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라비] 아밀
작가소개
[대표작]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2020)/ 로드킬(2018)
[수상] 2018년 SF 어워드 중단편소설부문 우수상/ 2008년 고대 문화상/ 2002년 제10회 대산 청소년문학상 동상
작품소개
열대 지역의 한 소수 민족 사회를 배경으로, 주술사 가문의 마지막 후예로 태어난 소녀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현대 문명의 위력 앞에 신성도 마법도 사라져가는 시대에, 옛 여신의 이름을 따 ‘라비’라고 불리우는 주인공 소녀는 주술사로 태어난 운명을 저주하며 자기 부족의 전통을 불신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지의 토착 문화와 생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찾아오면서 라비의 삶은 격변을 맞습니다.
우수상 [잃어버린 삼각김밥을 찾아서] 이산화
작가소개
[대표작] 밀수: 리스트 컨선(2020)/ 증명된 사실(2019)/ 오류가 발생했습니다(2018)
[수상] 2018년 SF어워드 중단편소설부문 우수상
작품소개
온갖 기이하고 초자연적인 사건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인 '기이현상청' 소속의 공무원 우모린은, 어느 날 자신이 감사를 담당한 업체 직원인 변신 파충류 인간 마비희으로부터 다급한 제보를 받는다. 사내에서 개발 중이던 위험한 신제품 삼각김밥이 실수로 서울 시내 편의점에 유출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하필 모린과 비희가 몰래 사귀는 중이었으며, 제보 내용을 직장에 알렸다간 둘 사이의 관계가 들통 나 민관유착 문제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모린은 직장에 휴가를 하루 내고서 사태를 직접-정확히는 서울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기묘한 옛 애인들의 힘을 빌려-해결하려 하는데…….
우수상 [유도선] 이서영
작가소개
[대표작] 바리케이드와 개구멍(2020)/ 악어의 맛(2020)/ 센서티브(2017)/ 유미의 연인(2017)/ 노병들(2013)
작품소개
얼마 지나지 않은 근미래, 평생을 한 번도 선 밖으로 벗어난 적 없이 살아온 주인공 이정직은, 너무나 억울하게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인공지능이 최종 결정을 하는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해 줄 방법은 하나도 없는 상황, 이정직은 마지막 희망 한 줄기를 붙들고 가이드라인 뒤편의 “유령노동자”들에게 접근한다.
우수상 [고래고래 통신] 전삼혜
작가소개
[대표작] 위치스 딜리버리(2020)/ 소년소녀 진화론(2015)/ 날짜변경선(2011)
[수상] 2012년 제 8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 당선
작품소개
방학 중 발을 다쳐 봉사시간을 깜박한 강솔은 여성장애학생 학력경진대회에 도우미 봉사를 가게 된다. 거기서 만난 건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시각장애자 원이다. 이원은 반향정위를 이용한 특수 고글을 쓰고 강솔의 금간 발뼈를 들여다보면서도 자신을 욕하는 사람이 어느 쪽에 있는지 강솔이 알려 줘야 대거리를 할 수 있는 묘한 존재다. 정말 이 애는 외계인일까, 아니면 거짓말쟁이일까.
단편소설 부문 심사평
단편소설 부문 심사위원장
김효진
올해 후보작들을 통해서는 미래사회를 다각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오늘을 살아가기도 바쁜 현대인들에게 내일을, 그리고 무엇보다 바쁘게 살아가기에 생각할 여유 없이 잠시 뒤로 미뤄두었던 개인적, 사회적 가치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기회를 준 작품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다양한 웹진, 잡지와 문예지, 그리고 앤솔러지를 통해 다채롭게 소개되어 독자들도 다양한 선택권을 가지고 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각 작가의 색채가 드러난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러한 작품들 속에서 독자들은 보다 넓고 다양해진 선택권을 가지게 되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장하며 많아진 작품들 속에서 독자들은 작가의 색과 자신의 취향을 맞춰 가는 즐거움을 이미 만끽하고 있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고 그러한 과정을 즐기고 있는 독자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 여겨진다. 올해 후보작들 역시 작가와 독자의 색을 맞춰나가는 재미가 클 것으로 생각된다.
라비-아밀
라비는 현대사회에서 소수부족의 의미, 소수부족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고 보호한다는 미명아래 소수부족들이 현대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경험하게 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구를 위한 전통과 문화인지를 되물어보게 된다. 소수부족이라는 이유로 격리되어 그들의 삶이 박제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의 볼거리로 전락한 것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보호인지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냐고 묻는 것 같다. 인디언 보호구역을 연상케 하지만 미국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정작 소수부족들이 스스로 지킨다고 여기는 전통과 문화라는 것도 외부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건 아닌지, 그리고 그런 소수부족의 문화 자체를 이해하기보다 각기 분화된 과학 지식인들이 그들만의 잣대로 재단하고 이해하려는 모습에서 현대사회에서 과학적 시선과 태도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끔 하는 작품이다. 독특하게도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인간의 목소리와 시선이 아닌 자주콩나무의 시선에서 관찰하고 이야기해 주고 있다. 인간이기에 놓치고 지나가는 것들을 자주콩나무가 상세히 그러나 편견 없이 들려주고 있다. 인간들은 인간 중심으로 세상을 재단하지만 세상은 그 이상의 이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세상(자연/우주)은 인간이 중심이 아니며 인간은 자연/우주 안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주술사의 딸인 라비를 통해 그리고 죽은 후 무덤에서 자라나는 열매들이 열리는 것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관심을 가지고 안 가지고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열매들이 열리는 것으로 인간과 자연/우주에 대해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고래고래 통신-전삼혜
비장애인 학생과 외계인이라 칭하는 장애인 학생의 수련회 만남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 현실 속 장애인에 대한 시각과 생각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다. 수련회를 소개하는 글에서 장애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장애-비장애 학생의 합동 연구 과제를 도모하는 경연으로 비장애 학생에게는 봉사 정신을, 장애 학생에게는 도전정신을 함양하는 학력경진대회라고 설명된다. ‘장애’는 ‘비장애’와 동등하지 않으며 ‘장애’를 가진 사람은 도전정신을 길러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도전정신과 장애는 아무런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성인의 눈이 아닌 강솔이라는 학생을 통해 시각 장애를 가진 이원을 알아가는 과정을 역시 우리가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알 수 있다.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도와주고 보살펴 줘야 하며 (장애를 가진 사람이 요청한 도움만이 아닌) 장애 정도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 존재가 우리 사회에서의 장애인인 것이다. 요청하지도 않은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도움이 오히려 폭력이 될 수 있으며 그러한 행위 자체는 무례한 행동으로 봐도 무방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려서부터 장애 친구와 함께 학교생활을 하고 이웃에서도 쉽게 어울려 놀며 지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다. 난감해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지,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도움을 줄지를 먼저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미묘한 지점을 전삼혜 작가는 강솔과 이원, 이 두 학생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외계인이라 주장하는 이원은 우리 사회에서 외계인만큼이나 사회에서 격리되고 동떨어진 장애인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왜 외계인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다소 무거운 주제를 강솔과 이원을 통해 무겁지만은 않게 고민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유도선-이서영
증강 감각 경험을 통해 피해자의 경험을 가해자가 체험해 본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법으로 또는 매뉴얼로 행동을 규정한다고 해서 다른 이에 대한 배려와 존중까지도 규정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이 작품에서는 당사자성과 넓게는 인간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고래고래 통신에서 장애-비장애와는 또 다른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주인공을 통해 본인은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는 사건에 대해, 본인이 모르고 하는 행동으로 인해 피해자가 생겼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걸까? 모르고 했기 때문에 괜찮다고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모르고 했지만 피해자가 생겼기 때문에 잘못한 것일까? 작품을 읽으며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뜨겁게 이슈가 되고 있는 미투 운동이 떠올랐다. 모르고 한 행동이라고 해서 용서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이 작품 속 설정에서처럼 증강 감각 경험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좀 더 이해하기가 쉬울까? 접근하기 어려운 사회문제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과 고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잃어버린 삼각김밥을 찾아서-이산화
미래 식량난에 대한 고민이 엉뚱하게 발현된 작품으로 맨 인 블랙의 한국 SF 버전이라고 하면 어떨까? 맨 인 블랙에서는 외계인들이 등장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는 인간과 인간 이외의 존재 (귀신, 정령, 흡혈 괴물, 설명 불가능한 현상)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심지어 인간이 그런 존재들과 소통이 가능한 사회라는 작가의 상상력이 기발하다. 기이현상청이라는 곳이 존재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주인공인 이 작품에서는 종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와 공무원에 대한 편견들, 그리고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에 대한 편견들을 유쾌하게 무너뜨리고 있어 작가의 위트가 돋보인다. 현재로서도 막연히 고민하는 미래 식량에 대한 고민을 파충류 인간이 주도하고 있고 파충류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유추해 봄에 있어 한 사회에서 다른 종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반려동물, 반려 식물 등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종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이번에 수상한 작품들은 어느 면에서는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 것처럼 이어지는 지점들이 존재한다. 수상한 작품들 모두 독특하고 재미있는 SF 세계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수상한 작품들뿐 아니라 본심에 오른 열 편의 작품들 역시 큰 맥락에서는 수상작품들과 같이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거울을 만들어주신 SF 작가분들께 감사드리고 수상하신 작가분들 모두 축하드린다.
후보작 중에는 바이러스뿐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 요소로 변화한 미래사회가 그려지기도 했다. 특히 그간 우리 사회가 강조해 왔던 개발과 효율을 통해 발전해 온 사회 속에서 개발과 효율의 미명아래 알려지지 않았던 존재와 가치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았다. 지금 우리가 겪어내고 있는 인권문제, 환경문제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독자들이 SF 작품들을 통해 다시 접하고 함께 토론하며 고민해 볼 수 있길 바란다. SF 작품을 통해서 지금 현재 우리를, 우리 사회를 한 번쯤 돌아보기도 하지만 지쳐있는 우리가 위로를 받기도 하며 미쳐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에 대해서 생각을 확장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현재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19 (COVID-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 등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람을 만나기 힘들고 외출을 자제해야 하는 요즘, 나와 맞는 작가는 누구일지 궁금해하며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나다 보면 작품 안에서 집보다 훨씬 큰 우주를 만나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단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구한나리
새로 심사위원을 맡으면서 걱정했던 것 중의 하나는,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다른 분들이 좋아하는 작품과 전혀 다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이었다. SF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우리나라 소설은 놓치지 않으려고 한지 꽤 오래되었지만 요 몇 년간은 계속 내가 미처 읽지 못한 책이 있겠다는 불안감이 들 정도로 출판되는 SF의 양이 늘었다. 새로운 작가들도 많이 늘었고 이제 한 해를 결산하는 ‘전통적인’ 문학상에서 SF 작품을 보는 것도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다. 거울 독자 단편 심사단에서 몇 년간 떠나 있다가 돌아왔더니 그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SF 작품의 비중이 높아진 것을 느꼈을 때처럼 이제 SF는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장르가 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시점이 되지 않았을까. 이런 시기에 심사위원을 제안받고는 작년에도 심사위원을 맡으셨던 두 분과 내가 보는 눈이 너무 다를까 봐 걱정했던 것은, 그동안 읽었던 것 중에 내 기대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의 비중이 그리 작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러나 요 몇 년간 SF 어워드의 수상작들이 하나도 빼놓을 작품이 없이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글들이었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심사위원을 맡기로 했다. 작년에도 작품 수가 많이 늘었다고 하는 심사평을 보았는데 올해도 작품 목록을 받으면서 작품이 작년보다 많다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많은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기쁘고 행복했다는 말부터 먼저 해 둔다.
예심을 맡은 작품 외에도 온라인에 게재된 작품과 사놓고는 아직 읽지 못했던 작품, 오래전에 읽었으나 기억이 확실하지 않은 작품들을 다시 읽었다. 단편집이 많이 출판되었고 작가의 개인 단편집도 활발하게 출판된 한해였기 때문에 같은 작가의 여러 작품을 보게 되는 기회가 많았는데, 작가의 개성이 잘 살아난 작품에 먼저 눈이 갔다. 한 소재를 묶어놓은 단편선이 작가의 개성이 더 강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개인작품집에서는 작가의 경향성이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인상적인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심사를 계기로 SF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들을 알 수 있었던 것도 뜻깊은 경험이었다. 예심에서 다른 심사위원들이 읽어보십사 권하는 작품을 추려낸 후에 다른 심사위원들이 고른 예심작을 보고, 내가 예심을 맡았다면 꼭 추려내겠다 싶었던 작품들이 빠짐없이 올라와 있어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작품의 취향은 다를 수 있지만 ‘좋은’ 작품이라고 느끼는 것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안 뒤에 본심 후보작들을 추리는 마음이 훨씬 가벼워질 수 있었다. 열두 편을 고르는 과정이 쉽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상당수의 작품에 대해 의견이 일치해서, 본심작 리스트를 정리하는 데에는 예상보다는 시간이 많이 들지 않았다. 당선작과 우수작을 고르는 것은 수월했다고 말할 수 없지만, 본심작들이 모두 좋은 작품들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고래고래 통신(전삼혜)’은 수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먼저 본선 진출작으로 뽑은 작품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장르에 대해 거리감을 덜 느끼기 쉽지만, 이 작품은 SF라는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조차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다. 스무 시간의 봉사시간을 채워야만 하는 고등학생 주인공과 봉사활동 파트너인 장애인 학생과의 이야기는 딱 그 나이 때 청소년의 감정을 그대로 따라가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겪게 되는 갈등과 해소를 그려낸다. 후반부 이후의 반전 아닌 반전은 즐겁고 행복하다. 다른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낯선 것과의 화해를 그려내는 시선은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느껴졌던 간질간질한 따뜻함을 준다. 청소년 SF의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작가의 신작을 만나면서 이것이 작가가 지금까지 쓴 것 중에 최고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다음 작품도 그러리라고 믿는다.
‘유도선(이서영)’은 평범하게 다른 사람처럼 나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한 번의 실수를 수습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과거의 한 경험을 불러온다. 1인칭 시점에서 선하지 않은 인물을 화자로 하는 작품에서는 그가 저지른 잘못을 화자가 그리는 것과 독자가 느끼는 것 사이의 괴리감이 사건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데, 이 작품은 화자가 저지른 ‘진짜’ 잘못을 후반부까지 알려주지 않음으로써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실제 세상은 언제나 악행을 저지른 이들이 응당 그에 맞는 죗값을 치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믿고 싶지 않은가. 피해자들이 슬프고 아팠던 만큼 가해자가 언젠가는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그것이 신의 손이든 빅데이터에 의한 첨단과학의 힘에 의한 것이든.
‘잃어버린 삼각김밥을 찾아서(이산화)’는 작가의 개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참 여운을 느낄 수 있을 작품이었다. 이종(二種)간의 사랑 이야기를 이렇게 그려내다니. 이렇게 귀여운 바람둥이 남자가 나오다니 반칙이 아닌가! 삼각김밥이라는 소재를 풀어내는 방법도 귀엽지만 천연덕스럽게 등장하는 다양한 이 종족이나 집단 설정을 보고 있으면 이 세계관의 다른 작품을 연작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작품 외에도 작가의 개인 단편집의 작품들도 매우 즐거웠는데, 이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종 간의 관계를 그리면서 전혀 다른 분위기로 여운을 남기는 ‘희박한 환각’도 함께 읽으면 작가의 다양한 면모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라비(아밀)’은 본선작을 선정할 때부터 수상작으로 마음에 둔 작품이었다. 심사위원을 맡기 전에도 읽은 작품이었고 심사를 맡으면서 다시 작품을 숙독하게 되었는데, 오래된 옛 문명과 신화와 전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신비롭게 풀어낸 작품을 만나긴 쉽지 않다. 전통이 현대적인 문명을 만나 어떻게 소외되고, 때로는 대상화되며 경외시되는 과정을 서술하는 화자가 다름 아닌 ‘자주콩’ 이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주술사의 후예로서 길러지지만 이방인의 피를 받았기 때문에 불완전하다는 것, 사고로 계승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는 것 등 주인공이 완전한 주술사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이야기하지만 주인공이 제대로 그 자리를 계승할 수 없는 것은 주술사의 전통의 세계가 외부와의 만남으로 변화하기 때문이고 선대의 주술사 역시 이미 주술사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시대에서 계승은 본질적으로 완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불완전한 후계의 이야기인 동시에 한 세계가 무너지는 이야기이며 마지막 결말에서 보여주듯이 과거의 세계가 다른 형태로 이어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말을 덮고 나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현대인이 어떤 것을 무너뜨리고 있는지, 현대 문명의 승리로 보이는 결과일지라도 언젠가 문명이 복수를 당할 것이라는 섬뜩한 예언을 본 것 같은 느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오래된 옛 부족의 문화가 사라지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사라지게 한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사라지게 될 수 있다는 섬뜩한 한기를 느끼게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조선 시대 비운의 시인 허난설헌이 지금 이 시대에 다시 태어났다면, 조선 시대처럼 가부장제와 남존여비에 시달려 짧은 생을 비극적으로 마치지 않고 재능을 충분히 펼치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늘을 바라보며 신선의 수레와 선녀의 춤을 상상하며 허난설헌이 지은 시와 같은 제목을 가진 소설 ‘망선요(김인정)’은 지금 이 시대 또한 허난설헌이 살아가기에 좋은 곳이 아니라는 걸 모녀의 대화를 통해 그려낸다. 학대받으며 자신이 선녀라고 믿는 초희는 하늘과 선녀의 꿈을 꾸지만 현실은 잔혹하고 그 삶을 안타까워하는 모녀 역시 그 삶을 구해줄 수 없다. 그들의 원망이 향해야 할 곳은 서로가 아니라 그 너머의 구조 혹은 세계여야 할 것이고 그들의 삶 역시 어떤 면에서는 허난설헌의 삶을 닮아 처연하다. 작품을 덮고 나니 초희가 이 삶을 견디고 이겨내기를 감히 기대하지조차 못하고, 다른 삶이 초희에게 다시 주어지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시간의 벽감(구병모)’은 지금 이 시대, 전염병과 환경문제가 동시에 인류에게 닥쳐온 시대에 읽어야 할 소설이다. 우리가 무언가 하지 않으면 다가올 미래는 암울할 뿐이라고, 다시 만나지 못할 시대를 한없이 그리워하는 것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듯. SF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바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무거운 목소리로 경고하기도 한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하는 많은 작품이 현재를 바꾸기 위해서 혹은 현재를 바꾸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그려내는데 이 작품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꿈같은 바깥세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삭막한 겨울 풍경이 미래가 되지 않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을 그린다. 수많은 낙관론에 기대어 인간은 괜찮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한 번쯤 멈추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작품이 다른 식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히기를 기대한다.
‘우주인 조안(김효인)’은 실제 영상화되기도 했지만 읽는 내내 시각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미세먼지 앤솔러지 한 권 안에 미세먼지 문제를 작가들이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는데 이 작품은 환경문제가 또 다른 권력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예리하게 잡아냈다. 기득권층으로 보이는 C는 삶을 즐기지 못하고 하층민으로 일찍 생을 마무리해야만 하는 N이 삶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면은 생각해 볼 부분이 있겠지만, 짧은 생으로 미래를 기대할 수 없음에도 대학을 다니고 미래를 꿈꾸는 조안의 삶이나 주인공과 조안과의 교감은 낙관이 주는 행복감이 있다.
SF의 범주를 넓게 보는 사람으로서 올해 읽었던 후보작품들은 SF의 범주를, 독자층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는 작품이 특히 많아 반가웠다. 그간 몰랐던 작가들을 알게 되고 앞으로 읽을 작품들이 훨씬 더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두근거린다. 이번 수상작품들이 독자들에게도 그렇게 다가가길 바란다. 그럴 것이라 믿는다.
단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이지연
지난해에 이어 심사위원을 맡았다. 일정상 대상 기간이 짧았음에도 후보가 된 작품 수가 충분히 많았고 질도 변함없이 높았다. 소재나 주제뿐 아니라 작가의 스타일도 다양하게 병존하는 한국 SF 생태계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장르의 해체와 변용은 장르의 정체성을 해치기보다는 지평을 넓힌다. 후보작들 가운데는 장르의 무언가를 갖다 썼다 버렸다 하는 날렵한 모색으로만이 아니라 모호한 경계 지대에 발을 꾹 눌러 딛는 식으로 SF와 관계 맺는 작품들도 여럿 있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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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 아밀
편집자로서, 작품을 읽을 때 여러 가지를 재어보는 습관이 들어 있다.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독자가 회의를 하면서 읽어가는 셈이다. 그런데 가끔 그런 여러 고려점들을 잊게 만드는 힘을 작품이 가질 때가 있다. [라비]가 그런 작품이었다. 내 내면의 독자들은 초반에는 이런저런 기대며 평가를 주고받고 있다가 어느 지점부터는 더 이상 말이 없이 전원 이야기의 스크린만을 주시했다. 어떤 점이 이 작품을 그렇게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답은 ‘모든 것의 조합’이겠지만, 그중에서도 두드러진 열광은 아마도 전지적 관찰자에 가까울 이 작품의 화자에서 나왔다. 작품 전개와 함께 화자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가 1인칭으로 ‘나’뿐만 아니라 ‘우리’도 사용하여 서술하는 대목에서 전율을 느꼈다. 신화적인 결말은 다소 예스럽지만, 이 화자에게 이야기 전달을 시키기 위한 대가라면 얼마든지 치를 만하다. 결말을 제외하고는 하드보일드한 관점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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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래 통신] 전삼혜
어린이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했고 어린이 청소년 독자를 배제하지 않는 소설은 일정한 제약이 있으며 그 탓에 폐단이 생기기도 한다. 모처럼 제약이 폐단이 되지 않은 작품을 접했다. 유소년을 얕잡지 않으면서 정직한 작품이다. 약자성은 수건돌리기처럼 집단 안의 누군가에게 꼭 돌아간다. 그것을 다루는 방법을 여러 층위에서 고찰하게 한다.
[유도선] 이서영
악의를 품은 자와 악의 없이 악행을 한 자, 누가 벌을 받아야 하는가. 가해자에 감정 이입해서 도래한 복수를 맛보는 감각은 현실에서라면 쾌감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겠지만 픽션에서는 가능하다. 픽션에서만 가능한 것을 픽션에서 해내 보이는 성취가 가장 두드러졌다.
[잃어버린 삼각김밥을 찾아서] 이산화
도시 배경의 현대판 신이담이라는 그릇에 담겨 있는 것은 다른 라이프폼에 대한 무한긍정. 심지어 살아 있지 않은 대상에게도! SF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발랄한 형태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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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멈춘다!]는 스페이스 오페라의 탈을 쓰고, 노동쟁의 이야기를, 삼국지같이 풀어가는 기작이다. 노동쟁의 판 [은하영웅전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코멘트를 하다 보니 중편이 아닌 장편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대본 밖에서]는 K드라마와 출입구가 여럿인 다중세계라는 아이디어의 조합이 맛있었다. 피카추 돈가스만큼이나 정크 푸드스러운데, 맛있는 것은 맛있는 것이다. [시금치 소테]는 치료적인 기억 조작 기술 ‘옵션’이 존재하는 사회를 배경으로 자살생존자인 주인공과 그를 돕기 위해 파견된, 이미 옵션을 받은 보호사의 만남을 통해 차근차근 이야기를 쌓아 나간다. 튼튼한 이야기만이 줄 수 있는 드문 감동이 있다. [망선요]는 서술문을 배제하고 대화 속에 대화가 인용되며 조금씩 정보를 전달하는 형식미가 두드러지는 가운데 어머니, 딸, 딸이 봉사 나가 돌보는 어린이 초희, 그리고 언뜻 과거의 일화로 이름이 언급되는 역사 인물 허난설헌이라는 여러 명 인물의 시간선이 교란되고 겹치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모놀로그 드라마를 보는 듯한 박진감을 가지고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시간의 벽감]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유토피아를 등에 업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디스토피아 소설은 아니라는 점이 좋았다. 한 장의 이미지를 섬세하게 세공해 내는 작가의 힘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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