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잠시간 생각지도 못한 개발 일을 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고생했던 병적인 우울이 가장 심각했던 때이다. 우울증으로 푹 절어있던 그때의 경험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다. 그런데, 그 우울과 번뇌로 가득 차 있던 시절을 기억하며 쓴 소설이 상을 안겨준다. 글이 과거와 화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고 믿는다. 노력을 멈추지 않고, 꾸준히 독자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고 싶다.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심사평 중에서
SF 팬들이 가장 좋아할 작품이라는 점에 심사위원 모두 공감했다.
- 김효진
미시적인 동시대성과 규모 큰 SF 테마를 한데 버무린 '판교 소설'로서 특유의 풍미가 일품이었다.
- 이지연
마법과 구분되지 않는 과학이 손안의 도구인 동시대의 한국을 배경으로 이런 이야기를 자아낼 수 있었다는 점이 놀랍다.
- 최지혜
'나를 키우는 주인들은 너무 빨리 죽어버린다'는 이후에 '스펙트럼'으로 제목을 바꾼 소설인데요. 스펙트럼은 제가 좋아하는 여러 재료가 듬뿍 들어간 샐러드 같은 글입니다. 최초의 조우, 인간의 감각을 확장해 온 도구들,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 모두 제가 언제나 관심을 가지는 소재들이에요. 이 글을 좋게 보아주시고 오래 기억해주시는 독자분들이 계셔서 기쁩니다.
《나를 키우는 주인들은 너무 빨리 죽어버린다》 심사평 중에서
외계생명체에 관해 가지고 있었을 법한 편견을 아름답게 깨 준 작품이다.
- 김효진
해당 주제에 대하여 한국 SF 소설이 내놓을 수 있는 빼어난 답이다.
- 이지연
가장 전통적인 SF의 가장 새로운 버전, 21세기적 응답이라고 해도 좋겠다.
- 최지혜
아무리 정교하게 다듬고 깎아낸들 거울은 피치 못하게 왜곡과 굴절률을 가진다. 미세하게 뒤틀리고 균형을 상실한 느낌이 들더라도, 거기 비친 상은 어쨌든 나 자신의 모습을 높은 확률로 충실하게 반영한다. 거울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는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미러리즘》 심사평 중에서
페미니스트 SF에서 다루는 페미니즘의 정치적 질문들을 다루고 있다.
- 김효진
우리 사회 성별 지위를 고발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작품
- 이지연
그 변화가 어느 정도로 평범하고 작은 일인지를 드러내는 것이 반전.
- 최지혜
지금은 모처 503호에 계신 전임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의 기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여러 모로 안 좋은 시기를 겪게 해준 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단편을 쓸 수 있게 해준 분이라 언급을 안 할 수가 없네요.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 이걸 썼던 연휴 기간에 혼자서 아이를 맡아준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아직은 끝이 아니야》 심사평 중에서
언론의 기능에 대해, 한국 언론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져다 준 작품이다.
- 김효진
독재하의 언론통제라는 소재를 SF로 풀어내면 이렇게도 되는구나!
- 이지연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옛말의 SF 버전
- 최지혜
중·단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김효진
발표된 작품의 수가 많았던 만큼 작품들의 다양한 개성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 한 해의 마무리를 좋은 작품들 속에서 다양한 SF 스토리텔링에 푹 빠져 지낼 수 있었던 건 SF 팬으로, 그리고 연구자로 행복하고 고마운 시간들이었다. 작품들을 심사 해야만 하는 부담은 있었지만, 부담을 넘어 후보작 작품들을 통해 한국 SF 중단편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대상작인 심너울의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는 각기 개성이 다른 나머지 후보작들 안에서 SF 팬들이 가장 좋아할 작품이라는 점에 심사위원 모두 공감했다. 매트릭스를 연상케 하는 게임 프로그래머의 이야기가 빠르게 재밌게 진행되는 작품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어쩌면 신이 프로그래밍 해 놓은 게임에 불과한 세계인 것이다. 그 세계 안에서는 메모리를 늘리기 위해 외계 종족이 사라지는데 지구를 살리기 위해, 인간이 살기 위한 이유로, 인간 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 보인다. 사고의 확장이 느껴지는 부분은 주인공은 다른 개체들 역시 마찬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 당장, 보이는 것에만 급급하고 우리 위주로 살아가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만 존재하는 세상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다른 개체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지금의 시각에서 한걸음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이 SF의 재미이고 의미가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라는 공간도 결국은 신이 만들어 낸 게임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삶과 너무나도 닮아있는 게임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우수작 고호관의 <아직은 끝이 아니야>를 통해서는 언론의 사회적 기능 중에서 부적절하거나 부당한 지점에 있어 SF 상상력이 더해져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읽는 독자에게 글이 무엇이고, 그 글이 담고 있는 생각까지도 권력과 자본의 흐름에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언론의 기능에 대해, 한국 언론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져다 준 작품이다. 언론의 사회적 기능과 함께 위기에 처했을 때 대처하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의 한계를 보여주며, 인간 중심주의적인 사고의 위험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글 역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의 상상력이 오히려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경험을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우수작 구병모의 <미러리즘>은 주사기 테러로 남성이 여성으로 성별이 바뀌며 겪게 되는 편견과 폭력을 통해 한 사회에서 젠더의 의미와 역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젠더를 둘러싼 뿌리 깊은 편견을 뒤엎어보는 상상이지만, 씁쓸한 건 역시 현실을 되돌아보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미러리즘>에서는 페미니스트 SF에서 다루는 페미니즘의 정치적 질문들을 다루고 있다. 한 여성이 사회 안에서 겪어 내야만 했던 폭력과 편견들을 주사기 테러라는 SF 사고실험을 통해 잘 보여준 작품이다.
우수작 김초엽의 <나를 키우는 주인들은 너무 빨리 죽어버린다>는 외계생명체에 관해 가지고 있었을 법한 편견을 아름답게 깨 준 작품이다. 지금껏 주로 영상을 통해 접한 외계생명체에 대해 폭력적이고 무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작품을 통해 그 생각이 부드럽게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생물학자로 우주 탐사선에 탑승해 태양계 밖을 떠돌다 외계 생명체와 첫 대면 후 구조된 할머니의 이야기, 할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할머니를 믿어가는 손녀의 이야기도 된다. 할머니와 외계생명체의 조우는 그동안 외계생명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과는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서로가 다른 종이 만났을 때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 다름을 인정하고 알아가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를 폭력적이지도 이질적이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보여줘 오히려 감동이다. 우리 할머니가 우주에 나갔을 때 말이야, 하며 시작하는 옛날 SF이야기로, 그 손녀가 또 손녀에게 들려줄 아름다운 SF이다.
최종심에는 오르지 못한 작품들이지만, 마음속에 남아있는 작품들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정세랑의 <나는 동쪽으로 걸어갔다>, 오정연의 <미지의 우주>, 그리고 김초엽의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이다. 정세랑의 <나는 동쪽으로 걸어갔다>에서는 일기 형식으로 동화처럼 읽히지만, 작품 속 미래에서 온 거대 지렁이를 통해 인류가 지구에게 어떠한 해악을 끼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고 생각하게끔 하는 작품이다. 지구의 환경문제가 최고 위기에 다다른 지금 우리가 반드시 읽어봐야 할 작품이 아닐까 한다. 현실에서는 접하기 쉽지 않은 동성애학자 엄마들과 십대 여자 아이가 전문가로 연구하는 사회를 상상한다는 건 미래에 대한 희망이기도 하지만 현실의 벽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도 보여진다. 오정연의 <미지의 우주>는 화성으로의 이주시대에 팀장인 미주가 딸 우주와 함께 화성에서 지구로, 지구의 한국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화성으로까지 이주해 사는 과학기술이 발전한 사회이지만, 커뮤니티에 소속되지 못한 자들에 대한 소외, 싱글맘, 특수 가정이라 칭하며 정상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얼마나 다양한 가족들의 존재가 지워버리는지에 대해서도 담담하지만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과학기술만 발전한 사회에서 변화되지 않는 견고한 사회적 편견들을 이야기한다. 워킹맘이며 싱글맘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SF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많이 볼 수 없었던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엄마 독자들은 공감대를, 그렇지 않은 독자들은 새로운 경험을 이 작품을 통해 하게 되는 것이다. 다양하게 변화하는 SF 작품 속에서 만나고 싶었던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김초엽의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은 사랑에 관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은 막연하게 생각하는 유전자 기술에 대해, 인간배아 디자인을 통해 질병도 없고 수명은 길어지며 외모 역시 원하는 대로 아름답게 그리고 유능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과연 그 세상은 행복할까. 그렇게 완벽하게 태어나는 인간도 존재하지만 그렇지 못한 인간들은 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고, 완벽하게 태어나지 못한 이들이 서로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또한 제시해준다. 완벽한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지만, 완벽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모습이건 누구이든, 사랑하는 사람이 싸우는 사회적 편견과 제도에 함께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작품은 ‘달라서’ 배제되고 소외되는 사람들에 대해, 부당한 사회적 편견과 제도에 대해 함께 싸우자고 손을 내미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는 이 작품들은 소외되거나 사회적 약자인 인물들의 경험과 삶이 SF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를 되돌아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후보작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주제, 아이디어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키워드를 뽑아 보면 페미니스트 SF라고 할 수 있겠다. 2019년에는 한국에서의 첫 페미니즘 엔솔로지, <우리가 먼저 가볼게요>가 출간되었고, 그 이전과 이후로 페미니즘적 주제들이 다양하게 여러 작품을 통해 나왔다. 페미니스트 SF라는 장르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SF를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 굉장히 반갑다. 살펴보니 최종 후보작에 오른 작품들의 주인공들이 모두 여성이다. 대상작인 심너울의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에서는 게임 프로그래머 현희, 우수작 고호관의 <아직은 끝이 아니야>에서는 서지면역학자 해랑, 우수작 구병모의 <미러리즘>에서는 주사기 테러로 성별이 여성으로 바뀐 주인공, 그리고 우수작 김초엽의 <나를 키우는 주인들은 너무 빨리 죽어버린다>에서는 생물학자인 할머니와 손녀가 등장한다. 본심 진출작들 상당 수 역시 여성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SF에서 여성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여성 주인공을 통해 좀 더 다양한 사고실험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페미니즘과 SF의 결합이 이상적인 이유에 대해서 페미니스트 SF 학자들은 페미니즘은 정치적인 질문을 던지고 SF는 상상력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껏 상상력에 대한 질문에 치중해 왔던 SF였다고 한다면, 이제는 페미니즘의 정치적인 질문을 함께 물어보려는 시대적 흐름의 한 부분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SF를 읽는 여성독자의 수가 늘어났음을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미 상당수의 여성 독자들이 존재하고그 독자들이 읽고 필요로 하는 이야기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9 SF어워드 중단편 후보작들은 기존의 SF팬들 뿐 아니라 SF에 입문하고 싶었던 일반 독자들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작품들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기존팬들과 함께 신입 팬들이 다양한 작품들을 접해야 SF팬덤 담론도 형성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2019 SF어워드 후보작들은 여러 주제와 아이디어로 다채롭게 독자들에게 제공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SF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내가 할 일은 다양한 작품을 읽은 팬들의 이야기를 듣고 분석하는 일만 남았다.
중·단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이지연
총평
매우 배부른 심사였다. 대상 기간 동안 발표되고 출판된 중단편이 수적으로도 정말 많았는데, 양만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포만감이 컸다. SF의 거의 모든 갈래가 탐구되고 있었고 인접 영역으로 나가거나 융합을 시도한 작품들도 섭섭하지 않을 만큼 촘촘하게 있었다. 단편 부문임에도 다루는 이야기의 규모가 아주 큰 배포 있는 작품들도, 순문학의 자리를 구태여 찬탈까지는 안 한대도 시침 뚝 떼고 한데 비벼 앉을 만큼 현실에 정밀한 작품들도 각각 한 손에 다 꼽지 못할 정도였다. 본선에 열두 작품을 올렸지만, 그러려고 했다면 30편이라도 올릴 수 있을 만큼 좋은 작품이 많았다. 윤리적 모색을 주로 한 것 즉 실재하는 여러 차별적 조건들을 전복하고 대안적 가능성들을 짚어보는 작품들이 올해에도 많이 수확되었고 수준도 높았다. 그 외에도 다양한 갈래의 작품들 거의 모두가 동시대에 발바닥을 착 붙이고 동기화된 상태로, 왜 지금 왜 한국어로 왜 이 독자들을 상대로 썼는지 모르겠다 할 붕 뜬 소설은 없다시피 했다. 막 질러 보는 도전보다는 무엇이 쓸 만하고 쓸 만하지 않은지 꼼꼼히 추려 보는 정비의 시대. 가진 것을 확인하고 힘을 시험해 보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느꼈다. 무엇이 아쉬웠다고 흠을 잡기도 힘든 풍성하고 충실한 생태계에서 이후의 더 큰 흥성을 예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수상하신 작가분들, 본심에 오른 분들뿐 아니라 노력과 재능으로 정말로 뛰어난 작품들을 생산해 내신 더 많은 한국어 SF 작가분들께 감사와 축하를 드린다.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젊은 세대의 빈곤과 보수성을 핍진성 있게 재현하는 가운데 전통적인 메타세계 세계관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미시적인 동시대성과 규모 큰 SF 테마를 한데 버무린 '판교 소설'로서 특유의 풍미가 일품이었다. 최근 소설 작중인물들이 갖는 독특한 균형감이 있는데, 부조리를 민감하게 감각하면서 거기에 맞서 싸우지도 그렇다고 투항해 버리지도 않고 처리를 유보한 채 비판적인 가담자로 잔존하는 태도다. 이런 인물은 특정 작품이 낳아서 전파한 것이라기보다 작가들이 저마다 스스로 찾아 발견한 당대의 진실한 답이 아닐까 한다. 이야기는 인물을 펼쳐 놓은 것이고 인물은 이야기를 담는 틀이라는 관점에서 이 이야기와 이 인물은 완벽한 짝이며 시대정신이다. 작중에서 다루어진(유보된) 윤리적 딜레마만 하더라도 독후에도 이리저리 뒤집어 보며 한참 음미할 만한 것이다. 꼭 젊은 세대만이 아니라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좋든 싫든 매일 정보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하려고만 하면 소화할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 초과하는 정보에 접근할 수도 있는 사람들 모두가 바깥 세상을 데이터 뭉치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사진과 숫자로 전해지는 먼 나라의 대재난은 그저 대재난의 사진과 숫자가 된다. 바로 우리 곁에서 벌어진 불의도 분량이 한정된 데이터 패킷의 형태로나 전해지고 처리되는 현실에, 한 장씩의 초상화로 제시된 존재들은 상징적이다.
[아직은 끝이 아니야] 독재하의 언론통제라는 소재를 SF로 풀어내면 이렇게도 되는구나!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이야기 도중 '이거 혹시 실제의 무엇무엇인가?' 싶은 부분들을 만나며 의심에 주의가 흐트러지기도 하지만, 정작 이야기는 허허실실 전혀 다른 층위에서 결말을 맞는다. 사이파이적인 분위기나 기존 SF판의 맥락에 의존하지 않고 주제부터 형식까지 우직하게 정통적인, 정진정명 찐SF.
[미러리즘] 이 작품 외에도 각각의 방식으로 우리 사회 성별 지위를 고발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작품들이 여럿 있었으며 각각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거울을 비춘다는 '미러링'이라는 말은, 거울에 비친 상과 실제는 실은 좌우가 아닌 앞뒤(원근)가 반대라는 걸 생각할 때 역지사지에 참으로 잘 들어맞는 비유 같다. 여성혐오를 여성성 혐오로 되풀이하는 함정도, 약자 자격 재판이라는 함정도 밟지 않은 세련된 역지사지 트릭이 논점을 분명하게 한정해 준다. 문단 소설 같은 문장도 작중인물에 아주 잘 어울린다.
[나를 키우는 주인들은 너무 빨리 죽어버린다(스펙트럼)] 지구인과 외계인의 포지셔닝은, 초창기 사이파이에서 문명인(표준 인간)과 그 이상 또는 이하의 존재(야만인 곧 천사나 짐승)의 구도로 처음 제시된 이래 지금까지 변주를 거듭해 온 오랜 이야깃거리다. 우월하든 열등하든, 천사든 괴물이든 타자를 비인간화하는 데 반발하는 섬세한 변주로서 완성도 높은 한 편이 여기 나왔다. 해당 주제에 대하여 한국 SF 소설이 내놓을 수 있는 빼어난 답이다.
검토한 작품들 중 최신의 대안사회 탐색 소설들도 여러 편 있어, 레즈비언 부부 과학자의 딸과 깨인 오일머니 왕자가 우주선 타고 내려와 도시를 먹어치우고 있는 거대 지렁이 문제에 맞서는 것으로 시작하여 툭툭 던져 놓는 르포르타주 식 장면 장면들로 시원시원하게 지금 우리 문명을 뒤집어가는 [나는 동쪽으로 걸어갔다]도 그중 하나였다. 더없이 경제적으로 거대서사를 전달하는 작품으로 (책을 파는 것도 직업의 일부인) 기획편집자의 시각에서 볼 때 한국인의 교양 욕구에도 크게 부응할 것 같다!
[내 여자친구의 다리]와 [미지의 우주]는 지금-우리-현실의 생활감이 장점인 작품들이었다. [내 여자친구의 다리]는 잔잔한 이야기지만 그 잔잔함이 주제의 첨예함을 얼버무리지 않는다. 계속 읽어나가게 만드는 긴장감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탄탄하게 균형 잡혀 있고 성인과 아동 양쪽 모두 진지하게 읽을 수 있는, 청소년 소설로서도 무척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미지의 우주]는 단기간의 지구 이주를 준비하는 화성 이민 2세 유자녀 여성의 일상을 따라간다. 아이 한 명을 기르는 생활인 여성. 좀처럼 관찰자로 채용되지 않던 인물이고 시각인데, 지금까지 다양성이란 것이 '1세계-백인-남성-비장애-청장년-이성애자'라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표준인간에 거의 딱 한 개의 특이점(흑인이라든가, 여성이라든가, 시각장애인이라든가)만을 부여한 인물들로 빈약하게 채워져 와 '생활인' '싱글맘' '지역주민' 정도의, 지금 우리 현실에도 얼마든지 많을 흔한 특성 조합의 보통 사람 한 명만 투입해도 그 시각이 너무 낯설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카메라가 돌아갈 때 그 앞에 비치는 인물로만 배치되던 다양한 실제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려주는 행위는 중심 권력을 허무는 동시에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뷰파인더에 들어오는 처음 보는 광경들로 우리 정신을 살찌운다.
[자율주행 알고리즘 최적화를 위한 비공식 합의팀]은 당면한 현안인 윤리 문제를 테마로 한 점이 우선 강하게 흥미를 끌고, 상업영화를 방불케 할 만큼 계획적으로 착착 진행되는 수사 추적물식 전개가 즐겁다.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의 미덕이 가득한 작품이다.
[위그드라실의 여신들]은 여러 부분에 오마주가 눈에 띄는 [스페이스 오디세이] 다시쓰기로, 길지 않은 분량에 우주 탐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읽고 싶어 할 것들을 다양하게 망라한다. 많이 읽어 봤을수록 더 맛이 있을 전통적인 SF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담겼다.
[왕의 넋] 줄기는 다 청산되었건만 왜 아직 남아 있는지 모르겠는, 발에 턱턱 걸리는 뿌리 뭉텅이들에 넌더리가 난 작가는 이것을 뽑아 불태우는 상상을 했다. 소각반의 인선과 그들에게 주어진 결말까지 맛의 구성이 완벽한 디저트 소품. 살면서 그 어떤 구태 때문에 짜증이 난 저녁에 더운물로 발을 씻은 후 좋아하는 음료나 한 잔 하면서 다시 읽을 만하다.
[볶음밥 인간] 많은 사람들에게는 머릿속에 그냥 한번 스쳐가고 말 실없는 생각을 조물조물 이야기로 빚어주는 성실한 작가들 덕택에 우리는 폭넓고 풍성한 서사의 지평을 가질 수 있다. 변덕스러운 상상력을 검열해서는 안 될 이유다. 그것도 그렇고, '하늘 가득 까맣게 내려오는 외계인 내습' 컬렉션을 마음의 SF 서가에 진열해 둔 독자라면 이 작품도 손에 넣고 싶을 게 틀림없다.
[무심] '현실에 한 방 먹이는' 유의 초단편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데 놀랐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한 줄에 이 정도의 감정적 진폭을 느낀 작품은 실로 몇 년 만이었다. 이 짧은 작품이 확실하게 비춰내는 상()은 또렷하니 세계와 인간이 다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상은 또 대단히 안타깝고 사랑스럽기도 하다. 평에서 이런 말을 해도 괜찮다면, 여러분, 읽어보세요!
중·단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최지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배가 넘는 작품들이 쏟아졌으며, 여전히 활발한 앤솔러지와 더불어 개인 작품집, 청소년 대상 SF 작품집이 늘어난 경향을 보였다. 온라인의 SF 단편소설 또한 단순히 수적으로도 늘었거니와, 안정적인 완성도와 신선한 발상을 동시에 갖춘 작품들이 많았다. 온라인에 올라오는 작품들은 시간상 후보작 중 가장 최신의 작품들이며 서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기에 특정한 소재나 주제의 작품들에 치우치는 경향이 나타날 때도 있다. 그러나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전이라는 큰 사건의 영향으로 AI와 인간에 관한 작품이 많았던 지난해에 비해 올해에는 소재와 주제의식, 형식 등이 다양해졌으며, 보편적인 가치관과 현재의 문제의식을 반영하고자 노력한 작품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상대적으로 약했던 소수자나 타자에 대한 관심 또한 깊어지고 다양해졌다. 이전 해까지는 소재를 가져오는 차원에 머물렀던 작품들이 간간이 존재했으나, 이제는 SF 장르의 문법이나 본질을 이해하고 있거나 내재화한 작품이 대다수였다. SF란 장르의 한계나 정의에 얽매이지 않고 그 이후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때와 맞물리는 현상인 것으로 보여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본심에 12편을 뽑는 것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관문이었을 만큼 독보적인 매력과 독특한 발상과 새로운 감성을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들이 많았다. 몇몇 경우에는 한 작가의 여러 작품 중 하나를 골라내는 것이 아주 어려웠는데, 그만큼 작가마다 고른 완성도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는 방증이 되지 않나 싶다. 기존의 수상작가들 또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며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확인해서 반가웠다. 새로이 이름을 올린 작가들의 수준 또한 못지않아, 독자로서는 행복했다.
그중에서 본심에 진출한 작품들은 다양화와 소수자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꼽힌 듯하다. SF 장르 내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새로운 모습으로 현재를 보여주는 작품들,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며 본인 글이 하나의 장르가 된 작가들을 고루 포함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나, 한계가 있었다. 한 권의 책 또는 모음 안에서 빛을 더 발하거나 다른 작품과 나란히 이었을 때 더 매력적인 작품들도 있었는데, 독립된 한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따져 선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면서도 여전히 아쉽다. 작가, 작품집, 앤솔러지, 중편, 엽편 등 다양한 잣대로 작품을 평하고 꼽을 수 있는 날을 바랄 뿐이다.
정세랑의 「나는 동쪽으로 걸어갔다」는 세상의 멸망이 이 시대에는 다른 방면에서 찾아오며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멸망과 멸종을 치유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전통적인 이야기에서 악당의 역할이었는데, 사실은 그 악당에게 찬성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 작가의 시선이 독특하고 따스하다.
오정연의 「미지의 우주」와 정재은의 「내 여자친구의 다리」, 노말시티의 「자율 주행 알고리즘 최적화를 위한 비공식 합의팀」은 한때 아주 좁은 범위의 인간만이 SF의 주인공일 수 있었던 시대를 지나 이전에 그늘에 지워지거나 존재한다는 인정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 시점 또는 주 소재로 삼아서 SF의 영역을 또 한 번 넓혔다. 「미지의 우주」에서 절절히 느껴지는 당사자성, 「내 여자친구의 다리」에서 돋보이는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감성, 「자율 주행 알고리즘 최적화를 위한 비공식 합의팀」의 단번에 빨아들이는 구성력과 유쾌한 매력은 각 작품만의 고유한 장점이다.
정소연의 「무심」과 듀나의 「왕의 넋」은 길지 않은 분량 안에서 인간 관계와 인간성에 관하여 생각하게 하고, 당연한 듯 뿌리 박혔으나 사실 그리 오래지도 않은 현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도, 단면적일 수 있는 소재가 멋진 소설로 탈바꿈하는 데에 작가의 저력과 매력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해도연의 「위그드라실의 여신들」은 현재 과학과 천문학적 사실에서 출발해서 상상력과 드라마를 결합시킨, 소위 정통 하드 SF라고 할 수 있을 법한 작품이다. 신화적인 명칭이 현실적이리만큼 꼼꼼한 우주 탐사와 행성 묘사에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김동식의 「볶음밥 인간」은 유머스럽고 대범한 발상을 호쾌할 만큼 압축하여 풀어낸 작품으로, 엽편 분야가 있다면 독식하리라는 생각이 들 만큼 독보적이었다.
심너울의 「세상을 끝내는 데에 필요한 점프의 횟수」는 생활감 넘치는 현재로부터 출발해서 아득히 먼 곳까지 가는 도약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중에서 잠시 짚고 넘어가듯 아이디어 자체는 어쩌면 장자로부터 시작해 필립 K. 딕의 작품들을 거쳐 영화 매트릭스로 진작에 꽃피었던 SF의 큰 주제를 되풀이하는 것일지 모른다. 외계인을 넣든, 신을 넣든 조물주가 이 세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을 통해 만들었으며 이 세상 외부에 진짜 세상이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흔하다. 그러나 고도로 발달한, 마법과 구분되지 않는 과학이 막대한 자본과 도구, 또는 강대한 마법 등이 아니라 손안의 도구인 동시대의 한국을 배경으로 이런 이야기를 자아낼 수 있었다는 점이 놀랍다. 주인공과 그 이전 프로그래머의 결단이 영웅주의보다는 악의의 경계에서 비롯한다는 점, 이룬 업적보다 사라진 것들에 대한 조의를 표한다는 점 또한 이 시대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김초엽의 「나를 키우는 주인들은 너무 빨리 죽어버린다(스펙트럼)」 또한 소재를 요약하면 아주 전통적이고 흔한 이야기일 수 있다. 우주의 다른 지성체와 만나고 돌아온 이야기, 그 진위를 의심받는 사람의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그 안의 모든 요소가 세련되고 새로우며 진취적이다. 외계인들의 언어가 소리나 문자가 아닐 수 있다는 것, 그들이 실제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존재이기를 ‘선택’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묘사, 그 인연의 진위를 의심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모호한 거짓 속에 갈무리하는 마음이 제국주의적인 침공이나 지배와는 반대편에 서 있다는 점과 이 이야기가 할머니에게서 손녀로 이어진다는 것까지, 마치 같은 테마와 구조를 가진 SF의 거울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르다. 가장 전통적인 SF의 가장 새로운 버전, 21세기적 응답이라고 해도 좋겠다.
구병모의 「미러리즘」은 어느 날 약물 테러에 희생되어 많은 것이 변하고 박탈된 사람의 일화를 담은 작품이다. 약물로 인해 몸이 변이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묘사하기에 앞서 주인공에게 찾아오는 외부적 변화 또는 박탈을 차례대로 보여준다. 괴물 또는 범죄자에게 주어질 법한 인식과 취급에 분노할 때쯤에야 그 변화가 어느 정도로 평범하고 작은 일인지를 드러내는 것이 반전이다. 제목과 유사한 단어인, 미러링으로 단순하고 뻔하게 끝날 가능성이 높은 소재였으나, 한 인물에게 닥친 일과 변화로 좁혀 강력하게 휘어잡아 이야기를 끌고 나간 것, 감정의 결들을 세심하게 상상하고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독자에게 전달한 것, 줄여서 이런 작품으로 만들어낸 것은 온전히 작가의 능력이다.
고호관의 「아직은 끝이 아니야」 또한 사소한 사건에서 시작하여 창대한 결말을 맞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심너울의 작품과 맥을 같이 한다. 오자가 실제로 글 또는 말의 오염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며 학문의 대상이 되는 세계에서 최고 권력자에 관한 기사에만 치명적인 오자가 일어나는 사건이 일어나는 앞부분은 풍자 또는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며 ‘오염’을 권력자가 말살하려 할 때, 이 이야기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옛말의 SF 버전이 된다. 말과 글의 사회적 역할, 언어의 생명력과 현재 사회의 모습, 특히 최근에 일어난 불행한 죽음들까지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또한 결말을 보고 나면 제목에 무릎을 치게 되는, 기분 좋은 놀라움을 선사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본선에 올라갈 작품을 고르기 어려웠던 것만큼이나, 대상작을 꼽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 가능하다면 모두를 대상작으로 꼽고 싶었다는 것이 입발린 상찬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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