능란하고 인간에 대해 작가가 가진 시선이 따뜻해서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김정의 노 휴먼스 랜드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은 미래의 섬뜩한 모습을 박진감 넘치는 전개로 보여주었다. 앞을 알 수 없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가 끝나는, 장르적 재미와 흡입력이 대단한 소설이다.
최의택의 0과 1의 계절은 인간의 사회가 파괴되고 나서 다시 만들어진 사회와 시대를 보여준다. 똑같은 배경에 문명수준이라면 편견처럼 따라붙는 인간의 추악함과 비정한 야만성을 보여주기가 쉽지만, 작가는 다른 선택을 했다. 우아한 디스토피아물의 좋은 예가 한 작품 늘어났다.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10작품을 뽑기도, 예심에서 본심으로 올릴 작품을 1차로 추릴 때에도 고민이 많을 정도로 좋은 작품이 많았다. 그럼에도 골라야 한다면, SF 어워드라는 상이 어떤 작품의 제목을 호명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서 장르적인 특징을 더 강하게 보이는 쪽을 택했다. 수상하거나 본심에 오르지 않은 작품들 중에 더 읽고 싶고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을 거라고 보장하니, 더 많은 관심을 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