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F어워드2021

SF어워드 2021 - 중·단편소설 부문 수상작 및 심사평


대상 「지신사의 훈김​」 이서영

작가 소개

혼자 쓴 책

『악어의 맛』, 2013, 온우주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2020, 알마
『유미의 연인』, 2021, 아작

같이 쓴 책
『이웃집 슈퍼히어로』, 2015, 황금가지
『다행히 졸업』, 2016, 창비
『여성작가SF단편모음집』, 2018, 온우주
『아직은 끝이 아니야』, 2019, 아작
『기기인 도로』, 2021, 아작
『인어의 걸음마』, 2021, 서해문집

작품 소개

작품집 『기기인 도로』는 5명의 작가가 ‘도로’라는 한 명의 증기 인간을 중심으로 만든 조선조 스팀펑크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신사의 훈김」은 ‘도로’가 영조대의 궁궐에 등장합니다. 이름과 기억을 잃은 도로는 홍인한에 의해 ‘덕로’라는 이름을 받고, 세손 산의 설서로서 새로운 삶을 부여받게 됩니다.


작가의 말

이데올로기에 근간을 두고 계획한 국가시스템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현실 사회주의 국가를 언급하며 불가능하단 식으로 말하지만, 재밌게도 조선이라는 사례가 있습니다. 다양한 권력과 하부구조의 작동이 개입되지만, 조선은 언제나 그 스스로가 상부구조에서 탄생한 시스템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공표합니다. 서학이나 불교와 같은 이단을 강력하게 처벌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모든 이데올로기가 그러하듯, 유학 역시 온전하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현실 세계(정치)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는 총체가 되어야 하고, 총체가 된다는 건 이단으로서 가질 수 있는 일관성을 잃어버린다는 의미죠. 오래전부터 홍국영과 정조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었던 차에, 조선조 스팀펑크 제안을 받고 홍국영을 증기 인간으로 만드는 안드로이드 이야기를 써 보았습니다. 수학적 질서 안에서는 현실에 개입하는 온전한 거경궁리의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이 소설은 BL(Boys Love)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유교SF로 읽어주신 독자분들과 정확하게 BL로 읽어주신 독자분들이 모두 많았습니다. 심사위원분들도 유교BL을 사랑해주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기껍습니다. 홍국영×정조는 리얼이고, 정조가 임금수입니다. 미리 읽고 조언해 준 친구 장유네와 동양풍 로맨스의 킹갓제네럴작가 김인정 님께도 감사합니다.

우수상 「리시안셔스​」 연여름

작가 소개

제2회 브릿G 로맨스릴러 공모전 우수작 달빛 수사

제5회 브릿G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 우수작  캐트닙 네트워크
SF 앤솔러지 나와 밍들의 세계시금치 소테수록 (황금가지. 2021)

작품 소개

대오염으로 인구 3분의 2를 잃은 지구는, 남은 인간들과 요새를 중심으로 행성 이주 프로젝트를 도모하지만 난항을 겪는 중이다. 그렇게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인간과 인간성에 대한 정의는 서서히 변해간다. 같은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어도 모두가 ‘인간’으로 불리지는 못하는 시대, 요새 바깥에서 힘겹게 살아오던 미등록 신분인 ‘진’은, 요새 내의 부유한 인간 ‘규희’에게 입양되어 ‘반려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 동안 규희의 곁에 자기 외에 다른 미등록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가의 말

한국 SF가 더 널리, 즐겁게 읽히면 좋겠습니다.

글쓰기에 언제나 지지를 보내주는 가족들,
그리고 황금가지 편집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우수상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 황모과

작가 소개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회원.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단편 부문 대상 모멘트 아케이드로 데뷔했다. MBC 시네마틱 드라마 SF8 <증강콩깍지> 원작자. 안전가옥 대스타앤솔로지로 발간됐다.
모멘트 아케이드는 영화화 계약을 체결해 현재 시나리오 개발 중이며 원작자 본인이 직접 참여한 웹툰 사이드 스토리로도 개발 중이다. 또한 모멘트 아케이드는 한국문학번역원이 후원하는 '한일 번역 콩쿨'의 과제작으로 선정되어 연내 일본어판 단권 출간이 예정되어 있다.
SF어워드 수상작인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가 수록된 단편집 <밤의 얼굴들>을 허블에서 출간했다.

작품 소개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

유골에 남아 있는 DNA를 추출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세계관으로, 일본 도심의 한 묘지에서 기거하는 부랑자가 화자로 등장한다. ‘나’는 한 한국인 여성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도움으로 이제껏 영문도 모른 채 소중히 간직해왔던 ‘머리카락 부적’이 누구의 머리카락인지 알게 된다. ‘나’가 잃어버렸던 과거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상흔이 함께 드러난다.
해당 소설은 미스터리로 남은 죽음을,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을 기억해내고자 애쓴다. ‘일본’이라는 공간적 배경에 발 딛고 있으면서, 현재와 100여 년 전의 과거를 자유롭게 오가며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그 결과, 과거 사람들이 겪은 시대의 폭력과 억압은 현재 우리의 슬픔으로 이어진다.

* 책 소개: 밤의 얼굴들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 수상 작가인 황모과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는 그 첫 번째 수록작이다.
만화와 같은 경쾌한 화법과 발칙한 상상력, 그리고 한국 국적자인 동시에 일본 영주권자라는 작가의 ‘경계자’의 정체성으로, 삶과 죽음, 현재와 역사, 세대와 세대,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작품들이 수록돼 있다.

작가의 말

몇 년 전, 일본 치바지역에서 관동대지진 학살피해자 무연고자 무덤을 답사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이 작품을 쓰게 됐습니다. 주위의 검소한 비석과 비교해도 너무 초라했던 무연고자 비석에, 소설 속에서라도 한국어로 된 묘비명을 새기고 싶었습니다. SF라는 앵글 안에서 가능했던 시도라 뜻깊습니다.

우리는 쉽게 과거로 떠나보냈지만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아 우리에게 말을 거는 이름 모를 분들께 수상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중단편소설 부문 심사평


중단편소설 부문 심사위원장
구한나리

작년에도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이 있지만, 올해는 더욱더 SF 작품의 출판이 늘었다. 해외에서 아시아 계열 작가들이 SF 분야에서 주목받기 시작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작가의 해외 번역이 활발해진 것도 반가운 일이다. 오랫동안 ‘불모지(웃음)’라는 말을 들으면서 활발히 활동해 온 중견 작가들은 여전히 훌륭한 작품으로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와 즐거움을 주고 있고, 최근 몇 년간 새롭게 등장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 수도 크게 늘었다. 해외의 SF, 특히 서구의 SF가 아닌 우리나라 작가들의 SF를 읽으며 성장한 작가의 글을 보는 것도 이제는 드물지 않다.

SF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절대적인 작품 수의 증가도 기쁘지만, 지금 바로 여기, 이 시점에 발을 디디고 선 사람이 더욱 각별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은 것도 인상적이다. 2년째에 접어드는 코로나 상황에서 사람들은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바뀔 수 있는지 느끼고 있다. 이 시점에서 SF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하겠다. 소위 ‘순수’ 문학 작가들이 SF를 쓰고, SF 작품이 문학상을 받는 것은 이제 특이할 일도 아니다.

웹소설을 제외하고라도 SF 소설을 읽을 수 있는 경로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일반 도서관과 전자도서관에서 SF 소설은 이제 ‘장르 작품은 구매신청을 받지 않습니다.’라고 거절당하지 않는다. 20년을 바라보는 웹진이 있을 정도로 웹진은 이제 드문 사이트가 아니며 그 외에도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SF 작품을 즐길 수 있다. 창작자들이 자기 작품을 공개하는 사이트는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가장 빨리 SF를 즐길 수 있는 경로가 되었으며 인터넷 서점의 구매 추천을 활용하면 좋아하는 작가뿐 아니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는 SF 작품의 존재를 손쉽게 알 수 있다. 큐레이션에 신경 쓴 동네서점에서 자신이 모르고 있던 SF 작품을 추천받아 읽게 되기도 하고, 저 작가를 좋아하신다면 이 작가도 읽어보시라고 권유를 받기도 한다. 그렇게 다양한 SF가 존재하며 읽을거리가 이렇게 많고 또 계속해서 많이 생기리라 생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영상물을 함께 즐기는 시대에 우리 SF 역시 국경을 넘어 SF의 한 줄기가 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올해는 480여 편의 중, 단편이 심사 대상이었다. 2020년 대상작이 300여 편이었으니 읽어야 할 분량이 훨씬 늘어났다는 뜻이지만 빠듯한 일정 하에도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즐거움이 더 컸다. 올해도 작년에 이어 작가 개인 단편선 뿐 아니라 다양한 기획의 작품집이 출판되어 하나의 소재나 주제를 작가들이 어떻게 풀어내는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480여 편 작품 중에 본심작 13편을 선정하는 것, 당선작과 수상작을 선정하는 과정 모두가 즐거웠다. 심사위원들이 생각하는 작품의 장단점을 들으면서 SF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품의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수상작을 선정한 후에도 한참을 좋아하는 SF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런 경험들을 다른 분들도 해 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다만 청소년 대상의 작품 중에 ‘청소년 물로서 훌륭하지만…’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 꽤 있었는데, 청소년 물로서의 독자성을 생각해서 조만간 심사 분야의 분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청소년 SF 독자가 곧 SF의 성인 독자층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꼭 고려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여름 작가의 「리시안셔스는 애프터 아포칼립스 시대에 대해 그려내는 흥미로운 작품으로, 작년의 본선 진출작인 「시금치 소테가 기억과 감정에 대해 섬세하게 다루고 있었던 것처럼 이번 작품은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서 무거운 질문을 던지면서 인물 사이의 감정을 정교하게 그려낸다.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을 그려내면서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문제점을 극대화한 SF의 세계관 묘사가 탁월하다.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주사를 맞아야 하는 세계, 인간이 ‘반려 인간’이 되고 파양 당하고 때로 자기 종료를 선택하는 세계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극단적인 모습을 그려내면서 섬뜩한 위기감조차 느끼게 한다. SF만이 가능한 현실 비판의 예시 같은 작품이다.

황모과 작가의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는 최근 활발히 나타나는 증강현실을 다루는 작품이면서도 SF가 시대를,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서 숙고하게 되는 작품이다. 같은 작가의 증강 콩깍지가 외모 지상주의 사회에서의 사랑에 대해서 그려내고 있다면 이 작품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우리가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하기 위해서 놓치거나 잊어버리려고 하는 무거운 역사적 사실들을 전면에 가져오면서 과거의 상처를 보듬는 방법을 그려낸다. 이 작품이 수록된 작품집 전반의 흐름 역시 그러한데, 모두 역사와 과거, 현실의 문제를 SF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그중 이 작품이 가장 탁월했지만 다른 작품 역시 더 많은 독자들이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서영 작가의 「지신사의 훈김」은 조선시대 배경의 스팀펑크 연작 소설인 『기기인 도로』의 독특함 안에서도 또 독특함이 두드러지는 작품으로, 심사위원 3명 중에 2명이 1순위로 대상작으로 꼽았던 작품이다. ‘조선 스팀 펑크’인 동시에 ‘유교 SF’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으며 또한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성이 탁월해 영상화를 포함한 다양한 장르로서의 확장성 역시 기대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좀비물을 제작한 넷플릭스가 ‘지신사 홍국영’을 전 세계에 알리지 못할 건 또 뭐란 말인가. 훈김을 뿜어내며 지신사 홍국영이 정조와 밀고 당기는 상황을 박진감 있게 풀어내는 스토리가 다른 시대적 상황과 얽히지 못할 까닭이 없고, 지신사가 다른 시대의 역사와 얽히지 못할 리도 없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과 아픔을 그려내 온 작가가 전혀 다른 분야에서 보여 준 성취이기도 하다. 스팀펑크라는 독특한 장르를 조선시대에 도입하면서 전혀 어색하지 않게 실제 역사적 사실과 절묘하게 엮어내면서 이미 역사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이랬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겠다고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든다. 지신사 홍국영을 포함해 인물들이 나누는 유교에 대한 대화 역시 전체 이야기에 녹아들면서 이야기의 현실성을 더한다. 홍국영을 그리기 위해서 유교 이야기를 넣은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지신사 홍국영이 존재한 것 같이 전체 이야기와 인물의 대화 전반에 유교 사상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것이다.

늘 이 작가를 추천하면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깨닫게 해 주는 작가’임을 이야기했는데, 이제는 ‘유교 SF가 있는데….’라고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시대 장르물이라고 하면 모 좀비물을 떠올리는 이들에게, 이제 조선시대 SF의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작가의 다양한 발걸음이 앞으로 또 어느 방향으로 뻗어나갈지 기대된다.


전혜진 작가의 「탯줄의 유예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 교육과 양육,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언제나 아이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보호자가 나노머신으로 아이를 계속 살필 수 있게 된다는 설정은 요즘 대학원생의 수업에 대해서 보호자가 대학원에 전화를 걸어왔다는 괴담을 떠올리게 한다. 꾸준히 다양한 분위기의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의 폭넓은 시야를 느낄 수 있었다.

김주영 작가의 「별별 사이는 청소년 SF로 청소년의 시각과 생활을 생생하게 녹여낸 멋진 작품이다. 보디스캐닝을 통해 제2의 몸을 움직인다는 흥미로운 설정 안에 엄마가 사실은 중요한 인물이었고 나쁜 조직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청소년들이 활약한다는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제니퍼를 포함한 등장인물들도 매력적이다. 화면 속에 등장하는 ‘어른들의 청소년’이 아닌 진짜 청소년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본선작에 진출한 작품뿐 아니라도 각자의 취향에 맞을 다양한 SF가 있으니, 혹시 ‘SF는 이러저러해야만 해!’라고 믿고 있는 독자나 ‘SF는 너무 ~~해서 싫어.’라는 독자가 있다면 올해 심사 대상작 도장 깨기에 도전해 보셔도 좋지 않을까. SF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변해왔고 범주가 넓어지고 있으니, 고정관념을 깨기에도, 미처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최애작품을 발견하기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적어도 2021년 현재에는, SF는 이러해야 한다, 이런 것이다, 라며 과거의 SF를 바탕으로 지금의 SF를 재단하는 일이 줄었으면 한다. SF에는 이런 것도 있다, SF는 이렇기도 하다는 말이 더 많이 들렸으면 좋겠다. 480여 편의 작품을 읽으면서 즐겁게 보낸 몇 달 동안의 기쁨을 많은 분도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단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금숲

처음 심사에 참여했다. 매년 작품 수가 늘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올해는 더욱 어마어마한 숫자가 쏟아졌고, 심사중에도 작품이 추가되었다. 행복하면서 당황스러웠다. 활발한 활동으로 동시에 여러 작품을 올린 작가분들이 적지 않아 더욱 기뻤다.

본선에 오른 작품도 모두 훌륭했기 때문에 수상작 선정에 난항을 예상했지만, 의외로 의견은 쉽게 모아졌다.


이서영 작가의 「지신사의 훈김은 스팀펑크 연작 앤솔로지 기기인 도로』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럼에도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었고, 모든 후보작 중에서 캐릭터의 매력이 가장 뛰어났던 작품이다. SF는 장르 특성상 캐릭터보다 다른 요소에 더 집중하는 작품의 수가 많기에(한편으론 그것이 이 장르의 장점이기는 하지만) 더욱 이 작품이 눈에 띄었다. 사람과, 사람과 닮게 만들어진 로봇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몰입감을 준다. 낯설 수 있는 조선의 단어들이 가득 나오지만, 펴자마자 순식간에 읽어내릴 수 있었던 이야기의 힘도 무척 강력했다. 그야말로 쉴틈없이 재미있다! 그러니 이 작품을 대상으로 추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무리는 연작임을 고려하여 읽어보면 맨 앞의 작품과 이어져 묘미가 있다. 스팀펑크로서는 모털 엔진보다도 훌륭하다 생각한다.

황모과 작가의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는 그의 작품집 밤의 얼굴들에 실려 있던 비슷한 소재의 작품들 중 가장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가상현실의 데이터로서의 인간을 다룬 작품을 그동안 많이 읽어왔지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데이터를 재발굴하는 황모과 작가의 아이디어는 또 신선하다. 그 위에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섞어넣고, 마음을 툭 건드려준다. 같은 책의 조금 더 개인적인 「당신의 기억은 유령과 역사적인 이 작품 중 고민하다 이 작품을 선정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그의 작품들 다수가 즐거운 고민을 안겨주었다. 뉴 러브에 실린 「나의 새로운 바다로는 동물형 인공지능이 인간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며 기계도 아닌 자신의 삶을 사는 존재가 되는 놀라운 이야기로, 본심에 오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울 정도였다.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

연여름 작가의 「리시안셔스는 최근 유행하는 기후재앙 세계를 다룬 작품들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많은 작품에서 인류는 첨단 대피시설에 거주하거나 신체를 강화하지만, 어떤 작품은 그 안에 들 수 없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는 계급화를 다룬 작품들도 더러 있었으되, 계급화가 심화된 나머지 인간이 완전하게 두 종류로 나뉘어지는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여기서 하위 분류는 아예 인간으로 불리지 않는다. 이는 최근 널리 이야기되기 시작한 동물권에 대해서까지 뻗어갈 수 있어 더 풍부한 작품이 되었다. 정교하게 그려진 배경과 이입이 좋은 캐릭터들도 장점이다. 여성 캐릭터에게 약자나 평등하고 자애로운 역할만 쥐어주지 않고 남성에게 흔히 주어졌던 평범한 강자의 역할을 제대로 연출한 것도 눈에 띈다.


수상작이나 본선에 오르지 못했어도 좋은 작품이 많았다. 특히 청소년이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작품들이 무척 궁금했기 때문에 이번 심사가 더욱 좋은 기회가 되었다. 어린이 대상의 SF는 독자의 독해 수준을 어디까지 고려해야 하는가와 장르적 재미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다른 장르보다 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김주영 작가의 「별 별 사이는 수많은 작품들 사이에서 독보적이었다. 어린이가 읽어도 어른이 읽어도 좋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너무 재미있다! 해킹 소재에서 가상 공간이란 아이디어를 쉽게 차용하지 않고 물리적 실체를 가진 아바타를 활용했는데, 탐정물의 성격도 가지고 있어서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다. 전혜진 작가의 「탯줄의 유예는 그간 읽어온 그의 작품 중 가장 깔끔하게 충격적이었으며, 거의 마지막까지 수상작 경합을 벌였던 작품이었다. 이번 심사에서 육아를 다루었던 작품들 중 가장 좋았다. 극히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문제점을 또 지극히 근미래에 다가올 듯한 아이디어에 얹어 단편답게 강하게 쳐냈다. 박해울 작가의 「요람 행성도 최근 유행하는 재앙 이후 다른 세계를 개척하는 이야기이지만, 인간 중심적 테라포밍에 대한 강렬한 사보타주 환경운동으로 진행된다. 위에서 언급한 세 작품은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훌륭한 ‘모녀 이야기’라는 점이다. 과거의 SF극들은 전부 ‘부자 이야기’로만 이루어져 있었으니 이제 그만!!이라는 소리까지 지겨울 정도다. 여성에게 마분지 캐릭터가 아닌 온전한 역할을 부여하는 좋은 작품은 올해도 정말 많이 늘었다. 해가 갈수록 평균적으로 SF작가들이 여성 캐릭터 또는 성소수자 캐릭터를 다루는 솜씨가 정교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어떤 지점에서는 우리 인류 사회가 아직 닿지 못한 곳이라도, 미리 가 볼 수 있게끔 해 주는 SF의 장점은 성평등에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우린 아직 갈 곳이 남아 있다.

이외에도 QR코드까지 삽입되어 작품의 감상을 다른 차원으로 확장한 「어머니의 도원향(문녹주X주아), 이민 우주선의 작은 세계를 많은 생각을 통해 쌓아올린 것이 보였던 「징수관의 몫(송한별)이 큰 울림을 주었다. 팬데믹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생활을 들여다 본 「벌레 폭풍(이종산)은 우리가 고립된 삶에서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지 생각한다. 캐릭터들에 대한 중성적인 서술도 큰 매력이다. 끝으로 이 모든 경합과 상관없이 「멸망한 세상에서 아이돌을 한다는 것(김폴짝)은 아포칼립스 사상 가장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중단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임태훈

올해 처음으로 심사위원에 합류했다. 심사 대상 작품의 수가 2020년 대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국 SF 창작과 출판이 양과 질 모두에서 비약적 상승기에 돌입했음을 실감했다. 소재와 주제, 스타일 면에서도 세계 SF계의 흐름과 당당히 견줄만한 다양성과 깊이가 있었다. 2020년대에는 한국 SF를 바라보는 안팎의 시선이 완전히 다른 스케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 놀라운 활기와 창의력, 생산성은 한국 SF 생태계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창작자에게 건강한 영향을 전하리라 기대된다.

본심에서 지지했던 작품은 총 다섯 편이었다. 각각 기후 SF(요람 행성), 증강현실과 역사(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 스팀 펑크(지신사의 훈김), 바이오 펑크(리시안셔스, 탯줄의 유예)로 불릴 수 있는 스타일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장르의 전형성을 해체하고 변용하는 지점으로 나아갔다. 금년도 수상 결과와 별개로 모두 다 소중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 「지신사의 훈김 이서영

세도 정치로 악명이 높은 홍국영이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기기인(汽機人)이었다는 스팀 펑크 설정에 군신 간의 BL 서사를, 씨줄과 날줄로 엮은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무엇보다 정조와 홍국영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한국에서 스팀 펑크 장르에 도전하려는 작가라면 두고두고 레퍼런스로 찾아 읽게 될 소설이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부디 눈 밝은 흥행사들이 「지신사의 훈김 의 재미를 알아보고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주길 바란다.

◆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황모과

이 소설이 수록된 황모과의 첫 소설집 밤의 얼굴들은 현대사의 아픔과 감동적으로 대화한 2020년대 한국 SF의 귀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SF와 역사의 비판적 접점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중국계 미국인 작가 켄 리우의 소설집 종이 동물원과 비교해서 읽어보길 바란다. 이 책에선 태평양 전쟁기의 조선인들이 1-2줄 짧게 언급될 뿐이다. 그것도 과히 속 편하게 읽어주기 어려운 맥락에 슬쩍 나온다. 불쌍한 식민지 조선인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었다. 한국 SF 작가가 그 역할을 맡아주길 기다렸다. 그런데 밤의 얼굴들이 그 일을 해냈다. SF의 상상력이 역사에 압도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었다. DNA 매칭 시스템과 증강현실 기술로 학살 피해자의 목소리를 불러내는 발상과 전개는 기발하면서 진중하다.

◆ 「리시안셔스」 연여름

'계급'은 세계 SF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논쟁적인 주제였다. 리시안셔스」는 인간이 개와 고양이처럼 인간의 반려동물이 되는 미래를 그린다. 대오염으로 전 인류의 3분의 2가 죽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생존 방식에 따라 세 분류로 나뉜다. 그중 최하 등급은 안전지대 바깥의 생존자들이다. 그들은 '미등록'으로 불리는데, 요새에서 거주하는 상급 생존자에게 '반려동물'로 간택되기도 한다. 2010년대 말부터 대중문화 전반에서 '계급'에 대한 상상력이 흥행 트렌드가 되었고, SF 역시 이 흐름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려는 이들에게 리시안셔스」는 되풀이 발견되고 다채롭게 해석될 것이다.

◆ 「요람 행성」  박해울

개인적으로 이번 심사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기후 SF(Cli-fi)로 분류될 한국 SF 소설을 집중적으로 찾아볼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래서 요람 행성과의 만남이 더욱 기쁘고 반가웠다. 작품의 무대는 테라포밍이 진행되는 외계 어느 별이다. 이곳에서 고독하게 일하던 하층 계급 여성 노동자는 자신의 임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거주에 적합한 쾌적한 기후와 환경에 대한 일반적 관점과 상상력은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것이 아닐까? 요람 행성은 인류세 기후 위기를 극복할 의식의 전환을 위해, 무엇부터 철저히 반성해야 하는가를 성찰한다. 이번 수상작에 포함되진 못했으나, 비평가로서 이 작품에 대해 다시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고 싶다.

◆ 「탯줄의 유예 전혜진

4살 된 아이를 기르고 있다. 아이가 성장하는 단계마다 '육아는 템빨'이라는 말의 의미를 절절히 실감하고 있다. 육아를 돕는 이런저런 아이템들은 이 시대 부모의 심성을 구성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탯줄의 유예」 에 등장하는 엄마와 딸은 생체 잉크와 나노 머신으로 연결되어 있다. 바이오테크놀로지와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미래의 탯줄이다. 소설을 다 읽고 우리 아이를 꼭 안아줬다. 수상작에 포함되진 못했으나,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감동에 깊이 감사드린다.

과천과학관 2021어워드 부서 : sfaward2021@gmail.com
 SF어워드운영위원회 : koreasf.award@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