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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어워드2021

SF어워드 2021 - 웹소설 부문 수상작 및 심사평


대상 저승 최후의 날​ 시아란

작가 소개

[작품]

2015 – 장편소설 이진수에게는 어려운 문제』 (동인지)
2019 – 단편소설 저승 최후의 날에 대한 기록 (안전가옥)
2021 – 장편소설 저승 최후의 날 (안전가옥/카카오페이지)
 
[수상]
2019 – 안전가옥대멸종 앤솔로지 공모전 당선

작품 소개

저승을 배경으로 하는 재난 SF

: 신과 함께로 우리에게 익숙한 시왕(十王)저승에 발생한 거대 재난. 하지만 방금 죽어 저승에 막 도착한 과학자들, 아직 서울에 살아있는 솔개부대, 미국 NASA 의 생존자들, 염라대왕을 필두로 한 저승 관료 조직 모두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카카오페이지 오리지널 웹소설
: 탄탄한 세계관 속의 다채로운 캐릭터들이 정교하게 설계된 SF 법칙을 따라가는 스케일 큰 이야기. 카카오페이지 오리지널로 공개된 안전가옥의 첫 온라인 연재작

작가의 말

이 작품의 원고는 2019년 5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작업된 것입니다. 전 지구적인 재해를 소재로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전 지구적인 재해가 닥쳐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죽음 너머의 세상을 다루는 글을 쓰는 내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세상의 격랑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작품이기에, 호평의 무게 또한 무겁게 느끼게 됩니다. 바라건대 우리가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우리의 내일은 우리의 오늘보다 더욱 존엄하기를 기원합니다.

우수상 덴타 클로니클​」 다카엔

작가 소개

바라누스, 신록의 늑대, 지난 여름, 덴타 클로니클


작품 소개

기체 고장과 쌍둥이 블랙홀의 이변으로 인해 무인 행성에 불시착하게 된 리안.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원시 행성 리아나에서 뜻밖의 존재와 조우하게 된다.  
전 우주를 공포로 몰아넣은, 엽록아종이라 불리는 기생체들.
리안은 구조대가 올 때까지 살아남기 위해 고분군투한다.
그런데 행성 곳곳에서 발견되는 잔해와 흔적들이 수상쩍다.
 
촉촉한 촉수물이 되고 싶었지만,
생존 아포칼립스물이 되어 버린 촉수물!

작가의 말

처음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누가 이런 소재를 써 주지 않기에, 자급자족하자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덴타 클로니클 역시 그렇게 쓰게 된 소설로 바이러스형 좀비가 아닌, 다른 형태의 좀비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BL이라는 장르적 특징을 더하니 기생형 식물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요.
  
색다른 소재라고 생각하며 신나게 쓸 당시만 해도 이런 상을 받게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쟁쟁한 작품들과 함께 본심 진출작으로 선정된 것도 놀라웠는데 이렇게 수상까지 하게 되다니. BL장르에서도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라 이번 수상이 더욱 뜻깊은 것 같습니다.
정말 편견 없이 열려 있는 SF 장르가 널리 흥하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쓰고 싶은 글을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수상 철수를 구하시오​ 가짜과학자

작가 소개

철수를 구하시오


작품 소개

시험문제 단골손님인 철수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먼 우주에서 날아온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궤적을 그리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소행성은 거대했습니다. 철수가 살고 있는 시대의 기술로는 파괴할 수도, 궤도를 틀게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결국 소행성 대책은 모두 실패로 돌아갑니다. 소행성은 예정대로 지구에 떨어졌고, 인류는 멸망의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일반시민이었던 철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철수의 삶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철수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린시절이었습니다. 종말을 비롯한 몇 가지 기억과 함께 철수는 과거로, 혹은 과거와 동등한 세계로 돌아왔다는 것을 인지합니다.
기억을 토대로, 철수는 다시금 종말과 마주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합니다. 그리고 종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기 시작합니다.

이 내용을 시험문제풍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술형)철수는 지구에서 소행성 라마를 관찰하고 있다. 소행성 라마는 17.5km/s의 속도로 지구에 접근하고 있으며 가속 중에 있다. 이 때, 철수를 구하시오(4점)

작가의 말

처음 글을 시작할 때는 겁이 별로 없었습니다. 철수를 구하시오는 어디까지나 자기만족에서 시작한 글이었고, 소재와 작법 상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힘들 거라는 걸 지레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상외로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며, 입소문을 내주시더군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제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 간접적으로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인기를 얻게 되어서였을까요. 시야가 좁아졌던 것 같습니다. 글의 진행중에 굴곡이 발생하는 것도 모를 정도로요.  
뒤늦게 이야기에 설득력이 부족했다 느끼는 독자분들이 많은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늦게나마 고쳐 써 보기도 했지만, 실망감을 되돌리기에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많이 죄송스러웠습니다. 연재를 잠시 중단하고 다시 한 번 글을 고쳐볼까도 생각하는 등, 나름대로 해결책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또렷한 방법은 없었고 글을 고쳐봐야 아무리 생각해도 독자분들께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드리는 것 이상은 될 수는 없을 것 같더군요. 장면을 말끔하게 수정한다 하더라도 이미 보신 독자분들에게는 한 번 보았던 장면을 계속 보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결국 글을 수정하는 건 그만두고 완결을 내는 것에 주안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흔들렸기 때문인지, 갈피를 잡기가 힘들더군요. 이미 한 번 생긴 굴곡도 계속 신경이 쓰였고, 글을 이렇게 써도 괜찮나 겁도 들어 글이 많이 흔들렸던 것 같습니다.  
곡절 끝에 결국 완결을 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아쉬움이 발목을 붙잡더군요.

독자분들의 최초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한 것.
소재로 차용한 밈을 퇴색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것.
소재의 가능성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했다는 것.
모두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고민하다 글을 전반적으로 고쳐보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최소한 글을 끝까지 봐주신 분들에게 선물이라도 되기를 바라고요.
 
사실 한 번 크게 실망하고 돌아선 분들도 다시 봐주었으면 했습니다만 다시 실망시켜 드릴까 겁이나 차마 그 말은 못하겠더군요. 제 기준에서는 나아졌지만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는 어떤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다행히도, 많은 분들께서도 글이 다시 좋아졌다고 봐주시고 돌아봐 주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상까지 주신 것도 글이 이전보다 좋아졌다고 봐주셨기 때문이겠죠.
 
고맙습니다. 다시 읽어주셔서.
이 자리를 빌어, 좋게 봐주신 독자 분들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또한, SF어워드에도 감사 인사드립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할 기회가 흔치 않은데, 말할 기회를 주신 것에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웹소설 부문 심사평


웹소설 부문 심사위원장
김효진

2019년부터 신설된 웹소설의 올해 심사 소감은 마가렛 애트우트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고자 한다. 마가렛 애트우드는 2018년 가디언즈와의 인터뷰에서 “SF는 언제나 지금을 말한다”고 했다. SF라고 해서 반드시 근미래나 우주를 다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 두발을 단단히 딛고 서 있어도 얼마든지 SF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올해 수많은 웹소설 작품들을 읽으며 느낀 바이기도 하다. 작품들 속 SF 설정이 비록 우주나 외계 생명체, 과학적 상상력을 다루었지만 그 작품들을 읽는 독자로서는 그 안에서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고 내 삶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는 뜻깊은 시간이었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웹소설에서는 SF가 아직 다른 장르들처럼 분류되어 있지 않아 심사하는 내내 SF는 웹소설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고민했다. 웹소설의 특성과 SF라는 장르의 만남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을 고르기 위해 심사위원님들께서 함께 고생해 주셨다. 웹소설 심사는 후보작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한 작품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작품당 워낙 긴호흡을 가지고 있고 또 여러 플랫폼에서 하루에도 쏟아지는 작품의 수가 워낙 방대해 간혹 놓칠 수 있는 작품들이 있었는데 올해 역시 독자들의 제보로 보완할 수 있었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후보작 리스트업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제보해 주신 독자분들 덕분에 좋은 작품을 놓치지 않고 심사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독자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웹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작품의 소재, 배경과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서의 부조리한 경험, 감정들에 대해 피하거나 감추는 주인공이 아닌, 직접 정면 돌파하며 싸워나가는 모습을 통해 현실에서의 안일하고 부조리한 사람들의 모습에 지친 독자들이 통쾌함과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이상적으로는 정정당당하고 솔직한 인간이고자 하지만, 녹녹지 않은 현실 속에서 그렇지 못함에 실망하고 위축된다. 그런 우리들에게, 웹소설은 역경을 이겨나가는 주인공을 통한 대리만족과 함께 그런 인물로 나아가도록 다짐을 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온갖 고난을 겪어 내지만 굴하지 않고 이성과 논리가 살아있는 인물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행동해 나가는 모습을 통해 위안을 삼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지금을 이야기하는 SF로, 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과학적 논리가 살아있는 작품들이 본심을 거쳐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더욱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장기화로 인해 심신이 많이 지쳐 있는 지금,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었던 위로와 안정마저 위협받고 있다. SF 웹소설을 접하며 많은 독자들이 과학적 상상력의 즐거움과 더불어 그 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올해 역시 심사와 시상식이 비대면과 최소대면으로 진행이 되지만, 내년 시상식에선 많은 독자들과 함께 좋은 작품들을 축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대상에 저승 최후의날, 우수상에 철수를 구하시오, 덴타 클로니클이 선정되었다. 수상하신 작가분들께 축하의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도 좋은 작품 작업 많이 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최종심사에서 심사위원들과 함께 세 작품에 대해 논의한 부분은 이렇다. : 이야기의 매력과 더불어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저승 최후의 날을, 웹소설의 정체성에 충실한 작품으로 철수를 구하시오, 그리고 덴타 클로니클은 매력적인 스토리와 장르적 비편향성을 지닌 작품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각 작품들의 설정이 매력적이고 재미있다는 점에 모두 공감했다. 세 작품 뿐 아니라 본심작에 오른 작품들, 그리고 전체 심사를 하며 접한 작품들에서도 느낀 부분은, 이야기가 인간 중심주의적 관점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는 SF 작품을 경험하는 색다른 이유로도 꼽을 수 있다. 인간 중심적인 관점이 아니라는 건 인간이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간이 소중한 만큼 그 어떤 생명체도, 그리고 인간의 문화와 다른 전혀 새로운 문화 역시 존중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SF 작품들을 통해 인간 중심이 아닌 보다 확장된 사고와 상상력, 그리고 그 안에서 생겨나는 경이감을 경험해 보시길 바란다.

저승 최후의 날은 천문학 재해로 인해 지구가 멸망하면서 이승에서 저승을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저승도 소멸한다는 설정이다. 우리나라의 토착 신앙과 불교에서 언급되는 저승, 그리고 다른 믿음과 종교의 저승까지도 폭넓고 흥미롭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이다. 믿음으로 이어진 저승의 모습을 상상하는 재미와 더불어 저승의 소멸을 막기 위해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함께 따라가는 즐거움이 있는 작품이다.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현실에서는 때론 권력과 탐욕이 과학적 사고와 논리의 우위에 있을 때가 있어 실망하고 위축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 속 저승에서는 과학적 사고와 논리가 방해 받지 않고 저승의 시스템 안에서 건강한 토론과 문제해결로 이어진다. 구조적으로 권력과 탐욕이 견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승에 저승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탄탄하게 잘 짜여진 SF 저승 이야기를 즐기실 수 있을 것이다.

작년부터 이슈가 많이 되었던 철수를 구하시오는 올해 완결을 통해 수상한 작품이다. 웹소설 독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많이 알려진 작품이라 생각된다. 저승 최후의 날과 유사하게, 소행성 라마가 지구에 충돌하며 멸망한다. 지구가 멸망할 때마다 과거로 끊임없이 회귀하며 지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철수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 등장하는 여러 과학 지식들을 체크해 보는 재미가 있다. 더불어 제목이 ‘지구를 구하시오’가 아닌 ‘철수를 구하시오’라는 점은 독자들에게 새로움을 안길 것으로 여겨진다. 제목에서 철수를 구하는 주체가 누구일지를 상상하며 추론해 나간다면 그 재미가 배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결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다음 수상작인 덴타 클로니클은 전자책으로, 웹소설 작품들의 긴 호흡에 비해 짧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SF와 BL이 전자책에서 어떻게 잘 어우러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미개척지구 행성을 탐사하는 탐험가 리안이 무인 행성에 불시착해 일어나는 이야기다. 탐험가 협회가 있어 탐험 규약이 존재하고 이를 준수하는 탐험가들이 행성탐험을 나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많이 이뤄진 시대를 다룬 작품이다. 우리에게 과학적 호기심과 인간의 이기심이 함께 존재할 때의 위험성에 대해 한번쯤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웹소설 부문 심사위원
김태권

"SF어워드 2021 웹소설 부문"이라는 이름에  가지 심사 기준이 드러나 있다. 하나는 작품에 '웹소설' 특징이 드러나야 한다는 점이다. 하나는 작품이 'SF' 정체성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SF로서의 정체성, 부분이 특히 쉽지 않았다. 첫째로 웹소설 플랫폼 가운데 SF 서브장르로 정리해둔 곳이 많지 않았다. SF 카테고리가 설정되어 있는 경우에도, 깔끔하게 운영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이 인접장르인 '현대판타지' 때로는 'BL' 들어가 한편 한편 찾아내 심사해야 하기도 했다

둘째로 SF 정체성을 갖추었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 많았다. SF 특징이 분명히 들어있지만, '기업소설' 또는 'BL' 성격이 강한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 있었다. 특히 '게임소설' 이런 경우가 많았다. 본격적으로 심사에 들어가기 전에 온라인 회의를 열어, 이런 작품보다는 SF 특징이 드러난 작품에 좋은 평가를 주기로 합의한 있다. 그러다 보니 재미있는 작품인데도 본심에 올라가지 못한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아쉬운 작품이 있다. 작품을 거론하겠다. 투명한 드래곤 도입도 재미있고 발상도 창의적이었다. 읽기에 따라서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또는 "비평이란 무엇인가" 대한 문학사의 오랜 문제의식을 건드린 작품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다만 '게임소설' 성격이 강해, 앞서 밝힌 심사기준에 따르면 'SF 정체성' 약하다고 봤다. 그래서 아쉽게 최종 수상 목록에 올라가지 않았다.

작품은 덴타 클로니클이다. BL소설이지만 SF 정체성이라는 기준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고 완성도가 높았다. 다만 웹소설의 특징이 드러나있다고 보기 힘들었다. 훌륭한 작품이고 결국 수상도 했지만 최우수상이 되지 못한 까닭은 그래서였다.

문제는, 웹소설의 특징과 SF 정체성이라는 기준이 과연 웹소설에서 SF 장르가 나아가야 근사한 방향이기만 한가 하는 점이다. 이를테면 웹소설의 특징이 드러나는 작품 가운데 "회빙환" 코드(회귀, 빙의, 환생)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회빙환 코드가 들어가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기 어렵다" 그쪽 업계의 이야기도 들린다. 경우에 따라 SF 외연을 넓힐 작품으로 평가받을 기대작이, 기준으로는 SF 정체성이 부족하다고 평가받을 수도 있다. 이런 점들은 SF어워드가 해를 거듭하며 앞으로 보완되어야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웹소설 부문 심사위원
전혜정

SF 어워드 심사에 3년 연속 참여했다. 웹소설 부문이 생긴지 3년 째이기도 하다.

첫 해는 웹소설 필드에 얼마나 괜찮은 SF 작품들이 있는지, 이것도 소개하고 저것도 소개하고 싶은 기대감으로 임했다. 반면 작년은 좀 달랐다. 다양한 장르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웹소설 냄비 속에서, SF 장르라고 했을 때 기대하게 되는 바로 그 요소들이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을 선별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했다.

막상 그렇게 뽑고 보니, 우수작들은 뚜렷한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뉘었다. 한 쪽은 완성도도 높고 대중성도 높고 트랜스미디어성도 높은 작품, 즉 웹툰이 되었거나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거나 장편소설 형식(웹소설 자체를 그대로 책으로 묶는 것과는 다르다)으로 리메이크 되어도 재미있을 작품들이었다. 다른 한 쪽은 웹소설이라는 매체 형식이 작품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다 못해 그 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들이었다. 우리는 후자를 ‘매체 스토리텔링의 궁극’이라고 부른다. 매체가 가진 고유한 특징을 최대한 활용하여 스토리텔링의 지평을 좀 더 열어 보이는 것이다. 심사위원단들은 ‘웹소설이었기에 가능했던’ 후자를 작년의 대상으로 선정했다.

올해는 참 어려웠다. 많은 작품을 읽거나 선별하느라 어려운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의문과 싸웠기 때문이었다. 웹소설에서는 우리가 알던 장르명이 자꾸 미끄러진다. ‘장르’라는 단어는 너도 알고 나도 안다는 가정하에 사용하는 흔한 단어 중에 하나다. 그러나 문학의 장르에 뭐가 있느냐고 물어보면, 누군가는 서정양식, 서사양식, 극양식이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롤플레잉, 어드벤처, 퍼즐, 시뮬레이션 등으로 대답할 것이다. 우리가 흔히 장르문학에서 쓰이는 장르명은 영화와 가장 많이 공유한다. 지향면에서 영화와 가장 비슷하기도 하다 보니 서로 주고받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는 위에서 말했듯, 매체가 가진 고유한 특징을 최대한 활용하여 스토리텔링의 지평을 열어오고 있는, 매체 스토리텔링의 궁극을 보여주는 장르다. 종이의 한 쪽을 바인딩한 형식의 책이라는 매체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런데 웹소설은 아니다. 스크롤로 읽어도 큰 문제없고, 연재 형식이며, 종이책이 쉽게 감당할 수 없을만큼 긴데, 동시에 스낵컬처 특징이 있다보니 웹소설판에 들어오는 대중의 취향과 트렌드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고 리드해야 한다. 트렌드 히스토리를 추적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에 차이와 반복의 결과물이 너무 많이 쌓여간다. 타임 패러독스 마냥 ‘웹소설은 다 비슷비슷한데?’라고 말하는 순간 최전선의 웹소설은 그것과 또 달라져 있다. 연재물인 웹툰이나 TV판 애니메이션과 비슷한 작법을 가진 듯하지만, 거의 매일 연재하기 때문에 훨씬 빠른 전개 속도와 갈등 해결 구조가 필요하다. 매 에피소드마다 플롯 소모가 극심한데 동시에 전체적으로는 치밀한 빌드업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장르명으로 영화를 고르면 적당히 원하던 걸 찾을 수 있겠지만 웹소설은 그럴 수 없다. 구축되는 장르명이 매체 스토리텔링의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장르문학의 장르명이 웹소설에서는 힘이 더 약해진다. 그래서 웹소설은 장르명과 함께 해시태그로 이를 보완했다. #걸크러쉬 #집착광공 #웅장한 #피폐한 #사이다 #먼치킨, 그리고 #SF. 이제는 해시태그가 웹소설의 장르명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며, SF는 장르명이기도 하지만 해시태그이기도 하다. SF 옆에 로맨스, 판타지, 호러, 미스터리 등을 놓고 그것부터 시작하여 하위로 하위로, 나뭇가지처럼 갈래를 구분하는 것에 익숙하던 우리들은, SF가 #사이다나 #걸크러쉬와 나란히 놓여 더 이상 위아래도 없는 아득한 지평선을 본다. (첨언하자면 영화나 장르문학 역시 해시태그와는 결은 좀 다르지만 숨가쁘게 장르가 합종연횡 중이다. 정통 형식에 조금도 주눅들지 않는 전사와도 같은 상상력을 가진 젊은 작가들이 전장을 누빈 결과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저승 최후의 날을 보았다. 죽은 사람이 한꺼번에 저승에 밀려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SF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초신성 폭발로 쏟아진 감마선에 인류의 99%가 한꺼번에 몰살당한 것이 그 이유란다. 그렇게 SF다운 상상력이 느껴지려는 찰나 염라대왕부 비서실장 시영은 몰려드는 망자를 수습하느라 뛰어다닌다. 이러면 또 조선 오컬트스러워진다. 국내 및 불교 신화의 모범적인 활용이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무신론자들의 저승 ‘엘리시움’과 북유럽의 저승 ‘발할라’에 이르는 여정으로 흐르면서 오컬트의 소재가 확장된다. 그러더니 저승을 기억하는 사람이 전부 사라지면 저승도 소멸해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저승의 관료들과 망자들은 이승의 생존자들과 힘을 합쳐 인류 최후의 문명이라 할 수 있는 저승에 대한 기록을 남겨 우주로 쏘아 보내려고 한다. 오컬트를 우주로 쏘아 보내는 이야기라니 이게 무슨 짓이야. 내 늙은 편견에게 사과해.

이 작품에 대해서 내 의견은 ‘웹소설이지만 장르문학의 특징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웹소설을 읽는다는 기분은 그리 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애초에 안전가옥 앤솔로지 공모전 수상작을 웹소설로 개발한 것이었다. 웹소설 문법은 철수를 구하시오에서 훨씬 잘 드러나 있었기에, 심사위원들은 그 지점에서 고민했다. 지난 해처럼 웹소설의 특징이 좀 더 살아있는 작품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아니면 완성도 면에서 좀 더 노련한 작품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승 최후의 날이었다.

이 작품이 장르 장편에 있었어도 좋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웹소설로 개발된 것이 반가웠다. 웹소설 판이 갈라파고스화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른 장르로 확장하는 시도가 계속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장 대박을 칠 수 있는 웹소설과는 약간 방향이 다를 지라도, 이야기 산업의 전체 저변을 넓히는 방향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이 어워드의 역할일 것이다.

철수를 구하시오는 웹소설의 매력인 회빙환을 무기로 SF 장르를 전개해 나간 점이 좋았다. 재치있는 표지도 SNS에서 인기였다. 표지는 과거 국민학교 세대의 향수를 느낄 만한 교과서 일러스트에 수학 문제처럼 보이는 문구가 하나 적혀 있다. ‘철수는 지구에서 소행성 라마를 관찰하고 있다. 소행성 라마는 17.5km/s 속도로 지구에 접근하고 있으며 가속 중에 있다. 이때, 철수를 구하시오. (4점)’ 이 작품은 작년에도 후보작에 올라왔었으나, 뒤로 갈수록 밀도가 낮아지고 무너지는 구조에 아쉽게 탈락했었다. 자신의 작품이 크게 인기를 끌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작가가, 세이브도 없이 시작했기에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일년 만에 무너진 부분들을 최대한 보완하여 상큼한 엔딩을 내놓았다. 아서 c. 클라크의 ‘라마와의 랑데부’에 바치는 스핀오프 형식의 찬사, 다른 말로 하면 2차 창작(…)일 것이다. 웹소설이라는 매체의 특징과 SF를 동시에 추천해야 한다면 이 작품을 선택할 만하다.

끝까지 고려되던 작품이 같은 BL인 외계생물의 씨앗이었다. 이 작품은 외계의 한 행성에서 버려진 미약한 작은 생물이 아포칼립스적 지구에 도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작은 생물은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내고, 인간과 관계를 맺고, 인간과의 관계가 소중해진다. 이 작품은 재미도 있지만 허무한 세계관에 인류애적 따스함을 잘 흘려 넣었고, 거기에 먼치킨 소재까지 잘 녹인 수작이었다. 특히 노련하고 탄탄한 플롯이 장점이었는데, ‘SF적으로 기분 좋은 충격감’을 고려하여 마지막엔 덴타 클로니클의 손을 들어주게 되었다.

덴타 클로니클외계생물의 씨앗처럼, 웹소설 부문에서 이북까지 심사하게 되면서 심사 대상에 포함된 작품이다. BL이라고는 하는데, 성애장면은 포르노적으로 과다하지 않다. 거기에 우주 식물의 촉수물(…)이 약간 끼얹어졌다. 알려지지 않은 외계 행성에 표류한 주인공을, 자의식을 가진 식물들이 공격한다. 식물들의 공격을 피해 피신한 곳에서 이전에 표류한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하고, 격리되어 있던 인물까지 발견하면서 더 큰 음모가 서서히 존재를 드러낸다. 이야기는 미스터리 요소가 차용되어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얼핏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설정인 것 같지만 SF적으로도, 그리고 BL적으로도 강한 디테일이 이 작품을 다른 지평에 올려놓는다. BL을 보러 왔던 많은 독자들이, ‘씬’은 기대만큼 없지만, SF 세계관에 반하고 간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아쉬운 점은 이 작품이 마치 거대한 이야기의 프롤로그 같다는 점이었는데, 작품의 탁월함이 이 부분을 상쇄한다고 생각하여 최종적으로 수상을 결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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