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SF 웹소설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정말이지 간단치 않다. 내 생각에 여기에는 적어도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SF는 유난히 정의하기 어려운 장르다. SF의 범위에 대해 나와 전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는 팬, 독자, 특히 비평가를 만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좋은 SF를 고르는 기준? 말할 것도 없다.
둘째, 웹소설의 유난한 장르적 식욕 때문이다. 웹소설은 판타지, SF, 미스터리, 로맨스, 나아가 포르노그래피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장르를 집어삼키고 제멋대로 가공하는 데 아주 적극적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이 작품이 좋은 SF인지 아니면 단순히 SF의 요소를 차용한 작품인지 분간하는 것이 어렵다.
셋째, 좋은 SF를 고르는 기준과 좋은 웹소설을 고르는 기준이 충돌할 수 있다. 아주 도전적인 SF 실험을 하고 있지만, 웹소설로서는 안전한 길을 선택한 작품이 있다면? 반대로 웹소설 문법에 용감하게 도전하고 있지만, SF로서는 ‘덜 진지한’ 작품이라면?
그러니까 좋은 SF 웹소설이란 무엇인가? 올해 12회를 맞이한 SF어워드 웹소설 부문 심사는, 실로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야말로 난장이었다. 심사위원 대부분의 의견이 엇갈렸으며, 같은 작품에 대하여 상반된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빈번했다. 아주 긴 논의와 설득 끝에, 정말이지 어렵게 결론에 도달했다. 이 한바탕 대리전에서 승리한 세 작품에는 축하를, 아쉽게 탈락한 작품들에는 아쉬움의 인사를 건넨다.
대상을 차지한 것은 <사이버펑크를 살아가는 불명예퇴직자를 위한 무일푼 생활 안내서>다. 이 작품의 장점은 어느 정도 주인공인 아서 머피를 닮았다. 작중 아서 머피는 사이버펑크 세계관에서 흔한 기계적 임플란트를 갖고 있지 않다. 그는 다만 이식받은 ‘포스트휴먼 IV’ 몸과 자신의 냉철한 이성만을 가지고 온갖 난관을 돌파한다. <사이버펑크를 살아가는 불명예퇴직자를 위한 무일푼 생활 안내서>의 경우 최근 한국 웹소설 사이버펑크 장르의 장르적 임플란트들을 일부러 포기했다. 이 작품에는 미래 세계의 흑마법도, 무공도, 상태창도 나오지 않는다. 작가 사만곰은 마치 “자연스러운 사이버펑크가 아름답다”고 선언하듯, 가장 오래된 사이버펑크의 재료들을 활용하여, 미래풍의 로스엔젤레스를 연출했다. 우리 심사위원들은 모두 이러한 뚝심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21세기에서 살아남기>와 <아포칼립스를 걷는 우체부>가 함께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121세기에서 살아남기>는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와 H.G 웰스의 『타임머신』을 베이스로 다양한 미래 서사들을 뒤섞은 칵테일 같다. 긴 시간 잠들었다가 미래에 당도한 초인, 인간 이후(post-human)의 존재들, 경이로운 환상 세계의 모험 등이 한데 모여 독창적인 서사로 어우러진다. 그래서 심사위원들 모두 이 작품이 가장 장르적으로 정교한 놀이를 하고 있다는 데 동의하였다.
<아포칼립스를 걷는 우체부>는 2024년에 범람했던 아포칼립스물 가운데 가장 세련된 대중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우리가 웹소설 아포칼립스 장르에 기대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있다. 멸망기의 무질서와 비정한 인정세태, 뛰어난 생존기술을 가진 주인공, 초능력 배틀, 나아가 은근한 휴머니즘까지. 작가 오드로버는 이 익숙한 재료들의 가능성을 120퍼센트 끌어냈다. 그래서 어떤 심사위원도 이 작품이 원숙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아쉽게도 최종심에 오르지 못한 작품 중, 심사위원들의 눈이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작품은, 바로 <반지성주의 마왕의 세계침략>이다. <반지성주의 마왕의 세계침략>이 SF적으로 용감한 실험작이라는 점에는 이론이 없었다. 이 작품은 대안적인 세계를 상상하는 것을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심오하다. 심지어 이 작품은 문명과 문화가 없는 세계를 서사화하고 있는데, 여기에 얼마나 많은 지적인 고민과 시뮬레이션이 투여되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이 작품이 이러한 ‘세계 만들기’를 조금 더 대중적인 문법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면 우리의 고민은 훨씬 길어졌을 것이다.
웹소설은 정말로 수가 많아서, 이를 읽고 검토하고 평가하는 일이 상당히 고됐다. 좋은 작품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아니라면 절대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수상자들에게 다시 한번 축하를 전하고, 비록 수상에 이르지 못했지만 훌륭한 가능성을 보여준 작가들에게는 다음의 성공을 응원한다.
지금까지 SF어워드 심사를 진행하면서 이만큼 기나긴 논의를 펼친 적이 있던가? 심사위원들 마음속의 대상이 서로 달랐기에 맹렬한 논쟁과 집요한 설득이 이어진 끝에 <사이버펑크를 살아가는 불명예퇴직자를 위한 무일푼 생활안내서>, <121세기에서 살아남기>, <아포칼립스를 걷는 우체부>가 최종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사만곰 작가의 <사이버펑크를 살아가는 불명예퇴직자를 위한 무일푼 생활안내서>는 처음엔 우수상으로 거론되었으나 뜨거운 논의를 통하여 대상으로 급부상했다. 사이버펑크 장르와 클리셰의 조합으로 웹소설 독자를 유혹하며, 고전이 아닌 최신 웹소설로서 눈에 띄려면 응당 해야 할 클리셰 비틀기를 탁월하게 해냈다. 신체를 마치 옷처럼 바꿔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인식하는 ‘강화신체’를 비롯하여 지식이 집약된 세계관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SF 소재 중 단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스토리의 주요 아이템으로 설계된다. 웹소설의 공급과 수요가 몇몇 대기업 플랫폼에 치우쳐 있는 현실 속에서 비교적 중소 플랫폼에 해당하는 노벨피아에서 연재가 이루어져 완결까지 났다는 사실은 이 작품의 중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해당 플랫폼에 관한 세간의 고정관념을 단박에 깨트린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컵라면 작가의 <121세기에서 살아남기>는 최종심에서 각축전을 벌이며 크게 득표하여 대상에 근접했던 작품이다. 반자동 지하농장, 어머니 나무로 불리는 시스템 컴퓨터 등 내용상 원시적인 문화나 샤머니즘처럼 표현되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과학적인 문물의 고도화된 버전으로 드러난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보았을 미래적 발전상(때로는 퇴화된 모습까지도)이 작품 곳곳에 펼쳐진다. 극도로 이과 감성일 것 같은 SF 장르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현자적인 교훈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판타지 특유의 몰입감 있는 사건을 유려한 문체와 유연한 흐름으로 다듬어 내려가며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진리를 모색한다. 군인 경력을 십분 발휘하는 주인공의 용맹하고도 의로운 캐릭터성, 그리고 꼬맹이 조연들과의 케미 역시 별미로 작용한다.
오드로버 작가의 <아포칼립스를 걷는 우체부>는 웹소설 특유의 정주행을 부르는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져 상업성과 작품성 모두 갖춘 작품이다. 동시에 SF로서도 가치를 인정받아 최종심에 올랐으며 대상 논의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작가가 조형해낸 근미래 세계에서 우체부라는 의외의 직업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매우 신선했다. 웹소설 시장에서는 아포칼립스물이 워낙 많으므로 후보작 중에서도 아포칼립스물끼리 퀄리티 경쟁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단순히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진행되는 서바이벌이 아니라 SF의 존재감을 확보하는 방식이었기에 단연 눈에 띄었다. 또한 인간들의 모순적인 행동을 통해 입체적인 캐릭터를 창조하며 때로는 눈물을 자아내는 매력적인 서사와 미끈한 필력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예년에 비해 가지각색의 SF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당당히 최종심에서 맞붙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웹소설 시장에서‘도’ 성공한 작품들이 다수 등장했다. 이는 다채로운 SF물이 웹소설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고 공급과 수요 양쪽이 유행과 자가복제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번 수상작 모두 남성향에서 나왔으므로 여성향 웹소설 장르를 조금 더 언급하고자 한다. 이번에도 다수의 BL 작품이 후보작으로 올랐다. 미래 배경으로 일상을 장악한 인공지능을 비롯하여 우주 전쟁, 사이보그, 안드로이드, 인간 복제 등 SF 세상의 고민과 발전상을 투영한 작품들이 BL에서 쏟아지고 있으나 섹서로이드를 비롯한 지나친 성애 묘사가 강력한 장벽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스토리 흐름상 필요한 부분이라 판단하지만,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어 유감스럽다.
과거 수년 전까지만 해도 본격 SF 소재를 다루면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는 분위기였으나 이제는 SF가 웹소설 시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은 듯하다. 그러나 무척 재미있게 읽은 후보작이 웹소설 시장에서는 애석한 성과로 끝난 경우를 매년 목도하기에 가슴이 무척 아프다. 한편으로, 웹소설 시장과 SF어워드의 심사 기준과는 다른 점이 많아 훌륭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최종심에 오르지 못한 작품들도 여럿 존재한다.
웹소설 중 판타지에서 현판이 빠져나오고 또 대체역사물이 강력한 세부 장르가 되었듯이 SF도 웹소설 시장 안에서 주요 장르로 자리잡길 기원한다. 이토록 격렬한 심사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면 그 광경 역시 SF 웹소설의 발전상일 것이다.
SF 세계의 다양함을 실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어느 장르나 심사라는 행위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웹소설 분야는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고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우선 작품을 조사하는 것부터가 고난의 행군이다. 아직 SF가 따로 카테고리화 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카테고리가 있어도 다른 카테고리 안에 숨어있는 SF들도 상당하다. 따라서 여러가지 키워드를 통해서 찾아봐야 하고 해당 작품이 수상 대상에 들만큼 우수한지를 가려내야 한다.
최근 SF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웹소설 쪽에서도 SF가 더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듯하다. 다시 말하면 정말 뛰어난 작품들이 수상을 놓고 겨루는 모양새가 되었다는 이야기겠다.
그런 결과 대상작을 놓고 심사위원 간에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서로 발언을 할 때마다 작품의 순위가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결국 <사이버펑크를 살아가는 불명예퇴직자를 위한 무일푼 생활 안내서>, <121세기에서 살아남기>, <아포칼립스를 걷는 우체부>의 세 작품으로 압축되었다.
<사이버펑크를 살아가는 불명예퇴직자를 위한 무일푼 생활 안내서>와 <121세기에서 살아남기>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두 작품 모두 인류를 폐허로 몰아넣은 거대 전쟁 이후 발생한 상상의 조직과 사회에 대한 치밀한 구성을 선보인다. 사실 두 작품 중 어떤 쪽이 대상을 수상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조금 더 사회 조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 <사이버펑크를 살아가는 불명예퇴직자를 위한 무일푼 생활 안내서>가 근소하게 앞섰다고 할 수 있겠다.
또 하나의 후보였던 <아포칼립스를 걷는 우체부>의 경우는 우편물을 배달하는 우체부라는 직업을 가지고 폐허가 된 세계를 모험하는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써내려간 작품이었다. 다만 우체부라는 직업은 재미있었지만 세계관에서 좀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진 못한 점이 살짝 아쉬웠다.
수상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충격적으로 재미있게 본 작품이 <반지성주의 마왕의 세계침략>이었다. 행성을 맡아서 개발하는 신의 지위에 오른 주인공이 자신의 행성이 가진 고유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개발해나가는 장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다만 아쉽게도 이 작품의 진가는 완결이 나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아슬아슬하게 수상작에서 미끄러졌다.
후보작 중 로맨스 장르 작품은 올라오지 못했으나 BL장르에서는 여러 작품이 후보작으로 올라왔었다. <저물지 않는 달>과 같은 작품은 SF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아쉽게도 수상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로맨스 장르에서도 SF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음에는 좋은 작품이 후보작으로 올라올 수 있으면 좋겠다.
웹소설은 그 특징상 초장편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아서 완결작만을 후보작으로 삼는다면 좋은 작품도 오랜 시간 기다려야 수상작이 될 가능성도 높고, 심사를 위해서 새로 읽어야 한다면 부담도 매우 높을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긴 해도 가능하다면 완결작을 후보작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어디까지나 소설이란 완성된 형태가 되어야 온전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웹소설 심사의 현실과 이상이라는 측면의 불균형인데, 적절한 해결점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오랜 기간에 걸친 심사였으나 좋은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SF가 한 걸음 한 걸음 더 많이 전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국 SF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2025년에도 기라성 같은 작품들이 SF라는 카테고리를 빛내주었다. 해마다 SF 장르에 대한 이해도, 또 단순한 기술의 발전을 넘어서 그 나름대로 전하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통찰까지도 깊어지고 있는 듯하여 기쁘고 감개무량한 마음이다.
올해는 특히 여성향 작품들의 약진이 돋보였다. 오메가버스나 성애적 대체제로서의 AI에 관한 소재주의적 차원을 넘어서, 현실적 오브제를 보다 다양하게 활용하는 재기발랄한 작품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빌런들이 판치는 낙원시의 택시기사, 그리고 그를 짝사랑하는 수상한 고객의 관계를 그린 고이재 작가의 <크레센트>는 개연성 있는 세계관과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케미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외피 그 이면의 주제 의식에까지 스며드는 SF적 감수성에 관한 심사위원들의 오랜 고민에 관한 숙제를 더하기도 했다. 난달 작가의 <저물지 않는 달>은 흡입력 있는 초장 전개와 ‘종말을 앞둔 지구’라는 SF적 세계관이 가미된 매력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그려내었으나, 중후반부 이후부터는 소재화 이상으로 뻗어나가는 추진력이 약해진 듯하여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최종심에 오른 다섯 작품 중 대상 한 작품, 우수상 두 작품을 가리는 일은 그야말로 치열하다 할 만했다. 뚜근남 작가의 <반지성주의 마왕의 세계침략>은 문명을 꺼리는 반지성주의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다른 문명과 대결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배틀로얄 형식을 응용한 전개와 생태계를 중심으로 한 대체 문명 설계는 독창적이다. 다만, ‘반지성’이라는 개념이 행동 양식에 국한되어, 과학·철학적 층위에서의 심화가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다. 또한 생태계를 문명으로 치환하는 발상은 매력적이었으나, 이를 과학적 근거와 연결하지 못해 판타지적 상상에 머문 부분이 있었다.
녹색여우 작가의 <강철을 입은 천재>는 사이버펑크적 디스토피아와 로봇 격투 리그라는 소재를 도시 내 세 층위의 위계 구조로 입체화한 작품이다. 격투 묘사와 리그 운영 설정이 디테일하게 뒷받침되어 서사의 설득력도 높았다. 그러나 작품 내 전투 호흡에 대한 완급 조절의 필요성, 그리고 배경적 장치를 넘어선 차별화된 SF적 통찰에 대한 여전한 숙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여 수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오드로버 작가의 <아포칼립스를 걷는 우체부>는 ‘멸망이 일상이 된 세계’라는 선언적인 설정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과정에서, 아포칼립스 장르에서의 일상과 비일상에 관한 관습적 묘사에 신선함을 더했다. 특유의 건조하고 차분한 서술은 세계의 비극성과 동시에 일상의 지속성을 함께 보여주면서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컵라면 작가의 <121세기에서 살아남기>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며 진실에 접근하는 오픈월드형 대서사를 설득력 있게 이끌고 나간 수작이다. SF 장르와 거리가 있어 보이는 낯선 풍경과 다양한 종족들을 SF적 톤앤매너로 치환하는 힘이 탁월하였기에 많은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대상을 수상한 작품은 사만곰 작가의 <사이버펑크를 살아가는 불명예퇴직자를 위한 무일푼 생활 안내서>이다. 명예 퇴직한 전직 보안팀 요원이 ‘강화 육체’와 권총 하나만으로 사이버펑크 세계의 밑바닥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SF 장르의 정수를 정공법으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SF적 주동 인물과 반동 인물의 클리셰를 정면에서 수용하되 내부에서 그것을 비트는 방식으로 깊이를 확보했을 뿐 아니라, 특유의 담백하고 치밀한 서술도 오히려 장르적 긴장과 냉혹한 정서를 선명히 드러내는 데 일조하였다. 그야말로 21세기 대한민국을 저변화한 SF 현대판타지의 수작이라 할 만하기에, 여러 심사위원들의 지지를 받으며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올해 최종 후보작들은 장르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동시에, 각각의 서사적 실험과 개성 속에서 SF가 얼마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확보하고 있는지를 증명했다. 한편 수상작들의 플랫폼 다양성을 통해 사이버펑크라는 장르의 독자층을 확장하는 가능성이 제시되었다는 것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성과와 과제가 축적되어 앞으로도 더 깊고 넓은 세계로 정진하는 SF 웹소설을 계속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금년도 SF어워드 본심 작품은 작년에 비해 평균적인 수준이 무척 높아졌다. 한 편 한 편 읽는 것이 즐거웠고 그만큼 선별이 어려웠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모두가 선정한 세 작품 중 공통되는 작품이 거의 없었다. 다섯 심사위원 모두가 SF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SF 웹소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기준이 모두 다른 탓에 의견이 하나로 합치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상은 사만곰 작가님의 <사이버펑크를 살아가는 불명예퇴직자를 위한 무일푼 생활 안내서>가 수상했다. 기존의 수상작이 네이버, 카카오페이지, 문피아 등의 주요 플랫폼에서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구독형 모델인 노벨피아의 첫 수상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하다. <사이버펑크...>는 복잡하게 얽힌 사이버펑크 세계관을 잘 그려낸 수작이었다. 펑크(punk) 장르는 세계를 지배하는 독과점 기업을 무엇으로 정의하고 어떻게 그려낼 것인지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작품은 그런 세계관 조형에서 공을 들인 티가 많이 났다.
우수상은 컵라면. 작가님의 <121세기에서 살아남기>와 오드로버 작가님의 <아포칼립스를 걷는 우체부>를 선정했다. 컵라면. 작가님은 <무림서부>와 같이 다양한 장르를 혼성모방하여 자신의 스타일로 그려내는 데 강한 작가이다. 이번 <121세기에서 살아남기> 역시 미래 세계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판타지적으로 혼합해 독특한 양식의 소설을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하였다. <아포칼립스를 걷는 우체부>는 코지마 프로덕션에서 나온 게임 <데스 스트랜딩>이 떠오르는 설정이었다.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멸망한 세계의 로지스틱스(logistics)를 우편이라는 상상으로 풀어내 상업적으로 잘 다듬어진 웹소설로 조형한 방식이 우수했다. 다만 두 작품은 세계를 조망하고 미래에 대한 지향점을 보여주기 보다는 모험 그 자체에 다소 천착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기존 상업 웹소설이 가진 틀과 형식을 지켰기 때문으로 보인다.
웹소설은 매체적 규약, 매체-장르의 규약, 그리고 장르의 규약이라는 삼중의 규약으로 구속되어 있다. 스마트폰의 액정 크기와 터치 형태가 보여주는 제약, 플랫폼의 결제 구조와 독자들의 요구, 그리고 판타지, 로맨스, 로맨스 판타지, 무협 등의 장르 규범이 콘텍스트로 작용하여 작품의 심층 단위부터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제약한다. 그런 의미에서 구독형 모델 노벨피아의 작품은 새로운 형태의 상상력을 표현할 무대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우수작으로 선정되지는 못하였지만 심사위원들끼리 논의가 분분했던 작품들이 있다. 뚜근남 작가님의 <반지성주의 마왕의 세계침략>은 주제 의식도 좋고 캐릭터의 성장과정, 생물학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게임 세계라는 독창적인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사고실험 등 모든 부분이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아직 연재중인 만큼 올해는 완결 난 작품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좋으리라 판단하였다. 이 작품은 이미 2026 SF 어워드의 심사 기준을 달성한 만큼 완결이 났을 때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으리라. 녹색여우 작가님의 <강철을 입은 천재>는 서브컬처적인 감성으로 호쾌한 액션과 흥미로운 서사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윤리적 부분에 대해서 고민이 잘 보이지 않는 게 아쉬웠다. 근미래 SF 세계관은 당연하다는 듯 윤리가 무너지고 서로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군상을 상정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사고관 자체가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 있는 듯했다. 김토크 작가님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 속 비정규직 성기사>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24년과 2025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이란 등 전 세계의 전쟁과 함께 살아가는 기간이었다. 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를 그려낸 시도는 좋았으나, SF 세계관에 혼합된 판타지적 요소가 조합될 때 작품 내적으로 뚜렷한 개연성과 고민이 보이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전체 작품을 심사하며 아쉬웠던 점은 금년도 작품 중에서 미래를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래의 형식과 구조가 왜 만들어졌는지, 그것을 통해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메시지까지 뚜렷하게 밀고 나간 작품이 드물었다는 점이다. 꾸준히 SF 작품의 종수와 퀄리티가 상승하는 만큼 향후 만나게 될 또 다른 SF 웹소설의 약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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