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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SF어워드 (2025)

「제12회 SF어워드」 출판만화·웹툰부문 수상작 및 심사평

 

 

 

 

 

 

 

 

 


 

SF는 우리에게 현재를 바탕으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해보도록 합니다. 수없이 많은 오지 않은 미래들 중에, 우리가 닿을 미래를 생각하는 건 어쩌면 ‘큰 이야기’에 우리를 가둬버리는지도 모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잊어버린 것, 어렵다는 이유로 놓아버린 것, 그리고 지루하다는 변명으로 치워버린 것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되새겨보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올해, 2025년은 ‘픽션은 현실을 이기기 어렵다’는 오래된 명제를 우리의 삶으로 체험해본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현실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SF는, 오지 않은 미래를 이야기해 우리에게 현실을 이해하는 노력을 덜어주는 희한한 장르입니다.
 
만화는 또 어떤가요. 만화는 글과 그림을 통해 이야기와 맥락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매체입니다. 백지에 그린 칸과 그림, 그리고 새겨넣은 글은 독자들에게 타인의 삶을 보다 생생하게 체험하도록 합니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요.
 
만화라는 매체와 SF라는 장르, 두 가지 안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의미를 가진 작품을 꼽았습니다. 바로 이윤창 작가의 ⟨네이처맨⟩, 조주희, 도도. 작가의 ⟨유령산책⟩, 247 작가의 ⟨크립티드⟩입니다.
 
이 세 작품은 그 자체로도 우리에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이별을 받아들이는 일, 만화만이 줄 수 있는 화려한 액션을 대신 경험하고, 그 안에 흠뻑 빠져들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 작품을 읽고 난 후에, 우리는 작가들의 삶에서 이야기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부디 이 상이 작가님들에게는 새로운 작품을 창작할 동력이, 독자님들께는 아직 만나지 못한 세계를 찾을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SF어워드에서 다양한 SF 장르의 출판만화와 웹툰을 감상하고 소개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입니다. 어워드는 좋은 작품을 선정한다는 것 외에도 큐레이션을 제공할 수 있단 점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어워드 선정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좋은 작품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하고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왜 어떤 소재에 대해 그렇게 표현하려고 했는지가 납득 가능해야 하며 나아가 전하려 했던 의도가 의미심장하다면 좋은 작품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SF어워드이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서 과학적 상상력은 필수적으로 나타나야겠죠. 2025년도에 세 개의 작품을 선정하면서 이러한 기준들을 고려했습니다. 

이윤창 작가는 데뷔작인 <타임 인 조선>부터 SF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여 왔습니다. 이야기를 이끄는 캐릭터의 욕망이 사건의 발단이 되지만 인간 중심의 사고와 선택으로 해결해 나가는 웹툰을 만들어 왔죠. 최근 영화로 만들어져 큰 관심을 보인 <좀비딸>에 이어 <네이처맨>에서도 인간의 욕망이란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후대에게 전수하는 방향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특히 이윤창 작가만의 은은하게 퍼지는 개그는 웹툰의 재미를 구현하는데 큰 역할을 했죠. 예측불가한 인간의 삶에서 한시라도 긴장을 풀고 해소하며 살 것을 슬그머니 전해줍니다. 이윤창 작가의 <네이처맨>은 우리의 삶에 단단히 묶여 있는 무언가를 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위트있게 해소해주는 수작입니다.

미래는 선택에 따른 것이란 전제는 문학적인 주제 같지만, SF 소설에서도 자주 활용되면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줘왔습니다. 조주희, 도도 작가의 <유령 산책>도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선택하는 것들이 운명(미래)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감동을 줍니다. 미래로 가는 기차 승차권 10장을 받았지만 한 달 뒤에 죽을 예정인 하온과 그를 좋아하는 영진은 어떤 선택으로 원하는 미래로 바꿔 가는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웹툰을 만들기 전부터 계획한 모든 것을 52회차에 걸쳐 흔들림 없는 결말을 보인 조주희, 도도 작가의 선택에 감탄을 보냅니다.

247 작가의 <크립티드>는 천부인, 장산범, 불가사리 등 한국적인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괴이들을 처단하는 무명대를 중심의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압권인 것은 신선한 소재를 표현하는 완성도 높은 연출과 작화입니다. 이토록 완성도 높은 작품을 247 작가 혼자서 만들었다는 것이 놀라움을 줍니다. 아마도 247 작가가 <크립티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면, 다른 선택의 기회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247 작가의 <크립티드>를 향한 애정과 동기는 작품을 더욱 빛나게 만듭니다. 247 작가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에게 무엇을, 어떻게, 왜 만들어야 할지 누구보다 많은 질문과 답을 했겠죠. ‘하고 싶다’는 마음이 선택하게 만든 <크립티드>. <크립티드> 출판만화와 웹툰 부문에서 비인기 장르인 SF를 만드는 모든 작가에게 가장 중요하고 커다란 동기에서 출발했습니다. 모쪼록 SF 어워드를 통해 247 작가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올해에도 훌륭한 SF 장르의 출판만화와 웹툰을 볼 수 있어 기뻤습니다. SF를 만드는 모든 작가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함께 담아 2025년 SF어워드 출판만화·웹툰 부문의 수상자들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축하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올해의 SF어워드에서는 출판만화와 웹툰 모두 대상 작품의 수가 많이 늘었다. 이제 드디어 SF의 태평성대가 도래하려는 움직임인가? 하지만 여전히 대형 플랫폼에서의 홀대(?)에는 아쉬움이 있다. SF가 장르적 구분에서 여전히 뒤로 밀리고 있는 상황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모든 작품에서 SF적 요소가 발견되기 때문에 굳이 구분을 안 하려는 의도인지도…??;;;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리스트 업 된 작품 중에는 그 장르적 경계가 모호한 작품들이 많다. (이번 뿐 아니라 항상 그런 편이다.) SF의 영역 확장과 보다 많은 독자의 확보를 위해 가능하면 많은 작품에 기회를 주려 하기 때문에 후보작 리스트는 꽤 길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본선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가능하면 SF 장르가 가지는 과학적 상상력과 미래에 대한 고찰, 그에 따른 사유의 확장을 작품에서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콘텐츠로서의 서사적 완성도와 미학적 성취 또한 놓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본선에 이른 작품들은 모두 이런 기준을 충족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대상을 수상한 이윤창 작가의 <네이처맨>은 뛰어난 이야기의 짜임새, 개그와 심각함의 황금비율로 독자를 휘어잡는다. 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전대특촬물의 배우들을 캐릭터로 등장시켜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구조는 전형적이고 충실한 장르적 문법을 따르면서도 서사적 재미를 충족시킨다. 소재에 따른 레트로 적인 정서 또한 작품의 매력으로 빠질 수 없다. 조주희, 도도 작가의 <유령산책>은 시간여행물로, 시간여행 특유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 묘사가 발군이다. 흔한 연애물로 시작되지만 뒤로 가면서 점점 커지는 스케일은 박진감이 있다. 수채화풍의 비주얼 또한 매력적인데, 디지털이 아닌 진짜 종이에 물감으로 작업했다는 사실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247작가의 <크립티드>는 액션 아포칼립스와 현대 무협판타지 장르의 결합으로 시원시원한 액션과 개인작업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비주얼적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장르적 특성으로만 따지자면 판타지에 가까운 작품이지만 크리처의 디자인과 연출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족의 투병으로 인해 휴재에 들어간 점은 안타깝다.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반-바지 작가의 <하우스도르프 연결공간>은 SF적 사고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장르성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서사적 완결성과 만화적 완성도로 볼 때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피가루, 모아이 작가의 <좀비상조>는 좀비를 처리하는 상조회사라는 설정이 흥미롭다. 작화가 뛰어나고 연출도 좋지만 좀비라는 설정에서 오는 피로감과 잔인한 묘사는 독자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지뚱 작가의 <노동본색>은 노동이 찬미되는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 엉뚱하면서도 재미있다. 지형적으로 나뉘는 업종에 대한 설정은 흥미롭지만 그렇기 때문에 빈약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점은 아쉽다.  

늘어나는 SF작품은 독자의 입장에서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심사하는 과정은 언제나 그렇듯 많은 분량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좋은 작품과의 조우에 기운을 얻는다. 리스트 업에 애써주시는 운영위원진과 제보를 통해 작품을 알려주시는 독자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SF어워드에 이 장르를 사랑하는 더 많은 독자들이 모일 수 있기를 기원하며, 내년의 SF어워드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