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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어워드 2019

SF어워드 2019 - 장편소설 부문 수상작 및 심사평

SF어워드 2019

길게 적었다 지우고 다시 씁니다. 소설에서도 주석까지 달아가며 너무 말이 많았는데 굳이 길게 적을 만큼 대단한 이야기들은 아니더군요. 그저 하고 싶은 말은 감사하다는 인사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끔 내가 쓰는 글들이 부질없는 짓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그건 아니라 격려 해주신 것으로 믿고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우로보로스》 심사평 중에서

장르 안쪽의 기준으로도 나무랄 데 없이 높은 완성도에 도달한 이 작품을 접하면서 그간의 편협한 시각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 박성환


치밀한 과학적 고증, 상상력과 주제의식, 짜임새 있는 서사와 품위 있게 제련된 문장 등 여러 요소가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이유미


과학적 근거와 추론을 설득력 있게 펼친 작품이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방식과 반전 요소까지,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다.

- 이한음


이 책의 첫 문장을 시작하고 마지막 문장을 끝내고 몇 년 묵혀두다 이내 출간하기까지의 시간을 쭉 돌이켜보면, 내 나라나 남의 나라나 한결같이 이 비극에서 저 비극으로 옮겨가길 반복한 듯한 기분이 든다. 그 중 어떤 비극들은 차마 옮겨지거나 덮이지 못하고 자꾸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반복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우리가 지나온 길에 거대한 싱크홀이 지나치게 많이 뚫려있고 거기서 살아 올라온 사람은 너무 적은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가 소설을 읽고 쓰는 이유는 그 비극들이 삶의 전부가 아니고 끝이 아니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함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매몰되어 주저앉지 않기 위해 문학을 방패로 쓴다. 나는 이것이 희망에 젖은 믿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는 진실이길 바란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하루 이틀 정도 효과를 보인 방패였다면 그걸로 충분히 역할을 다한 것이다.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셔서 감사드린다.


《돌이킬 수 있는》 심사평 중에서

뛰어난 작가가 작품 전체를, 플롯부터 개별 문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장악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 박성환


SF를 읽는 순수한 재미를 모르는 친구에게 귀한 약처럼 처방하고 싶은 작품이다.

- 이유미


잘 짜인 구조에다가 묘사도 세밀하고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 이한음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마다 걸었더니 건강해졌습니다. 그래도 가끔 깨끗하고 뭉클한 걸 떠올립니다. 천선란의 <레시>, 김초엽의 <공생가설>, 구병모의 <웨이큰>, 류츠신의 <위안위안의 비눗방울> 같은 곳. 이안의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리차드 파커가 파이를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숲으로 들어가는 순간. 엘리자베스 문의 <어둠의 속도>에서 루가 마저리를 더는 좋아하지 않게 되는 일.

요즘은 어떤 관계에서 조연이 되는 것뿐 아니라 저란 인간에게서도 조연이 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박문영이 지금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생각하면 근육이 이완됩니다.

책을 펼칠 때, 뭔가를 적을 때, 웃지 않을 때, 말하지 않을 때, 간신히 혼자 있을 때, 자신에게 무심할 때조차 자기밖에 모른다는 소리를 듣는 이 옆에 이 책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집 앞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 드는 사람에게 한 단락쯤 벗이 된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대화가 발견으로, 작별이 통로로 바뀌면 더 바랄 건 없습니다.

작업 중이던 작년 여름엔 ‘n번방 사건' 같은 지옥도를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이 주변부로 여기는 대상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았지만 이런 취급은 짐작도 못 했습니다. 이 공간을 빌려 디지털 성범죄 해결을 위한 국민동의 청원 링크를 옮깁니다. 종료일은 2월 14일입니다.

[링크]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려는 의지란 늘 아름답지 않고 나쁜 결과는 이런 과정을 밟을 때가 많습니다. 단념하지 않아야 할 걸 접고, 단념해야 하는 걸 관두지 않을 때. 구묘진의 <악어 노트>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사람이 받는 가장 큰 고통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잘못된 대우에서 오는 것이다." 더 놀랄 것도 없지 않냐고 묻는 입술, 극단적인 사례라며 허공을 휘젓는 손, 묘하게 소홀한 각도로 뻗은 발, 콧등을 한번 찡그리고 다른 소재를 찾는 눈을 봅니다. 그들 사이에는 수년 전의, 엊그제의, 조금 전까지의 저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 서사와 SF에 대해 말을 보탠 이튿날은 책상으로 가는 길이 늪입니다.

흔한 말이지만 알 수 없는 게 늘어만 갑니다. 자신을 강인하게 단련하는 여성, 자신을 분산 시켜 응시하는 여성 모두 스산한 공터에 있고 여성적 존재 곁에 더 많은 귀가 필요하다는 사실만이 분명해 보입니다.

장이 쌓일수록 이런 글은 누구나 고루 싫어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집어치우지 않고 싶었습니다. 견고한 작품들 틈에 껍질 없이 흐느적거리는 이야기를 꺼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쾌적한 장소가 숱한데도 소도시 구주에 들러 준 독자분들께 깊이 고맙습니다.


《지상의 여자들》 심사평 중에서

아마도 가장 조용하고 차가운 묵시록 중 하나일 것입니다.

- 박성환


이 낯선 시대정신이 어떤 속도로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거울상같은 작품이다.

- 이유미


남성들이 갑자기 사라진 상황을 배경으로 삼아서, 남녀와 여성들 사이의 관계를 여러 차원에서 짚어보고 있다.

- 이한음






장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박성환

『우로보로스』는 흥미로운 구성과 결말의 반전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습니다. 독자에게 불필요한 친절을 베풀지 않는, 그럼으로써 독자를 존중하는 자신감이 특히 매우 좋았고, 우주론과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등 SF의 소재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적절하게 활용한 점도 좋았습니다. 조하형 작가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장르 바깥에서 SF를 표방하며 나온 소설들에 대해서 의구심을 불식할 수 없었는데, 장르 안쪽의 기준으로도 나무랄 데 없이 높은 완성도에 도달한 이 작품을 접하면서 그간의 편협한 시각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돌이킬 수 있는』 역시 치밀하고 입체적인 구성과 작품 전체를 다시 읽게 만드는 반전이 압도적인 작품으로, 뛰어난 작가가 작품 전체를, 플롯부터 개별 문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장악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등장인물들이 초능력을 획득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독자들에게 조금 더 설득력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혹은 아예 생략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아쉬운 점이 옥의 티이지만(대규모 싱크홀이라는 상징적인 재난과 연결하기 위한 고충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비원과 경선산성 사이의 서로 다른 논리가 향하는 궁극적인 질문―‘초능력자들이 인간 사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저 멀리 스태플든의 원형적인 장편소설까지 불러들이면서 깊이 내려가 이를 보완하고, 그리고 다시 현재 한국 사회에서, 어째서 누군가는 아무 잘못도 없이 재난 한복판에 빠져야 하고, 재난을 겪은 사람들은 또 어째서 아무 잘못도 없이 사회로부터 고립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사회로부터 고립된 사람들은 다시 어떻게 사회의 테두리 안에 남은 사람들로서는 불가해하게 보이는 힘을 획득하고 행사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되는가의 문제로 나아가며 더욱 더 확장되는 부분은 그러한 단점을 충분히 상쇄합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의 한국 SF들에서 하강과 고립과 단절과 연대와 소통과 상승의 모티프들이 빈번하게 보이는 것(이는 보다 덜 뚜렷하기는 하지만 『우로보로스』의 결말에서도 보입니다)은 일어날 수 없는―그런데 일어난―그러나 그래도 일어나서는 결코 안 되었을 일에 대한 장르 자체의 예민함과 유연함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돌이킬 수 있는』은 그러한 계열의 작품들 중에서도 유독, 초능력/비정상의 전통적인 의미소를 통해 이를 새로이, 절박하게 조명해내는 독보적인 지점을 확보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사적인 함의를 배제하고 순전히 장르 SF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아도, 『돌이킬 수 있는』을 읽는 재미는 충분히 차고 넘칩니다. 파쇄자의 파쇄에 대해 정지자와 복원자가 동시에 능력을 사용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 것인가에 대한 부수적인 사변이 이후 플롯의 가장 결정적인 지점으로 확장, 전환되는 부분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타임리프물을 가장 근본적인 지점에서부터, 원점에서부터 다시 재구축해 나가는 듯한 후반부의 설정과 서술은 이 놀라운 데뷔작이 다만 시작에 불과하며 그 끝은 상상하기 힘들리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합니다. 모쪼록 자신의 한계가 곧 SF 자체의 한계라고 생각하고 부단히 부딪히고 확장해나가길 기대합니다.

『지상의 여자들』은 아마도 가장 조용하고 차가운 묵시록 중 하나일 것입니다. 특정 감정 상태에 놓인 특정 성별만 사라지게 되는 기제는 SF보다는 환상소설에 더 부합하는 소재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듀나의 ‘사라지는 사람들’처럼, 여전히 존재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되지 않는다는 혹은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인식하고 싶지 않아졌다는 가설을 생각해봅니다) 운석과 외계의 빛무리 등의 가설을 통해, 그보다는 더, 건조한 시선 속에서 그전까지의 세상에서 존재했던(존재했으나 인식되지 않았던) 모든 아픔과 슬픔을 차분하게, 하지만 예리하게 낱낱이 호명하는 치밀한 문장과, 그 이후에 기존의 권력이 소거된 사회가 움직여 나가는 양상을 마치 사고 실험의 보고서처럼 냉정하게 그려나가는 서술이 이 묵시록의 풍경을 SF의 영역에서 펼쳐 보여줍니다.

『민트의 세계』는 범죄 소설적 요소가 덧붙여져서 전편보다 더 발랄한 느낌의 후속작입니다. 지금까지 듀나의 소설들 중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작품으로 생각되며, 정교하게 계산된 플롯과 액션이 SF적인 비전과 잘 결합된 점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다만 링커 우주 시리즈에서와 마찬가지로 배터리 우주 역시 복잡하고 긴 분량의 이야기보다는 짧고 간결한 이야기들이 세계 설정을 보다 깊숙이 탐색하고 그럼으로써 이야기를 상상력의 한계 바깥까지 끌고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밖에, 『이슬라』는 죽음이 죽은 세계에 남은 사람들에 대한 흥미로운 우화였지만, 스스로 SF이기를 포기한, 결말부의 신화적 서술이 아쉬웠고, 『비블리온』은 영생과 독서 사이의 고찰은 흥미로웠지만 초중반의 작위적인 퍼즐들과, 비현실적이리만치 온건하고 현실안주적인, 밍밍한 결말이 아쉬웠습니다. 또, 『사하맨션』은 아무리 소설 속에서라고 하더라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작위적인 세계 설정과, 허무주의적이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한, (장르 바깥에서는 통용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SF로서는 무책임하게 느껴지는 결말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2019년도 한 해 동안 국내에 새로 소개된 SF들을 훑어보면, 특히 이윤하나 무르 래퍼티, N. K. 제미신 등의 장편 소설들을 읽어보면, SF의 영역이―그리고 SF의 완성도 또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집을 정도로 끊임없이 확장되고 고조되는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2018년도 중반부터 2019년도 중반까지 국내에 발표된 장편 SF들을 뒤늦게 찾아 읽으면서도 비슷한 움직임과 방향을 포착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좋은 작품들을 읽을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장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이유미

초기 회의에서 전자책으로만 출간된 작품들도 심사대상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하면서,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작품 수가 훌쩍 늘어났다. 양적 증가에는 자연스럽게 유적 풍요가 뒤따랐다. 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장르에 SF의 요소들이 흘러들어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를테면 BL과 아동문학이 심사 대상에 포함되는 식이었고, 경계에 걸쳐진 작품들을 대할 때마다 SF의 정의를 어느 선 위에 두어야 할지 묻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무엇이 SF이고 무엇이 아닌가, 무엇이 무엇을 포섭했다고 볼 수 있는가, 작품의 다면성 중 어느 부분을 톺아보며 SF라는 레이블이 합당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가를 수 있는가 등등의 고민이 말 그대로 작품 하나마다 한 번씩 반복되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SF를 맞지 않는 옷이라고 여길 때, 누군가는 아닌 것으로써 SF를 참칭하려 한다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경계는 어디에 설정될 수 있을까. 지겹다면 지겹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해묵은 고민이고, 언제나처럼 수학의 정석처럼 깔끔한 해답은 도출되지 않는다. 그때그때 유동적으로 선을 물리거나 확장하거나 새로 긋기를 반복할 뿐. 새로운 매체 환경에서 새로운 성격으로 진화한 작품들이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끊임없이 편입되는 한, 이 문답의 과정은 심사위원들의 영원한 업보로 반복될 것 같다.

흥미롭게도, 심사과정에서 SF의 경계를 묻고 또 물으며 읽어낸 작품들 중 삼분의 일 이상이 인공지능을 주제로 삼고 있었다. 그 작품들은 인간/인공지능의 경계를 묻고 다시 또 묻고 있었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업데이트되는 분야를 마주하며 바지런히 경계를 회의하고 갱신하는 작업이 SF 장르의 개별 텍스트와 생태계 안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일임을 확인한 셈이다. 인공지능을 다룬 작품이 그렇게 많아진 건 그 주제가 그만큼 우리 실생활에 가깝게 다가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상당수에서 과학기술적 조사나 토대 마련을 생략한 채 상상 속에서만 답을 찾고자 하는 경향이 포착된 점이 아쉽다. 이를 선택과 집중의 문제로 해석할 수는 있지만, 여러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고 균형 잡힌 SF로서는 아무래도 미진하다는 뒷맛을 남긴다.

대상으로 선정한 ‘우로보로스’는 그런 면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치밀한 과학적 고증, 상상력과 주제의식, 짜임새 있는 서사와 품위 있게 제련된 문장 등 여러 요소가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내용적으로는 인공지능과 빅뱅이론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노련하게 저글링 하고, 구조적으로는 하나하나 미스테리를 내포한 독립된 이야기인 양 완결성을 띤 챕터들을 건조하게 툭툭 쌓아올리다가 한순간에 통합된 이야기로 미끈하게 봉합해내는 솜씨가 유려하다. 구조와 서사 양쪽에서 SF적 경이감을 고양시키다가 그 둘이 폭발적으로 결합하는 지점에서 처연한 주제의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서정적인 성취 역시 놓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성실한 지적 베이스를 갖추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의 독보적인 미덕이었다. 과학적인 기반을 기름지게 다지는 작업은 어쩌면 다른 어떤 부문보다도 장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부분이고, ‘우로보로스’는 그 같은 고증이 충실히 뒷받침 되었을 때 SF의 상상력이 얼마나 힘차고 견고한 날개로 날아오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경계 없이 치닫는 SF적 상상의 즐거움이라는 측면에서는 우수상의 ‘돌이킬 수 있는’을 따를 작품이 없었다. SF를 읽는 순수한 재미를 모르는 친구에게 귀한 약처럼 처방하고 싶은 작품이다. 발군의 스토리텔링으로 독자를 사로잡아 단숨에 끝까지 달려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영화처럼 눈앞에 장면을 펼쳐 보이는 묘사와 연출, 하나하나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조각된 인물들이 이야기에 속도와 설득력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 시간, 공간, 사랑을 아우른 과감한 아이디어로써 짜릿한 경이감까지 놓치지 않았다. 크고 장대하게 펼쳐진 이 작품의 스토리라인이 화려하게 굽이치는 리본과 같다면, 그를 직조해내는 문목하 작가의 문장은 리본의 표면에 새겨진 섬세한 무늬와 같다. 하나하나 정교하고 적확하려는 정성이 우러나는 문장 아래 인간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뒷받침 되면서, 순전한 재미를 넘는 깊이와 가치가 작품에 더해졌다.

심사중 틀림없이 최신의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작품들이 낡은 듯 느껴지는 곤혹스러운 순간이 몇 차례 있었다. 예외 없이 작품 내 성 역할에 대한 인식이나 용어 선택이 무신경한 경우들이었다. 1~2년 전만 해도 아무 문제없이 지나갔을 사소한 포인트들이 가차 없이 시대착오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 시대의 젠더의식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일신하고 있는지의 방증일 것이다. 우수상으로 뽑은 ‘지상의 여자들’은 그런 측면에서 이 낯선 시대정신이 어떤 속도로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거울상같은 작품이다. ‘SF적 장치’를 강조하는 잣대로만 본다면 좀 약해보일 수 있지만, 지금-여기의 우리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사고실험이라는 층위에서 강점이 두드러지는 작품이었다. ‘외계인이 와서 폭력적인 가해자들만 없애주면 좋겠다’라는 발상은 트위터에서 신경질적으로 리트윗될 것 같은 거칠고 단순한 아이디어지만, 현실에 대한 정밀한 관찰과 그 한 발 너머에 대한 집요하고 촘촘한 상상으로써 묵직하고 서늘한 이야기로 훌륭하게 완성시켰다. 냉소도 비관도 아니고, 긍정도 낙관도 아니게끔 전체 정조를 쓸쓸하게 조절해냄으로써 자칫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주제의 복합성과 다면성을 부각시킨 연출도 훌륭하다.




장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이한음

우선 후보작들을 보면, 전반적으로 SF의 요소나 특성을 활용하려는 시도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SF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들을 최대한 고르고자 했다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많은 작가들이 그다지 거부감이나 거리낌 없이 SF 요소들을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이 장르가 점점 활기를 띠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런 한편으로, 저변 확대에 따르기 마련인 단점들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몇몇 작품에서는 과학적 사실을 인용하거나 다룰 때의 오류가 확연히 눈에 띄었다. 좀더 세심하게 논리적 추론을 펼쳤다면, 미흡하게 다룬 과학적 사실 부분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작품들도 있었다.

그보다 더욱 눈에 띄는 아쉬운 점은 전반적으로 무리한 설정을 도입한 작품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번에 살펴본 책들은 거시적인 서사형이 아니라 생활 밀착형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미래나 우주 등 SF 특유의 상황을 배경으로,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서술한 작품들이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어색하거나 무리한 상황을 설정한 뒤에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많았다. 전체 배경 자체를 무리하게 설정한 탓에, 필력은 좋음에도 이야기의 진행 과정이 설득력 있게 와 닿지 않는 사례들도 있었다.

그렇긴 해도 전반적으로 SF 요소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우수상인 {돌이킬 수 있는}은 잘 짜인 구조에다가 묘사도 세밀하고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일종의 대규모 땅꺼짐 현상이 벌어진 곳에서 살아남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들 사이의 분열과 화합이 외부 세계와 연계되면서 펼쳐진다. 전개되는 상황에 맞추어서 인물들이 보이는 반응과 심리가 탁월하게 서술되어 있다. 다양한 인물들의 성격 묘사, 폭넓은 시공간 활용과 짜임새 있는 줄거리 등이 후보작들 중에서 가장 장편소설에 걸맞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우수상인 {지상의 여자들}은 각 장이 짤막짤막하게 빠르게 전개되는 점이 특징이다. 웹툰을 보는 듯한 느낌도 준다. 그래서 속도감 있게 읽히며,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빠르면서 다각도로 보여준다. 남성들이 갑자기 사라진 상황을 배경으로 삼아서, 남녀와 여성들 사이의 관계를 여러 차원에서 짚어보고 있다. 남성들이 사라지기 이전과 이후의 상황을 나름 상상하면서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대상인 {우로보로스}는 후보작들 중에서 유일하게 과학적 근거와 추론을 설득력 있게 펼친 작품이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방식과 반전 요소까지,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다. 사실상 SF라는 장르에 가장 잘 들어맞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인공 블랙홀을 일으킨 안드로이드와 인간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장르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이긴 하지만,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의 혼란, 갈등, 분노, 체념, 수긍 등을 철학적인 분위기도 곁들여서 잘 묘사하고 있다.

좋은 작품들을 놓고 순위를 정한다는 것이 죄송스러울 따름이지만, 선정이라는 과정에 어쩔 수 없이 따라붙는 고충임을 양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건필을 기원한다는 고풍스러운 말로 미안함을 달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