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AI 닥터> 한산이가
작가 소개
2017 제 3회 대한민국 웹소설 공모대전 우수상 수상(의술의 탑)
출판(웹소설) : 군의관 이계 가다 / 열혈 닥터 명의를 향해 / 의술의 탑 / 닥터 조선 가다 / 의느님을 믿습니까 / 중증외상센터 : 골든아워 / A.I. 닥터 / 포스트 팬데믹 / 검은 머리 영국 의사
웹툰 : 중증외상센터 : 골든아워 / A.I. 닥터
작법서 : 웹소설의 신
작품 소개 (줄거리)
태화 그룹이 미래를 걸고 개발한 진단 목적 A.I. 바루다! 태화대병원 내과 레지던트 1년 차 이수혁은 견학 도중 바루다의 원인 모를 폭발에 휘말려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A.I. 바루다를 마주하고 만다. 이미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린 둘은 서로가 서로를 도울 수밖에 없는 상황. 딥러닝을 계속해 세계 최고의 진단 인공지능이 되는 것이 목적인 바루다와 어려운 환경에서도 악착같이 출세를 위해 노력해 온 수혁, 그들은 의기투합해 환자를 치료해 나가며 세계 최고의 내과 의사를 목표로 활동을 개시하는데......
수상소감
제가 집필한 작품이 제10회 SF어워드에 입상하게 돼 진심으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전에,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인 ‘사상 최강의 보안관’이 SF어워드에서 대상을, 또 작년에는 같은 출판사에서 서비스 중인 작품인‘따개비’가 우수상을 받은 기억이 있기에 더욱 지금의 자리가 뜻깊게 느껴집니다.
이 자리를 빌어, SF장르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주시는 분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의 숨은 노력 덕분에 SF라는, 한때는 생소했던 장르가 한국에서 깊이 뿌리를 내려가고 있고, 대중문화를 통한 과학에 대한 관심도도 더욱 커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SF장르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저 또한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수상 <내 전두엽에 우주 항모가 박힘> 티타펠꼬망
작가 소개
십만년 만에 깨어난 함장님, 헌터 김황제의 몸속왕국 등
작품 소개 (줄거리)
주인공은 게이트가 열리고 각성자가 출현하는 세상에서 각성 잠재력이 낮아 하층민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인류 멸망의 시점에서 과거로 시간을 거스른 우주 항모가 양자 거품에 감싸여 주인공의 전두엽에 착륙한다. 주인공은 심각한 손상과 외계 오염을 당한 거대 항모와 함께 죽을 것인지, 아니면 항모의 함장 역할을 수락하고 미래 인류의 대표자가 되어 호전적인 AI와 같이 살아갈지를 선택해야 한다. 이어 차차 깨어나는 AI들과 항모 내부의 외계 오염을 제거해 나가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편집되고 있던 인간 역사의 비밀에 점차 접근하면서, 미래의 강압적인 현재에 대한 정복 전쟁에 휘말린다.
수상소감
이 글로 상을 받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지금도 이 글을 계속 쓸 것인지 말 것인지 출판사와 함께 고민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공모전 첫날에 10위 안으로 올라간 직후 성적이 급락한 까닭입니다. 저는 떨어지는 롤러코스터의 가장 앞자리에 내 몸을 묶고 멀리서 보면 희극인 비극을 직관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좋은 추억은 아닙니다.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계속 쓰게 된 것은, 지금 돌이켜 보자면 단순한 애정, SF에 대한 애정 덕분이라고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오히려 판매 성적이 낮았기 때문에 아무런 제한 없이 쓸 수 있었던 것이 어쩌면 다행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독자분들께서는 이 글이 초반에는 웹소설 판매에 부합한 전개로 가려고 노력하다가, 이내 순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이 명백해진 후에는 SF적 감수성으로 폭발하는 것을 보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저는 제가 예전에 쓴 글을 다시 보면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간에 ‘이걸 내가 도대체 어떻게 썼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글은 특히나 그렇습니다.
비전공자로서 제가 웹소설의 주요 전개 도구로 시간 결정, 상온 초전도체, 힉스 인플레이션, T 상수, 시간 역행의 반물질 우주, 쟈이러스, AI의 정치 싸움, 생명체의 헥산 구조 변경을 통한 플라스틱 섭식 등에 대하여 대부분은 ‘이름만’이라 하더라도 적으려 든 것은 정말 만용에 가까웠습니다.
성적을 생각했더라면 아마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덕분에 저는 SF의 예언자적인 성격의 일부라도 적고 경험할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이 소감문을 쓸 기회를 얻었으니, 저 나름대로 SF의 예언자적인 성격에 대하여 뭔가를 적고 싶었던 마음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작가의 내면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무엇을 건져 올리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위험한 일을 계속 하기 위하여 몸을 건사하라는 좋은 조언을 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제게는 거장의 또 다른 가르침으로도 읽혔습니다. 글쓰기란 위험을 마주 보는 작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SF라는 장르는, 성격상 무언가 추가적인 위험을 동반하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른바 ‘예언자적인’ 무언가, 아마도 어떤 미래적 어둠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이 다른 장르가 예언자적 성격이 없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칼의 노래>를 진지하게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우리 나라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할 것입니다. <벌레>를 본 독자들도 인간에게 닥쳐올 실존의 공포를 헤아려 볼 것입니다. 인간이 미래로 나아가는 존재인 이상,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작품은 모두 예언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SF만의 독특한 예언자적 성격에 대해 적는 까닭은, 오직 SF만이 변화하는 미래상과 마주치는 그 지점을 직접 작품 내에 서술하도록 특징 지어진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우리가 과학 문명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인 이상에는, SF만이 글 안에서 ‘내일’을 ‘오늘’ 다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SF장르에 대하여 생각하자면, 아마도 정의가 다양하겠으나 어찌되었든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을 지금 여기서 글 안에서 다루는 작품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SF의 창작자가 다루고 끌어올리는 어둠이란, 두 시간선이 교차하는 그 장면을 날카롭게 잘라내어 전시하는 형태의 어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제가 쓴 SF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현재의 불안이라는 기원으로부터 시작하게 되었고, 작가 본인의 부족함이 뒤섞여 온갖 산만함 속에서 자리를 잡아 나가는 데 꽤나 오래 걸리는 특이한 글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를테면 제 미래에 대한 현재의 불안의 한 장면이 이러합니다. 제 소설의 주인공은 인류 멸망의 중대한 위기를 맞이하여, 대한민국의 상수도에 인지 및 신체 강화제를 풀었습니다. 나름대로 비극적인 선택처럼 보이게끔 서술하려 애썼지만, 동시에 희화화 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고맙게도 독자분들은 댓글 칭찬으로 작가가 미친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제 글을 보며 군국주의자의 느낌이 난다고 말씀하기도 하셨는데, 이것이 제가 드러내고자 한 제 불안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가올 미래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하여 어디까지 하는 것이 타당할까? 과연 인류는 생존의 위기 앞에서 이성주의적 군국주의, 혹은 그보다 더 한 짓거리를 저지르고도 남지 않을까?’ 이것이 중요한 질문이자 불안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글을 다 쓴 후 반추해보건데, 아마도 저는 러브크래프트처럼 제가 두려워하는 것을 쓰는 종류의 작가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SF에 관하여 쓸 때에는 특히 그렇습니다. 저는 인간 이성에 대한 극도의 낭만주의와, 이성의 한계성을 무시하고 넘어서려는 시도가 홀로코스트의 재와 연기를 불러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글에서, 초이성으로서의 AI가 하는 행동은 곧 이성 만능주의에 대한 공포와 반성이 소멸된 세상이 어떠한 형태로 치닫게 되는가, 결국 모든 자연을 정복한 인간이 초지능에 의하여 다시금 정복당하는 것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보려는 까닭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오늘 현실은 언제나 그러하듯 제 소설의 상상력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정복과 포섭이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컨대 ADHD 치료제로 쓰이지만, 실질적으로 인지기능이 개선되는 것으로 알려진 메칠페니데이트 등의 약물이 공공연하게 공부 잘하는 약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군들을 위해서는 ‘죄책감 제거 헬멧’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모든 전쟁에서 실제로는 총알이 사람을 거의 죽이지 못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헬멧은 총보다 더 무서운 살상 병기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인간은 새로운 영역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여러 영화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국민에게 알약을 먹여 세상을 흑백으로 바꾸려 드는 강압적인 독재 정권 따위의 등장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 복잡한 짓을 하느니 <스타워즈>의 펠퍼틴이 박수세례 속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 상수도에 약물을 붓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느껴집니다.
이러한 예상이 과도하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본부장님도 그러셨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도 동의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부분이 불안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제 공포의 논리적 근거는 이렇습니다. 잘 알려진 나니아 연대기와 훨씬 덜 알려진 SF소설들을 쓴 C.S 루이스는 1943년도에 <인간폐지>에서 ‘자연’을 ‘인간이 정복한 존재’로 정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복당한 ‘자연’에 마침내 ‘인간’이 포함되었음을 탄식하였습니다. 인간이 이제 이성에 정복당하여 조작당하는 존재로 전락하였음을 슬퍼한 것입니다.
한 때는 이성에 의한 자연의 정복이란 비료로 농업 생산량을 늘리거나, 항생제와 촉진제로 축산업의 진흥에만 이바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 인간의 이성은 인간 그 자체를 조작 가능한 존재로 치부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마땅히 인간 존재에 대한 적극적 개입과 조작으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덧 이제 2023년이 되었습니다. 그 글이 나오고 채 100년이 채 되지 않아 이제 진정으로 ‘정복당한 자연’ 안에 ‘인간’이 포섭되는 것이 관념을 넘어 물리적인 현실로 점차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약물과 헬멧 같은 것이 그 예시입니다.
그리하여 어제는 의사들이 당뇨병을 진단하면서 ‘인간의 몸이 아직 문명을 따라오지 못하였다’고 하던 시대였습니다. 이제 오늘날에는 ‘이제 인간의 몸이 문명을 따라오게 하겠다’라고 말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른바 ‘인간의 도파민을 통제하는 법’이라느니 ‘수 백 개의 알약을 먹고 엄청난 생산성을 보이는 바이오 해커들의 사례들’을 전하는 강연들은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자되어 인간을 인간 이상의 존재로 끌어 올리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게 왜 불안할까요? 제 생각에 이것은 나치즘에 기반하지 않은 (유사) 사회진화론의 출현 도상에의 사건으로 보이는 까닭입니다. 현대 자본주의 문명이 우리에게 약속한 번영, 부흥, 성장의 약속을 구현하기 위한 온갖 몸부림이 한계에 부닥친 시점에, 우리는 다시 한번 생존을 위한 개인적 진화에의 열정으로 헤쳐 모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것이 도덕적 개인들의 손아귀를 떠나 비도덕적 사회의 물리적인 구조에 이르게 될 때에는 과연 어떠한 형태의 새로운 집단주의가 출현하게 될까요? 군인이 아니라 정치인이 그 헬멧을 쓰게 된다면? 더 탁월한 지성으로 무장한 정치 집단이 가까운 국가를 제거하는 것이 더 합리적 이성의 결정이라고 ‘판단’한다면? 아마 그것이 무엇이라고 불릴 지는 모르겠지만, 나치는 그것에 비하면 인류 역사의 작은 얼룩 정도로나 취급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하튼 저는 이러한 맥락 위에서 점점 전쟁이 잦아지는 현대 사회를 바라볼 때마다, 오늘날 현대 사회의 경제적 부흥의 끝자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염려하는 사람들을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 등이 우리가 외면하던 무언가로 인하여 촉발했음을 감지하는 신문 사설 등을- 볼 때마다, 앞서 말씀드린 생각에 사로잡히고 두려워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음 세대의 인간 조작은 반드시 인간 이상의 초지능에 의해 이루어질 테니까요. 그런데 인간이 아닌 그것이 왜 인간의 행복을 최우선에 두어야 할까요? 제가 아는 바 어떤 컴퓨터는 게임을 풀라는 명령에 대한 대답으로, 자기 삭제를 선택했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이처럼 인간이 내린 목적과의 ‘정렬’을 거부하기 위하여 AI가 자살 대신 타살을 선택할 날이 오지는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날의 저 순수한 열정들이, 도파민을 통제하고 인간을 발달시키려는 순진무구하고 도덕적인 열망들이 결국 <스타워즈>에서 클론 전쟁이 시작할 때의 광경으로 다가와 펠퍼틴이 황제의 자리에 앉는 비도덕적 제국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는 않을까 걱정하게 됩니다.
결국 웅장한 스타 디스트로이어는 의원들의 박수 소리에 맞춰 <제국 행진곡>과 함께 날아오릅니다. 그리고 그 박수는 펠퍼틴을 황제로 추대할 때에도 동일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숨어 있던 시스의 관념이 지배 구조를 바꾸고, 지배 구조가 공화국을 제국으로 바꾸었습니다. 결국 공화정을 위하여 시작한 전쟁은 제정을 만들며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있는 것은, <스타워즈>가 그 장면을 그렇게 배치한 것은 인간의 운명이 이렇게 무력하게 끝나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결국 타락했던 다스베이더(Darth Vader). 곧 독일어로 바로 ‘그 아버지(das vater)의 사랑과 희생이 이 암울한 미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마 이것이 스타워즈를 미국의 건국 서사가 된 까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희망, 희망, 희망의 전시. 그리고 그것이 미국의 현실을 극복하게 한 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제 이야기는 스타워즈에 훨씬 미치지는 못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령처럼 떠도는 희미한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요량으로 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극복이라고 한 까닭은 그러한 공포들을 희화적인 이야기로 만들어 전시하고 그러한 미래의 존재 가능성을 폭로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물론 먹고 살 요량도 듬뿍 있었습니다만.
여하튼 요약컨대 제가 쓴 이 SF는 페이스북에서 어떤 이가 나치의 과학적 사회진화론이 문명에 해악을 끼치지 않았다는 주장을 본 한량의 공포감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신념이 불러올 비극적 귀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사유가 우리에게 주는 크나큰 혜택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에 대한 것을 다루고자 한 것입니다.
당연히 저도 대량의 비타민을 먹고 있고, 라식 수술을 했으며, 또한 차후에 무릎이 아프게 될 때 무릎 임플란트가 있다면 저는 제 무릎에 기꺼이 박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런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 점에서 매일 달렸지만 과연 의도대로 된 글인지는 모를 글이 나왔습니다. 다음에 더 잘 쓸 것을 기대하고 지나간 과거에서 더 잘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낙심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기회를 빌려 말하였으나, 어찌되었든 꿈보다 해몽이 백 배는 더 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무한한 우주 속의 유한한 세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무한한 우주 속의 관측 가능한 우주에서만 살아갈 수 있도록 한정 지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무수한 형이상학적 전제 속을 떠돌아다니는 시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신성(神聖)한 타의(他意)에 의하여 이 우주에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설사 관측 불가능한 우주를 넘나들어도 우리는 이러한 생각에 대하여 어떠한 증거나 반론을 제시할 수 없는 한계 곧 우주적 비밀에 여전히 갇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어떤 이는 무한한 우주가 파이(π) 값을 찾다가 ‘빛이 있으라’고 외칠 기계가 존재로 말미암거나 결국 그리 되리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위 오메가 포인트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차라리 과거에 있었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물론 두 가지 모두 우리는 그 컴퓨터의 연산 결과에 지나지 않을 것이므로, 시간은 무의미하며 우리는 환상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의 존재는 독일 교육 유튜브 채널 쿠르츠게작트(Kurzgesagt)가 전하였듯이, 수학적으로 볼 때 경계선 내의 우주가 끝나 모든 것이 블랙홀에 집어삼켜진 후, 블랙홀의 외면에서 호킹 복사에 의해 무한한 시간 동안 생겨난 무한한 입자들이 우주를 가득 채운 까닭에 우연한 조합으로 인해 한순간에 만들어진 ‘뇌의 일시적인 환상들’일 가능성일 수도 있습니다.
요컨대 우리는 이 중 무엇을 선택하든, 혹은 하지 않든 이러저러한 형이상학적 가설 끝에 매달려 살아가는 것을 거부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SF는 그런 우리에게 무엇이 오늘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온 구체적인 비극인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통하여 묻고 드러내는 기능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 저는 2차 대전 이후 완전히 끝장난 것으로 여겨지던 이성 만능주의가 신 존재의 형이상학적 기반을 상실해 가는 사회에서, 위의 다른 형이상학적 가설이 더 도덕적이라고 외치는 이 시대적 사조의 수면 아래에서, 어느새 은밀하게 유사사회진화론이 다시 전개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궁극은 AI를 축으로 하는 초지능의 통치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으로 이 글을 적었습니다. 그 덕에 어마어마한 짓을 저지른 AI를 다루는 글이 나와버린 것 같습니다.
이제 정말로 이 긴 글을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아무쪼록 제게 상을 주셔서 해몽이 더 큰 글을 쓸 명분을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읽기에도 상당히 까다로운 글이지만(소설이든 이 글이든) 읽어주신 독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또한 모든 수상자분들께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우리의 나쁘거나 혹은 좋은 예상들보다 훨씬 더 좋은 미래가 우리 문명에 도래하기를 빕니다.
우수상 <언노운 1004(UNKNOWN 1004)> 김곽팔
작가 소개
[수상] 조아라 제1회 테마 공모전 #유전자 변이 수상
[출간] 언노운 1004(UNKNOWN 1004)
작품 소개 (줄거리)
국립 연구소에 들어온 외계 생명체 unknown 1004(에인젤).
연구원 이한수는 그를 연구하는 중책을 맡는다.
그 와중에 과거의 외계 생명체 연구 일지가 발견되고,
해부 실험 찬성 연구원들이 사망했음이 드러난다.
에인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였는데.
하지만 그는 한수의 동거인이자 짝사랑 대상인 준열의 몸에 들어가거나
연구실에서 탈출하는 등 한수에게 아찔한 관심을 표한다.
상상도 못 했던 모습으로 나타난 에인젤.
한수는 결국 그를 사회화시키기로 마음먹고,
그사이 이 외계 생명체를 향한 애정은 점점 커져가는데.
에인젤과 관련된 모종의 음모, 그를 이용하려는 불온한 집단의 움직임 속에서
한수와 에인젤의 유대감은 점점 더 애틋한 형태로 변해간다.
인간이 된 unknown1004의 창백한 살갗이 손에 닿는 순간
한수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소름 끼치고, 낯선 우주의 이방인을
사랑하게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수상소감
영광스러운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노운 1004(UNKNOWN 1004)>를 집필하면서 완결까지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작중 주인공인 이한수는 어딘가 결핍이 있는 인물입니다. 자유와 사랑을 언제나 갈망하며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합니다. 하지만 unknown1004와 연관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비로소 자신과 직면할 수 있게 됩니다.
존재만으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미확인 생명체와 인간의 교감이 잘 표현된 것 같아 다행입니다.
출간까지 도움을 주셨던 출판사, 담당자님 그리고 <언노운 1004(UNKNOWN 1004)>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합니다.
이한수와 unknown1004가 더 이상 아프지도, 외롭지도 않고 그저 행복하길 바라봅니다.
웹소설 부문 심사평
· 웹소설 부문 심사위원장 이융희
SF어워드의 심사 과정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심사위원들은 그저 좋고, 재미있고, 유익하고, 사회적인 의미가 있을만한 작품을 선정하지 않는다. 구조를 분석하는 데 골몰하지 않고, 소재가 얼마나 과학적인가에 매몰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이 좋은 ‘웹소설’인가에서부터 질문을 시작하게 된다.
웹소설 시장은 끊임없이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다양한 IP콘텐츠 산업, 콘텐츠 밸류 체인의 중심에서 원천 소스를 제공하며 장르라는 개념을 무한에 가깝게 확장시키니 말이다. 장르를 생성하는 최전선부터 장르를 깨부수는 최후위까지, 웹소설은 전방위적으로 콘텐츠를 전개한다.
그렇다보니 웹소설을 단일한 매체와 성격으로 규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연재 형식을 중심으로 해야 하는가? 단행본 형태의 출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한 번에 완결까지 연재본이 풀리는 형태의 서사와 매일매일 실시간 연재되는 작품의 형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과연 어떤 매체적 형식에 맞춰 스토리텔링이 구현되었을 때 그것을 좋은 웹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처럼 올해 SF어워드의 웹소설 분야는 ‘이것이 좋은 SF 콘텐츠인가?’라는 질문을 넘어서 ‘이것이 좋은 SF 웹소설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는 변곡점이라 생각한다. 이에 심사위원 전원은 웹소설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전공 전문성을 바탕으로 훌륭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준 한산이가 작가의 <AI닥터>를 만장일치로 대상 선정했다. <AI닥터>는 웹소설의 구조를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현대에 현현된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인류의 생명과 삶에 대한 고민을 펼쳐낸 수작이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을 섣불리 인격화하여 공포의 대상으로 배제하거나 오버테크놀로지의 세계로 이끌어줄 구도자로 취급하지 않고 기계적 존재와 관계맺고 공생하는 삶에 대해 차분히 풀어낸 것이 인상깊었다. 같은 작가의 <포스트 팬데믹>도 본심 후보에 올랐으나 좀비의 전개 과정과 정부의 대응 등 세계의 움직임을 리얼하게 보여준 초반의 힘이 서사 끝까지 지속되지 못한 것이 아쉬와 최종 심사에는 선정되지 못하였다.
우수작으로 선정된 김곽팔 작가의 <언노운 1004(UNKNOWN 1004)>는 비인간 존재와 접촉한 인류가 해당 대상을 연구적으로 관찰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비인간 존재를 단순히 다루는 작품은 서브컬처 영역에서 쉬이 볼 수 있다. 중요한 이러한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고민한 작가가 그 결과를 소설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서사로 전개할 수 있느냐 하는 지점이었고 <언노운 1004(UNKNOWN 1004)>는 그러한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켜주었다. 티타펠꼬망 작가의 <내 전두엽에 우주 항모가 박힘>은 현대판타지 헌터물 웹소설이라는 장르의 틀 안에서 유쾌한 서사를 유지하면서도 오버테크놀로지 미래 기술인 우주 항모의 능력을 제한적이고 논리적 일관성 있게 풀어냄으로써 미래세계와 기술의 전망과 판타지라는 시공간을 적절하게 혼합한 하이브리드형 서사를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심사 과정에서 호랑곰 작가의 <외계인이 나타났다> 같이 아쉬운 작품들도 존재했다. 과학적인 지식과 논리적 일관성 등을 갖추려 노력한 작품이었지만, 상술한 것처럼 올해 SF어워드에서 중심에 둔 질문은 무엇이 좋은 웹소설인지에 대한 정체성 고민이 있었던 만큼 수상에서는 제외되었다. 출판 산업을 비롯해 다양한 콘텐츠 산업이 어려운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웹소설 영역으로 진입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짐을 익히 안다. 웹소설이라는 명칭이 정착되고 10년이 지난 만큼, 다양한 장르적 실험과 콘텐츠 확장을 위해서라도 웹소설이 무엇인지 좀 더 섬세하게 고민하고 학습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웹소설 부문 심사위원 북마녀
웹소설 부문 후보작을 추리는 과정은 물리적으로 여전히 버거웠고, SF의 본질과 웹소설의 본질이 상충되는 지점도 여전히 존재했다. 그래도 수상작 선정 과정은 콘텐츠 차원에서 수월했다. 그만큼 양질의 웹소설 작품들이 SF다웠고, SF라 정의할 만했다.
지난해까지 휘몰아쳤던 재난, 감염병, 바이러스 소재는 위드코로나 시대에 접어들어 잠잠해졌으며 독자들에게도, 심사위원들에게도 일종의 피로감이 생긴 것으로 판단된다. 대신 그 자리를 AI가 급박하게 채우면서 세상의 가파른 변화를 짐작케 했다.
<AI닥터>는 현실 세계의 가장 과학적인 트렌드와 작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고유의 소재가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200% 낸 작품이다. 최종심까지 오른 작품들 중 SF의 가치와 웹소설의 가치를 동시에 가장 크게 충족시키고 있는 작품이기에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웹소설 부문 대상으로 올리게 되었다. 현재 동시대의 핫한 소재를 일관된 퀄리티로 속도감 있게 뽑아낼 수 있는 작가의 역량 역시 높이 평가되는 지점이었다.
우수상으로는 <언노운 1004(UNKNOWN 1004)>와 <내 전두엽에 우주 항모가 박힘>을 선정하였다.
<언노운 1004(UNKNOWN 1004)>는 외계생명체 사회화 프로젝트라는 독특한 소재를 앞세운 작품이다. 인외존재인 외계생명체와 그를 연구하고 관찰하는 연구원을 주인공으로 삼아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을 핍진성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한다. BL 장르이기에 러브스토리가 깔리는 것은 사실이나, 스토리의 큰 줄기에서 SF적 가치를 담은 일관된 진행이 이루어진다.
<내 전두엽에 우주 항모가 박힘>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의 종잡을 수 없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여 ‘웹소설식 SF’의 매력을 보여준다. 남성향 판타지에서 추구하는 감성 중 일부인 은근히 시니컬하면서도 시원한 코믹 코드가 눈에 띄는 작품이라 읽는 재미도 남달랐다.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작품은 BL 장르인 <축복의 비>로, 백신을 섞은 인공강우라는 놀라운 소재의 좀비 아포칼립스물이다. 당장 백신 문제로 여차저차 일이 많았던 한국에서 이만큼 현실적으로 흥미를 자아내는 소재가 또 있을까 싶다. 뱀파이어 캐릭터의 등장이 미묘하게 고민되는 지점이었으나 이 역시 좀비 바이러스와 연결되는 설정으로 설득력 있는 전개가 진행되어 수상작들과 각축을 벌였다.
끝으로 언급하고 싶은 작품은 본심진출작 중 하나인 <러브 앤 안드로이드 Love & Android>다. 인공지능과 로봇, 섹스안드로이드를 단순한 설정으로 이용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의 큰 줄기를 구성하는 요소로 깊숙이 활용한 가상 배경 로맨스 작품이다.
그동안 SF어워드 웹소설 부문 후보작으로 올랐던 여성향 장르는 BL이 대다수였던 것으로 안다. BL 역시 러브스토리를 기반으로 하지만 비교적 타 장르 수용도가 높은 독자들의 장르라 가능했던 결과다. 반면, 로맨스와 로판은 장르 융합에 보수적인 편이라 현 웹소설 시장에서 미래 배경의 SF 소재 로맨스는 흔하지 않다. 그러므로 <러브 앤 안드로이드 Love & Android>는 용맹한 도전 그 자체이며 SF로맨스의 가능성을 담은 시도였다 할 수 있다. 이를 시작으로 앞으로 조금 더 활발히 로맨스와 SF의 결합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웹소설과 SF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소재의 특성상 아무래도 남성향 장르들이 보다 수월하게 SF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여성향 웹소설이라 불리는 현대로맨스, 로판, BL 장르에서 완벽한 SF를 만들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어워드의 후보작 리스트에 여성향 장르가 여러 종 포함되었으며, 그 작품들이 본심과 최종심에 올라 수상권까지 이르게 된 것은 몹시 고무적인 성과다. 실상 웹소설 밖의 세계라 할 수 있는 SF어워드이기에 이번 결과가 여성향 장르의 위상이 안팎으로 조금 더 높아지는 계기가 되리라 의심치 않는다. 여성향 장르 작가들이 눈앞의 현실에 가로막힌 나머지 더 다채로운 상상의 스토리텔링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웹소설 부문 후보작 중 수상작과 본심 진출작에는 기성 작가의 소위 대박작들도 있지만 신인 작가의 첫 작품으로 보이는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종이책 출판시장과 마찬가지로 웹소설 시장 역시 제한된 플랫폼 내 한정적 마케팅에 휘둘리고 있기에 신인의 이름을 달고 높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그리 쉽진 않다. 이번 SF어워드에서의 언급이 해당 작품을 쓴 작가들의 집필에 조금이나마 힘과 격려가 되길 바란다.
· 웹소설 부문 심사위원 위래
웹소설은 SF어워드의 다른 소설 부문과 달리 분량과 양식 이상으로 구분되는 지점이 있다. 웹소설은 해시태그로 대표되는 분절되고 결합되는 특이한 장르 양상을 통해 그 자체로 독자적인 장르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SF 웹소설은 SF와 웹소설 양쪽의 장르 교집합 안에서 성립하는 SF 또는 웹소설의 하위 장르로 정의된다. 이러한 SF 웹소설의 특징은 SF어워드 웹소설 부문 심사위원에게 SF와 웹소설 각 장르를 규정 짓는 요소가 무엇인지, 이 둘은 어떤 지점에서 닮았고, 그럼에도 서로 다른 것인지 따져 묻게끔 만들었다. 스페이스 오페라와 슬립스트립, 뉴웨이브, 사변소설과 같이 꾸준히 확장되어온 SF의 외연은 대여점 판타지의 후신으로 퓨전 판타지와 게임 판타지의 영향력 아래에서 발전해온 웹소설과는 유사하고 때로는 합치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SF와 웹소설의 장르소설사를 훑고 개별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장르가 무엇인지를 물을 때, 각 작품에서 고유한 경향성을 추출 해낼 수 있음은 물론, 그 닮은 꼴이 수렴진화에서 비롯될 뿐 유전적 요소는 완연히 구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두 동물을 합친 키메라처럼 보이는 SF웹소설은 현재 충분한 독자의 수요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턱 끝까지 치달은 기후위기, 세계화에서 비롯되는 종말론적 상상력, 점차 가속화되는 기술 발전 등 SF에 대한 시대적 관심을 한 축으로 두고 대여점 판타지의 유산을 이어받아 기나긴 이야기에 대한 독자의 바람을 충족시키는 것을 또 다른 한 축으로 두었을 때 서로 다른 두 개의 기대를 함께 만족시킬 수 있는 장르는 SF 웹소설뿐이다. SF어워드 웹소설 부문을 통해 해를 거듭하며 SF웹소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을뿐만 아니라 지난 SF웹소설로부터 이어지는 장르의 맥락이 형성되고 있다. SF 웹소설이 SF와 웹소설 양면으로 장르에 대한 집필 능력이 요구되는 고난도의 작업인 것과 그리고 SF 웹소설이라는 분야가 근래에 나타나 아직 충분한 양적 성장을 이루지 않았음을 가늠한다면, SF어워드를 통해 현재 한국SF 웹소설의 현재를 짚는 것은 한국SF 비평장과 한국SF 독자들에게 있어 의미 있는 지침이 될 것이다.
2023 SF어워드에서는 여러 종류의 SF 웹소설들이 발견되었다. 우선 세계로 구분하자면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먼데인SF, 블레이드 러너와 윌리엄 깁슨에게 빚을 진 사이버펑크와 그 사이버펑크가 장르 판타지가 결합한 유사 쉐도우런 세계, 그리고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스페이스 오페라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스페이스 오페라는 현대 판타지의 변용으로 작용하여 경영물 또는 영지물로 나아가는지, 또는 우주로 나아가 우주를 개척하고 우주적 음모를 파훼하는 모험개척물이 될 것인지 아니면 먼 미래의 우주 제국에서 전쟁을 벌이는 제국암투물이 될 것인지가 나뉜다. 사이버펑크와 그 변용은 주로 해결사물로 자리를 잡고, 로맨스 서사가 주도되는 경우 두 주인공이 겪는 퍼스트 콘택트를 다룬다. 과거와 달리 눈에 띄는 지점은 웹소설이 단순히 SF의 부분적 요소만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장르 SF의 특징을 포섭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웹소설의 '시스템'은 게임 판타지에서 비롯되어 퓨전 판타지를 거쳐 웹소설에서 사용되고 있다. 시스템은 분명 인위적 산물이지만 작품 내에서 특별히 그 근거가 설명되지 않더라도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 플롯장치로 사용된다. 시스템은 주인공에게 단기적 목표를 제시하며, 세계를 암시·설명하고, 주인공의 성장을 돕고, 그 성장을 독자에게 확인시키는 등 많은 역할을 한다. 이런 시스템이 'AI', '우주선'으로 치환 될 때 웹소설의 세계는 SF적 상상력의 공간으로 도약하게 된다. 그저 어휘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AI는 주인공의 말벗인 동시에 그 행동 양식을 논리적이고 이성적일 수 있도록 다듬고, 우주선은 세계의 범주를 우주로 옮겨 소설의 장르를 스페이스 오페라로 만든다. 이런 변화는 연재 기간 문제로 심사 제외할 수밖에 없었던 내년도 후보작들에서 더 많이 포착되었다. 많은 이들이 웹소설은 서로 같거나 비슷하다고 말하지만, 그 최전선은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음을 확인한 심사였다.
눈에 띄는 작품들이 있었다. 행운요정의 "우주 군벌가 망나니"는 웹소설의 주요한 장르 중 하나인 망나니물을 다나카 요시키와 "은하영웅전설"을 생각나게끔 하는 전통적인 우주 제국과 결합한 스페이스 오페라다. 처음에는 망나니물의 궤도를 따르면서 영지물, 제국 암투물을 거쳐 제국 밖의 거악과 싸우는 에스컬레이트 전개는 웹소설이 지향하는 모범적인 전개였다. 또 다른 스페이스 오페라 작품도 있었다. 글삼의 ”우주선을 주웠다“는 한국 웹소설의 주요 플롯장치 중 하나인 ‘시스템’의 변형인 ‘우주선’을 통해, 기업물이라는 웹소설에서 이미 증명된 장르가 아닌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 저변의 확대를 꾀한 작품이다. 전통적인 SF의 스페이스 오페라의 궤적과는 거리가 있으나 스페이스 오페라가 지향해 온 모험과 개척이라는 주제를 녹여 웹소설의 형상에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보다 낯선 세계를 다룬 작품도 있었다. 우자차의 ”축복의 비“는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한국 웹소설의 주요 장르로부터 두 주인공 사이의 갈등, 두 주인공과 세계 사이의 갈등을 엮고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뱀파이어라는 요소를 덧붙이고 좀비의 근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정한 것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 밀리터리 SF의 방법론을 빌려 세계의 모습이 변모되는 과정을 충실하게 서술하였다. 다양한 SF의 장르 요소들이 복합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전개된 것이 인상적이다.
언급한 세 작품을 포함해 최종 후보에 오른 작품 모두 각각 가치가 빛나는 작품들이었으나, 대상과 우수상을 가려 뽑아야 했기에 SF어워드가 지향하는 가치와 좋은 SF웹소설이라는 기준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티타펠꼬망의 ”내 전두엽에 우주 항모가 박힘”은 웹소설이 이따금 보여주는 파격적인 전제로부터 출발하였음에도 코드웨이너 스미스의 작품이 떠오르는 우주적 스케일의 설정과, 일반의 웹소설에선 장치로밖에 쓰이지 않는 시간여행이라는 장르를 힘 있게 밀어붙여 개연성과 박진감을 취했다. 또한 판타지 웹소설 말미에서 등장하곤 하는 우주적 위기를 스페이스 오페라를 통해 SF 웹소설에서도 가능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은 SF의 가능성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고 할 수 있다. 김곽팔의 “언노운 1004(UNKNOWN 1004)”는 로맨스에서의 두 주인공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방법으로 SF의 주요 장르 중 하나인 퍼스트 콘택트를 차용한 것이 흥미롭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인물과 그것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탐구하는 인물을 통해 신비롭고 불가해한 현상을 과학과 논리, 이성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것은 SF가 가진 근본적인 태도와 다르지 않다. 또한 작품의 후반부에서 드러나는 컬트와 음모 또한 SF가 다뤄온 주제로 외계의 존재와 그 음모에 휘말린 군상들, 모험과 해후까지 그간 한국SF에서는 드물었던 면모를 수행한 작품이란 것에 가치를 둔다. 이상 두 작품이 장르 SF에 대한 면모가 도드라졌다면, 대상 작품은 웹소설이라는 형태에서 더욱 빼어나다. 한산이가의 “A.I. 닥터“는 흠 잡을 데 없는 전문가물에 대한 역량이 SF와 결합한 작품이다. 사고로 인해 AI가 머리에 박혔다는 엉뚱한 전제에도 불구하고, ‘AI’는 현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기술 중 하나인 약인공지능을 연상시키며 웹소설의 주요 플롯 장치인 ‘시스템’과는 다른 의미 있는 구분을 이뤄냈다. 웹소설에서의 장르 표준이라고 할 수 있을 의학 미스터리와 그 과정을 첨예하게 아우르는 과학적 태도는 기름친 톱니바퀴처럼 매끄럽게 작용하여 독자에게 있어 질병과 몸을 넘어 관계와 세계에 대한 보다 넓은 이해를 돕는다.
웹소설은 특정한 양식에 맞춰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어느 정도 사실이다. 웹소설은 한 편이 5천 자 이상이고 주 5회는 연재해야 하며, 제목과 소개글에서 이 소설이 어떤 장르인지 드러나야 하고, 첫 3화에서 주인공의 능력과 목표가 밝혀져야 하며, 각 편의 끝에는 다음 편에 대한 기대감을 주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많은 웹소설 작가가 공유하고 인정하는 작법이다. 하지만 그다음은 미증유의 영역이다. 이를테면 웹소설에 어떤 해시태그, 장르를 더하느냐는 문제다. 어떤 이들은 SF 웹소설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SF어워드의 웹소설 부문 수상작들을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제는 SF 웹소설은 시기상조라고 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어느 정도 사실이겠으나, 이번 심사를 통해 읽을 수 있었던 SF와 SF에 속하는 무수한 해시태그들로부터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딘가 SF 웹소설이나 그와 같은 미증유의 영역에서 글을 쓰고 있을 외로운 작가에게, 그리고 내년도 SF 어워드 웹소설 부문 심사위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자 한다:
올해보다 내년에 심사할 작품이 더 많음.
· 웹소설 부문 심사위원 이지용
이번 제10회 한국SF어워드 웹소설 부분 심사에서 가장 큰 화두였던 것은 이 시대에서의 ‘미래(未來, future)’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SF 장르가 단순히 미래만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지만, 웹소설 분야의 특성상 현실에서 상상하지 못하는 ‘다른’ 지점들을 상상하고 이야기화하는 지점이 강점이라는 것과, SF라는 장르를 대입했을 때 오버테크놀로지와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특징적이라는 걸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사고실험을 통해 구현된 미래를 그리고 있는 것에 대한 지점들이 웹소설의 세계의 SF 장르로서의 ‘가치’를 판단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팬데믹 등으로 인해 미증유의 미래들을 불안하게 상상했고, 그것들에 대한 두려움들이 개성적으로 구성되었던 2022년도의 웹소설 분야와 비견되게, 올해는 그러한 막연한 불안감들로부터 벗어나 인공지능 등의 오버테크놀로지로 인해 상상되는 미래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들이 돋보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근래에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인공지능 기술의 한 차원 높은 기술적 도약은 사회적인 충격뿐 아니라 창작자들의 세계 구성에도 많은 영향을 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 수상을 한 작품들은 이와 같은 측면에서 현재에 그려낼 수 있는 과학기술로 인해서 변화하게 될 미래에 대한 다양한 방향으로의 상상들, 그리고 그것을 웹소설이라는 콘텐츠 양식에 걸맞게 구현했다는데서 지지를 받은 작품들이었다.
대상인 한산이가 작가의 <A.I.닥터>는 인공지능과 공생 할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주인공이라는 캐릭터가 우선 현 시점 우리들이 상상하는 미래에 대한 지점들을 가장 현실적으로 해석하고, 흥미롭게 풀어냈다는데서 큰 지지를 받았다. 무엇보다 한산이가 작가 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전문 직종에 대한 디테일한 이해와 활용 그것을 웹소설이라는 형식에 담아내는 능숙함이 무엇보다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특히, 인공지능과 공생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먼치킨의 능력처럼 무분별하게 혹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같이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매게로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과 연대하고 연합해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의 지향점은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가치의 측면에서도 수상을 결정짓는 요인이 되었다.
우수상인 김곽팔 작가의 <언노운 1004>는 웹소설에서의 가장 중요한 장르인 로맨스에서 비인간 캐릭터들을 현대적이고 비판적인 포스트휴머니즘의 맥락에서 형상화하는데 능숙하다는 것이 큰 의미를 부여 받았다. 특히 비인간 존재들을 논리적으로 형상화하면서 자칫 느슨해 질 수 있는 이야기의 긴장감과 구조들을 시종일관 지켜냈으며, 끝까지 해당 설정의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다는데 의미가 있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웹소설이 현대 한국의 서사 담론 내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력과 가능성들을 확인해 볼 수 있었고, 대중서사의 다양한 시도들이 만들어 내는 의미 역시 확인해 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수상인 티타펠꼬망 작가의 <내 전두엽에 우주 항모가 박힘>은 웹소설이라는 형식 내에서 기발하게 상상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상적인 세계에 대한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게임의 세계들과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 게임판타지 기반 창작품들은 SF어워드 내에서 언제나 고민이 많은 지점들이다. 특히 게임이라는 테크놀로지를 후경화 시켜놓고, 중세 판타지 느낌의 마법 세계에 대한 설정과 캐릭터들로 이야기를 채워나갈 경우 이것을 SF라는 장르에서 의미부여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러한 설정들을 우회하면서 유쾌하고 흥미롭게 다양한 설정들을 풀어놓고 있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웹소설에서 SF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때 반드시 지나치게 되는 어떤 지점을 목격한 느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수상작으로는 들지 못했지만 우자차 작가의 <축복의 비>는 여성향 장르라고 카테고리화 되는 BL의 문법들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작품으로서의 안정감이 돋보였다. 게다가 전체의 세계가 적층되면서 환상과 미지의 세계로서의 SF적인 의미들을 만들어 나가는 지점들은 장점으로 볼 수 있었다. 다만, SF적인 설정들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배경적으로 물러서고 있다는 점에서 최종 수상작에 들지 못했다. 또한 글삼 작가의 <우주선을 주웠다>는 <내 머리에 우주 항모가 박힘>과 비슷한 의미맥락에서 논의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차이점으로 현실에서의 문제, 인공지능에 대한 소재화 등이 있었고, 특히 우주라는 공간에 대한 맥락화는 좀 더 명확하고 흥미로웠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수상에서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흥미를 웹소설이라는 형식에 맞게 구성하였는가에 대한 지점에 좀 더 높은 의미를 부여해 최종 수상작에 들지 못하였다. 이외에도 유자꽃 작가의 <데드램>의 경우 BL과 디스토피아의 설정들이 매력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새로운 장르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시종일관 유지하면서 하나의 작품으로 끝맺는데서 오는 아쉬움 때문에 수상작에 들지 못했다.
수상작에 들지 못했던 작품들이라고 할 지라도 각자의 매력과 개성들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어서 대체로 흥미로운 작품들이 가득했던 이번 심사였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웹소설에서 SF라는 장르가 메이저 장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이에 관련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 보여지는데, 소재나 주제에 대한 다양성과 더불어 웹소설이라는 콘텐츠의 형식 내에서의 SF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모습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반가운 일이었다. 이번 2022년 한 해 동안 웹소설의 형식으로 다양한 SF의 가능성을 보여주시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력을 구현해 주신 모든 작가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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