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나의 유연하고도 섬세한 외계인 애인> 로희
작가 소개
2006 문예중앙 장편소설상.
2016 대한민국 SF 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대상.
2017 황순원 소나기 마을 작가상.
총 여섯 편의 장편과 세 권의 창작집을 냈습니다.
SF 장편소설로 『투명공간 앨리스』 (네오픽션,2024)
작품 소개 (줄거리)
우주정거장에서 만나 연인이 된 지구인과 외계인. 상대의 언어를 배우고 생활방식을 공유하며, 서로의 다름과 닮음에 적응한다. 다양한 존재 너머의 공존과 사랑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수상소감
어쩌면 아무도 원치 않는 작품을 혼자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실의에 빠질 때가 있었는데 마침
에스애프만을 쓰겠다고 지인들에게 선언한지 이년만에 이렇게 큰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부끄럽지
않은 에스에프를 쓰기 위해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우수상 <깡총> 이산화
작가 소개
SF 작가. 저서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증명된 사실》, 《밀수: 리스트 컨선》, 《기이현상청 사건일지》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다수의 잡지 및 앤솔러지에 단편소설을 싣거나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제2기 운영이사를 역임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2018년 및 2020년 SF어워드 중·단편소설 부문에서 「증명된 사실」과 「잃어버린 삼각김밥을 찾아서」로, 2023년 SF어워드 장편소설 부문에서 『기이현상청 사건일지』로 각각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작품 소개 (줄거리)
어떤 장벽도 ‘깡총’ 뛰어넘을 수 있는 공간 도약 덕에 토끼의 개체 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자, 온 농지가 초토화된 인류 문명은 대기근을 맞는다. 한편, 어떤 토끼들은 시간마저 뛰어넘어 순간의 빛과 ‘찰박’ 소리만을 남긴 채 어디론가 사라진다.
수상소감
먼저, 자주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걸로 네 번째 수상이라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상을 받는단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네요. 정작 「깡총」은 그렇게 기분 좋은 이야기가 아닙니다만……. 힘든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이야기가 소중한 만큼, 우리의 나약함과 결함을 직면하게 해 주는 이야기도 저는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가끔은 이런 식으로 꿈도 희망도 없이 다 망하는 이야기도 쓰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앞으로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세상을 멸망시켜 보도록 하겠습니다. 웬만하면 소설 속에서요. 감사합니다.
우수상 <두 발로 걷는 남자 괴담> 위래
작가 소개
2010년 8월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 「미궁에는 괴물이」를 게재하며 첫 고료를 받았다. 이후 여러 지면에서 꾸준히 장르소설을 썼다. 소설집 『백관의 왕이 이르니』를 출간하고, 웹소설 『마왕이 너무 많다』와 『슬기로운 문명생활』을 연재했다. 최근 경장편 『허깨비 신이 돌아오도다』가 나왔다.
작품 소개 (줄거리)
빌려준 돈의 이자 대신 평행세계로의 이동법을 알게 된 주인공 ‘성윤’은 엘리베이터를 통해 사람들이 네발로 기어다니는 이상한 세상에 도착한다. 이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든다.
수상소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장르소설 쓰는 위래라고 합니다. 작년에는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올해는 수상하여 시상대에 올랐네요. 순서가 바뀐 것 같기도 해서, 신기합니다. 제 소설 ‘두 발로 걷는 남자 괴담’은 ‘평행 세계’라는 SF 장르 코드 위에, ‘여성 괴물’이라는 장르 모티프를 반전하여 더하고, ‘호러는 윤리에 대한 장르’라는 제 나름의 장르론에 입각해 쓰여졌습니다. 저는 SF호러다운 소설, 즉 장르소설을 쓰고자 했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장르를 쓰면서도 자신의 소설이 장르로 규정되길 거부하고 장르 따위는 소설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만연한 가운데, ‘장르소설을 쓰겠다’고 선언을 하는 건 두 발로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네 발로 기는 것처럼 외롭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수상으로 제 글쓰기가 조금은 긍정된 것 같아 기쁩니다. 응원으로 알고 앞으로 더 좋은 소설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더불어 어린시절부터 제 단편을 읽어준 유샤, 스트렐카 두 사람과, 늘 응원해준 게임방, 레이드파티, 스트림즈, 포커모임의 글친구들, 또한 괴이학회와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늪, 환상해역의 작가분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고맙다 전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중·단편소설부문 심사평
· 중·단편소설부문 심사위원장 박인성
이번 2024년 SF어워드의 중·단편소설 부문의 심사는 분야의 특성처럼 가장 시의적인 이야기들을 톺아보면서, 그중에서 높은 완성도와 경쟁력을 갖춘 작품들을 선별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작품이 가진 동시대 SF 작품으로서의 설득력도 중요했지만 동시에 단편소설의 형식적 완미함과 장르적 재미를 함께 살피는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발표작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이러한 종합적 평가 기준을 적용하여 각 심사위원들이 10편의 작품들을 추천한 뒤, 심사기준에 부합하는 48편의 작품에 대한 본심 및 최종심을 진행하였습니다. 본심에서도 꽤 많은 작품들을 다루어야 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엄격하게 논의를 거듭하여 최종심의 경쟁 자격이 있는 작품들을 다시 추천하고 이를 중심으로 최종심을 진행하였습니다.
올해 심사대상작들의 경향은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① 특정 소재(가상현실과 메타버스, 로봇과 인간성, 기후재난과 포스트-아포칼립스)의 주된 강세는 여전하다는 점 ② 그러한 소재의 반복성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한 작품의 성취들이 차별성을 드러냈다는 점 ③ SF와 인접장르의 다양한 복합장르들이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개성적인 경향을 만들어 냈다는 점 등이 눈에 띄었습니다. 특히 본심 및 최종심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설정과 소재에 이끌려가기보다는 SF로서의 독립적인 주제의식과 완성도를 갖춘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늘 SF문학상과 그에 대한 심사 과정은 SF라는 장르를 되돌아보는 자리가 됩니다. 이 심사평에서는 잘 만든 SF이자 잘 만든 이야기로서 최종심에서 주요하게 언급된 다섯 작품에 대하여 부족하나마 정리해보겠습니다.
배미주의 「개척시대의 사랑」은 언뜻 최근 기후재난과 지하도시, 메타버스와 가상현실 등을 소재로 하는 기시감 있는 소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보여주는 관습적 장르문법과 해피엔딩을 지향하는 센티멘털리즘에도 불구하고 저는 결말에 이르러 담백하고 솔직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너무 손쉽게 인간적 삶을 극복하거나 급진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전복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멸망 이후의 미래 사회에서도 여전히 휴머니즘은 작동하며, 세상을 구하는데 실패한 미래 사회에서도 실패의 아이들이 다시금 서로를 발견하고 구원해 나가는 과정을 우직하게 나아갑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편의적으로 바깥을 상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패와 좌절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을 바깥세상으로 움직여 나가기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긍정적으로 그려내는 과정에 있습니다. 「개척시대의 사랑」이 비록 익숙한 이야기이일정 여전히 우리에게 절실한 SF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경희의 「매듭정리」 역시 평행세계와 예정된 운명이라는 소재를 깊이 있는 장르적 성찰 속에서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SF로 평가받았습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무한의 세계를 살아가는 딸 소연이 자신의 삶을 매듭짓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 그렇게 죽음을 선택한 소연에게 0으로 수렴하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도달할지도 모르는 편지를 써나가는 아버지의 소설적 시도는 평범한 서간체 소설의 형식적 한계를 강렬하게 극복하고 있습니다. 「매듭정리」는 무한한 가능성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는 인간적 결의와 함께, 닫혀 있는 유한한 현실 속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과 미래를 도달하기 위한 곡진한 투쟁을 감동적인 방식으로 그려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이 소설의 형식적 세련됨과 구성적 완미함이 결과적으로 친숙하고 뻔할 수 있는 소재와 그에 대한 장르적 관습마처 높은 수준으로 성취했음을 긍정했습니다.
이산화의 「깡총」은 가장 예외적이면서도 참신한 방식의 장르적 확장과 갱신을 보여주었습니다. SF라는 장르에 ‘벽’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을 때, 벽을 넘는 방법에 대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하지만 「깡총」은 토끼와 차원이동이라는 소재 간의 결합을 통해서 놀랄만큼 새롭게 장르적 상상력을 갱신했습니다. ‘호주 토끼전쟁’을 참고한 과거 역사와 함께 웨스턴 장르에서 볼법한 황무지 위에서 토끼를 쫓는 주인공 라일리의 현실은 차원을 뛰어넘는 시공간의 개입으로 비약합니다. 단순히 토끼의 차원이동이라는 소재가 기능적으로만 활용된 것이 아니라, 소설 형식에 있어서도 분절된 영역들을 뛰어넘듯 이루어지는 단속적(斷續的) 구성이 전체 이야기를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어 줍니다. 차원을 넘어 시간을 거슬러 간 토끼들이 다시 현재의 토끼를 쫓던 주인공의 삶에 개입하는 시간적 역설은 역설 이상의 강렬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이러한 소재에서부터 시작해 구성과 형식으로 뛰어오르는 이 소설의 매력은 정말 토끼처럼 ‘깡총’ 뛰어올라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위래의 「두 발로 걷는 사람 괴담」은 단연 장르성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읽는 과정의 몰입과 재미를 끝까지 유지한 독보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오늘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열망으로 회귀를 반복하는 ‘회귀물’ 장르에 대한 완벽한 카운터 서사처럼 읽힙니다. 장르적 상상력을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손쉬운 대안적 상상력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오늘날의 주된 창작의 문법에 대하여 호러의 문법을 빌려 더 끔찍하고 불온한 세계로 향하게 되는 이 소설의 전체 방향성은 강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호러의 감수성을 잘 살린 이 소설이 정작 SF인지를 물을 수도 있겠지만, 평행세계를 오가는 엘리베이터는 그 자체로 과학적 매개의 압축적인 도상으로 압축적이지만 효과적인 이야기적 장치가 됩니다. 이 소설은 오늘날 복합장르로서 SF가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잘 발휘했으며 시의적인 현실 속에서 SF의 잠재력을 새롭게 확장한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중·단편소설 부문의 대상 수상작 로희의 「나의 유연하고도 섬세한 외계인 애인」은 비인간 지적생명체에 대한 서사에 있어서 SF 장르로서의 구체성과 타자를 상상하는 방식의 신선함을 함께 제공해 준 수작입니다. 이 소설은 말 그대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움’처럼 변형적이고 우리 일상으로 침투하는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전면화합니다. 또한 인간 사이의 사랑에 대한 통속적인 이해를 벗어나 삶의 관계맺음이 어떻게 변형적이며 수용적일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다룹니다. 언어 소통을 뛰어넘은 접촉과 적응의 과정이 인간 사이의 이해와 몰이해에 대한 관성적 관계를 벗어난 곳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은 SF로서의 장르적 핍진성과 타자에 대한 이야기의 포괄적인 설득력을 동시에 달성합니다. 이 소설이 지닌 넓은 포괄성과 섬세한 구체성이야말로 오늘날 SF 단편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성취의 모범적 사례이자 높은 성취일 것입니다.
심사위원들은 최종심에 올라온 모든 작품들이 저마다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고 대상 수삭작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음에는 동의했으나, 무엇보다도 「나의 유연하고도 섬세한 외계인 애인」이 선보인 독창적인 소재와 이를 소설적으로 실체화함으로써 가지는 강력한 설득력에 주목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중‧단편소설이 보여주어야 하는 다양한 평가기준을 빠짐없이 충족했으며, 형식적인 완미함과 함께 소재를 살린 구체성, 그리고 반려종과의 공존이라는 우리 시대 SF가 감당해야 하는 주요한 주제를 섬세하게 갱신하였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치열한 논의 끝에 최종적으로 이 작품이 대상으로서의 수상자격이 충분하다는 사실에 동의했습니다. 2024년 SF어워드 중·단편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한 로희 작가에게 깊은 찬사와 축하의 인사를 보냅니다.
또한 근소한 차이로 이산화의 「깡총」와 위래의 「두 발로 걷는 사람 괴담」을 우수상 수상작으로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깡총」이 보여준 SF적 상상력의 새로운 갱신은 심사위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두 발로 걷는 사람 괴담」은 확장성 있는 복합장르로서의 SF의 시의성과 동시대적 설득력을 흥미롭게 제시해주었습니다. 두 편의 우수상 수상작, 그 외에도 본심에서 다루어진 작품들은 오늘날 SF가 처한 수많은 가능성 사이에서 장르적 관습과 작가의 개성, 동시대적 시의성에 응답하며 저마다의 소설적 좌표를 그려나가는 작가들의 훌륭한 응답들입니다. SF어워드 심사 과정을 통해서 한국 SF 중·단편소설들의 동시적이며 다발적인 진화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번 모든 수상자들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내며, 한국 SF 소설의 끊임없이 자기 갱신과 함게 우리 현실에 더욱 다양한 미래의 스펙트럼을 제시해주길 기대해봅니다.
· 중·단편소설부문 심사위원 은림
작업자로서 최근 가장 관심이 간 과학기술은 그림과 소설을 쓰는 인공지능-AI의 발전이었습니다.
미래에 기계가 더욱 정교해지고 보편화 되면 인간의 노동과 돌봄과 집안일을 대신해주고, 사람들은 좀 더 많이 가족과 시간을 갖고 여가를 누리며 더 나은 창작활동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기계가 창작활동을 하고 인간은 여전히 헤어날 수 없는 노동에 기계보다 더 싼값에 일해야 하는 환경이 된 것에 놀랐습니다.
(노동과 인간 생활의 필수적인 요소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로봇과 인공지능을 설계하고 디자인하거나, 기계도 일하기 싫었던 건 아닐까 의심해봅니다)
올해 발표된 SF중단편들은 과학기술의 거시적인 발전 뿐 아니라 앞서 말한 것처럼 실생활에 밀착하여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의 조망과 시의적인 화두들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미래에 와 있고 SF 작품이 좀 덜 미래로 가서 격차가 좁아진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SF 작품들에 뚜렷이 드러난 차별, 혐오, 노동, 다문화, 약자, 소수자, 돌봄, 노인, 인권, 국가 분쟁 등 공공성을 유심히 보면서 상상과 픽션에 중점을 두었던 SF 작품들이 논픽션하며 성숙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과거의 SF작품들도 언제나 당대의 화두와 시의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훨씬 다양한 작가들이 메타버스 속이 아닌 현재 사회를 살며 자기 자신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습니다.
다만 우리는 여전히 미래로 더 많이 가기를, 더 모르는 낯선 이야기들을 읽고 듣고 사고를 전환하며 미지와 조우하고, 기꺼이 이해하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다른 장르가 아닌 SF여야 만이 할 수 있는 것들에 심사 초점을 두었습니다.
1. 나의 유연하고도 섬세한 외계인 애인 / 로희 / 영화가 있는 문학의 오늘 2023.봄
작품을 펼쳤을 때 느낀 것은 경이로움이었습니다. 지구에 온 외계 생물은 대부분 비약적인 과학기술을 가졌고, 이것을 인간의 과학기술로서 파해치며 더 나은 기술을 전수받는 것이 SF 테마의 클래식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언어>를 외계문명을 이룬 경이로운 기술 자체로 가져옵니다.
<오움>인이 지구와의 교류에 굳이 모국어 문학의 정수인 ‘시’를 불러들인 것은 바로 이 언어적 기술의 극치를 이해시키기 위한 장치입니다. 시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주인공에게 그러면 시가 아닌 것부터 말해보라는 신선한 제안으로부터 외계인과 인간이 연인의 관계 맺기를 시작합니다. 무엇이 무엇인지 알려면, 때로는 무엇이 무엇이 아닌지를 제외해 나가는 소거법을 쓰는 것도 참 좋은 접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성대가 발화하는 언어를, 소리로 문명을 이룬 외계인이 느낀다면 어떨까요? 외계인 <오움>들은 많지 않은 단어를 무수히 섬세한 방식으로 변주하며 소통할 수 있습니다. <옴>, 단 한 단어로 나 자신을 부르고 타인이 나를 부르고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똑같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는 복잡한 성조를 지닌 발음을 인간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언어를 생존과 발전의 원천으로 삼는 <오움>인에게 인간의 언어는 너무나 거칠고 원초적이며 그러기에 무한히 변화생성 가능한 원소상태 일지도 모릅니다.
<오움>인들이 사용하는 물건<움>들도 <옴> 발음의 변화처럼 한 존재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하기 때문에 의식주에 꼭 필요한 것들을 한 개씩만 가지면 됩니다. 재미있는 건 이 물건 <움>들은 외계의 뛰어난 기술집약체가 아닌, 생명을 가지고 변화하는 식물체로서 기꺼이 <오움>인에 맞추어 생활하며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지구 온난화와 환경오염문제가 어느 때보다 대두되고 있는 만큼 저는 이 물체가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 인간들처럼 자기 외의 모든 것(자연환경, 식물, 동물, 때로는 인간까지도)을 물건 취급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소품까지 세세히 살피며 소통하는 다정함도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그런데 <오움>인들이 <움>에게 편의를 제공받는 대신 무엇을 돌려주는지 나타나지 않아서 다소 아쉬웠습니다. <움>들의 생장은 어떠한지도 궁금해졌습니다.
언어와 사고방식과 소통과 생명체의 발달은 떼기 어려운 관계고 상호보완적입니다. 이것을 미지와의 조우에 접점으로 만들어 존재와 사고방식의 차이를 극명히 드러내는 작품으로 저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텍트>를 꼽습니다. 테드 창의 원작도 굉장하지만 <컨텍트>는 영상물만이 할 수 있는 시각화로 먹물 방울처럼 떨어지는 외계 언어와 그와 상통된 외계인의 모습과 움직임을 표현한 것이 특히 아름다웠습니다. <오움>인들이 투명한 몸으로 사만가지 소리외 음조, 때로는 침묵으로 새처럼 지저귀며 말하는 영상을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기대를 가져 봅니다.
2. 깡총 이산화 SF 보다 Vol. 2 벽
깡총, 단번에 뛰어올라 까마득히 도약해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털 달린 재앙. 이것은 호주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토끼 전쟁이며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본토에 없는 외래종 토끼가 호주 유배자 백인들에 의해 유입되고 생태계 교란을 넘어서 자연을 황폐화시키고 식량난을 일으켰습니다. 인간은 거대한 호주 대륙을 가로지르는 토끼장벽을 설치했는데, 지도로 보면 만리장성에 육박해 보일 정도로 장대합니다. 작가는 실제 이야기를 상상력의 힘으로 지구 전체로 확장시킵니다.
<깡총>에서 토끼들은 뛰어오르는 힘과 미세한 도약에 따라서 공간이동을 해서 토끼 장벽을 가뿐히 건너뛰고 전세계로 퍼져나가 대기근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토끼를 연구하던 말끔한 과학자가 먼지 풀풀 황량한 웨스턴 보안관의 모습으로 총을 들고 직접 토끼 사냥에 나서게 됩니다.
인류의 멸망이 외계의 침입이나 핵 운용, 전쟁, 기후 변화 같은 거대 재앙이 아니라 귀엽고 온순(?)하며 빨리 뛰고 새끼를 많이 낳는 것 외엔 생존전략이 미미한 토끼에 의해 촉발된다는 점이 이 작품의 SF적 사고 전환의 백미입니다.
<깡총>에서 과학자들은 인류를 토끼 재앙에서 구원하는 한편, 토끼들의 차원 이동 능력을 이용해 인간이 풍요로웠던 한때를 기반으로 시작했던 지구 밖 탐험에 재도전하고자 합니다. 주인공 라일리는 층층이 높아진 벽으로 토끼들을 몰아 살해하는 쾌거를 이루며 한 뼘 땅으로 인간을 구하고자 골몰하지만, 토끼들은 더 높고 먼 벽을 뛰어넘어 시공간으로 까마득히 비약해 버립니다. 라일리가 지적인 연구자에서 본능적인 사냥꾼으로 변모하는 동안 토끼들은 단순히 뛰는 동물에서 차원을 넘어 신이 되고 권력이 되고 추앙받으며 서로의 위치와 태세가 전환됩니다. 이제 토끼 추종자들에게 쫓겨서 벽으로 내몰리는 건 토끼가 아니라 라일리입니다. 라일리는 원초적 사냥 본능에 심취하면서 자신이 무언가 잃어버리고 있다고 막연하게 느끼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아주 느리게 깨닫습니다.
인류 앞에 떨어진 크나큰 과제와 한 인간의 변화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토끼는 여전히 토끼입니다. 본질은 변하지 않고 영속적이며, 인간들만이 짧은 생애 동안 본질을 흐리고 실을 꼬고 복잡한 춤을 출 뿐입니다. 작가는 인류와 기술발전과 숭배와 권력에 대한 복합적인 이야기를 ‘깡총’ 단 한번의 도약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합니다.
듀나 작가님의 ‘토끼 인형’, 부커상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님의 작품 <저주토끼>, 그리고 <깡총>으로 작고 연약한 초식 동물 토끼는 한국 SF의 지적이고 사랑스럽고 무시무시한 아이콘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 같습니다.
3. 두 발로 걷는 남자 괴담/ 위래/ 우주라이크
아직도 모든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시시껄렁한 범죄자들이 현실도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층 한층 더 심오한 지옥을 열어 보입니다. 이 끝나지 않는 지옥 여행은 너무 무섭고 섬뜩하고 폐쇄적이며 탈출구는 없습니다.
작품 안에서 작가는 SF와 호러 두 가지 장르 기법을 능숙하게 사용하며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엘리베이터라는 소재를 이용해 차원과 시간의 중첩을 다루고 인간의 움직임과 먹는 식재료들로 익숙한 것들이 어떻게 낯설어지며 공포로 변하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올가미를 조여옵니다.
주인공 성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재의 나쁜 상황을 피하려고 도망치지만 희망은 매번 더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절망과 맞닥뜨립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괴생물체에 대한 공포에까지 다다르며 성윤을 영원히 깨지 못하는 공포 안에 가둡니다.
성윤의 선택, 의지, 행동과 변화 혹은 진화되는 모든 과정을 낱낱이 지켜보며 인간 정체성에 대한 부정, 불신, 혼란이 뒤엉켜 저는 존재적 공포까지 느꼈습니다. 두려움이 해소되지 않는 맺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성윤이 아주 잘 먹고 잘 살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적응하는 존재니까요.
수상작 이외에 봄처럼 화사하고 따스하게 발전된 과학기술과 진보된 인간과의 교우를 그려낸 ‘5월의 로봇’, 한국전통 환상괴물 설화에 등장하는 환수들을 적극 활용한 독특하고 매력적인 작품 ‘맥의 배를 가르면’, 사주팔자를 과학적 미래예측 기술로 구현한 ‘정생’, 성장의 문턱에서 변화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혐오를 파훼하는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세상에 나타난 첫 번째 나무 로봇일지도 모르는 피노키오 ‘착한 아이 피노’. 독립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뇌를 이식받아 자신의 몸을 일주일에 하루씩 빌려주는 ‘차인에게는’ 뛰어난 아이디어와 빼어난 악역으로 심사 내내 회자 되었습니다. 자연을 인간의 간섭없이 지켜내고자 하는 니니의 다이브 ‘개척시대의 사랑’, 아이의 성장 과정에 시간루프를 섬세하게 녹여낸 ‘매듭정리’ 이외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작품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심사 중에 자주 장르의 경계와 중첩에 대한 활발한 담론이 오갔습니다. 온라인에서 여러 작가들의 SNS에 ‘외부로 향하며 미지를 알고자 하면 SF’, ‘내부로 향하며 미지를 모르고자 하면 호러’ 라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제 장르로 ‘평행한 채 미지를 즐기고자 하면 판타지’가 아닐까 한 줄 보태봅니다.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고 전자책과 웹으로 소설을 접하는 인구가 더 많아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심사하면서 만난 작품들은 다양한 형태의 종이 책 뿐 아니라 각기 다른 구독 플랫폼, 이북 단품 판매, 출판사 플랫폼, 작가 후원 등으로 각기 다른 모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작품과 독자가 만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들이 모색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책장에 빈칸이 없는 적독가와 좁은 공간에 사는 독자들은 책의 물성과 플랫폼의 용이함에 희비를 담습니다. 저는 피부에 와 닿는 종이 책의 만듦새와 온라인 플랫폼의 디자인 형태, 직관적 UI 활용, 수익창출 구조를 눈여겨 보았는데요, 리디북스의 장르 활성화, 황금가지-브릿G의 작가 직접 시스템, 종이 책 위픽 시리즈의 만듦새가 중단편 작품들의 독립성을 돋보이게 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올해의 작품들은 미래의 현란한 기술과 과거의 다정한 SF 잔상들을 변주함과 동시에 문학성까지 골고루 갖춘 만찬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상작들의 개성이 뛰어나지만 본심에 오른 작품들 모두 훌륭했고, 예심을 하면서도 울고 웃고 가슴을 쥐어뜯고 숨을 멈추었습니다. 각자의 삶이 자리를 지키며 좋은 작품들을 써 주시는 모든 작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올립니다. 뛰어난 사유를 공유해주신 동료 심사위원님들께도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 중·단편소설부문 심사위원 손지상
SF(과학/사변소설)란 무엇인가를 주관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공정하게 먼저 밝혀야 어떻게 심사작품을 바라보았는지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낡은 기준일 지는 모르나, 일상에서 세상을 인지하고 인식하는 한계인 인식지평이 넓어지면서 경험하는 경이감(Sense of Wonder)를 SF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개인적으로 꼽는다. 어떤 것이 SF인지를 이야기 할 때, “이 소설은 판타지로 봐야 하지 않은가?”라고 다른 이에게 반론을 들을 때가 많을 만큼 범주를 상당히 넓혀서 보는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을 쓴다고 스스로 규정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사변소설이란, 사변(思辨)이라는 철학 용어를 의도적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실천이나 경험 보다 순수이성과 사고로 사물의 진상에 도달하려는 변증, 사물의 도리를 잘 생각해 따지는’ 일종의 사고실험이라 정한다. 동시에 창작 작법을 오랫동안 연구해 그 성과를 학생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경이감을 일으키기 위해 얼마나 소설 작법에 충실했는가를 중시한다. 여기서 말하는 작법(作法, manners)이란 말을 두고, ‘만드는(作) 법(法)’을 뜻한다고 오해 받는 경우가 일반적으로 많은데, 의식과 의례, 제사, 굿 등 초자연적인 현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행동절차와 행동양식을 뜻하는 말로 실제로는 영어 manners와 마찬가지로 예절을 뜻한다. 사고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가정하는 가공의 상황과 전제를 검토하는 게 때로는 사고실험 자체보다 더 본질에 더 가까운 점에 착안하여, 사고실험의 상황에 해당하는 배경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독자가 사는 현실에 의존하는 정도가 적고 자기 안에서 완결되는 독립적인 세계를 구축하려 시도했는지를 나는 중요하게 보았다. 그 이유는 과학이론이나 공학기술을 외삽하는 정도로 경이감을 줄 수 있었던 로버트 하인라인의 시대보다도 현대사회가 훨씬 기술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경이감을 일으키기 위해서 경이감이라는 초자연적 현상을 독자가 직접 체험하도록,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설정을 단순히 외삽한 일종의 ‘증강현실’이나 ‘대체현실’을 넘어서 이야기 세계와 서사 혹은 문체도 독창적으로 구축한 작품에 더 중점을 두고 심사하였다.
자기가 살아남으려고 남을 집어삼키는 암세포마냥 자기중심적이고 폭력적으로 남을 대하는 태도와 ‘소유냐 존재냐’에서 에리히 프롬이 경고한 남의 인격을 물건마냥 격하시켜 타인을 소유하려 드는 태도를 반영하는 모습도 전반적으로 자주 보이는 전체 심사작품의 공통점이다. 이러한 태도를 자각하지 못하고 도취하여 낭만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 있는 반면 이러한 태도를 형상화한 인물을 등장시켜 객관적으로 보여주거나 더 나아가 경멸하는 작품도 있었다. 때로는 경멸이 너무 강렬해 작품 전체가 납작해지는 아쉬움을 보이는 작품도 더러 있었다. 예를 들어 ‘나의 유연하고도 섬세한 외계인 애인’에서는 주인공이 식욕과 성욕을 구분하지 못하는 자칭 플레이보이 남성에 대해 경멸적인 태도를 보이는 서술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일인칭 시점 소설에서 다루기 어려운, 세계 설정 등을 전달하는 작업을 교모하게 처리하기도 한다. 또한 ‘착한 아이, 피노’에서는 욕망과 행동이 모순되어 서로 미끄러져가는 소유욕 강한 나르시스트로, 주인공 피노를 창조하고 소유하려 드는 헤페토라는 인물을 도입부와 결말부에서 능숙하게 상대화해서 보여준다. 헤페토는 자기중심적이고 고집불통인 특질 때문에 점차 사회 외곽으로 튕겨져 나가고, 자기가 창조한 인격체인 헤페토에게 욕망을 투사하고 소유하려 든다. ‘얼음을 씹다’에서는 아예 식인을 테마로 삼아,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말하는 ‘괴물’ 시어머니나 인육을 즐기는 상류층 알렉이 등장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괴물 같은 다양한 인물과 화자가 괴물 같은 평행세계를 헤매는 무간지옥 같은 이야기를 엘리베이터 괴담이라는 친숙한 소재와 엮은 우수상 ‘두발로 걷는 남자 괴담’이 인상 깊었다.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일종의 기능부전을 겪고, 해소하는 방법으로 폭력적인 방법에 의존해 관계 자체를 파괴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의 현대를 반영하는 점인지도 모른다.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등장인물이 직접 나오거나 암시하는 작품도 눈에 띤다. 예를 들어 ‘나의 유연하고도 섬세한 외계인’에서 등장하는 외계인 오움이 보이는 인지구조나 언어를 묘사하는 은유로 절대음감을 가진 자폐 스펙트럼이 직접 언급되며, ‘맥의 배를 가르면’에서도 자신을 반영한 가공의 인물로 스스로를 위장하려는 ‘너’에게 자폐 스펙트럼이 있다는 언급이 나온다. 암시하는 작품도 다수 있었다. 최근 들어 전세계적으로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인지가 높아졌음을 반영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메타버스 혹은 시간여행이나 평행세계와 같은 최근 일반 대중에게 친숙해진 공학기술이나 과학이론이 자주 등장하는 점도 두드러진다. 대부분 외삽을 위한 설정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아쉬웠던 반면, 우수상 ‘깡총’, ‘매듭정리’, ‘5월의 로봇’, 우수상 ‘두 발로 걷는 남자 괴담’과 같은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맥의 배를 가르면’과 같이 주제나 배경으로 받아들여 서사 자체에 반영한 탁월한 작품도 눈에 띤다. 작품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소위 투 트랙으로 분화되는 독특한 시간감각이 탄생하는 게 공통된다. 작품을 읽으며 물리적으로 흐르는 시간이 첫 번째 트랙이다. 서사 속에서 시간이 반복하고 변주하는 되먹임 과정을 겪는 게 두 번째 트랙이다. 구술문화 속에서 특정한 아이디어가 종교적 교리나 신화, 설화로 체계화되는 되먹임 과정과 유사한 과정을 밟는, ‘깡총’과 ‘두 발로 걷는 남자 괴담’에서 반복되는 여러 상황이나 내용은 계속해서 이본(異本)이 만들어져 가면서, 마치 앙리 베르그송이 말한 시간 개념인 지속과 비슷한 시간 감각을 주면서 독자에게 누적되어 간다. 혹은 ‘매듭정리’에서 보이는 시간관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세 작품 모두 공통적으로, ‘제논의 역설’에 등장하는 사변적으로는 넘을 수 없는 한계지점인 서사가 구축한 지속이 외부로 넘치는 일을 막는 서사 내부에 일종의 ‘장벽’이 제안한 역설의 장벽이 오히려 작품을 구축하는 경계선을 이룬다는 독특한 공통점을 보인다. ‘두발로 걷는 남자 괴담’에서는 운둔자로 살았던 어느 소설가와 닮은 이름인 ‘샐린저’라는 인물로 장벽이 등장한다는 게 독특했다.
개인적으로는 종교적 교리나 신화적 배경 혹은 도시전설이나 음모론 같은 세계를 해석하는 다양한 틀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주관적인 사변소설관의 영향 탓인지 인상에 남았다. 특히 동양철학이나 종교에서 비롯되는 관점이나 서브컬처적인 도시전설과 가공신화가 기억에 남는다. 미확인 생물체(UMA)나 음모론 등의 서브컬처에 박식한 작가의 지식 엿보이는 ‘깡총’에서는 크툴루 신화 작품 ‘틴달로스의 사냥개’처럼 차원을 넘어 나타나는 굴토끼가 등장하고 유명한 도시전설인 필라델피아 공간 도약 실험이 직접 언급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장벽’의 상반되는 전반부와 후반부 묘사에서 게임 ‘슈퍼마리오’ 시리즈의 배경과 마지막 보스 쿠파를 떠올리기도 했다. (제논의 역설에 등장하는 거북이 탓인지도 모른다.) ‘맥의 배를 가르면’에서는, 불교와 관련된 일본 설화인 ‘기요히메 전설’에서 인용한 이무기로 변하는 ‘기요’가 등장하거나 크툴루 신화에 나오는 ‘드림랜드’가 언급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주관적 독해에 머무를 위험을 무릅쓰고 언급하자면, ‘나의 섬세하고도 유연한 외계인 애인’에서는 힌두교 딴뜨리즘적 사고방식을 읽어냈다. 예를 들어 각자가 그 자리에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바다에 포섭되어 있다는 묘사가 등장하는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우주 전체를 상징하는 바다와 같은 대아(大我)에 물방울처럼 녹아있으면서도 마치 “절대음감”처럼 독자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자아(自我)의 관계를, 바다에서 죽음을 목격하고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애인’의 사고방식이나 개인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모습을 바꾸는 움이라는 존재 등은 대아가 스스로를 유출하여 변한 게이 세상 모든 존재라는 힌두교의 전변설(轉變說)을, “시인이면서 시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뼛속까지 시에 미친 사람들”이라고 지구인을 묘사하는 비유를 인식하지 못하는 작중 오움인 애인에게서는 “눈은 스스로를 보지 못한다”라는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의 가장 중요한 구절을 연상케 한다. 또한 힌두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트라인 ‘Aum’(옴)에서는 외계인의 이름인 ‘오움’을 떠올렸고, 마지막을 포함해 반복해서 등장하는 공명음 ‘휴움’에서는 끝을 뜻하는 만트라인 훔(Hum)과 ‘Human’을 떠올리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매듭정리’에서 보여주는 시간을 넘어선 주인공의 딸이 시간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설일체유부라는 부파불교의 시간관 ‘삼세실유’가 연상되거나, 딸이 마지막을 선택하는 “무한한 삶에서 무한을 지우는 방법”에서는 열반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얼음을 씹다’에서는 거꾸로, 자본주의적 약자 착취와 비인간화를 식인으로 풀어내기 위해, 불교나 힌두교 같은 이원론 세계에서 육신을 옷처럼 여기는 것과 달리 죽은 자의 일부로 육신을 여기는 유교적 사고방식이 엿보인다.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거나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의욕적 시도를 작품 주제나 핵심으로 삼는 작품이 많아 반가운 한편으로는 반면 현실을 비틀어 보기 위한 외삽의 수단으로만 삼는 작품도 많아 아쉬웠다. 그러나 현대 사회를 나름의 틀로 바라보고 다른 이와 공유하려는 적극적은 연대의 자세가 공통된다는 점에서 폐쇄적인 규칙의 조합 놀이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장르적 움직임이 엿보여 고무적이다. 이번 심사를 겪으며, 개인적으로는 큰 수술을 하기도 하며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건강 상의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나를 위해 많은 배려를 해준 주최측과 동료 심사위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장광설을 닫는다.
· 중·단편소설부문 심사위원 이서영
올해도 쟁쟁한 작품들이 많았다. 여러 작품들을 보다보니 작품들의 흐름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한동안 인공지능과 사이보그, 마인드업로딩 등의 기술적 측면을 다룬 작품이 집중적으로 나왔는데, 이제는 다루는 작품의 바운더리가 전에 비해 훨씬 넓어지고 장르적 접근도 거침없이 행해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으로서도 소설가로서도 SF 장르의 팬으로서도 행복한 일이다.
대상작으로 선정한 로희 작가의 <나의 유연하고도 섬세한 외계인 애인>은 SF에 만연한 소재로 SF의 문법을 잘 따르는 전형적인 SF다.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 등장하고, 그 만남을 통해서 세계가 통째로 변화한다. 세계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그 과정은 비유적이기보다는 인간의 평이한 세계가 실질적으로 바뀌는 도전적 과정이다. 심사위원들 중에서는 너무 주인공에게만 형편 좋게 풀리는 안온한 세계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는데, 관계를 책임있게 수행하기 위해 존재의 한계에 도전해서 존재 그 자체를 변화시키는 외계생명체의 입장에서는 안온하기는 커녕 아주 대담한 선택이다. 외계인이 자기 존재를 뛰어넘는 과정은 옥타비아 버틀러의 <특사>를 연상시키는 통합적 이미지가 강렬한데, 이야기의 흐름과 맺음이 구조와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수려하기에 무척 아름답게만 느껴지지만 관점을 조금만 뒤틀어서 보아도 공포가 될 수 있는 이종이라는 점도 아름답다.
이산화 작가의 <깡총>은 ‘벽’이라는 한정된 소재에서 끌어낼 수 있는 가장 괴상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호주의 토끼 대번성 문제가 떠오르게 하는 설정으로 SF 웨스턴 활극을 구상했다. 단편이라는 짧은 공간 안에서 장르적 재미를 중심으로 한 소설이 강력하게 재미를 주기는 어려우나, 이산화의 <깡총>은 그것을 해낸다. 유클리드 기하학에 익숙한 인간이 4차원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그 벽에 도전할 수 있는 인물들이 3차원의 한계까지 지켜볼 수 있는 명사수들이라는 설정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박진감 있게 전개된다. 시공간을 뛰어넘는다는 단순한(?) 설정이 타임 패러독스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매우 설득력있게 펼쳐진다. 강한 이빨도 날카로운 발톱도 없이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발판을 내달리는 특징 하나만으로 멸종되지 않은 사랑스러운 동물의 이야기가 두려움과도 멋진 한 쌍을 이루어냈다.
위래 작가의 <두 발로 걷는 남자 괴담>은 호러라는 장르에 충실한 작품이다. 독자로서는 정말 오랜만에 진짜 무서운 작품을 읽었다. 엘리베이터 괴담은 전형적인 호러지만, 일정한 규칙을 부여하고 그 안에 평행우주의 패러독스를 섞음으로서 상당히 심도있는 SF 호러가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주인공의 행동을 따라가던 독자가, 지금까지 쌓여왔던 인과가 무너지는 순간에 느끼는 공포의 보법이 아주 효과적으로 작동하는데, 그 보법을 SF적 요소들로 빼곡하게 구축해 냈다는 점에서 작가의 뛰어난 역량이 빛난다. SF를 쓰려고 했다기보다는 호러를 쓰려고 한 게 아니냐는 심사위원 내부의 의견도 있었으나, 긴 시간 논의한 결과 SF를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장르적 문법을 어떻게 따르느냐의 문제로 접근했을 때 이야기를 쌓아나가는 방식에 있어 이 작품은 훌륭한 SF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외 아쉽게 본심에서 탈락한 작품들도 있다. 남유하 작가의 <얼음을 씹다>는 디스토피아적 설정을 뚝심있게 끝까지 밀어붙인 수작이다. 잔혹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도전해 보지만 쉽게 다루기 어려운 소재를 비극적이고도 로맨틱하게 풀어냈다. 특히, 마지막 장면까지 나아간 작가의 용기가 대단하다. 남세오 작가의 <나의 차인에게>는 바디 체인지라는 뻔할 수 있는 설정에 SF의 단단한 골격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SF어워드는 못 주지만, 2024년 내가 만난 최악의 빌런상은 웬만한 작품이 더 나오지 않는 이상 이 소설에 나오는 상사에게 수여하고 싶다. 마지막까지 경합했던 작품 중에는 배미주 작가의 <개척시대의 사랑>과 이경희 작가의 <매듭정리>도 있었다. <개척시대의 사랑>은 상당히 볼륨이 있는 설정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SF적 미덕에 충실한 작품이었다. 이경희 작가의 <매듭정리>는 SF가 끝까지 달려나갔을 때 종교적인 세계관과 맞부딪히는 지점을 어디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멋지게 갈무리한 수작이었다.
수상한 이들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 축하를 보낸다. 부디 더 멋진 작품으로 글씨 속 세상을 찬란하게 만들어 주시길!
· 중·단편소설부문 심사위원 임태운
과연 SF 단편소설이 독자와의 게임에서 승부수로 내걸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창작자로서의 화두이기도 하지만 심사자로서 이렇게 치열한 심사과정을 겪을 때마다 들곤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국내 SF 단편이 빅뱅처럼 양적 팽창을 이루는 시기에 이제는 소재 자체가 가진 신선함과 중력만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시대는 끝나버린 게 아닌가 하는 확신이 듭니다. 얼마나 낯선 세계를 갖고 오느냐를 넘어서, 그 낯선 세계를 구축하는 완성도, 아름다운 미장센, 캐릭터의 핍진성 등 좋은 한국 SF를 선별하는 기준 또한 입체적이고 다채로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올해 어워드 였습니다.
그래서 치열한 본심을 거쳐 수상작을 경합했던 작품들은 그 모든 면모에서 골고루 뛰어나면서도, 특출난 하나의 무기가 유독 강력했던 작품들이어서 모두가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습니다.
<나의 유연하고도 섬세한 외계인 애인>은 외계인 애인과 연애하는 화자의 이야기로서 작은 사랑 이야기가 세계관을 뒤흔드는 수준으로까지 넓어지는 과정을 무척 세련된 필치로 끝까지 그려낸 수작입니다. 수상작 3편을 선정하는 과정이 지난하고도 고통스러웠으나 의외로 대상을 가려내는 과정은 무척 짧았습니다. 그만큼 다섯 명의 심사위원 전원이 이 작품의 비범함에 대해 한결 같은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영화 잡지 수록작이라는 접근성의 약점이 있었는데, 더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을 알도록 내가 부르짖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게 하는 소설입니다.
<깡총>은 SF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벽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포스트 아포칼립스 웨스턴물로 다룬 개성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소설의 본질이 그럴듯한 뻥이라는 측면을 본다면 정말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뻥이요, 독자를 유쾌하게 만드는 지점과 섬뜩하게 만드는 지점을 모두 갖춘 요염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껏 단편, 장편을 가리지 않고 씬에서 맹활약 중인 작가의 내공이 완연히 무르익었고, 또 하나의 새 지평으로 넘어가는 중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리고 작품 외적으로 한국 SF라는 영토에 언제나 토끼는 늘 의미심장한 비중을 갖고 있어왔다는 점이 즐겁기도 했습니다.
<두 발로 걷는 남자 괴담>은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가장 오래 토론되었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이 작품의 괴물 같은 흡입력은 모두가 동의했으나 SF 적인 면모 뿐 아니라, 이세계 빙의물의 안티테제같은 면모나 크툴루 세계관의 은근한 오마주 등 작품 내에서의 변주 테크닉이 현란해서 오랜 이야기를 거쳐야 했습니다. 과연 이 작품이 SF가 맞느냐, 아니냐도 의견이 갈렸어요. 그럼에도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이 수상 소식을 접한 독자들이 새롭게 이 작품을 만난다면 심사위원들이 겪어야 했던 즐거운 통찰과 난감한 지적 유희를 체험하실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정도로 도발적이며 패기 넘치는 작품입니다.
수상작 세 작품의 공통점이라 한다면 테마도, 소재도, 엔딩의 처리 방식도 지극히 다르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읽는 독자로 하여금 조금만 더 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일절 들지 않는 면모가 있습니다. 그것이 귀여운 개운함이든, 압도적인 절망감이든 상관없이요. 그리고 저는 그 지점들이 좋은 단편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의 손에서 좀처럼 놓기 힘들었던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매듭정리>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행우주라는 소재와 육아를 결합시켜 극한의 플롯 완성도와 절절한 감정선까지 모두 갖춘 세련된 작품이었습니다. 작가가 본디 장편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감탄이 나왔습니다. 너무 잘쓴 게 단점인 건가? 싶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나의 차인에게>는 예기치 못하게 일주일의 일부분을 생면부지의 타인과 공유하게 된 여성 화자의 이야기로 심사위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낸 낭중지추 같은 작품입니다. 자세한 줄거리는 스포가 되므로 꺼낼 수 없으나 서스펜스와 몰입력은 모든 응모작을 통틀어 압도적이었다는 말을 남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거꾸로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는 앞선 작품과 반대로 두 개의 몸이 하나로 합쳐져야만 하는 성인식을 다룬 작품입니다. 타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는 SF의 오랜 화두를 영 어덜트 성장물의 감성으로 엮어낸 이야기였고 잘 쓰여진 소녀 이야기만이 줄 수 있는 서늘함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단편 부문에서 존재감을 발휘한 만큼 앞으로도 단골로 활약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맥의 배를 가르면> 역시 굉장한 에너지를 갖춘 거울세계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이 수상작이 되지 못한 유일한 이유는 작가 본인의 또 다른 작품에게 아쉬운 팀킬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단편의 심사평을 마무리하는 멘트는 늘 비슷한 것 같습니다. 단편소설 부문은 정말이지 별들의 전쟁이고, 괴물들의 난투극이며, 아주 사소한 운빨의 차이로 수상작이 갈린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치열한 전장입니다. 그럼에도 순수한 독자로 돌아와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작품들이 너무나 많아서 행복한 여름이었습니다.
koreasf.awar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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