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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SF어워드 (2025)

「제12회 SF어워드」 중·단편소설부문 수상작 및 심사평

 

 

 

 

 

 

 

 

 



 

 


2025년 SF어워드의 중·단편소설 부문의 심사는 한해 동안 각종 매체와 앤솔로지 및 단행본 등을 통해서 발표된 SF 중단편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와 충분한 의견 공유를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5인의 심사위원들이 확보한 종합적 평가 기준을 적용하여 각 심사위원들이 각각 10편 내외의 작품들을 추천한 뒤, 다시 심사기준에 부합하는 47편의 작품에 대한 본심 및 최종심을 진행하였습니다. 본심에서도 꽤 많은 작품들을 다루어야 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사전에 많은 의견을 공유하고 논의를 거듭하여 최종심에 진출할 작품들을 다시 추천한 뒤, 정리하여 이를 대상으로 최종심을 진행하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최종심에 진출한 작품들의 긍정적인 평가 사항들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① SF로서 장르적인 재미와 서사적인 완미함을 공통적으로 갖출 것. ② 소재주의나 설정, 세계관에 함몰되지 않은 탄탄한 이야기 구성을 갖출 것. 이를 바탕으로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각각의 개성과 장점은 다르지만 동시대 한국 SF 문학이 도달한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는 점에 대하여 심사위원들은 공통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본 심사평에서는 잘 만든 SF이자 잘 만든 이야기로서 최종심에서 주요하게 언급된 여섯 작품에 대하여 부족하나마 정리해보겠습니다. 
  돌기민의 「끈끈이」는 가상현실을 중심 소재로 하여 성폭력 피해 경험에 대한 트라우마적인 과거를 돌파해 나가는 흥미로운 전개가 개성적인 문체로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사이버펑크 메타버스라는 소재 속에서 섹슈얼리티, 그리고 ‘도약’이라는 문제를 통해서 구체화되는 계급성이 혼합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가상현실이 결코 현실의 폭력을 벗어나는 대안적인 세계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잘 드러낸 수작입니다. 하지만 동일한 주제의 서사가 반드시 메타버스 소재가 아니어도 가능하지 않은가라는 의견과, 반대로 그러한 소재와 세계관이 적절하게 결합했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나뉘어진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의 트라우마가 이 세계의 구조적 폭력과 연결되는 전개상의 인과관계에 대하여 다소 입장이 다를 수 있는 쟁점을 가진 작품이었습니다. 
  듀나의 「도둑왕의 딸」은 지극히 듀나스러운 소설, 일반적인 장르 문법과 예상 가능한 플롯에서 계속해서 벗어나는 독서 과정의 서프라이즈가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시간여행과 평행세계의 소재는 이제 SF 독자들에게도 지겨울만 하지만, 이 소설은 으레 드러나는 해당 소재를 효과적으로 비틀어 무한히 반복될 수밖에 없는 시간여행의 보여줍니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을 바탕으로 아들에 의해서 끊임없는 부친살해가 반복된다는 점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적 이야기이지만, 일회적인 복수에 의해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것이 아닌 끝까지 그것을 밀고 나가는 반복적이고 연쇄적인 복수가 예외적이고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다만 후반부에 드러나는 액자식 구성과 당신을 호명하는 2인칭의 효과가 충분히 기능하는지에는 이견이 있었습니다. 
  남세오의 「벨의 고리」는 과학적 지식과 설정을 이토록 친절하게 설명하면서도 이야기에 대한 몰입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작품입니다. 양자역학과 관련된 과학적 지식을 전개하면서도, 대중 독자가 읽기에 전혀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서사적 몰입을 제공해주었다는 점이 특징이며,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미스터리나 스릴러적인 장르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살리면서 전개를 이어가는 능수능란함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장르적 분위기를 충실하게 살리는 과정에서 1인칭의 서술에서 주인공이 호기심 이상의 감정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에 따른 능동적 선택을 수행하기보다는 다소 상황에 휩쓸리는 존재라는 점에서, 독자 입장에서 심리적 동질감에는 이르지 못하고 결말의 극적인 긴장감에 머무르게 되는 점이 아쉽다는 의견도 존재했습니다. 
  이산화의 「행복이란 따스한 반죽」은 초단편에 해당하는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근래 가장 드믈고 귀한 성취였습니다. 초단편 장르가 으레 설정이나 세계관, 캐릭터의 단면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라는 편견과 달리, 이 작품은 짧은 분량에서도 압축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는 물론이고 서사적 밀도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별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분량에 약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초단편의 형식적 한계를 넘어서 심사위원들을 납득시킬 만큼의 서사적 감동과 충격을 주는 지점이 존재한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휴머니즘 주체성의 울타리를 벗어나 타자와 결합하는 소설의 소재가 다소 전형적이거나, 혹은 예상된 감동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위래의 「마젠타 C. 세레스의 사랑과 혁명」은 개인적으로는 장르적인 문법과 재미에 충실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거대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설정을 활용하면서도, 제한된 공간과 인물들의 정보를 통해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미스터리 문법이 효과적으로 활용된 점,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의 설정과 타인의 몸이 이식된 자기 정체성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몰입감이 상당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진 정신과 육체의 양면적 작동, 그리고 모순적으로 사랑 자체에 포함되어 있는 파괴적 가능성을 서사적 장치로서의 활용함에 있어서 그것이 충분히 주제적으로 잘 전달되었다는 평과 상대적으로 다소 기능적으로 작동했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원우의 「내부 유령」은 소재와 주제, 몰입감 있는 서사적 전개와 그에 따른 감정의 전달이 전반적으로 완미한 소설이라는 점에 대하여 모든 심사위원들이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초능력의 유무라고 하는 중요한 소설 소재를 기능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소 반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전개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주제의식으로까지 확장하는 솜씨가 매끄럽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초능력이란 한 개인의 초월적인 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약자를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결단으로까지 나아가는 마음의 힘이라는 메시지가 다소 전형적인 주제일지라도, 이 소설에서 독자에게 충분히 감동과 여운을 안겨줄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자기 삶으로부터 도피해 왔던 주인공이 기꺼이 타인을 위해 도망가지 않고 멈춰서는 과정을 그려내는 전체 서사의 설득력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심사위원들은 치열한 논의를 거쳐서 올해 중·단편소설 부문의 대상 수상작은 김원우의 「내부 유령」으로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이 가진 육각형의 완성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깊은 설득력과 여운에 대하여 많은 심사위원들이 공통적으로 호평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소설집을 낸 김원우 소설가를 빠르게 재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이번 대상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근소한 차이로 위래의 「마젠타 C. 세레스의 사랑과 혁명」와 이산화의 「행복이란 따스한 반죽」을 우수상 수상작으로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두 작가는 작년에도 우수상을 수상한 작가라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아쉬운 심사 결과일 수 있겠으나 두 작가의 작품들이 평균적으로 대단히 안정적인 수준의 SF적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을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수상한 세 분 작가분들게 진심으로 큰 축하와 격려를 보냅니다. 

 

처음으로 SF어워드 중단편 부문 심사에 참여하면서 연신 즐거운 비명을 질렀습니다. 작품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읽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던 데다가, 수작도 많아서 그중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뚜렷한 개성을 지닌 작품들, 설령 많이 반복되었던 주제라 해도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기후소설(cli-fi)과 포스트 아포칼립스, 인공지능에 대한 대대적 관심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반영했고, 가상현실, 유전자 편집, 시간 여행 등의 주제가 지금 여기로부터 도약해 또 다른 현실을 상상하게 해주었습니다. 한국 SF 소설계가 해마다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팽창하면서 상상력과 창조적 자원이 고갈되기보다는 오히려 발전적 상호 작용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내부 유령〉의 김원우 작가는 다른 두 후보작 〈좋아하길 잘했어〉와 〈당기는 빛〉도 모두 훌륭했기에 읽는 것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탄탄한 기본기와 안정적인 호흡, 독자를 쥐었다 폈다 하는 능란한 기술을 구사하는 작가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내부 유령〉은 반전의 묘미가 뛰어났고, 초심리학과 초능력이라는 소재를 사용하는 방식이 매끄러우면서 사실적이었으며, 한 사람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웅적 결단을 내리고 그러한 결행에 마침내 성공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에게 고양감을 안기는 필력이 대단한 작품이었습니다. 좋은 SF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정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독자가 가진 사고의 지평을 열어젖히고 오래 기억에 맴도는 여운을 남긴다면 그 이야기를 탁월하다고 부르는 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심사위원으로서 한 작가를 발견하고 또 조명하는 보람은 더없이 큽니다. 김원우 작가가 앞으로 더욱 많은 작품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이산화 작가의 〈행복이란 따스한 반죽〉은 초단편이라는 짧은 분량 안에서 장르성, 흥미진진한 전개, 독특한 설정, 아름다움, 감동까지 모두 챙긴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초단편은 단편이나 중편에 비해 그것이 담는 의미의 심도가 얕게 마련이어서 같은 선상에서 비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의 경우에는 그러한 한계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압축적이고 높은 밀도를 가진 초단편의 형식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합니다. 서로 다른 두 존재가 합일되는 상상은 오래된 주제이겠으나, 이 주제를 현재의 인간성을 넘어선 진보한 세계라는 배경 위에서 SF적으로 풀어내는 솜씨와, 주인공이 누리는 행복한 일체감을 따스하게 그려내는 필치가 돋보였습니다. 

〈마젠타 C. 세레스의 사랑과 혁명〉에서 위래 작가는 인간이 가진 사랑의 양면성, 즉 상대방을 향한 이타적 헌신과, 때때로 살인 충동까지 다다르기도 하는 폭력적 충동 사이의 월경을 과학적 설정을 토대로 그려냈습니다. 장대한 스케일의 시간대와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페이스 오페라의 맛, 주어진 의문을 해결하는 미스터리 장르의 문법까지 모두 살렸다는 점에서 장르적으로 맛깔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세계 설정이 이야기의 모든 것을—사건, 인물, 감정까지도—지시하고 더 나아가 설정으로 환원시켜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한계로 지적되기도 했지만 도리어 작품 고유의 매력으로 읽히기도 했습니다.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논쟁은 그 자체로 작품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수상작 외에도 쟁쟁한 후보작들이 경쟁했습니다. 저는 돌기민 작가의 〈끈끈이〉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경험을 복기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을 메타버스 문법으로 재구성한 아이디어가 좋았고, ‘피해자다움’을 넘어서는 유머와 독설이 담긴 독특한 문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세오 작가의 〈벨의 고리〉는 과학적 설명을 이야기에 녹여넣지 않고 단락 통째로 삽입하는 접근이 대담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고 매끄럽게 읽힌다는 점이 놀라움을 안겨준 하드 SF였습니다. 듀나 작가의 〈도둑왕의 딸〉은 시간 여행이 소재가 필연적으로 가지는 주인공의 반복적 경험이라는 장치를 통해 살부 충동을 승화시킵니다. 클리셰를 신선하게 비트는 방식이 유쾌한 작품이었습니다. 수상 후보작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서윤빈 작가의 〈농담이 죽음이 아니듯 우리는 땀 대신 눈물을 흘리는데〉가 기후 재난 속에서 이야기하는 애도 불가능성이 오랫동안 마음을 시리게 했고, 황모과 작가의 〈언더 더 독〉이 남긴, 인간이 존엄하게 살지 못할 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렬한 질문 또한 기억에 남았습니다. 

후보작들을 읽고 또 심사위원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SF적인 것은 무엇인지, 장르성과 비장르성은 어떻게 구분되는 것인지 오래 생각했습니다. 또한 한국에 좋은 SF 작가가 생각보다도 더욱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어 기뻤습니다. 수상 작가들에게 축하를, 또한 치열한 경합을 벌인 많은 작가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김원우 작가의 「내부 유령」은 이야기의 얼개, 멋진 반전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 부분이 없는 수작입니다. 초능력물 SF로서도 단단하게 발을 딛고 있는 작품이지만, 주제와 소재들을 연결하는 솜씨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납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정확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요. 우리는 흔히 사랑을 말할 때 배타적이고 편을 드는 사랑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 속의 사랑은 모두를 이어서 끝내는 나 자신을 세상과 함께 움직여 내고야 마는 사랑입니다. 성장해서,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결국 누군가와 세상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데에까지 나아가는 주인공의 용기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라는 주인공의 능력과 물샐틈없이 연결되면서 서사적 감동을 증폭시킵니다.

위래 작가의 「마젠타 C. 세레스의 사랑과 혁명」은 서사적 흥분을 정확하게 타격하는 아주 맛있는 소설입니다. 인격을 내려받는다는 아이디어는 여러 형태로 다양하게 변주됐지만, 이 소설은 이 아이디어를 생물학적 장치와 결합하여 새로운 매력을 발산합니다. 「마젠타 C. 세레스의 사랑과 혁명」은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와 상황을 계속해서 추정해야 하는 추리소설의 플롯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사건은 모두 벌어져 있고, 그 상황에서 끊임없는 주인공의 추정을 독자는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도 소설은 한순간도 숨을 느슨하게 내려놓지 않습니다. 침을 삼키고 손에 땀을 쥐며 독자가 소설을 따라가도록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마지막 반전은 통쾌하고도 짜릿하게 뒷통수를 후려칩니다. 제목을 다시 돌아보며 사랑이란 어쩌면 이토록 거침없을까, 감탄하게 만듭니다.

이산화 작가의 「행복이란 따스한 반죽」은 매우 짧은 분량 속에서 SF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의 판타지아를 선보입니다. 인간은 구별되어 있습니다. 피부도 입자긴 하겠으나, 결국 우리는 개별적 유기체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외로운 두발 동물으로서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고 하나가 되기를 끊임없이 꿈꾸게 됩니다. 이산화 작가는 SF적 배경 설정을 통해서 그 한계를 아름다운 방식으로 무화시킵니다. SF는 ‘배경’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장르입니다. 과학적 상황 속에서 줄거리가 생겨나고, 그 상황이 핵심적 주제를 관통하게 됩니다. 「행복이라는 따뜻한 반죽」은 짧은 분량임에도 일침이나 반전 같은 방식 대신에 SF적 세계관으로 정면 승부를 던집니다. 완전히 비일상적인 세계 속에서도 주인공들의 일상은 핍진하게 그려지며, 사랑이란 제목처럼 따스한 반죽이 되어 그 세상을 감쌉니다.

세 작품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문득 다시 보입니다. SF라는 외피와 만났을 때,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크게 증폭될 수 있는지요. 
아름다운 작품을 읽게 해 주신 작가들에게 감사드리며 축하를 전합니다.

 

최근에 한 작가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하나의 SF를 읽는다는 것은 한 문화권의 집을 방문하는 일, 정확히는 그 집의 현관을 통과하는 일과 같다는 것입니다. 신발을 벗는 문화를 모르는 방문자는 무심결에 멀쩡한 터전을 짓밟은 무뢰한이 될 수 있고, 반대의 경우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을 뒤로 한 채 그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걸음을 할 수도 있습니다. 현관에는 그 세계의 규칙이 적용되고 방문자는 어렴풋 규칙을 터득해가며 세계에 입장합니다. 물론 설득력 있는 현관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규칙을 눈치채지 못하면 영영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는 점에서 SF는 침략자의 문학이 될 수 없습니다. 한동안 허둥댈 수도 있고 파악하고도 숙달되지 않아 쩔쩔맬 수도 있겠으나 한 세계에 입장하기 위해 기꺼이 내가 고수하던 인식과 사고를 허물어트리는 일, 구부리고 뒤집고 관통하고 압축하고 확장하는 일이 SF를 읽는 동안 벌어지는 사건입니다. 이번 심사를 통해 수많은 현관을 통과할 수 있어 즐거웠다는 인사를 지면에 다 적지 못한 작가님들께 전하고 싶습니다.

SF 작품에 수여되는 상인만큼 비교적 SF적인 논리에 치중되지 않은 작품들이 수상권에서 밀려났습니다. 그럼에도 온전히 세계에 빠져들어 읽은 뒤 이제 제 안에 그리운 하나의 장면으로 남은 세 작품에 관해 적어두고 싶습니다.

오동궁의 「판타스틱 리조트 작동 매뉴얼 서문」은 실재계의 종말 이후 가상계의 전자 의식으로 생존하게 된 인류가 또다시 종말을 맞는 과정을 면밀한 시선으로 그립니다. 세계를 전환하며 개인의 외향과 나이와 계급은 변형되고 세월 속에서 자아와 기억 또한 변질됩니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이어지는 것은 저마다 품고 있는 상처와 연약함, 의지와 욕구 같은 가장 인간다운 면모이고, ‘나’라는 존재의 연속성을 의심하는 와중에도 사람과 사람은 관계를 맺으며 끝없이 연결됩니다. 모든 것이 소멸을 향해 쪼그라들며 금방이라도 꺼질 듯 깜빡이는 세계에서 오히려 ‘누군가의 기억도 이야기도 아닌 채’ 살아있다는 감각을 길어올리는 순간들을 오래 곱씹을 수 있었습니다.

서윤빈의 「농담이 죽음이 아니듯 우리는 땀 대신 눈물을 흘리는데」는 막을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거대한 물속에 잠겨가는 세계에 내내 홀로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아내는 돌아오지 않는 반면, 수장을 위해 물길에 실어 보낸 죽은 아이의 관은 끝없이 되돌아옵니다. 삶을 이루는 모든 것이 잠긴 자리에 자꾸 떠오르는 것은 죽음이며, 화자는 재난이 아닌 애도 불가능 상태에 고립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아이의 관이 물 너머의 다른 존재 ETA와의 연결점이 되는 것, 또 소설 말미에 이르러 죽음의 관이 물에 띄운 생존의 배가 되어 화자를 다시 세상과 연결해주는 아름다운 전환이 놀라웠습니다.

돌기민의 「끈끈이」는 개인적으로 세계와 이야기가, 나아가 인물과 문체마저 무엇하나 도구로 소비되지 않고 하나로 붙어 작용한 완성도 높은 SF라고 생각하지만, 세계의 논리를 전개하고 그로 인한 새로운 지평을 여는데 집중하기보다 인물의 내면을 따라간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가가 가진 이상한 힘, 독특하고 생생한 목소리, 과감한 문장, 소설 자체는 언뜻 위태로워 보이지만 작가의 태도는 매 순간 윤리적인 예민함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 역시 믿음직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이 작가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써나갈지 저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데 바로 그 점이 무척 즐겁습니다.

수상작이 된 세 작품은 SF가 줄 수 있는 즐거움에 대해 마음껏 말할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이산화의 「행복이란 따스한 반죽」은 짧은 엽편의 분량으로 세계와 서사를 두루 보여주는 동시에 세계와 서사가 만나는 바로 그곳에 소설의 길이 열린다는 점에서 철저히 SF적인 작법의 작품이었습니다. 보편적인 생물의 스테레오 타입 신체로부터 해방되어 ‘옛날에는 감히 존재할 수조차 없었을 형상’으로 감동을 주고 그런 신체를 선택한 존재에게 이끌리는 새로운 방식의 관계를 따라가는 동안 제 안의 몇 개의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신체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워지거나 타자와의 경계를 허무는 기존의 작품들이 떠오르긴 했지만, 존재할 수조차 없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SF의 힘으로 경험한 이 세계의 감각을 순순히 따라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위래의 「마젠타 C. 세레스의 사랑과 혁명」 또한 SF만이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문제와 해법을 보여주었습니다. 통치자는 사랑을 이용해서, 정확히는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단 한 가지 규제로 사령관들을 지배합니다. 의식의 다운로드가 가능해진 세계에서도 인간은 결국 신체를 가진 생물이고 호르몬의 지휘 아래 복종해야 하는 아이러니 속에 과연 사랑하는 지배자를 피지배자가 전복할 방법은 없는 걸까요? 방대한 역사와 현 사건의 내막이 드러나는 과정, 소설이 질문을 품고 고투하는 과정, 그리고 마침내 사랑이 가진 속성 중 폭력을 증대하여 사랑하는 자를 죽이는 데에 이르는, 문제에 갇히지 않는 터프한 방식의 모색이 주는 쾌감이 무척 컸습니다. 본심에 올랐던 작가의 다른 작품 「춘우삭래春雨數來」는 본 작품과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느슨한 연작처럼 세계관이 연결되어 있어 앞으로의 작품들에 기대감을 주었고, 또 다른 작품 「무시소리 이야기」는 메타적인 통찰과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도 보여주어 동료 작가로서 아낌없는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심사위원들의 의견 차이 없이 고른 지지를 받으며 대상작으로 선정된 김원우의 「내부 유령」은 허구의 세계와 사고의 전환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때 얼마나 사실적이고 강력한 힘이 발휘되는가를 생각해 보게 한 작품이었습니다. 초능력을 발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자들이 보지 못한 것은 영이라는 아이의 내면이었고, 타인의 머릿속에 들어갈 수 있는 초능력자인 화자의 진짜 초능력은 자신과 아무런 관계없는 아이에게 연민을 품고 결국 그 아이를 구하려는 선한 선택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초능력이라는 노붐이 이야기와 맞물리며 중요한 서사를 형성하는 섬세함에 기꺼운 지지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화자의 초능력이 닿지 않는 범위로 영이는 멀어지지만 마지막 순간 보인 영이의 우는 얼굴이 이 관계의 거리가 어떻게 좁혀지고 어쩌면 서로의 머릿속에 들어앉은 사람처럼 하나가 되었는지 아무런 설명 없이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을 오래도록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유령처럼 우리 내부로 성큼 들어온 이 새로운 작가에게 기쁜 축하를 보냅니다.

 

수상 작품에 초점을 두고 그 구체적인 점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심사평의 정석인 듯하지만, 이는 다른 심사위원 네 분이 훌륭하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SF 장르에서 중요한 점 하나만을 짚고, 그에 비추어 이번에 수상하지 못한 작품들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제가 이번 심사에서 눈여겨 본 한 가지는 작품이 세계를 얼마나 잘 빚어서 활용하고 있는가입니다.

대부분의 SF는 현실에 없는 설정을 전제로 하여 세계를 만듭니다. 이 점은 판타지도 마찬가지이지만, 판타지가 전제로부터 문화적, 감정적인 방법으로 세계를 구축하는 데 비해 SF는 그 작업에 논리적,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SF 작품이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SF는 생긴 지 오래된 장르인 만큼 폭넓고 포용성이 있습니다. 남세오의 <벨의 고리>는 양자 얽힘을 활용하는 흥미진진한 스릴러인데, 이 작품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설정이 없습니다. 이렇듯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과학이나 기술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 또한 SF의 한 오래된 전통입니다. 박대겸의 <글록 17>은 과학 원리도 독특한 세계도 없지만, SF 독자라면 익숙할 장르 관행인 타임루프를 활용하는 수작입니다. “우주선이 나오고 광선총이 나오면 SF”라는 말처럼, 장르에 친숙한 요소를 다시 사용하는 것 또한 SF를 쓰는 한 가지 방식입니다. <글록 17>이 한 것처럼, 오래된 요소를 새롭게 할 수 있다면 특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일단 현실에 없는 새로운 설정을 작품에 두기로 했다면, 이를 전제로 하여 세계를 구축하는 작업은 필수적입니다. 전제가 되는 설정을 들이미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설정을 사실로서 가진 세계가 어떤 곳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를 사건과 인물에 자연스럽게 반영하는 것까지가 세계의 구축입니다.

세계가 구축되지 않은 SF 작품은 불신의 유예를 담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당장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데 편리한 장치로만 독특한 설정들을 사용할 뿐, 정작 그 설정으로 만들어진 세계의 아귀가 맞지 않거나 아예 보이지 않아 SF 소설이라기보다 우화 같은 작품이 적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래된 불만이지만, 이번 심사에서는 세계 구축이라는 SF의 기본기가 능숙하게 펼쳐진 작품들을 적잖이 발견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세계를 구축한다고 해서 그 모든 면을 보여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 설정이 세계를 어떻게 다르게 만드는지 암시만 해 주어도 됩니다. 듀나의 <도둑왕의 딸>에는 시간여행과 평행우주가 존재합니다. 그 세계의 시공간은 필시 광대하겠지만, <도둑왕의 딸>은 그 구성이나 작동 방식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5세기 가야 출신 화자의 눈을 통해 넌지시 보여주기만 합니다. 화자의 술회를 듣는 것만으로도, 독자는 이 사람이 살아가는 다원우주가 어떤 곳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도둑왕의 딸>만이 아니라 듀나의 작품들에서 일관적으로 볼 수 있는 세련됨입니다.

듀나가 그래 온 것처럼, 이산화 또한 잘 구축된 세계들을 내내 선보여 왔습니다. <이무기 시절도 한때>의 초점은 세계에 있지 않고, 곧 모습을 바꾸어 떠나갈 사람에 대한 동경과 아쉬움에 있습니다. 아홉 페이지밖에 안 되는 이 초단편은 사람이 갑자기 용이 되기도 하는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 당연히 일어나고 있다는 은근한 느낌, 세계가 성립하고 있다는 느낌은 행간에 배어 역력히 전해집니다.

작품의 길이가 길면 세계의 구축도 더 풍부하게 할 수 있습니다. 김경은의 청소년 중편 <빅토피아>는 가상현실이 보편화된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작품 내내 초점은 주제인 신체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그 무대가 되는 세계의 묘사가 풍성하고 그럴 법합니다. 이 점은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송우들의 중편 <니아>에서도 돋보였습니다. 양쪽 모두 중편 길이에서 할 수 있는 세계 구축의 좋은 예로 들고 싶습니다.

세계는 SF의 특징이지만 인물은 소설의 특징입니다. 인물은 세계 전반과 상호작용을 해야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사람 같아 보입니다. SF의 세계가 현실 세계와 다르기 때문에, 인물이 세계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할 것인지도 작가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세계가 전제 설정 이상으로 구축되어 있으면 인물이 발을 딛기도 쉬워집니다. 반대로 세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으면 인물은 현실 세계에도 가상 세계에도 연결되지 못하고, 설정된 전제에 기반한 사고 실험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SF에서는 인물이 인물답기 위해서도 작품 속에 세계가 성립해야 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잘 구축된 세계와 그에 어울리게 조형된 인물의 상호 밀착이라는 면에서는 서윤빈의 <농담이 죽음이 아니듯 우리는 땀 대신 눈물을 흘리는데>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주인공은 물리적 거리와 죽음에 의해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얼굴 모를 먼 이웃과 해류를 통해 교류합니다. 이런 주인공과 기후 파국으로 치닫는 세계가 서로를 완성하는 점이 눈에 띄는 작품입니다.