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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어워드 2019

SF어워드 2019 - 영상 부문 수상작 및 심사평

SF어워드 2019

몇년 전 알파고와 이세돌이 벌인 세기의 바둑대결을 보면서 어릴 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미래사회의 모습이 어느덧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이 실감 났습니다. 드론이 하늘을 날고 차가 알아서 주행하며 화성을 식민지로 만들 준비까지 하는 요즘, 제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인공지능을 주제 삼아 상상을 펼쳐 봤습니다. 인공지능이란 고민하고 판단하는 존재인가, 아님 결국 프로그램 된 대로 명령을 따르는 기계일 뿐인가? 인공 지능이 바라보는 세상은 우리의 시선과 많이 다를까? 애정을 느끼고, 애정을 줄 수 있을까? 바둑을 보며 시작된 생각들이 결국 <이브>라는 단편영화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브》 심사평 중에서

코미디와 아포칼립스물을 제대로 엮어낸 수작

- 김봉석


단편영화에서 시도해 볼만한 설정과 아이디어가 영화적 재미까지 준 작품.

- 양정화


안정적인 연출, 배우의 연기도 좋다.

- 이소영


지옥문(Porte de l`Enfer’)

Per me si va ne la citta dolente,
per me si va ne l'etterno dolore,
per me si va tra la perduta gente.

Lasciate ogni speranza, voi ch’intrate.

나를 거치는 자 비탄에 잠길 것이고
나를 지나는자 영원에 고통받으며
나를 통하는 자 파멸에 이르리라

이곳에 들어오는 그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 「신곡-지옥편」 에서 발췌.


《지옥문》 심사평 중에서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기발한 상상력

- 김봉석


애니메이션 작법 자체의 높은 완성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연출자의 메시지 또한 명확하게 전달되는 작품

- 양정화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으려 노력한 작품입니다. 작품의 성과를 떠나 즐겁게 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킹덤 시즌 1》 심사평 중에서

한국적 좀비일 뿐 아니라 논리적인 개연성과 섬뜩한 공포까지 잘 담아낸 작품

- 김봉석


좀비를 소재로 한 사극 크리처물이 넷플릭스의 자본과 만나 상상력의 한계치를 최대한 구현해본 작품

- 양정화


상상력, 영상미, 서사의 매력까지 삼박자를 다 갖춘 작품

- 이소영






영상 부문 심사위원
김봉석

몇 년 전에 비하면, 최근 한국에서 만들어진 SF 영화(장편, 단편)와 SF 드라마(웹드라마 포함)의 수는 엄청나게 늘었다. 봐야할 작품의 숫자가 너무 적어서 곤란했던 해가 있었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행복했다. 상업영화계에서 만드는 영화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나이와 생각을 가진 이들이 저마다의 상상을 흥미로운 영상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떤 점을 더 높게 평가하여 본심작을 고르고, 상을 줄 것인가 고심해야 했다.

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SF는 최근 한국에서 대단히 흥미롭고 뜨겁게 달아오르는 분야다. 소설에서, 만화에서, 영상에서 만들어지는 SF는 양도 많아졌고, 질적인 부분에서도 일취월장했다. 이제 한국 문화지형의 중심에 SF가 있다고 해도 될 정도에 이르른 것이 사실이다. 올해 영상 부문에서는 특히 단편 SF영화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전에 비해 편수도 많아졌고, 로봇과 A.I. 그리고 환경오염 등 주로 이야기되던 소재만이 아니라 다양한 발상과 소재를 끌어들여 SF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영상 부문의 SF는 가공의 세계나 존재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보통의 영상물에 비해 제작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지타산이 중요한 장편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SF 제작에 대단히 신중하다. 아직까지 SF 블록버스터가 한국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좀비물인 <부산행>에 이어 재난물 <엑시트>와 <백두산>의 흥행을 본다면 액션이나 스릴러와 결합된 SF 블록버스터의 등장도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상을 받은 <이브>는 <터미네이터>를 패러디하면서 코미디와 아포칼립스물을 제대로 엮어낸 수작이다. 상업적인 SF 단편이 지나치게 의미에 치중하거나 현란한 영상에만 의존하는 경향을 능숙하게 뛰어넘었다.

우수상의 <지옥문>은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기발한 상상력이 눈을 사로잡았다. 한국의 열악한 애니메이션 현황을 감안하면 더욱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킹덤>은 근래 SF에 편입된 좀비물의 수작이다. 한국적 좀비일 뿐 아니라 논리적인 개연성과 섬뜩한 공포까지 잘 담아낸 작품이다.

그밖에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를 섬세하게 포착한 <점선대로>, 너드의 사랑을 경쾌하게 표현한 <L+>, SF뮤지컬 <미지와의 조우>, 초능력자물 <프라사드>, 고등학생의 재기발랄한 소품 <신사씨남정기>등도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그들의 상상력이 더욱 뻗어나가기를 바란다.




영상 부문 심사위원
양정화

총평

전년보다 상대적으로 단편 작품들의 숫자가 늘어나서 심사 과정이 즐거웠다. 장편의 경우, 기술적 완성도 측면에서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하였으나 아무래도 오리지널리티에 집중하여 수상작을 선정한 측면이 있다. <인랑>은 영화적 시도는 존중받을 만 하지만, 각색의 방향성 면에서 길을 잃었고, <고래먼지>는 SF적 상상력의 구현이 자본과 만났다는 면에서 흥미롭게 보았던 작품이다. 수상작이 되지 못해 아쉬웠던 작품은 <스핑크스>이다. 어쩌면 전형적인 SF영화를 만들고자 한 신선한(?) 시도를 높이 평가한다. 10대 학생들이 만든 SF영화들 <2030 신사씨남정기> <Restart: 새로운 시작>을 보면서는 이제는 영상 세대라고 별칭하지 않아도 영상콘텐츠를 활자와 동일하게 체득하며 성장하는 세대들과 함께 호흡해야만 하는 시대 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SF어워드의 대상작이 되었던 모든 연출자들에게 존경을 보내며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킹덤>

좀비를 소재로 한 사극 크리처물이 넷플릭스의 자본과 만나 상상력의 한계치를 최대한 구현해본 작품이다. 공중파나 지상파의 한계를 넘어 제작되어 기존 TV드라마 제작의 문법에도 많은 영향력을 끼친, 의미있는 작품이다.

<지옥문>

유일한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지옥문을 통과하는 자와 그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들을 현실 세계에 빗대어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애니메이션 작법 자체의 높은 완성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연출자의 메시지 또한 명확하게 전달되는 작품이다.

<이브>

기계와 인간의 대립, 시간여행을 다뤘다는 면에서 <터미네이터>를 연상케 하지만, 평범한 루저(실은 그는 출중한 두뇌를 가졌다)처럼 보이는 찌질남이 자신이 만든 완벽한 외모의 기계를 어느새 사랑하게 된다는 코믹한 설정, 미래에서 온 자가 그들의 일상을 파고들면서 파생되는 상황과 촌각을 다투는 미션 등 단편영화에서 시도해 볼만한 설정과 아이디어가 영화적 재미까지 준 작품이었다.




영상 부문 심사위원
이소영

제한적인 예산과 인프라 속에서 SF를 만들어내는 단편 영화들이 인상적이었다. 지금 젊은 영화인에게 SF란 세계는 현실에 당도한 절박한 문제라고 말하는 작품들이 꽤 보였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과 정치가 AI 등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더 많은 사고 실험이 필요하지 않을까. 확실한 건, 영화에선 하고 있다는 것. 너무도 반가웠다!

본심에 오른 작품 중 <2030 신사씨남정기>와 <점선대로>가 그런 면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2030 신사씨남정기>는 고등학생이 저출산으로 인해 혼자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스마트폰 인공지능이 유일한 친구다. 그리고 어느 날, 이 학교에 유일한 전학생이 온다.! -이런 이야기다. 짧은 분량의 단편이며 다른 단편들에 비해 장비와 지원 면에서 충분하지 않아 웰메이드라 보긴 어려웠으나, 감독의 재기발랄과 단편의 호흡은 탁월했다.
<점선대로>는 사람의 뇌와 인공지능의 뇌를 반반씩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겪는 문제다.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SF적인 미장센을 공간의 모습으로 효율적으로 보여준 것도 인상적이었다.
<지네소리>도 빠질 수 없다. 미래세계에 암흑의 일을 하는 것으로 유추되는 주인공이 상자를 뒤집어쓴 채 홀로 있다. 핏빛 공간과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귀여운 인공지능 캐릭터의 그림의 상반된 이미지 배치는 영리하고 재밌었다. 김민석 감독이 장편 연출을 한다면 어떤 작품이 나올지 궁금했다.
본심에 유일한 애니메이션이었던 <지옥문>의 재치도 인상적이었다. 선량해 보이는 청년이 죽어 지옥문 앞에 섰는데, 도무지 왜 자신이 지옥에 와야 하는지 모른다. 행정처리를 하는 과정에 오류가 발생했다고 지옥의 존재들이 말하는데, 행정 절차는 느리고, 반복돼 청년을 미쳐버릴 거 같다. 마지막에 작은 반전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똑똑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똑똑함’은 높지 않았을 연출의 예산을 효율적인 이미지 반복으로 보여줌으로써 그 ‘한계’ 자체가 개성이 되는 긍정적 방향을 점유했다는 데에 있다. 감탄했다!
끝까지 대상으로 경합했던 <스핑크스>는 웰메이드한 단편이었다. 로봇조사관이 스스로 죽은 로봇의 오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스핑크스의 질문’에 당도하게 된다. 이 질문이 모호함이 아닌 철학적 놀라움과 귀결되었다면 상당한 수작이 되지 않았을까, 아쉬움을 남긴다.

장편 부분 본심에는 <고래먼지>, <킹덤 시즌1>, <라이프 온 마스>가 올라왔다.
각각의 개성이 뚜렷한 작품이라서 선정이 쉽지 않았다. 무엇이 무엇보다 못하다기보단, 오리지널리티와 장편이 가지는 서사의 매력을 위주로 뽑았다.
<라이프 온 마스>는 그런 면에서 <킹덤> 못지않은 작품이었다. 다만, 영국 드라마 원작이라는 면 때문에 아쉽게도 킹덤에 밀렸다. 그런데도 이대일 작가의 미래는 앞으로가 더 밝은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한국적으로 짜임새 있게 만들어낸 그 힘은 놀라웠다.
<고래먼지> 신선한 미래의 이미지들로 시선을 끌었다. 신우석 감독이 여러 광고에서 보여준 뛰어난 영상적 아이디어와 기술이 SF 이야기와 결합하면 어떤 시너지가 나오는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다만, 장편과 경합하기에는 서사가 관념적이고 짧았다. 장편으로 가는 길은 강철 같은 서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킹덤> 상상력, 영상미, 서사의 매력까지 삼박자를 다 갖춘 작품이었다. 넷플릭스라는 큰 자본이 투입돼서 그런 것이 아니냐, 라고 반문한다고 해도. 김은희 작가가 이미 여러 드라마에서 보여준 노련하게 긴 호흡을 꾸려내는 능력은 단순 자본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상작으로 선정된 <이브>
터미네이터의 패러디 같은 설정. ‘너의 인공지능 러브돌이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다! 그걸 막아라’이 임무를 듣고 왔으나, 상황은 쉽지가 않게 돌아가는 이야기.
신대용 감독은 이미 여러 번 단편 작업을 했던 분인가, 싶을 만큼 안정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각 배우의 연기도 좋았는데 그걸 뽑아낸 몫도 감독의 역할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단편 연출에서 안정적이란 개성이 약하다는 의미인가, 싶지만. 아니다. 얼핏 ‘많이 들어본 듯’한 것을 치맥 좋아하고 연애하고 싶은 청년 캐릭터를 가져오면서 신선하게 풀어낸다. 이런 능력이야말로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