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숲> 고호관
작가 소개 [동아사이언스]에서 과학기자로 일했고, 현재는 SF와 과학 분야의 글을 쓰고 번역을 하고 있다. 2015년 「하늘은 무섭지 않아」로 제2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2019년 「아직은 끝이 아니야」로 제6회 한국SF어워드 중단편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작품 소개 전쟁을 피해 도망친 탈영병 몇 명이 잠시 보급을 위해 들른 행성에서 독특한 생태계를 마주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그토록 싫어하던 상황에 다시 말려든다. 수상소감 으레 그렇겠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결과라 당황스러우면서도 기쁩니다. 비록 부지런하게 활동은 못하고 있지만, 제가 하는 일이 한국 SF의 다양성과 질을 높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앞으로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
우수상 <이토록 단일한 마음> 이서영
작가 소개 이서영은 환상문학웹진 《거울》에 단편 <종의 기원>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개인 저서로는 《악어의 맛》,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유미의 연인》, 앤솔러지로 《이웃집 슈퍼히어로》, 《다행히 졸업》 등이 있다. 대표작으로는 제8회 한국SF어워드 중단편부문 수상작 <지신사의 훈김>을 비롯해 <유도선> <노병들>, <센서티브> 등이 있다. 근미래에 망해버린 환경과 세상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 타인과 타인이 형성하는 관계망의 유일성에 대해 관심이 많다. 작품 소개 인사팀 직원 이라희는 뇌에 심은 AI칩 단일과 함께 플랫폼 노동을 관리하는 업무를 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노조의 시위로 AI칩이 부서지게 된 이라희는 자신의 일상이 AI칩과 함께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AI칩을 부순 노조와 손을 잡고 산재인정 및 AI칩 복구를 요구하게 된다. 수상소감 세 번째 수상을 하게 되어 무척 기쁘고 영광입니다. 최근 자기소개를 요청받으면 ‘기술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그 기술을 역으로 쥐고 싸울 수 있는지에 관심이 많다’고 말해 왔습니다. 앞부분도 중요하지만, 뒷부분이 저에게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기술은 일자리를 잃게 한다고 하고, 노동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하지만 누가 어떤 기술을 떠올리느냐에 따라 기술은 다르게 적용됩니다. 그 기술을 받아들이는 세계는 언제나 그 바깥에 원하지 않았던 ‘부수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이토록 단일한 마음은 그 부수효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수효과 속에서 인간은 살아가고, 소설이 다뤄야 할 영역은 그 바깥에 있는 개인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지켜보는 일일 것입니다. 동시에 이 소설은 아이작 아시모프에 대한 약간의 팬레터기도 합니다. ‘R.다닐 올리버’가 인류를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면, 저의 단일은 일라이저가 아닌 ‘이라희’에게 사랑받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로봇 시리즈는 큰 이야기지만, 결국 다닐과 일라이저의 이야기는 작은 이야기입니다. 아무래도 인간이라 저는 저와 제 세계가 행복했으면 합니다. |
우수상 <인간의 대리인> 신조하
작가 소개 앤솔로지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인간의 대리인’ 수록(네오픽션, 2022) 작품 소개 무뇌아로 태어나 합성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인공 뇌’를 이식받아 자란 김변호사. 그는 서초동의 한 이름 없는 법률 사무실에 근무하면서 소위 ‘인기 없는’ 사건들을 맡아서 처리한다. 이번 사건은 거대 제약회사를 상대로 하는 사건. 제약회사가 발 명한 치매 치료제의 부작용으로 많은 이들이 정상적인 인지능력을 상실한 채 ‘좀비’화 되어 살아가는 와중에 김변호사는 이들의 가족들을 대리하여 법원에 좀비가 된 이들을 죽여달라고 청구해야 한다. 수상소감 ‘인간이 무엇인가’는 이제는 낡아버린 포스트모더니즘 주제라고 할 수 있지만, 이 런 낡은 주제를 여전히 정말 좋아해서 썼습니다. 수상까지 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 다. 지금 읽어보면 헛웃음 나오는 제 첫 소설도 희망이 있다며 격려해 주신 여경 선생 님과 영혼의 글쓰기 동료 주영 언니와 영화 동생이 없었더라면 글을 쓸 용기를 내 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늘 응원과 지지를 보내 준 존경하는 육아 동지 남편과 인간의 대리인이 좋은 작품 이라고 응원해 주신 네오픽션 편집자님께 감사드립니다. |
중·단편 부문 심사평
중·단편 부문 심사위원장
이수현
지난 몇 년간, 한국SF어워드의 심사대상작품 목록이 발표될 때마다 한국 SF계가 얼마나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었다. 한 해에 발표되는 작품수가 해마다 착실하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심사기간 조정을 위해 12개월이 아니라 10개월간의 발표작을 대상으로 한 2022어워드에서도 여전히 중단편 부문은 버겁도록 많은 작품을 소화해야 했다. 그리고 심사를 위해 많은 작품을 읽다보면 작품의 양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음이 보인다. 새로운 작가는 계속 나타나고, 다루는 소재는 더 다양해졌으며, 고르게 재미있는 작품을 싣는 지면도 늘고 있다. 단지 스포트라이트가 고루 비춰지지 않을 뿐이다.
물론 이를 확인하는 기쁨은 곧 심사의 고통이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좋은 작품 중에서 단 세 작품을 뽑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작품의 재미, 완성도, 의미를 보는 것이야 기본이고 그것만으로는 결론을 내기에 부족하여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작품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재단해야만 했다. 어떤 근거를 대며 작품을 골라낼 때마다 몇 번이나 과연 이게 옳은가를 자문했으나, 그럼에도 결론을 내려면 작품 외적인 기준까지 끌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마지막에 남은 작품들은 사실상 차이가 없이 훌륭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치열한 심사 과정을 돌아보면 몇 년간 확장을 거듭한 이 시점에서 다시 SF로만 할 수 있는 이야기, SF다운 즐거움을 돌아보는 것이 올해 심사의 기조가 된 것 같다. 물론 이는 장르의 협의로 돌아가고자 함이 아니라 이제 SF라는 장르로 할 수 있는 이야기에 한계는 없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판단에서 나온 기준이다. 당연하게도, 또는 곤란하게도, 최종 논의에 오른 작품은 모두 이 기준을 충족했다.
<숲(고호관)>은 특히 읽는 재미가 큰 작품으로, 고전 SF를 연상시키면서도 지금 시대에 맞는 이야기다. 시야가 넓고, 멀고 낯선 세계를 그리면서도 인간의 전쟁이나 숲의 생태에 대해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전복성을 갖추고 있다. 처음 읽을 때는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을 그리는 모습이 다소 전형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으나 식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새로우며, 대상을 의인화하거나 인간 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인간과 완전히 다른 문명,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상상하는 작품을 좋아하다보니 더 반갑기도 했는데, 같은 취향의 독자라면 본심에 오른 <계산하는 우주(김창규)>와 본심 결정에서 마지막까지 논의되었던 <문명의 사도(심너울)>을 함께 추천하고 싶다.
<이토록 단일한 마음(이서영)>은 과학기술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하는 화두와 현 시대 노동의 문제를 완벽하게 이어낸 작품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더 창의적인 지옥이 되어가고 있는 노동현장을 다루는 시의성이 과학적인 아이디어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글의 밀도가 높고, 읽을수록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는 부분도 큰 장점이었다. 단순한 선악구도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인간이 얼마나 모순되고 복잡한 존재인지 보여주는 지점이 특히 뛰어났으며, 그런 면에서 지금 여기의 사회문제를 다루려는 작가들이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기계가 어떻게 인간을 변화시키는가를 다루는 면에서는 <사이보그 선언>이 떠오르기도 했다.
<인간의 대리인(신조하)> 역시 재미있으면서도 신선했다. AI 자체는 많이 다뤄지는 소재지만 ‘뇌가 없는 변호사’라는 눈길을 확 끄는 소재에 실감나는 법정 싸움을 결합하여 짧은 분량으로 인간과 비인간에 대한 깊은 고찰을 보여줬다. 심사 과정에서 이 소설이 장애를 다루는 방식에 초점을 맞출 경우에는 위험한 지점이 있다는 논의가 나오기도 했지만, 소설이 읽는 사람에게 불편함을 전혀 주지 않아야 하는가, 어떤 주제는 불편할 수밖에 없으며 위험한 부분까지 밀어붙임으로써 독자에게 더 많은 고민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은가 하는 토론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최종심 세 편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동시대성이 강하고 사회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다수파(이나경)>, 로봇과 AI을 다루면서 드물게 인간중심적이지 않고 공룡들이 귀여운 <우리 미나리 좀 챙겨 주세요(듀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을 거듭하게 만들었으며, 긴박감과 몰입감이 뛰어났던 하드SF스릴러 <검은 절벽(해도연)>도 계속 언급이 나올 정도로 아쉬웠다. 해마다 같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아동청소년 분야를 신설하거나 중편과 단편을 나눌 수 있다면 상을 받았을 작품들이라 생각한다. 본심에 오르지 못한 작품 중에도 반짝이는 글이 많았는데, <시민R(최영희)>, <햇살에서 벗어나(겨울볕)>, <죄악의 행성에서(Havoc)>, <라오상하이의 식인자들(김이삭)>이 준 읽는 즐거움을 꼭 말해두고 싶다. 이외에 전삼혜의 <퍼펙트 페이스>를 비롯하여 현재 세태를 재치있게 풍자하는 작품이 상당수 보였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풍자 소설은 언제나 호불호가 극명하며 경지에 도달하기가 더 어려운 면이 있지만, 그만큼 쓰는 사람의 재능이 귀한 분야다. 코믹한 소설의 발전도 늘 기대하고 있다.
한국SF어워드의 취지 중에는 너무 많은 작품이 나오면서 묻히거나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작품들을 재조명한다는 목적이 있다. 심사를 맡은 덕분에 몰랐던 좋은 책과 새로운 작가를 여럿 발견했거니와, 마지막 심사를 위해 몇 번씩 읽다보니 새삼 돌이키게 됐다. 처음 읽었을 때 재미가 없거나 좋지 않았던 소설이라도 다른 때에 다시 읽으면 완전히 다를 수 있다. 단지 이 시대에는 그런 두 번째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심사 결과가 많은 작품에 그 두 번째 기회를 선사했으면 좋겠다.
심사위원장 / 중·단편 부문 심사위원
구한나리
고호관 <숲>
SF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올릴 이야기라면 역시 우주 이야기일 것이다. 이 작품은 낯선 별에 낙오된 지구인들이 별의 생명체들에게 공격받는다는 전형적인 배경에서 진부하지 않은 ‘지금의 SF’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낯선 세계를 만나는 경외감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게 공격당하는 긴장감이 어우러지면서 이야기는 의외의 반전을 맞이한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의 대결로 보이던 것을 조종하는 실체가 드러나는 과정, 먼저 왔던 이들의 지혜를 바탕으로 공포의 세계에서 탈출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이야기 전체에서 빠른 속도감을 유지하며 세계 그 자체에 집중하는 서술은 이 글의 주인공이 바로 ‘숲’임을 드러낸다. 낯선 세계를 구축하고 세계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SF의 재미를 극대화한 작품이다.
이서영 <이토록 단일한 마음>
자신과 하나라고 믿어왔던 AI 단일을 잃고 산재를 신청하는 주인공의 정체성 문제, AI의 인격 문제가 정리해고와 산업재해라는 사회적 이슈와 매끄럽게 결합되어 사회적 이슈를 다루면서도 SF의 소재를 흥미롭게 결합해 낸 점이 압도적이다. 발전된 기술이 오히려 사회적 문제를 악화시키는 상황이 근미래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현실성과 개연성 역시 탁월하다.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면서도 길지 않은 글 안에서 모두 정교한 개성을 갖추어 여러 번 읽을 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는 잘 짜인 글이다. 노동자SF, 사회파SF를 꾸준히 써 오는 작가가 작정하고 쓴 걸작으로, 오직 SF로만 가능한 이야기를 SF로 녹여낸 작품을 읽고 나면 작가의 무르익은 솜씨가 다음에 어떤 작품으로 나타날지 기대하게 된다.
신조하 <인간의 대리인>
무뇌아로 태어났지만 인공 시놉스를 이식해 살아갈 수 있게 된 주인공이 변호사로 일하면서 겪는 정체성 문제를 현실성 있게 다루었다. 알츠하이머 치료약의 실험에 자원했다가 피를 갈망하는 좀비가 되어버린 사람의 가족들이 제약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담당하는 사건 역시 배후의 권력 문제가 아니더라도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건이다. ‘끝없이 피를 갈망하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존재가 있을까’는 장애 문제로 읽힐 위험이 있기도 하지만 존엄사 문제의 우화로 읽을 수 있겠다. 기술이 발전해가면서 생겨날 수 있는 정체성 문제, 살 권리와 죽을 권리의 문제 등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우리 미나리 좀 챙겨주세요(듀나)’는 메카 공룡과 불법적으로 만들어진 공룡 미나리, 그리고 죽은 인간의 기억을 이어받은 사육사와의 교류를 작가 특유의 담백한 거리감으로 그려냈다. 자연적으로 태어난 생명체가 아닌 존재들 사이의 유대와 정체성의 문제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다루었다. 이 이야기가 더 확장된 세계를 보고싶어지는, 잘 직조된 세계의 이야기였다.
‘눈 내리는 사막에서 웃는 방법(이지은)’은 상류층의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바로 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에 상류층 전용 산전교육시설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는 상황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가상세계를 이용한 태아교육 등 작가의 상상력도 흥미로웠다.
중·단편 부문 심사위원
금숲
예년의 심사가 너무 힘들었기에 심사 인원이 늘었다. 그리고 작품도 어김없이 늘었다. 이는 좋은 작품도 그만큼 비례해서 많이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큰일이다! 본심에 올렸으면 했던 작품 수도 너무 많았고, 수상작으로 올렸으면 하는 작품도 너무 많았다. 심사위원들이 각자 추천한 작품 리스트 구성도 너무 달랐다. 회의를 통해 어찌어찌 본심작을 추리는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수상작 선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작품 나름대로 각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탓이다. 회의는 연장을 거듭했고, 투표를 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럴 땐 부문별 심사위원장의 의견에 무게를 실어주는 규정이 있다 한다. 올해는 좀 더 고전적인 의미의 SF에 가산점을 주자는 위원장님 의견에 모두 동의하여 겨우 결정할 수 있었다.
* 마지막에 탈락했던 작품은 이나경 작가의 <다수파>였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와 사회 문제가 깊이 결부되어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았지만, 몇 번의 건의에도 수상작 수를 늘릴 수 없었던 관계로 내려야만 했다. SF장르의 큰 장점인 ‘…는 왜 그럴까?’ 또는 ‘…라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게 함으로써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특이하기로 치자면 다른 후보작들에 견주어 상당히 눈에 띄는 작품이었기에 주목하게 된 점도 있었다. 아쉽게도 조금 더 SF적인 장치가 많은 작품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 고호관 작가의 <숲>은 극도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당당히 심사위원 세 사람의 추천을 받아 올라온 작품이다. 현대의 사회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이 많아진 요즘 트렌드와는 다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차별점을 가질 수 있었던 몇 작품 중의 하나이다. SF만이 가질 수 있는 재미를 지닌 고전적인 작품이면서, 최신 작품다운 부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도 했다. 흔히 식물은 수동적인 존재로, 동물에 비해 능동성이 부족하게 그려지고는 한다. 여태까지의 SF작품 속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체로 이들은 침략을 꼼짝없이 당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보호되어야 할 대상으로만 등장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의 숲들은 스스로 행동의 주체임과 동시에, 동물을 조종하고 지휘하여 전쟁을 수행하는 존재이다. 식물이 선량하기만 한 존재로 그려지지 않은 것은 매력적이다. 실제로 지구상의 식물도 늘 전쟁 상태에 있지 않던가. 또한 이 작품은 후보로 올라온 작품 중 가장 박진감 넘치는 플롯과, 전쟁물만이 줄 수 있는 전략 설계를 통해 읽는 재미를 크게 전해주었다. 숲에서 조난된 인간 군인들의 구성이 다양한 국적과 성별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추측되는 것도 소소하게 좋았다. 좀더 긴 형태로 개작되어도 재미있을 것 같고, (CG예산의 압박만 넘어선다면) 영상화가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날이 전진하는 작가의 필력에 놀라 추천을 올렸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짐에 축하를 드린다.
* 이서영 작가의 <이토록 단일한 마음>은 심사위원 중 두 사람이 대상작으로 밀었으나 투표에서 <숲>과 동점을 이루었고, 최종적으로 심사위원장 가산점을 통해 우수상이 되고 만 작품이다. 대상이 두 개일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서영 작가는 데뷔 때부터 꾸준히 노동 문제를 이야기하며 투쟁 현장을 묘사한 작품들을 써 왔는데, 이 작품은 그 계보에서 정점에 올라 있다. 사회문제와 SF적 상상력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었으며, 흔히 절대적으로 선량한 것으로 설정되는 어느 한 세력에만 빛을 비추지 않고 복잡한 사정을 두루 담아 넓은 시야를 제공한 것이 탁월하다. 우리 코 앞에 와 있는 AI와 인간의 하이브리드라는 소재를 두 자아가 융합되는 관계로 다루었고, 법적으로는 그것이 영구적 손상이라는 산업재해로 다퉈 보겠다는 아이디어도 멋졌다. 읽을수록 다른 매력을 드러내는 작품으로서, 재독할 때 누구의 시점에서 볼 지 선택해서 읽는다면 앞서와 다른 부분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심사 회의 중에 서로 나누었다. 반드시 두 번은 읽어보시길 바란다. 재미있는 것은 또 있다. 텍스트로는 눈치채지 못했으나 회의 중 캐릭터들의 이름을 부르다 깨달았는데, 그들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의 주인공들 이름을 살짝 비튼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단일’은 ‘다닐’을, ‘이라희’는 ‘일라이저’를, ‘지숙희’는 ‘지스카드’를 바꾼 것 같다. 그렇지 않나요? 로봇-인간 버디물의 원조를 잇고자 하는 이 엄청난 덕질의 현장을 보세요. 유희로 시작된 이름이 뜻밖에도 소설의 주제와 잘 어우러진 제목으로 나타나게 된 것도 감상을 더해주는 부분이라 굳이 언급하고 싶었다.
* 신조하 작가의 <인간의 대리인>은 읽는 재미로 보자면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법정 드라마, 제약 회사의 비리, 임상 실험, 안락사, 텔레파시, 장애, AI가 인간들 사이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기 등등 한 단편에 담기엔 굉장히 많은 주제를 거의 무리없이 엮어둔 솜씨도 기예에 가깝다. 읽는 사람에 따라 각자의 핵심 주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토록 단일한 마음’도 다층적이지만 이 작품은 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데다, 동시에 읽는 내내 독자의 흥미를 놓치지 않았던 좋은 작품이다. 특히 핵심 라인이라 볼 수 있는 법정물 SF로 읽을 경우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다. 단지 아쉬운 부분은 남아 있다. 만약 이 작품을 장애 주제로 읽게 될 경우 마지막 몇 단락 즈음에 위험하게 해석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타인에 의해 생사를 가름하게 된다는 점, 좋지 못한(장애의) 상태로 사는 것보다 죽는게 나은게 아닌가 하는 주인공의 생각을 마치 결론처럼 밝혀버린 지점은 섬세하지 못했다. 작품을 통해 읽는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미래에 고도로 발달된 AI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중증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직업이 현대와 마찬가지로 바리스타 뿐이라는 것도 유쾌하지 못하다. AI도 차별없이 판사 같은 직책에 배치되는 판에 장애인들은 그보다 처지가 한참 못하다. 한편 변명을 해 보자면 사회적 차별을 그리려고 하는 시도가, 다양한 것을 그려넣다보니 다소 어긋난 것일 수 있겠고, 화자는 본인이 인간인지 AI인지 모를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인간이 아닌 AI의 관점으로 읽는다면 마지막 결론은 무척 위트있다 할 수 있다. 문제가 될 몇 문장만 빼면 수상작에서 내리자고 주장하기에는 지나치게 아까운 작품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이후 유사한 주제를 다루려는 생각이 있다면 심층 조사와 함께 생각을 한번 다시 해 보시길, 이 지면을 빌어 부탁드린다. 추후 나올 작품들이 많이 기대되는, 새롭게 떠오른 작가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번 작품을 이제 읽게 될 독자들도 이런 점을 헤아려 본인의 시각에 맞게 좀더 비판적으로 또는 너그럽게 읽어줬으면 하고 바란다.
추가로 꼭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번 중단편 후보작들 중 장애를 다룬 작품이 여럿 있었던 점이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 중에서는 최의택 작가의 <보육교사 죽이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여러 달 전에 SF읽기 비공개 소모임에서 Earthion Tales 창간호를 읽었는데, 이 작품에 서로 호평을 쏟느라 시간 가는줄 몰랐던 기억이 난다. 하나하나의 캐릭터가 면밀한 관찰을 통해 만들어졌음을 느꼈다.
그 외 작품들에도 주목할 만하고 즐거워할 만한 부분들이 더러 있었으나, 모두 결론적으로 장애가 객체화되는 문제에서는 섬세하지 못했음을 밝히고 싶다. 국내 스토리 컨텐츠의 가장 큰 문제는, 기본적으로 '장애인을 독자나 시청자로 상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국가 등록 및 미등록) 장애인들은 접근성을 올리는 스마트 기능들을 통해, 또는 장애 정도에 따라 통하지 않고서도, 이미 컨텐츠를 즐기고 있다. 최소한 SF에서만큼은 식물과 같이 ‘파괴당하’거나, ‘조작당하’거나, ‘보호되어야 할’ 피동적 존재로만 ‘다루어’지지 않기를. 능동적이고, 파괴도 할 수 있는 <숲>같은 존재로도 그려주기를 바란다.
사실 장애 인권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많은 사람이 노력했음에도 대중의 수면 위로 좀처럼 올리지 못한 아픈 분야이고, 이제서야 그 흐름이 시작점에 서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에, 웬만해서 실체에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임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더욱, 장애 당사자에 대한 취재가 없는 조사란 몹시도 공허한 것이다. 최소한, "당사자들이 읽었을 때 불쾌할까?"라는 질문만 스스로에게 해보아도 90%의 문제는 피할 수 있다는 점을 꼭 말하고 싶다.
남은 본심작도 살펴보자면, 일단 두 작품이나 올라온 듀나 작가의 작품들이 있다. <우리 미나리 좀 챙겨주세요>는 비슷한 에피소드를 모은 듯한 책 속 시리즈의 일부로 느껴져 감점이 된 면이 있지만, 무척이나 신선하고 사랑스러웠다. 읽으며 나만 미나리(공룡) 없어!를 계속 외치게 한 작품이다. <화성의 칼>은 독립운동 시기를 다룬 대체역사물 SF로서 흥미진진하다. 두 작품에서 작가의 성장과 확장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해도연 작가의 <검은 절벽>은 가장 서스펜스가 뛰어났던 작품이다. 우주선에서 조난당하는 것만큼 무서운 환경이 또 있을까. 작년 수상자였던 연여름 작가의 단편집은 작가가 가진 매력이 그야말로 폭발하는 책이다. 그 중 수상작을 제외하면 <좀비 보호 구역>과 <비아 패스파인더>가 좋았다. 전삼혜 작가의 <퍼펙트 페이스>는 취업 시장의 문제를 정교한 블랙 유머로 꼬집은 것이 유쾌하다. 이지은 작가의 <눈 내리는 사막에서 웃는 방법>은 책의 주제인 상실에 걸맞게 아프고, 육아 주제에 대해서 좀 다른 시각을 보여 준 것이 좋았다. 김창규 작가의 <계산하는 우주>는 본격 하드SF로서 AI가 주인공인 매우 탄탄한 작품이다.
이외에 개인적으론 높은 점수로 추천을 올렸으나 본심에 오르지 못했던 작품들이 있었다.
이지효 작가의 <오토마티즘>은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탐정물이다. AI의 아바타인 로봇이 사람처럼 살지만 계급으로 차별받으며, 창작은 가장 높은 계급만 가능한 직업이다. 하드SF의 시각으로 읽는다면 로봇들의 생활상은 생뚱맞지만 소프트하게 읽는다면 재미있다. 배예람 작가의 <엔조이 시티전>은 호러 장르의 관점에서는 완벽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텍스트로 사람을 공포에 몰아넣기란 쉽지 않은데 이 작가는 항상 그것을 해낸다. 이윤정 작가의 <트러블 트레인 라이드>는 AI가 자아를 갖게 된 작품 중에서도 상당히 괜찮은 설득력을 갖고 있다. 죽은 사람을 복제한 AI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흥미롭다.
브릿G에서 나온 후보작들도 하나하나 너무 재미있었는데, 워낙 경쟁이 치열하여 본심에 올라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
치열했던 심사 덕에 심사평을 정리하는 것도 너무나 어려웠지만, 나날이 다양하고 풍부해지는 SF 작품들을 보면서 이런 시기에 심사를 하게 된 것이 큰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심사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린다.
중·단편 부문 심사위원
노대원
하루하루 새롭다. 신기술이 마법처럼 보인다. 종말조차 헛된 공상이 아닌, 취약한 행성의 시대다. 우리 삶은 어느새 SF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함께 쓰고 있는 과학소설 안에 살아가고 있다.” SF 소설가 킴 스탠리 로빈슨이 그렇게 말했다. 지금 이곳이야말로 SF 유니버스다. 봇물 터지듯 샘솟듯 분출하는 한국 SF의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행복하다. SF어워드 중단편소설 부문 심사를 진행하면서, 우리 SF의 다채로운 빛과 역동적인 무늬를 감지할 수 있었다.
많은 심사 대상작들이 인공지능 기술과 팬데믹의 영향 하에 쓰였다. 기후 위기와 인류세의 서사적 상상력도 더 이상 낯설지 않아 보였다. 그것들은 중심적인 소재, 아이디어나 SF 노붐(novum)으로 쓰이지 않았어도 여러 작품에서 출현 빈도가 매우 높았다. 그것들은 이미 우리 삶의 근저에 있기에, SF적 상상력의 기본값이 되어버린 듯하다. 이처럼 SF는 우리 시대의 삶의 조건을 읽도록 하는 척도다.
또한 SF 독자이자 문학평론가로서, 한국 SF의 폭발하는 다양성과 새로운 스타일도 역시 반갑다. 신화와 전설, 고전소설처럼 근대 이전의 서사적 상상력과 접속하거나, 미스터리, 판타지, 호러처럼 넓은 의미에서의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로 SF의 장르 경계를 확장하는 시도들도 더 많아졌다. 흥미로운 과학적, 지적 상상력뿐만 아니라 많은 작품들이 진지한 윤리적/사회적 성찰과 함께 배태되고 있었다는 점도 한국 SF를 낙관하게 했다.
그렇게 탁월한 SF 작품들이 넘쳐났기에 심사 과정은 즐거운 고통의 여정이 되었다. 특히 최종심 회의는 3회에 걸쳐 심사위원들의 깊은 토론과 대화 끝에 결정되었다. 그만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빼어난 SF 작품들이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신조하 작가의 「인간의 대리인」은 무뇌아로 태어나 ‘투명한 뇌’를 장착하며 살아가는 변호사의 이야기다. 그는 좀비처럼 변해버린 알츠하이머 의약 임상시험 참여자들의 ‘죽을 권리’를 변호한다. 인공 두뇌 없이 살 수 없는 주인공과 수족이 모두 보철인 로펌 대표는, 사이보그로서 포스트휴먼 주체의 상징이다. 인간 이하(subhuman)로 간주되는, 좀비처럼 변한 알츠하이머 환자들 또한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의 주제, 즉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됨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포스트-인문학의 핵심을 이루는 이 질문들은 SF에서는 오래된, 익숙한 질문이지만, 이를 능수능란하게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방식이 흥미로운 동시에 논쟁적이다. 과학기술과 문학, 의학, 법학(인권) 담론이 합류하는 SF 서사로, 풍부한 대화를 낳는 소설이다.
이서영 작가의 「이토록 단일한 마음」 역시, 읽으면 읽을수록 풍부한 의미를 길어낼 수 있는 화수분과 같은 SF이다. 이 소설은, 노조원들의 폭행으로 몸 속에 심은 AI가 파손되어 이를 산재로 주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한때, 그저 신체에 칩을 심는 것으로 SF의 알리바이로 삼는 작품을 아마추어나 서툰 주류문학(MF) 작가 들에게서 종종 볼 수 있었다. 칩이 나온다면 믿고 걸러라, 라는 내 야멸친 기준을 이제 바꿀 수 있겠다. AI와 IA(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를 통한 지능 증폭intelligence amplification), 인간 향상(human enhancement) 기술을 통한 트랜스휴먼으로의 변신 등의 서사는 더 이상 우리 삶과 멀지 않다. 몸-마음의 일부가 된 AI만이 아니라, 잠시라도 떨어지면 불안하고 불편해지는 스마트폰도 그렇다. 우리는 이미 기술과 ‘단일한 마음’을 이루며 공생, 공진화한다. 더욱이 이 소설에서 기술 자본주의가 인지 자본주의와 만나는 노동의 미래는 AI로 인한 실업의 공포 이상으로 앞으로도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주제다.
심사위원들의 긴 숙의와 토론 끝에, 대상의 영광은 고호관 작가의 「숲」에게로 돌아갔다. 이 소설은 SF 장르 본연의 읽는 재미가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SF에서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즐거움을 찾는 독자들에게도, SF에서 기발한 상상력에서 오는 인식의 충격을 추구하는 독자들에게도, 좋은 소설이다. 지금까지 한국 SF, 나아가 한국 문학에서 숲과 식물성에 대한 사유는 흔히 생태 윤리를 환기하는 공간이거나 다분히 파괴와 침략의 대상으로서 피해의 대상, 수동적 대상으로 주로 형상화되었다. 식물성의 저항이란, 말 그대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침묵의 시위에 가까웠다. 이 소설은 그러한 우리의 인식에 충격을 가하여, 동물들을 거느리며 전쟁을 지휘하는 능동적이고 지능을 갖춘 숲의 이미지를 새로 제시한다. 이 숲은 인간과 대등한 지성체로서 짐작되는데, 이로써 독자들의 협소한 인간중심주의나 종 차별주의를 깨뜨린다. 식물성에 대한 새로운 과학소설적 상상력과 사물과 존재에 대한 사변적 사유가 밀리터리 SF 장르의 전략-전술 서사와 행복하게 만난 소설이다. 심너울 작가의 「문명의 사도」와 함께 읽어보는 것도 권할 만하다.
쉽게도 수상의 영광을 얻지는 못했으나, 사실상 수상작의 수준과 다르지 않거나 수상작에 버금가는 많은 수작들이 있었음을 밝힌다. 이를테면, 김창규 작가의 「계산하는 우주」는 ‘아이디어의 문학’으로서 SF 장르가 무엇인지를 강력하게 웅변하는 작품이다. 조건과 가정 개념이 부재하는 다온인에 대한 발상이나 V결함이라고 부르는 인공지능의 오류는 SF 미학의 전범(典範)으로 제시할 만한 빛나는 아이디어다. 그리고 다온인에 대한 인공지능 장만의 부채 의식에서 볼 수 있는 윤리적 태도는 화성 테라포밍에 대한 우리 시대의 기술 제국주의적 열광을 성찰하게 한다. 과학소설 장르의 전통적인 재미를 원한다면, 이 소설을 보라.
임태운 작가의 「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는 이번 심사 대상작 가운데 가장 유쾌하고 가장 유머러스한 소설이다. 그런 대중적인 재미 속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感動)까지 찾는다면 단연 이 소설이 최고라 할 수 있다. 한국 코믹 SF의 한 절정이다. 사랑이란, 언제나 종말을 맞이하는 세계를 수천 번이고 다시금 일으켜 세우려는 영원한 시도다. 이 종말의 소설은 사랑에 관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듀나 작가의 「화성의 칼」은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 같은 대체 역사(alternative history)로 시작해, H. G. 웰스의 우주전쟁을 패러디한 듯한 미래사(future history)로 이어진다.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되어 한 치의 오차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서사가 작동한다. 제국주의도 민족주의도 모두 듀나의 냉소적 비판으로 파괴된다. 이 냉소는 「우리 미나리 좀 챙겨주세요」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 볼 때,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 ‘인간 너머’로 향해 있다.
이나경 작가의 「다수파」는 고등학생 딸을 서술자로 삼아 언제나 ‘평범함’의 범주에 포함되곤 하는 소시민 아빠, 상식 씨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언제나 ‘다수파’였지만 소수파-소시민이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과타리가 말한 것처럼, 모기는 인간보다 숫자가 적어 마이너인 것은 아니다. 잔잔하고 유머러스한 서술 속에서 세월호의 정치적 기억을 환기시키는 이 소설의 은근한 매력은 기억할 만하다.
수상 작가들에게는 더 없는 축하의 인사를, 그리고 미래를 향해 우리의 시대를 함께 써나가는 모든 SF 작가들에게도 응원과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과천과학관 2022어워드 부서 : sfaward2022@gmail.com SF어워드운영위원회 : koreasf.award@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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