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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어워드 2022

한국 SF어워드 2022 - 장편소설 부문 수상작 및 심사평


 

대상 <슈뢰딩거의 아이들>​ 최의택

작가 소개

2019년
제21회 민들레문학상 대상 「편지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
2019년도 하반기 예술세계 신인상 소설 부문 「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
2021년 제1회 문윤성 SF 문학상 대상 「지금, 여기, 우리, 에코」(출간 제목 《슈뢰딩거의 아이들》)

작품 소개

2050년대 근미래 대한민국, 세계 최초의 완전몰입형 가상현실 중고등학교 ‘학당’이 문을 열고 이제 학생들은 모두 자신과 똑닮은 ‘아바타’로 실제 학교와 똑같은 모습의 ‘학당’에 등교한다. 그런데 학생들 사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모습이 종종 목격되고, 그 유령의 정체는 ‘학당’의 두 번째 입학식 날 놀라운 사건과 함께 밝혀지게 된다.

 
차원을 뛰어넘어 연결될 수 있는 기술이 있음에도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유령’이 되어 외로운 처지에 놓이고, 사회는 그들에게 ‘소수자’라는 꼬리표를 달아 인식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뭘까. 소리쳐 외치는 것. 지금, 여기, 우리가 있다고. 《슈뢰딩거의 아이들》은 그런 아이들의 외침이 담긴 이야기다.


수상소감

작년 봄, 제1회 문윤성 SF 문학상 시상식에서 저는 말했습니다. 아이들의 외침을 전하는 저 또한 글쓰기를 통해 외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요. 수상과 출간 이후 정말이지 많은 분들이 아이들과 제 목소리에 귀기울여 주셨습니다. 평소 동경해 마지않던 작가님들께선 제 동료를 자처하며 때로는 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해주셨고, 습작생에게는 꿈이자 높은 벽과 같은 출판업계 관계자 분들은 소중한 지면을 기꺼이 할애해 주셨으며, 그린북 에이전시는 작가로서 신인인데다 인간적으로 아직 다 성숙하지 못한 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 모든 분들 덕분에 제 생애 최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금 《슈뢰딩거의 아이들》로 인해 또 한 번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랐습니다. 더없이 감사한 한편, 타고나기를 음울한 사람이라 그런지, 이야기 속 아이들과 우리가 사는 세상 속 유령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그런 마음가짐으로 쓴 것도 아니었고, 부끄러운 말이지만 제가 평소에 사회적인 이슈에 민감한 편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돌아보게 됩니다. 달리 보게 됩니다. 《슈뢰딩거의 아이들》이 제게 와 만들어낸 모든 결과는 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변화해서 더 많은, 더 다양한 목소리를 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수상 <나인> 천선란

작가 소개

제 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안전가옥 메가박스 × 수상제 7 SF회 어워드 장편 부분 우수상 수상
제 2 × 회 카카오페이지 아작 SF소설 신인작가 멘토링 멘토 활동

작품 소개

"어느 날 식물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독보적 상상력, 폭발하는 스토리텔링!
재미와 감동을 전 세대에 전하는 소설 Y시리즈가 새로운 K-영어덜트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한국형 영어덜트 소설의 지평을 넓히는 이번 시리즈의 두 번째 권으로 제 4회 한국과학문학 상 대상을 수상한 천선란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 나인 』 
이 소설은 평범한 고등학생 '나인' 이 어느 날 식물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숲의 속삭임을 따라 우연히 2년 전 실종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나인은 친구 미 래 현재, 승택과 함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사소한 것도 지나치지 않는 나인 과 친구들의 모습은 우리가 어떤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를 깊이 성찰하게 한다 흡인력 있는
스토리 전개와 참신한 상상력 속도감 , 넘치는 서스펜스를 모두 갖춘 이 특별한 소 설은 천선란 작가의 찬란한 성취로 기억될 작품이다.
어른들의 목소리에 굴하지 않고 진실을 찾는 나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용기라는 풀잎이 쑥 자라나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수상소감

안녕하세요, 천선란입니다. <나인> 은 어느 날 식물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선한 의지로 세상에 맞 서는 청소년들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를 쓰는 동안 어떤 간절함을 많이 느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간절함이란 제가 다가올 세상에 대한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 같습니다.기후 위기는 점점 심각해지고, 인간은 도통 서로를 이해할 생각이 없는 듯한 세상에서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이요.
희망은 품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빛을 밝힌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유약하고 작은 제 희망이 지만 그 희망에 또다른 희망이 붙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수상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우수상 <명월비선가> 박애진

작가 소개

90년대 후반 하이텔 환타지 동호회에 단편을 올리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특히 장르문학에서는 드문 여성 서사 위주로, 십대 중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어느 한 시기에 여자아이들이 겪는 폭발적인 감정의 흐름, 소통과 이해의 욕망과 교감에의 갈구를 그렸다. 그때 쓴 단편들은 작품집 『원초적 본능 feat.미소년』 (13년 12월, 온우주)에 수록되어 있다.

이후에도 기조를 유지하는 한편으로 꾸준히 지평을 넓히며,
작품집 『각인』(14년 2월, 온우주), 『우리의 파동이 교차할 때』(22년 5월, 단비), 장편 『바람결에 흩날리고 강을 따라 떠도는』(19년 1월, 답), 『명월비선가』(22년 1월, 아작)를 출간했다. 『명월비선가』는 도로라는 인물을 공통요소로 하는 앤솔러지 『기기인 도로』(21년 4월, 아작, 「군자의 길」 수록)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이 밖에도 『책에서 나오다 : SF 작가의 고전 SF 오마주』(22년 5월, 구픽)에 「미싱 링크」 를, 『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22년 3월, 사계절)에 「깊고 푸른」을 수록하는 등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며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작품 소개

『명월비선가』는 황진이를 모델로 하는 주인공 '명월'이 죽은 연인을 스팀펑크 기술로 되살리기 위해 살아온 이야기이다. ‘조선에 증기기관이 도입되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조선스팀펑크 앤솔로지 《기기인도로》와 세계관을 공유하며 같은 인물 ‘도로’가 등장한다.

때는 조선 중종 시대. 증기와 톱니장치로 기계를 움직여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기기술이 발단한지 100년이 지났다. 조서 절세가인이자 기생인 명월은 먼나라 출신이지만 조선에 들어와 기기술을 전파한다는 장인 ‘도로’를 만나기 위해 애를 쓴다. 언뜻 ‘도로’의 마음을 얻고자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애끓는 사연이 숨겨져 있다.
명월은 어릴 적 여인이고 상민이라는 이유만으로 헤어져야 했던 연인이 삼강오륜의 족쇄에 묶여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하자, 그를 되살리기 위해 삶 전체를 건다.
계급과 성별 간 차별이 극심했던 조선 중기, 세상을 뒤집고자 했던 한 여인의 일대기를 유려한 필체로 담아낸 한국 최초의 ‘조선스팀펑크 장편’.


수상소감

저에게는 어린 날부터 쌓여온 의문들이 있습니다. 동화에서 남자 인물은 모험을 하는데 왜 여자 인물은 헌신/희생하거나 납치/감금을 당하는 피해자이자 모험을 성공리에 마친 남자 인물에게 주어지는 상이 될까, 걸레질할 때 좋다는 바퀴 의자가 왜 ‘효도 선물’인가, 왜 피해자가 단지 피해를 당했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고립되어야 하는가, 나열하자면 끝이 없는 의문들은 나이가 들수록 답이 찾아지는 게 아니라 점점 많아지고 커졌습니다. 명월비선가는 이런 여러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하는 과정에서 나온 글입니다.

수상이라는 건 남의 일이라고만 여겨 왔는데 최종심에 올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정신은 얼떨떨한데 몸이란 참 정직해서 어느새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우연한 만남을 앤솔러지 기획으로 발전시켜 『명월비선가』가 세상에 나오는 시발점이 되어준 정명섭 작가님, 공통인물인 도로를 설정한 뒤 이어진 연작에도 써도 좋다고 허락해 주신 박하루 작가님, 이 글의 완성도를 한껏 끌어올려준 아작의 오유진 디자이너님, 설재인 편집자님, 최지혜 편집자님, 유리 멘탈을 다독이며 함께 걸어가 주는 그린북 에이전시의 김시형 실장님, 임채원 매니저님께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장편소설 부문 심사평


장편소설 부문 심사위원장
임태훈

2022년 SF 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후보작은 총 37편이었다. 참고로 작년도 후보작의 숫자는 56편에 달했다. 숫자로만 따지면 SF 장편소설 발표가 주춤해진 시기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2021년은 유난히 특별한 해였다. SF 중·단편 소설과 장편소설 모두를 통틀어 양과 질 모두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둔 역사적인 도약기였기 때문이다. 높이 뛰어오른 뒤에 숨을 고르는 시기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도 후보작들이 거둔 성취가 작품성 면에서나 대중적인 반향 모두에서 예년과 비교해 부족함이 없었다. 이번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새롭고도 야심에 찬 신작들이 속속 발간됐다. 한국 SF 장편소설의 성장은 꾸준하고 힘에 넘친다.

올해에는 심사위원장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심사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밝히고자 한다. 우선 5월에는 한 달여에 걸쳐 후보작 확정을 위한 기초 작업을 마쳤다. 이 과정에서 여러 사정을 이유로 후보작 선정을 고사하는 경우가 있었다. 본심 대상작 선정을 위한 검토 작업은 6월 1일부터 7월 30일까지 두 달 동안 진행됐고, 세 분의 심사위원(홍석인, 심완선, 임태훈)이 각각 본심 진출작을 2-3편 추천했다. 이 과정을 거쳐 총 9편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그 후 다시 한 달 동안에 걸쳐 9편의 소설을 재검토하여 최종심 진출작 5편을 선정했다.

심사위원들은 크게 두 가지 기준에서 고심을 반복했다. ① 수상작이 ‘한국 SF어워드’라는 이름에 걸맞은 작품의 성취와 새로움을 갖췄는가? 이 문제는 현재 활동 중인 기성 작가들만이 아니라 SF 창작을 꿈꾸는 다음 세대에게 2022년의 한국 SF 문학은 이런 것이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기에, 여러 기준이 동시에 고려될 수밖에 없었고 재차 신중한 판단이 필요했다. 어떤 상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무난한 심사 결과라는 건 없다. 얼핏 겉으로 그렇게 보일지라도 수상작으로 어떤 작품을 지지하려면, 심사위원만이 아니라 동시대 SF를 사랑하는 이들의 눈높이에도 마땅히 부합해야 한다. ② 이 상을 받게 될 작가가 독자와 출판계로부터 재발견, 재평가받을 기회를 얻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좋은 작품과 작가가 재능과 가능성에 걸맞은 선명도로 세상에 드러날 기회의 장이 SF 어워드가 되길 바란다. ①과 ②의 기준은 무난히 합치, 상보(相補)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심사위원 각자의 기준에 따라 판단이 극단적으로 엇갈리기도 했다. 최종심 대상작 5편이 각각 훌륭한 강점을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의견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을 통해 한국 SF 문학의 가능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최의택의 <슈뢰딩거의 아이들>은 2020년대 한국 SF 문학의 가장 중요한 성취의 하나로 오래 기억될 수작이다. 무엇보다도 지금 이 시대의 주요 화두라고 할 수 있는 ‘메타버스’, ‘장애인’, ‘아동 인권’의 문제를 솜씨 좋게 엮어냈다. 주제 의식에 과잉 몰입해서 요령부득한 장광설에 빠지는 실수는 기성 작가들조차 자주 범하는 패착이지만, <슈뢰딩거의 아이들>은 작가의 데뷔작임에도 절제와 밸런스 조절이 탁월하다. 개인적인 바람을 덧붙이자면, 이 작품 특유의 작업 원칙, 글쓰기 리듬, 테크놀로지의 배치 등이 차차 분석되었으면 좋겠다. 뛰어난 절제력의 비결이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꾸준히, 끈질기게, 정확하게 문장을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체득한 최의택 작가만의 ‘필력’을 지지한다. 그의 ‘방법’이 누군가의 삶을 구할 수 있다. 다음 작품이 몹시 기대된다.

천선란의 <나인>은 SF가 협의의 ‘Science Fiction’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변 문학(Speculative Fiction)이자 사변 우화(Speculative Fabulation)로 확장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작품이다. 동시에 SF를 여전히 낯설어하는 독자들에게 또 다른 한국 SF를 만나고 싶게 하는 다정다감하고 감동적인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외계인의 성장담을 풀어가며 인간/비인간의 이분법을 넘어 타자를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인상적인 서사를 제시했다. 아직 세상의 편견에 물들지 않은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삼았기 때문에 더 감동적이다. <나인>은 대혐오(大嫌惡)의 시대에 놓인 2022년 한국 사회에 제때 도착한 SF다.

박애진의 <명월비선가>는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선명히 갈린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만의 성취와 장점을 서로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면서 심사의 보람도 크게 느꼈다. <명월비선가>는 ‘한국 SF어워드’라는 이 상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조선스팀펑크’라는 기발하고 이채로운 세계관이 독자들과 창작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길 바란다. <명월비선가>의 밀도 높은 세계관 설정과 서사는 이 작품 특유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받아야 할 이 작품의 각별한 성취는 가부장 사회에 도전하는 여성 캐릭터다. 2020년대 한국 SF가 품어내고 날카롭게 가다듬어야 할 주제가 무엇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장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심완선

최의택의 『슈뢰딩거의 아이들』은 장애를 비롯한 소수자의 서사를 다루는 방식에서 적절한 균형감각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일종의 사이버스페이스인 ‘학당’이라는 공간, 가상현실 게임, ‘유령’으로 이어지는 연결을 통해 ‘지금, 여기, 우리’의 서사가 점차 꼴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SF로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메시지를 강조하느라 경직되는 등의 통속적인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 인물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는 점, 덕분에 풋풋하면서도 진심 어린 목소리가 들린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특히 범주 바깥의 사람이 범주 안쪽의 경험을 겪도록 만들어 질문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점이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만들었기에, 전반적인 요소를 고려하여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천선란의 『나인』은 정갈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담담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청소년이 특수한 능력을 이용하여 자기들끼리 문제를 해결한다는 내용은 청소년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전개지만, 『나인』은 인물이 몰두하는 고민과 의문을 섬세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색채를 품은 소설이었다. 특히 죽음 등 현실적인 사건의 무게를 인물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도록 배분하여, 이들이 하나하나의 사람으로서 인식하는 세상을 묘사하는 점이 돋보였다. 동시에 이로써 전체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하였다. 더불어 외계인과 고립, 식물과 삶을 연결하며 아름다운 장면을 자아내는 솜씨가 돋보였기에, 수상작으로 선정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박애진의 『명월비선가』는 작가가 쏟아부은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통해, 여성에게 현모양처 아니면 기생이라는 역할만 부여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인물들이 품는 갈등의 면면을 적극적으로 파헤쳤다. 하나의 화두를 두고 여러 방식으로 거듭 질문하며 점점 날카롭게 소망을 연마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호소력이 있었다. 다만 다소 많은 분량에서 배경이 이리저리 바뀌며 이야기가 방황하듯 진행된다는 점에서 평가가 갈렸다. 그러나 조선 스팀펑크라는 설정을 이용해 독자와 인물에게 새로운 풍경을 선사한다는 점, 이것이 소설 전체의 주제와 맞물린다는 점, 결말까지 화두를 유지하는 힘이 있다는 점에서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장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홍지운

요즘 온라인 서점 신간란을 살펴보다보면 마치 최고급 호텔에 조식을 먹으러 간 듯한 느낌이 든다. 온갖 종류의 다양한 먹거리들이 끊임없이 쌓여있고, 어느 정도 다 먹었다 싶으면 또 새로운 메뉴가 척척 들어온다. 어쨌든 눈앞에 이것저것 놓여있으면 한 번씩 맛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결코 끝나지 않는 아침 식사라는 점에서 이 또한 색다른 형태의 지옥이 아닌가 싶을 때조차 있다. SF 애독자에게 내려진 환희의 형벌인 셈이다. 아무튼 읽을 것들이 정말 많고, 모두 일정 이상의 수준을 담보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꾸준히 읽고자 계속해서 스스로를 독려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다른 분들도 모두 파이팅. 투쟁. 힘내요.

조식 만찬을 앞에 두고 있음에도 오로지 딱 한 접시에 올라갈 만큼만 메뉴를 골라야 한다니, 심사작 중 본심으로 올릴 작품을 고르는 과정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 작품이 괜찮고, 다른 면에서 보면 또 저 작품이 괜찮고, 한참을 저울질을 하고 나 나름의 기준을 정리한 뒤에야 간신히 계산이 섰다. 그 기준은 다양하게 있지만, 일단 주제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SF를 향한 애정 그리고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이야기적 완성도를 우선했다.

주제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SF를 향한 애정에 주목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그리고 외계생명체에 이르기까지 익숙한 소재를 다룸에 있어서 기존의 작품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 소재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작가가 소재에 깊이 있게 고민하는 동시에 기존의 작품들이 어떠한 고민을 해왔는지를 함께 짚어나가야만 한다. 물론 기라성 같은 고전 SF의 발상과 완전히 차별화된 무언가를 떠올리기란 이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보이기는 하지만, 작가가 소재를 다루면서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현실적인 문제들과 연결 짓는 것으로 장르에 대한 존중과 발전 그리고 동시대성까지 모두 짚을 수 있으며, 이번에 심사대상이 된 작품들 중에서 이러한 경지에 오른 작품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이야기적 완성도에 주목한 이유도 앞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SF작품들이 2020년대의 대한민국 사회와 동떨어진 세계를 무대로 하고는 한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은 필연적으로 독자들에게 자신이 새로이 만들어낸 소재에 대해 설명하고 전달할 의무를 가진다. 이 과정에서 기술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들은 소재를 소개하는데 너무 많은 리소스를 소진한 나머지,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부터 끝까지 말끔하게 다듬어서 정리하지 못하고 도중에 주저앉아버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번 심사작들 중에서는 이렇게 당혹스러운 경우는 거의 없었으나, 보다 매끄럽게 이야기를 정리해 그 기술적 완성도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보다 빛난 경우에 더 높은 점수를 주었다.


<나인>은 청소년들의 정체성과 청춘에 대한 고민을 SF적 설정과 미스터리를 통해 풀어낸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비록 등장인물의 캐릭터 아크가 종합적으로 한데 묶이지 않은 것은 아쉬웠으나, 어쨌든 각자에게 필요한 만큼의 결론이 주어진 것은 작가가 인물들에 대해 오래 고민을 한 덕분이었을 것이다. 이야기의 내적인 갈등과 외적인 갈등 모두 사건의 진행이나 방향성을 과감하게 제시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으로 사건을 진행한 점 역시 인상 깊었다.

<명월비선가>는 조선스팀펑크 연작선의 장편소설로 훌륭히 첫 테이프를 끊은 작품이었다. 조선스팀펑크의 세계관은 아직 부분적으로는 거친 요소들이 남아있으나, 여전히 흥미롭고 매혹적인 세계관이다. 다만 스팀펑크 장르의 공식을 차용한 연작선의 일부일지라도, 여전히 독자적이고 고유한 세계관을 다루는 작품 특유의 부족한 접근성은 조금 더 개선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 작품의 경우에는 내용의 밀도마저 높아, 이야기를 소화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다른 작품에 비해 제법 큰 품이 들기도 했다. 다만 이를 어렵지 않게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훈련된 독자라면 <명월비선가>가 마련한 세계에 푹 빠질 것은 분명하다.

<단 한 명의 조문객>은 SF와 스릴러를 조화롭게 섞은 범죄수사물이었다. 다만 범죄와 그를 추적하는 과정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각 인물의 감정선에 보다 깊숙하게 들어가기 보다는 인과관계를 연결 짓는 정도로만 묘사된 점은 아쉬웠다. 만약 이 작품에 들어있는 장르적이고 사건적인 긴장에 못지않게 인물 사이의 갈등과 이야기를 보다 흥미롭게, 보다 깊이 있는 관계성으로 발전시킬 수만 있다면, 다방면에 걸쳐져 있는 작가의 역량이 이후 더 큰 빛을 발할 것이다.

<슈뢰딩거의 아이들>은 메타버스와 장애인 및 아동 인권 등 요 근래 가장 주요한 화두들을 매끄럽게 이야기의 기승전결 안에 담은 작품이었다.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다양한 테마와 소재들을 절제된 활용 속에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최의택이라는 작가의 가능성에 감탄하고 또 기대하게 될 것이다. 이후로는 작가가 보다 야심찬 글을 써내려가지 않을까 기대가 크다.

<아마벨>은 미래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정통파 사이버펑크라는 도전에서 훌륭한 성과를 낸 작품이다. 사이버펑크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착화가 큰 장르지만, 이 작품은 그 안에서 가능한 매끄러운 이야기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작가의 실험이 더 이어진다면,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정통파 사이버펑크를 넘어 정통파 한국 사이버펑크가 완성되리라 기대한다.

 

 

과천과학관 2022어워드 부서sfaward2022@gmail.com
 SF어워드운영위원회 : koreasf.award@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