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SF어워드 웹소설부문 수상작 및 심사평
대상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 로드워리어
작가 소개
<병사 – Der Soldat> (문피아, 2014)
<회귀: 링크> (문피아, 2015)
<주인공이 힘을 숨김> (문피아, 2016)
<혈마동맹!> (문피아, 2017)
<위키 쓰는 용사> (문피아, 2018)
<주인공이 자비를 숨김> (문피아, 2019)
<앵벌의 제왕> (문피아, 2021)
<회귀대제> (시리즈, 2022)
작품 소개 (줄거리)
3년 뒤 세상이 멸망할 거라는 예측을 가지고 전 재산을 들여 자신만의 ‘방공호’를 만들어 온 주인공. 실제로 서울 핵 공습을 시작으로 전 세계는 핵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주인공은 멸망이 진행 중인 세상을 ‘방공호’에서 지켜보며 생존을 위해 애쓴다.
수상소감
우선 과분한 상을 받게 되어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를 지지해준 독자님과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제가 상을 받게 된 아포칼립스의 힘을 숨김이라는 작품은 소위 말하는 아포칼립스 물입니다. 소위 말하는 아포칼립스 물에 웹소설적인 소재를 채용했습니다. 멸망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왜 아포칼립스물이 독자님들의 마음에 어필하는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결론은 그런 시대가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묘한 일이죠.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세상은 좀 더 밝고 희망으로 넘쳤던 것 같은데 지금은 모두가 멸망을 입에 담는 시대가 왔습니다. 물질적으로는 어느 시대보다 풍족한 시대지만 마음은 반비례하며 아포칼립스 시대가 도래한 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삭막한 시대에 제 작품이 독자님들의 소소한 즐거움이 됐음을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수상 <넘버즈> 전유택
작가 소개
2014-웹소설 무차별 살인게임 다운으로 데뷔.
2014-무차별 살인게임 다운 게임 출시.
2017~2020-드라마 원작소설 고방부자상(孤芳不自赏), 멸진(滅秦) 번역.
2021-한국 문화예술위원회 연극대본 공모전 최우수상(관객각하-각하께서 관객으로 오시었다)
2022-한국 문화예술위원회 연극대본 공모전 선정(한 뼘 남은 작은 섬)
2024-데드엔드 웹툰 런칭(원작).
2024-한국 문화예술위원회 연극대본 공모전 선정(우리들은 각자의 별이 된다) ※넘버즈와 동일한 설정 & 세계관
작품 소개 (줄거리)
인공지능 로봇이 일상이 된 세상. 농업, 제조, 행정업무에서 법원 판결까지 로봇이 하는 시대가 된다. 군인과 경찰만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 선망받는 직업이 되고, 직업을 가진 이진영 경사는 월미도 신 간척지에서 발생하는 조직폭력, 정치권 등의 알력과 암투에 휘말린다.
수상소감
계속 생각했습니다. 이거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실은 6월에 넘버즈와 똑같은 세계관에 동일한 주제를 가진 쌍둥이‘우리들은 각자의 별이 된다’가 한국 문예위 연극대본 공모전을 수상했습니다. 불과 몇 달 간격으로 같은 세계관의 쌍둥이같은 이야기로 상을 연달아 받았으니 몰카라고 의심할만 허죠. 혹시 몰카라면 당근을 흔들어주십시오. 몰카나 비밀결사의 음모는 아닌 것 같군요. 헛소리 그만하고 감사의 말씀 전하고 얼른 내려가겠습니다. 권용범 팀장님 , 손정아 팀장님, 황광연 팀장님들. 특히나 넘버즈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제 술친구 이근영 과장님에게 큰 공을 돌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운에서 절망과 살육의 건물을 함께 내려왔을 때부터 독자 여러분은 제 스승이자 든든한 후원자이자 가장 소중한 동료였습니다. 이 모든 영광의 주인공은 독자분들입니다. 모든 영광을 독자분들게 바치겠습니다.
우수상 <민감한 대리님> 후로스트
작가 소개
웹소설 ‘은둔형 마법사’ (2017)
웹소설 ‘변방의 외노자’ (2020)
작품 소개 (줄거리)
과거로 회귀하는 분기점을 만드는 능력을 가진 ‘서인’과 공기의 흐름만으로 회귀를 알아차릴 정도로 민감한 서인의 상사 ‘민대리’. 과거로 돌아온 것을 분기점으로, 회귀하지 않은 원본 세계와 회귀한 세계, 두 세계 간에 평행우주가 생긴다는 독특한 설정 하에 두 남자의 회사 ‘원월드’에서의 생활이 이어진다.
수상소감
제11회 SF 어워드를 수상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작년보다 길어진 후보작 리스트를 보며, 앞으로 읽을 소설이 많아져서 기뻤습니다. 향후 더 많은 SF 웹소설이 활발하게 연재되었으면 합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제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회사를 그만둔 것이고 두 번째로 잘한 일은 바로 이 소설을 쓴 것입니다. 퇴사만큼이나 이 소설도 제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 이 상을 받아서 더 큰 의미가 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힘든 환경이었음에도 연재를 허락해 주신 출판사 관계자분들께 감사 인사 올립니다. 연재할 이유와 힘이 되어 주신 독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루 빨리 다시 만나 뵐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웹소설부문 심사평
· 웹소설부문 심사위원장 이융희
지난 몇 년 간 내가 참여했던 SF어워드 심사의 풍경을 되새겨본다. 거의 매 해 대상작은 심사위원 전원의 만장일치 의견으로 수상작이 결정되었다. 심사는 독창성, 장르성, 완성도, 대중성 네 가지 지표를 바탕으로 평가하게 되는데, 대상작들은 이러한 지표 점수가 다른 작품과 비교하면 10점 이상 큰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심사는 예년과 크게 달랐으니, 대상작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다섯 명 심사위원의 의견이 갈라졌다. 두 작품도 아닌, 세 작품을 놓고 무엇을 대상으로 뽑아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였으니 그 세 작품이 각각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 「민감한 대리님」, 그리고 「넘버즈」였다.
세 작품의 장점은 뚜렷했다. 로드워리어 작가의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은 아포칼립스라는 장르적 문법에서 위성 통신 시스템과 생존주의자들이라는 키워드를 넣은 뒤, 멸망하는 세계의 이야기를 다이얼로그 형식으로 적어 덤덤히 기록하는 일기 형태의 필치를 활용하여 기존의 아포칼립스 장르 문법을 뒤바꿨을뿐더러, ‘네트워크’가 조성하는 사회 문제들을 전면화하여 다루었다. 네트워크 상에선 어그로와 욕설, 혐오 표현 등의 여러 가지 군상들이 나타나지만 그것은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을 과잉하여 옮겨놓은 것이니 오히려 현실의 문제점을 예각화하여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넘버즈」는 사이보그와 더불어 살아가는 근미래적 삶을 추리소설의 형식에 잘 얹어놓은 작품이었다. 사이보그라는 형태는 대부분의 SF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2019년 첫 SF 어워드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사상 최강의 보안관」은 안드로이드와 사이보그를 구분하고, 비인간 존재의 윤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질문했었다. 그러나 후속 작품 중에서 타자로서 비인간을 다룬 작품들은 타자와 더불어 사는 미래 세계에 대해 해상도 낮은 두려움만을 보여줄 뿐, 그래서 그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구체적으로 조형하는 것엔 다다르지 못한 작품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전유택 작가의 「넘버즈」가 보여준 세계 조형의 성취와 추리를 뒤섞은 SF 웹소설로서의 가능성은 향후 후속 작품들이 규범으로 삼을 만한 좋은 예시를 보여주었다.
본선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경합을 치뤘으나 아쉽게 떨어진 작품이 있었다. 흙과불 작가의 「아포칼립스에서도 육아를 합니다」와 KIMARA 작가의 「고요한 종말에는 브이로그를」 이었다. 대상작도 아포칼립스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아포칼립스는 이제 고유한 상상력이 아니라 집단이 공유하는 장르로서, 그리고 그 기호로서 세계가 고정되기 시작하였다. 예심과 본심 작품에서도 아포칼립스 작품은 많이 있었지만 이 세계 안에서 작가의 고유한 상상력을 어떻게 뚫고 가는가 하는지까지 나아간 작품은 무척 드물었다. 대부분은 아포칼립스라는 세계관을 어설프게 가져와 공식으로 사용했을 뿐, 그것이 작가의 서사와 캐릭터 사이에서 어떻게 조응하는지를 논증하지 못한 채 그저 종말적인 상황으로 인물을 내모는 것에만 도구적으로 사용할 뿐이었다. 본심까지 올랐던 두 작품은 모두 작가 개인의 설정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그 세계관과 서사 사이의 유격이 조금 더 결합되어 이야기를 뻗어나가고, 그리하여 미래에 대한 상상력 또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 웹소설 부문 심사위원 북마녀
해가 갈수록 후보작 선정 및 본심 그리고 최종심 진행이 수월해지는 것을 느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SF이기는 하나 작품성과 대중성이 몹시 떨어지는 작품’이 꽤 보였으나 올해는 양질의 작품이 훨씬 많아졌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심에서 작품 선정하는 과정이 오히려 고되었고 매우 치열한 논쟁도 펼쳐졌다. 심도 있는 평가 끝에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 <넘버즈>, <민감한 대리님>이 최종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웹소설은 장르마다 차별화된 특징이 있고 그 특징은 작품의 근본적인 매력이 된다. SF라고 해도 웹소설 시장에 속해 있다면 그 매력이 바래서는 안 된다. 또한 SF가 단순 배경으로서만 이용되고 휘발된다면 SF어워드에서 수상권에 들어갈 수 없다. 한마디로 웹소설 부문의 수상작들은 다른 부문보다도 훨씬 복잡한 기준을 넘어선 작품이다. SF의 흐름을 이어가면서도 웹소설 시장에서 안정적인 대중성을 확보한 인기작들이 대거 등장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성과다.
로드워리어 작가의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은 처음부터 강력한 수상 후보였던 작품이다. 유려한 문장력과 빠른 템포로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며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일반 아포칼립스물에 비해 차근차근 대비해나가는 내용들이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 사건물이 아닌 작품에서 다채로운 에피소드 진행은 쉽지 않은 구성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디스토피아 상태를 그야말로 ‘한국적’ 광경으로 녹여내며 탁월한 상상력을 보여주어 일찌감치 대상으로 확정되었다.
우수상으로는 전유택 작가의 <넘버즈>와 후로스트 작가의 <민감한 대리님>이 선정되었다.
먼저 <넘버즈>는 대상감이라 판단했을 만큼 SF의 향기가 강렬했던 작품이다. 로봇 원칙에 대한 인간 형사과 로봇 파트너의 대화 등 일관된 SF적 요소가 적재적소에 두루두루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로봇이 상용화되어 생활 속에 자리 잡은 세계관을 사실감 있고 설득력 있는 진행으로 펼쳐냈다. 웹소설 시장에서 유통되어서 웹소설 부문에서 상을 받은 것뿐, 웹소설 장르의 패턴과 분위기를 어느 정도 벗어난 작품으로 판단된다. 그만큼 이 작품의 성공은 실무적으로 매우 유의미하다.
<민감한 대리님> 역시 각축전을 벌였던 작품이다. 웹소설에서 흔하디흔한 소재로 인식되는 회귀를 컴퓨터 파일의 메커니즘으로 설정하여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일반적인 ‘회귀자의 나 혼자만 다 앎’이 아니라 주인공을 감시하는 대리님과 함께 합동 전개된다는 점도 대범한 특징이다. 컴퓨터 체제를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하여 대중성을 확보하면서도, SF의 미학을 지킨 웰메이드 작품이다.
웹소설 부문은 다른 부문과는 달리 심사단이 꾸려진 후 플랫폼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 아포칼립스, 특히 좀비물이 웹소설 시장에 쏟아지고 근 몇 년간 이루어진 AI의 발전과 더불어 현대판타지 장르에서 AI를 제목에 붙인 작품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본 바, 모든 작품을 SF라 정의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예심에서 꽤 많은 수가 추려졌다. 하나 덧붙이자면, 후보작 중 일부에서 사회의 혐오적 시선을 공고히 하는 내용이 눈에 띄게 나타나는 현상은 조금 우려되는 문제로 보였다. 이는 대중을 상대하는 웹소설 시장이 극복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메가버스, 가이드버스 등 BL에서 유독 자주 등장하는 판타지 소재에 SF의 감각을 덧붙였을 때 이를 명확한 SF로 볼 것인가도 고민이 깊었던 지점이다. 여러 해에 걸쳐 BL이 꽤 선전하는 모양새였으나, 이번에는 여성향 장르 작품들이 최종수상작으로 선정되지 못했다. 그래도 후보작 중 BL <와일드 헌트>, 로맨스 <고요한 종말에는 브이로그를>, 그리고 <플리즈 슛 미>가 눈에 띄었다.
마지막으로 웹소설 관계자 입장에서 ‘SF를 배경 소재로 살짝 활용한다’는 것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본 어워드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을 뿐, 수상하지 못했거나 본심 대상작에 오르지 못한 작품들 모두 웹소설로서 충분한 가치와 재미가 있었다. 그중에는 실제로 밤새워 결말까지 읽으며 눈물지었던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SF적 상상력이 웹소설 특유의 스토리텔링과 결합했을 때 독특한 재미를 만들어낸다는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다. 앞으로 웹소설 시장에서 SF의 역할이 커지기를 기대한다.
· 웹소설부문 심사위원 최은혜
2024년 SF어워드 웹소설 부문 심사를 맡게 되면서 웹소설이라는 장르 본연의 의미에 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웹소설의 재미란, 매체적 특성과 더불어 일정한 장르적 쾌감을 지닌 몇몇 테마의 내러티브를 기반으로 뻗어나가는 긴 호흡의 상상력,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대리만족일 터이다. 그런 만큼 SF 웹소설은 응당 과학 테크놀로지가 중심 소재가 된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긴 호흡의 내러티브를 가리키게 된다. 하지만 SF 웹소설에서 획득할 수 있는 대리만족이란 어떤 것일까? AI와 바이러스, 인구 절벽 등의 SF적 소재가 상상이 아닌 현실의 영역에 버젓이 자리한 이 시점에, SF웹소설이 쓰여지고 읽히는 감수성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SF 웹소설을 쓰고 읽는 분들이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또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하물며 심사자는 말할 것도 없다.
기실 SF적 감수성을 하나로 쉬이 수렴하기에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가 커뮤니티, 나아가 대중의 지향점을 유추해볼 수는 있다. 올해 SF 웹소설 가운데서는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의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았다. AI, 비트코인, 블록체인, 좀비마냥 두렵기만 했던 호흡감염 바이러스조차 더는 놀라울 것도 없이 여러 부작용을 안고 현실에 도래한 상황이다. 이번 수상작들, 그리고 최종심 진출작들이 출발했을 한 줄짜리 단상들-‘종말이 와도 전기만 들어오면 커뮤니티나 브이로그를 계속 하게 될까?’, ‘애들이 이제 아예 태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OO에 AI 도입하고 인간은 다 자르자’, ‘세상이 망하면 위험한 건 좀비가 아니라 인간이다.’- 역시 분명 바로 여기, 지금 우리가 공유하는 이 세계관에서 출발한 하나의 SF적 가능성이다. 어떤 점에서 이 시대는 이미 SF적 상상력이 범람하는 시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상상력을 웹소설이라는 매체에 적합한 톤앤매너로, 독자에게 알맞은 호흡으로 끌어갈 수 있느냐는 또다른 문제다. 또 수상작들을 결정함에 있어 단순히 작품이 과학적/기술적 가설 혹은 구체화된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을 넘어, 개별 작품이 SF라는 장르의 의미망을 확장하는 데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도 중요한 대목이었다. 여전히, 경이와 환상에 젖은 SF적 소재만을 두른 웹소설들이 적지 않다. 그런 만큼 SF 웹소설 수상작은 테크놀로지를 주제로 한 화려한 일러스트 같은 작품이기보다는, 서사와 인물 이면에 서걱거리는 SF적 질감이 느껴지는 그런 작품이기를 바랐다.
이러한 소박한 포부로, 수사적 기교나 장르 고유의 재미에는 충실하나 테크놀로지를 소재로 활용한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찾는 데 한계가 있는 작품들은 가능한 한 배제하였다. 가령 최평화 작가의 <AI 천재가 되었다>는 흡입력 있는 전개와 독자의 일관된 쾌를 속도감 있게 추구하는 현대판타지 장르 특유의 집요함이 돋보였다. 그러나 테크놀로지의 소재화 너머의 질문을 던지고 있지 못하다 여겨져 최종심에 오르지 못한 아쉬운 작품이었다.
수상작 선정을 위한 최종심에 오른 다섯 작품 중, KIMARA 작가의 <고요한 종말에는 브이로그를>의 경우 아포칼립스의 브이로거 생존자라는 차별화된 소재로 눈에 띄었다. 브이로그라는 일상적이어서 외려 눈치채기 어려운 테크니컬한 소재와 외계 생명체와의 로맨스, 아포칼립스 상황을 조화롭게 결합하여 마지막까지 밀고 나간 뚝심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다소 소재주의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보니 두 인물의 감정선에 집중해야 할 부분에서 분량을 빼앗긴 측면이 있다.
흙과불 작가의 <아포칼립스에서도 육아를 합니다>는 인류의 생산이 멈추고 좀비 아포칼립스가 터진 상황에서 지구에 남은 유일한 아이를 두 남자가 함께 키우는 이야기로, 현대판타지 장르에서 아포칼립스물과 육아물이라는 두 인기 장르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두 상이한 테마를 적절하게 융합하여 고립된 상황 속 유사 가족의 가족애 형성 과정을 휴머니즘적으로 그려낸 서사적 안정감을 높이 사고자 한다. 그러나 각각의 테마에 대한 SF적 성찰의 흔적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수상을 수상한 전유택 작가의 <넘버즈>의 경우 사람과 로봇의 버디수사물이라는 점에서 자칫 표면적으로 컨셉추얼한 SF 작품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AI 상용화로 인한 인간소외에 대한 오늘날의 우려를 사실적으로 그려내었으며, 로봇과 인간 모두를 공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서늘한 듯 따스한 질감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또 후로스트 작가의 <민감한 대리님>은 소재가 마이너하기는 하나 특유의 재치로 이 마이너함을 개성으로 승화한다. 인물들의 편의적인 능력치 설정으로만 독자의 만족을 이끌어내기보다 타당한 핸디캡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캐릭터성과 관계도를 통해 독자의 지지를 이끌어낸다는 점, 그리고 이 마이너함과 캐릭터 개성이 모두 ‘내일 출근하기 싫다’라는 모든 직장인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한 줄짜리 현재진행형 상상을 통해 SF적 퍼즐로 쌓아올린 것이라는 점 등을 포함, 전체적으로 이 작품에 내재된 웹소설 특유의 서브컬처적 오락성을 높게 사 높은 점수를 주었다.
대상을 수상한 로드워리어 작가의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은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은신처를 마련했던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대한 동향과, 그 커뮤니티의 일원이자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아예 은신처를 숨겨 안전을 도모하는 주인공의 상황이 교차적으로 제시된다. 주인공과 은신처 관련 인물, 또는 커뮤니티 관련 인물이나 단체에 관한 일화가 옴니버스적으로 전개되는데, 첫 화부터 주인공의 담담하고 관조적인 문체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관계 그리고 선택, 거기에 감도는 디스토피아적 쓸쓸함과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희미하게 엿보이는 인간으로서의 온기를 복잡다단하게 휘몰아치듯 전달한다. 안전지대인 ‘집’에 ‘숨은’ 채 ‘아포칼립스’를 응시하며 냉소와 연민을 오가는 주인공의 서사를 관통하는 아이러니야말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 기대하는 SF의 정수가 아닐까 한다. SF 소재적 외연 확장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욱 중요할 수 있는 내실에 공을 들인 작품이었기에 많은 심사위원의 지지를 받으며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답을 내기는 어려우나 서두에서 던진 질문, 오늘날 SF웹소설이 쓰여지고 읽히는 감수성에 대한 고민에 대한 질문을 조금 더 생각해보며 마무리를 대신하고자 한다. SF는 여전히 국내 웹소설 시장에서 메이저한 장르가 아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먼, 동시에 앞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많은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인간’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믿는다. SF는 다양한 방식의 테크놀로지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인간에 대해 말하는 장르라고 말이다. 모든 장르를 막론하고, 내가 ‘테크-휴먼’에 관해서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을지, 끈질기게 시험하고 치열하게 맞붙는 웹소설 작가와 지망생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 웹소설부문 심사위원 이낙준
아직 SF 컨텐츠의 불모지라고 해도 좋을 우리나라에서 SF어워드는 상당히 뜻깊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실제로 대중이나 작가들을 비롯한 컨텐츠 창작자들에게 점점 SF 장르의 매력이 알려지고 있는 지금, 그 변화를 견인하거나 적어도 가속화 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이번 11회 SF 어워드에서 심사한 웹소설 작품 수 또한 상당히 많았습니다. SF 장르가 아직은 마이너에 속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괄목한 만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 중 가장 눈에 들어왔던 작품은 로드워리어 작가님의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입니다. 사실 로드워리어 작가님은 주인공이 힘을 숨김이라는 작품으로 웹소설계의 한 흐름을 관통하셨던 적이 있는 분으로 그 후로도 꾸준히 좋은 작품을 내온 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눈여겨 본 것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번 작품은 감히 로드워리어 작가님이 냈던 모든 작품은 최고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 될 정도로 우선 ‘재미’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다는 점입니다. 이미 세상이 멸망한 이후 어떤이가 기록한 일지를 읽어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아직 웹소설에서는 거의 쓰인 적이 없던 방식입니다. 거기에 더해 스타링크로 대표되는 차세대 인터넷 기술로 미증유의 사태에 대응하는 스토리 라인을 보여주는데, 이미 인터넷 시대가 열린지 오래라곤 하지만 이만큼 인터넷의 위력을 보여준 작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저런 시도를 하면서도 웹소설의 기본이 되는 재미와 대중성을 모두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말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유택 작가님의 넘버즈는 보다 묵직한 SF 작품이었습니다. 본격적인 로봇이 나오는 작품으로 인공지능이 일상이 된 시대에서 인간은 과연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엿보였습니다. 특히 치밀한 배경 설정과 설득력 있는 전개 등은 이야기에 충분히 몰입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좋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님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로스트 작가님의 민감한 대리님 또한 흥미진진한 작품이었습니다. 촘촘하면서도 있을 법한 설정과 그 설정이 만들어 낸 세계를 꼼꼼하게 메우는 역시나 현실적인 인물들이 자아 내는 이야기는 몰입도를 선사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간혹 호흡이 너무 길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결국, 납득이 되는 전개이기에 읽는 내내 만족할 수 있던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벌써 11회를 맞이하는 SF 어워드에 걸맞는 작품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욕심이겠지만 내년에는 더 좋은 작품들을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끝으로 이만 심사평을 줄이겠습니다.
· 웹소설부문 심사위원 유인혁
나는 지금까지 한국 SF의 가장 활발한 현장은 웹소설이라고 생각하여 왔다. 시간이동, 아포칼립스, 대체역사와 같은 SF 하위장르의 요소들이 웹소설의 주류 문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번 심사를 위해 다양한 플랫폼에 게시되어 있는 SF 웹소설들을 ‘전수조사’하며, 한국 SF가 웹소설이라는 형식적 틀 안에서 어떻게 생산·변형·재조립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초장편이라는 웹소설의 특성상 아주 고된 노동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즐거운 독서였다.
내가 예심, 본심, 최종심을 거치며 중점적으로 평가한 것은 바로 혁신성이다. 기존의 웹소설의 문법, 그리고 SF의 문법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재)활용하고 있는지를 보고자 했다. 공교롭지 않게도, 이러한 일을 가장 잘한 작품들이 높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갖추고 있었다.
대상인 로드워리어의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은 용감한 작품이다. 이 글은 한국 웹소설이 중심적으로 활용하는 많은 문법들을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다. 이 글은 아포칼립스물, 헌터물 양쪽에 속해 있지만 그 어떤 선배들과도 닮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 작품은 웹소설 아포칼립스물, 헌터물, 나아가 인방물을 완전히 리뉴얼했다. 동시대 기술인 ‘스타링크’를 헌터물·아포칼립스물의 세계에 외삽하는 순간 낯선 장르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점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우수상을 받은 전유택의 <넘버즈>는 뚝심이 있는 작품이다. 이 글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중심적인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에서 로봇 3원칙은 대개 정직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무수한 속임수(trick)를 파생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넘버즈>는 로봇 3원칙을 활용하면서 그것에 도전했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정말로 아시모프적인 느낌을 잘 살리는 소설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우수상을 받은 후로스트의 <민감한 대리님>은 영리한 작품이다. 이 글은 한국 웹소설의 주류 문법인 ‘회귀’, 그리고 바야흐로 현대 대중문화의 핵심에 놓이게 된 평행세계라는 장치를 능수능란하게, 그리고 거침없이 비틀어버렸다. 세세한 설정들이 결코 낭비되지 않고, 적재적소에서 장르적 쾌감을 만들어 낸다. 텍스트와 장르에 대한 작가의 이해와 통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아쉽게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고요한 종말에는 브이로그를>과 <아포칼립스에서도 육아를 합니다> 역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고요한 종말에는 브이로그를>은 외계인 SF와 인방물, <아포칼립스에서도 육아를 합니다> 역시 아포칼립스 장르와 육아물의 흥미로운 결합을 시도했다. 이질적인 두 장르를 연결시키는 고리가 더욱 설득력있게 고안되었다면, 아마도 심사가 훨씬 어려워졌을 것이다.
최종심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맨손으로 우주개척>, <프로스티 온 더 프로즌 스틸> 등도 좋은 가독성을 갖춘 작품이었다. 그런데 장르적인 도전정신이 아쉬웠다. SF 어워드는 단순한 웹소설 심사가 아니라, SF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자리다. 따라서 재미있는 작품을 쓰려는 노력만큼이나, 장르의 새로운 경계를 탐색하려는 작품들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다.
수상의 영광을 얻은 작가들에게는 박수를, 아쉽게 탈락한 작가들에게는 응원을 보낸다. 그대들이 쓴 글로, 아주 정신없이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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